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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 - 읽기만 해도 역사의 흐름이 잡히는 ㅣ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시리즈
임소미 지음, 김재원 감수 / 빅피시 / 2024년 6월
평점 :
이 책을 무심코 집어 든 여러분의 마음속에는 우리의 뿌리를 알고 싶다는 갈증이 깃들어 있을 것입니다. 누구나 자신의 뿌리와 정체성을 찾고 싶겠지요. 그래서 이 책 속으로 격동의 한국사 여정에 흠뻑 빠져보시기를 소망합니다.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는 한국 역사를 한 권으로 압축한 한국사 입문서다. 나무가 아닌 큰 숲을 먼저 파악하고 한국사의 핵심 장면을 알차게 담았다. 가장 큰 특징은 이제까지 모르고 지나쳤던 단어 뜻과 함께 저자의 의견을 빼고 역사가 쭈욱 머릿속에서 이어지게 해 준다는 점이다. 이런 것이 스토리텔링인 것 같다. 억지로 기억하려고 하지 않아도 생각나는 게 신기하다.
총 5개의 파트로 되어 있는데 고조선과 삼국시대→ 신라→고려→조선→ 대한제국 순서이다. 이것이 큰 숲이다. 한일 합병 이전까지의 역사를 알려준다. 대한 제국부터는 다음 책을 기대해야 할 것 같다.
왜 요즘 어른을 위한 최소한의 한국사라고 했을까? 역사를 통해 어떤 실수를 반복했고, 어떤 좌절을 했으며, 어떤 것을 이뤄냈는지를 알면 우리가 사는 세상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기 때문이 아닐까. 축적된 역사 속에서 지혜를 배워 다양한 문제에 다양한 방법으로 접근할 힘을 기를 수 있는 최소한의 한국사 말이다.
이 책에서는 '을지문덕은 살수대첩에서 수나라 군을 전멸시켰다'라고 간단히 팩트를 나열한 것이 아니라 '고구려의 을지문덕은 수나라 병사들이 지친 상항을 간파하고 거짓으로 항복하겠다고 선언한다. 그래서 안심하고 퇴각하던 수나라 군대는 살수에서 고구려 군의 기습 공격을 받고 전멸하고 말았다'라는 식으로 그때 상황을 알려주어 이해를 돕는다.
고조선과 삼국시대
중국의 만리장성은 진시황이 흉노족의 침입을 막기 위해 쌓은 것이었고, 사람이 죽으면 뼈가 남을 텐데 옥저에서는 왜 굳이 '골장제'라는 표현을 썼나 했더니 시체가 썩으면 뼈만 추려내 가족 공동 무덤에 함께 매장하기 때문이었다.
고구려 소수림왕은 아버지의 복수보다 나라가 휘청거린 이유를 지배층이 분열에서 찾고 불교를 공식 수용해서 흩어진 민심과 분열된 지배층을 하나로 모았다. 태학을 설립해서 유능한 인재를 키우고 율령을 반포해서 통치 체계를 정비했는데, 이런 튼튼한 토대를 바탕으로 광개토 대왕이 정복 사업을 펼칠 수 있었던 것이다. 원수를 갚기보다 내 집, 내 나라부터 정비한 소수림왕의 생각이 멋있다. 환경 탓 남 탓 대신 스스로 기본기와 실력을 갖추라고 말하는 듯하다.
광개토 대왕은 39세에 짧고 굵은 생을 마쳤고, 뒤를 이은 장수왕에 의해 정복 사업이 계속됐다. 나는 장수왕이 장수해서 장수왕인가? 했는데 98세까지 장수해서 그런 게 맞았다. 재위 기간 78년, 정말 장기 집권이다.
영화 <안시성>으로 친숙한 안시성 싸움의 배경도 알게 되었다. 고구려의 온건파 영류왕은 당과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려 했으나, 강경파 연개소문은 정변을 일으켜 영류왕을 살해한 뒤 정권을 장악한다. 당 태종은 연개소문의 정변을 명분으로 645년 고구려를 침공하여 요동성을 비롯한 여러 성을 함락시킨다. 그러나 안시성에서 당나라 군대를 막아내어 결국 당나라가 후퇴한다. 이런 배경을 알고 영화를 보니, 화살을 눈에 맞고 퇴각 명령을 내리는 것을 본 안시성 사람들의 감동적인 장면이 떠오른다. 하지만 연개소문이 사망하고 고구려는 나당 연합군에 의해 패망한다.
신라
신라 하면 선덕여왕과 금관이 생각난다. 경주에 갔을 때 첨성대 야경이 너무 예뻤고 선덕여왕릉도 있다는 걸 알았다. 황룡사 9층 목탑도 선덕여왕이 주변 9개의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서 세웠다고 한다. 그리고 대왕릉이 멋있을 것 같아 가 봤는데 그냥 작은 바위섬이었다. 대왕릉이 무슨 대왕릉이지? 했는데 문무대왕 면 보건지소가 있는 것을 보고 문무대왕릉인가보다 했다. 이 책을 보니 그때 작은 섬이 문무대왕릉 맞았다.
가야에 여전사가 있었다고 한다. 고대 한반도 남부를 누비던 철의 왕국의 여전사들은 생각만 해도 영화 같다. 그리고 가야의 왕족들은 신라의 진골 귀족으로 편입되어 신라의 역사를 주도하는데, 신라 명장 김유신 장군도 가야의 왕족 출신이다.
신라 왕은 궁예를 살해하라고 명한다. 어린 궁예는 높은 곳에서 내던져져 죽을 위험에 처했는데 다행히 유모가 떨어지는 궁예를 받아 목숨을 구한다. 그러나 유모가 받으면서 궁예의 눈을 잘못 찔러 한 쪽 눈이 멀게 되었다. 대구의 팔공산은 후백제군에게서 왕건을 구하려고 함께 유인작전을 펼치다 전사한 8명의 장수를 기리는 뜻에서 팔공산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고려
500년 고려왕조는 지배세력으로 구분하면 이해하기 쉽다. 호족과 6두품, 문벌 귀족, 무신 집권기 그리고 친원파 권문세족이다. 대대로 고위 관직자를 배출한 유력 가문(문門)이 무리(벌閥)를 이뤘다고 하여 문벌이라고 한다. 난 학문을 중시하는 무리들인 줄 알았다.
통일신라는 당나라의 힘을 빌려 삼국을 통일했지만 고려 태조는 북쪽 발해 유민과 후백제, 신라 백성 모두를 끌어안으며 외세 영향 없이 통일을 이뤄낸 것이 다르다. 고려에 쳐들어온 몽골군을 처인성에서도 고려 군사들뿐 아니라 백성, 승려까지 손에 창, 칼, 돌멩이를 들고 싸웠다. 몽골군에게 자발적으로 맞서 싸운 수많은 민초들 모두가 고려의 전쟁 영웅이었다.
서태지의 '하여가'와 페이지의 '단심가'라는 노래를 알아서인지 이성계의 아들 이방원이 '하여가'를 지었고, 고려의 마지막 충신 정몽주는 '단심가'로 거절하고 죽는데 내용은 달라도 금방 기억된다.
조선
조선왕조도 500년이다.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기준으로 전기와 후기로 구분한다. 한반도를 '팔도'라고 하는데 이 팔도는 1413년 태종 이방원이 한반도를 8개의 도로 나눈 것에서 유래한다.
조선 왕 이름을 외우려면 '태정태세문단세예성연중인 명선광인효현숙경영정순헌철고순 노래'라고 유튜브에 검색해서 노래로 외우면 쉽다. 나도 이 순서를 외우고 간단하게 업적과 일어난 일들을 말할 정도의 최소한의 한국사는 외워야겠다.
우리나라 국보 제1호는 숭례문(남대문)인 것은 누구나 알지만 2호는? 세조 때 세운 원각사지 십층 석탑이라고 한다. 예전에 탑골공원에서 본 적이 있었는데, 요즘은 워낙 비둘기가 많아 새똥 때문에 표면이 부식되자 훼손을 막기 위해 유리관을 씌워놓았다고 한다.
중종의 치마바위 이야기, 재위 기간이 8개월로 가장 짧았던 인종, 문정왕후 사후 2년 만에 병사한 명종 이야기도 들려준다. 동인과 서인은 선조가 대거 등용했던 성리학으로 무장한 사림 세력이었다. 김효원은 서울 동쪽에 살아서 동인, 심의겸은 서울 서쪽에 살아서 서인이라고 불렀다. 조선 당쟁은 이때부터 300여 년간 이어진다. 이후 동인은 다시 남인과 북인으로 갈라진다.
우리나라가 학연과 지연을 중시한 것이 선조 때 '붕당' 때문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동인은 천 원짜리 지폐 모델인 퇴계 이황, 서인은 오천 원짜리 지폐 모델인 율곡 이이로 대표된다. 율곡 이이의 어머니 신사임당은 우리가 아끼는 5만 원 권 지폐 모델이다.
선조 때 7년간의 임진왜란이 일어났고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다. 광화문 이순신 장군 동상을 보면 선조를 떠올려 보자. 그 유명한 허준의 《동의보감》도 선조의 지시로 시작되어 광해군 때 완성되었다.
선조를 이은 광해군은 어머니를 폐하고 동생을 죽였다는 '폐모살제'의 혐의로 제주도에 유배되어 67세의 나이로 눈을 감고 인조는 친명배금 노선을 택하는 바람에 정묘호란이 일어나 후금과 형제 관계를 맺는다. 이 후금이 청나라가 되고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난다. 결국 삼전도의 굴욕 사건으로 조선은 청의 신하가 된다.
그 뒤를 이은 효종은 아버지를 무릎 꿇린 청나라에 대해 북벌론을 주장하고, 친청 세력의 대표 인물이었던 김자겸을 그 자리에서 도끼로 사지와 목을 잘랐다고 한다. 효종의 맏아들 현종 때, 경신 대기근으로 100만 명이 넘는 인명 피해가 발생했다. 아무리 배가 고파도 어머니가 자식을 죽여 삶아 먹었다니... 아마 이런 스트레스로 현종은 34세의 젊은 나이로 세상을 떠난 것 같다.
현종의 외아들인 숙종은 14세에 임금이 되는데, 그 유명한 장희빈이 중전이 되었고 아들이 경종이다. 인현 왕후의 궁인이었던 숙원 최 씨가 왕자를 출산하는데 이 왕자가 영조다. 숙종의 뒤를 이은 경종은 급체로 4년 만에 짧은 재위를 마친다.
영조는 83세까지 살았던 조선의 최장수, 최장기 집권 기록을 세운 왕이다. 하지만 세자에게 자결을 명했다. 세자는 뒤주에 갇혀 8일간 굶다가 숨진다. 영조가 내린 시호는 생각할 사에 슬퍼할 도인 '사도(思悼)'였다. 영조의 과도한 자식에 대한 기대가 사랑하는 아들을 죽음으로 몰아넣었던 것이다.
정조는 규장각을 세워 당파 관계없이 인재를 모아서 새로운 정치를 펼치려 했다. 이때 영국에서 산업혁명이 시작되었고, 미국은 영국으로부터 독립 선언을 했다. 정약용을 비롯한 학자들은 정조의 수원 화성 축조에 참여했고, 이때 거중기 등 다양한 기구가 사용된다. 수원 화성은 정조가 아버지 사도세자의 묘를 명당으로 옮기면서 축조한 성이고, 조선 개혁의 출발점이 되길 바라며 설계한 계획도시였다.
1800년 정조가 갑자기 승하하며 11세 어린 순조가 즉위하고, 헌종, 철종에 거쳐 안동 김씨의 약 60년간에 이르는 세도정치가 시작된다. 안동 김씨와 풍양 조 씨가 세력을 장악하고 가난한 농민들은 진주민란을 시작으로 난을 일으킨다. 이때 등장한 것이 최제우의 동학이다. 철종은 33세로 눈을 감고 흥선대원군이 권력을 장악한다. 성인이 된 고종은 왕비 민씨와 정치 파트너로 함께 나서자 흥선대원군의 권력 독점이 흔들린다.
갑오개혁으로 신분제가 폐지되고, 청일전쟁에서 승리한 일본은 친러 노선을 걷는 민비를 시해한 뒤 시신을 불태우고 고종은 일본의 감시를 피해 러시아 공사관으로 옮기는 '아관파천'을 한다. 아관에 머물다 경운궁으로 환궁한 고종은 1897년 10월 13일 대한제국 건국을 선포한다.
1907년 고종이 일본에 의해 강제 폐위되고, 대한 제국의 마지막 황제 순종이 즉위하지만 총리대신 이완용의 서명으로 1910년 8월 29일 한일 합병 조약이 체결된다. 조선의 주권을 일본에 통째로 넘겨준 국가 치욕의 날이라 해서 '경술국치'라고도 부른다. 이렇게 조선왕조가 멸망하고 한반도는 일제 강점기로 접어든다.
이렇게 한국사를 박진감 넘치는 스피드로 읽기는 처음이었다. 이 책을 10회독쯤 해서 대표적인 사건과 인물들을 싹 외운 다음, 각 시대 별로 자세하게 공부하면 수능 만점도 문제없을 것 같다. 책 뒷 표지에 "통째로 입력되는 한국사"라는 말의 의미가 이거구나 싶다. 한 방에 역사의 뼈대가 생겼다. 그러나 복습하지 않으면 곧 무너지니 계속 반복해서 읽어야 할 교과서보다 재미있는 한국사책이다.
♥ 펍스테이션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