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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절하게 살아가기 - 부적절성 속에서 죽어가는 모든 존재들을 살아가는 것
한광수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12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인간의 불평등은 태아부터 시작된다. 내가 원해서 여자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인종이든 나라든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건 없다. 부모도 환경도 내 마음대로 택할 수 없다. 하지만 태어나서 어떻게 노력하느냐에 따라 나에게 주어진 환경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선택할 수 없었던 부적절한 환경은 내가 세상을 어떻게 노력하고 바라보느냐에 따라 적절한 환경이 된다. 그리고 죽을 때는 모두 다 평등하다. 이 책의 3장 자기 존중에 관한 이야기 중 '평등과 불평등'에 나오는 이야기다.
먼저 이 책의 제목 <적절하게 살아가기>에서 적절하다는 뜻부터 살펴보자. 적절하다는 말은, 너무 크거나 작지 않은, 너무 짧거나 길지 않은, 너무 많거나 적지 않은, 잘 맞는, 알맞은, 딱 맞는... 이런 뜻이다. 그런데 이렇게 적절하다는 말의 의미를 검색해서 쓰다 보니 갑자기 떠오르는 단어가 있다. 중용. 지나침이나 모자람이 없고, 어느 쪽에도 치우치지 않는 것. 감정이나 행동에 있어 극단을 피하고 적절한 선을 지키는 것. 중용과 적절하다는 의미가 너무 비슷하다.
나는 적절하다는 말을 듣고 최근에 본 드라마인 <약한 영웅>의 주인공 연시은과 시즌 2에 처음 등장하는 박후민이 생각났다. 주인공은 시종일관 적절이라는 말의 뜻을 설명해 주는 것 같았다. 정의와 불의 사이에서 균형을 유지하는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시즌 2에서 처음 등장하는 박후민은 비록 중간에 마음은 흔들렸지만, 끝까지 나백신 밑으로 들어가지 않고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길을 택한다. 이것이 이 책에서 말하는 자기 적절성이 아닐까 싶다. 나 스스로가 어떤 일을 충분히 잘 해낼 수 있다고 믿는 마음이 자기 적절성이니까. 저자는 자기 적절성이란 자존감과도 일맥상통한다고 했다. 그럼 자존감이란?
내가 그림을 그렸다. 내 생각에 이 정도면 꽤 잘 그린 거 같다. 이런 내가 좀 잘했다는 적절하다는 느낌이 자존감이다. 내가 화가도 아닌데 이 정도면 잘 그렸다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한다면, 자기 적절성이 높은 것이다. 나는 그저 존재 자체로 충분하다. 그림을 조금 못 그렸어도 다음에 더 잘 그리면 된다고 생각하고, 내가 그림이 아니어도 다른 것도 잘하는 게 많다고 스스로를 긍정적으로 평가하면 자존감이 높은 것과 같다. 그래서 자기 적절성은 자존감이라고 볼 수 있다.
이 드라마의 주인공 연시은은 서준태에게 뉴턴의 제3법칙인 작용-반작용의 법칙을 알려준다. 내가 반응하기 때문에 상대방이 행동한다는 것. 은장 고등학교 빵 셔틀 서준태는 폭력에 굴복했기 때문에 빵 셔틀을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결국 범죄라는 것을 알면서도 친구들의 핸드폰을 훔쳤다. 하지만 연시은의 말을 고민하던 서준태는 결국 훔친 핸드폰을 미안하다는 쪽지와 함께 모두 주인에게 돌려준다.
이 드라마를 안 본 사람이라도 빵 셔틀 서준태는 이제 죽겠구나 하고 쉽게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죽도록 맞긴 했지만 연시은의 도움으로 죽지는 않았다. 빵 셔틀이 죽기를 각오하고 폭력에 맞설 수 있었던 것은, 연시은의 말을 진심으로 고민하고, 자기를 죽게 내버려두지 않을 거라는 믿음도 있었겠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서준태의 마음에는 나도 폭력에 맞설 수 있다는 자기 적절성이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스스로를 한 번 돌아보자. 대부분의 괴로움은 스스로의 부족함에서 비롯된다. 자기 부적절성이다. 저자는 묻는다. 나는 나를 가장 편하게 해주고 있는가? 자기에게 너무 기대를 많이 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아닌가? 이 세상에서 나를 가장 괴롭히는 것은 나 자신인 것 같다. 생각하지 않으면 될걸, 계속 생각해서 스스로를 끊임없이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한다. 자신에 대한 기대를 좀 낮추면 되는데, 기대치를 높게 잡아놓고 달성하지 못했다고 스스로 열등감에 시달린다.
정체성이란 무엇일까? 책에는 자동차 부품을 비유로 든다. 좋은 부품들이 아무리 많더라도 엉뚱한 곳에 놓으면 차를 조립할 수 없다. 정체성이란 마치 자동차 부품처럼 내가 가지고 있는 좋은 부분들을 제자리에 놓고 좋은 차를 조립하는 것과 비슷하다. 나의 신체와 정신 모든 부분이 제대로 발휘할 수 있게 통일시켜 주는 것이 정체성이다.
쉽게 말하자면 정체성이란 내 이름과 나이, 성별, 민족, 내가 좋아하는 음악, 취미, 음식, 책, 스포츠 그리고 말투나 성격 등등 자동차의 부품처럼 나를 구성하는 모든 것이다. 자동차 부품은 교체할 수 있지만 나의 정체성은 이 세상에 유일한 것이기 때문에 교체할 수 없다는 점이 정체성과 자동차 부품의 다른 점이다. 그리고 정체성은 성장하거나 바뀔 수 있다.
정체성을 영어로 아이덴티티(Identity)라고 하는데, 신분증인 ID 카드에서 ID는 Identity의 약자다. 어쩌면 나의 정체성과 나의 신분이라는 것은 유일무이하기에 영어로는 똑같이 아이덴티티라고 표현을 하나보다. 다시 말해서 정체성이란 당신은 누구냐는 Who are you?에 대한 나만의 답이자 색깔이 아닐까 싶다.
이 정체성보다 더 포괄적인 개념이 적절성이다. 적절성은 자기와 타인, 세상과의 관계에서 적절한 행동으로 세상과 화해를 이루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 태어난 것도 아니고 내가 죽고 싶다고 해서 죽을 수 있는 것도 아니다. 그래서 자기 부적절성에 빠진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우리가 원하는 대로 살 수도 죽을 수도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지 않으면 부적절성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 이런 사실을 받아들일 때 우리는 살아있는 운명도 죽어간다는 운명도 긍정할 수 있다. 부적절성을 인정해야 자유인이 된다.
이 세상에 적절성은 없다. 자유를 얻은 자가 추구해야 최고의 목표는 지혜롭게 사는 것이다. 가능하면 타인에게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며, 나의 존재로 인해 타인도 행복할 수 있게 사는 것이다. 이렇게 부적절성에서 나오는 적절성이 삶을 긍정하는 최고의 방식이다.
자기 내면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자기가 원하는 것을 실현시켜 보자. 자기실현에는 자기가 창조하는 것을 포함한다. 창조는 자신의 몸과 마음이 조화로울 때 가능하다. 지혜롭고 기쁘게 사는 것은 부적절한 사람이 부적절성의 긍정을 통해 자유를 얻는 것이다. 자유라는 것은 몰입(flow)의 또 다른 표현이다.
저자는 몰입이란 애씀 없이 다 하는 것이며 노력 없는 노력이라고 설명한다. 애씀 없이 적절성을 이루고자 한다면 적절성에 이를 수 있다. 결과나 성과보다 몰두하는 과정 자체에 초점이 맞춰진다. 완벽한 몰입의 경지이다.
달리기 연습을 하는 학생이 있다. 그 학생은 등수나 기록보다 달리는 과정에서 얻은 몰입감과 인내가 더 큰 의미를 지닌다고 생각한다. 결과보다 중요한 것은 꾸준한 노력 속에서 경험한 성장과 적절성이었다. 얼마나 빨리 달렸는지 보다 꾸준히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며 끝까지 달렸다는 사실이 중요했다.
어떤 대학생 이 있다. 그 학생은 정해진 일과를 묵묵히 실천하며 단지 책상에 앉아 있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진다. 매 순간 공부하는 것 자체에 집중한다. 성적은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계속 앉아서 공부하는 과정 자체가 평온하다. 이는 무위의 개념을 체현하는 것으로 노력 없이 이루어지는 성취를 통해 적절성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렇게 그는 학생으로서 학업을 성취하면서도 그 과정 자체에서 최고의 적절성을 느끼며 4년을 보냈다고 한다.
이 두 가지 이야기에는 무위라는 개념이 나온다. 무위란 몰입과도 같은 경지이며 그래서 자유롭다. 자연은 서두르거나 억지로 빨리빨리 하는 일이 없다. 그렇게 자연스럽게 흐르니 자연인가 보다. 그 흐름은 일과 내가 하나 되는 상태인 몰입의 흐름과 비슷하다.
이 책을 통해 저자는 오랜 정신과 상담과 임상 경험을 통해 축적한 통찰을 바탕으로, 적절하게 살아간다는 게 어떤 것인가에 대한 물음을 던지고, 그 답을 함께 찾을 수 있도록 가이드 해주었다. 적절함은 이 세상에서 가장 귀한 존재인 나에서 시작된다. 그 반대인 부적절함은 죽음에서 시작된다. 하지만 죽음을 인정하는 적절성으로 삶과 죽음은 서로 조화를 이룬다.
마지막 4장과 5장에서는 자기 존중과 자존심의 본질, 상처의 이해와 용서, 낮은 자존심 극복하는 법, 남에게 부탁하기도 어려워하고 남의 부탁도 잘 거절하지 못하는 이유, 다양한 사랑의 종류와 적절성에 대해 알아본다.
여기서 기억에 남는 것은, 내가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한 것만 생각했었는데, 나의 부모 역시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사실이었다. 나의 부모님도 좋은 부모를 만나지 못했다는 부모님에 대한 이해는 지금의 나를 조금 더 행복하게 만들어 준 것 같다. 내가 부모님께 제일 바라고 원했던 것을 지금 내 아이에게 해 주고 있는 나는 너무 행복하다. 지금 행복하다면 적절하게 잘 살고 있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