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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어라 외웠더니 시가 살아왔다
휴로그 도서개발팀 엮음 / 휴로그 / 2024년 6월
평점 :
시 속에 그림이 있고, 그림 속에 시가 있다
시는 글로 그리는 그림이다. 그래서 시화전, 시그림이라는 이름으로 전시회가 열린다.
표지도 안에 있는 그림도 시처럼 아름다운 《죽어라 외웠더니 시가 살아왔다》는 13개의 시 낭송 대회 인기 시가 실려 있다. 그래서 시가 다 길다. 짧은 시는 시 낭송대회에 적합하지 않아서다. 윤동주의 <할아버지>라는 시는 "왜 떡이 씁은데도 자꾸 달다고 하오(1937,3.10.)" 이게 끝이다. 이 시로 시 낭송을 한다면 음악을 틀자마자 끝난다. 그래서 이 책에 실린 시들은 시 낭송할 수 있게 다 긴 것이다.
나는 여기에 실린 13편의 시를 모두 YouTube에서 찾아보았는데, 정말 모든 시가 다 시 낭송한 영상이 있었다! 시 낭송가들이 가장 많이 낭송하는 시들 중에서 비교적 이해하기 쉬운 시들이라고 한다. 어쩐지 좀 이해가 되더라니. 그리고 시 낭송 대회가 전국적으로 100여 개가 넘는다는 사실을 아시는지?
그런데 왜 죽어라 외웠더니 시가 살아왔다고 했을까? 내 생각에는 시의 한 구절이라도 외우지 않으면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지 때문이 아닐까 한다. 일례로 나는 전영관님의 <분갈이>라는 시가 짧고 간단해서 외우지 않아도 기억할 줄 알았다. 뿌리가 뻗는 속도? 뿌리가 자라나는 속도? 뿌리가 내리는 속도? 뿌리가... 뭐였지? 이러고 있었다. 정답은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였다. 그래서 외워야 한다. 뿌리의 비유만 봐도 시인의 표현이 가장 아름답지 않은가? 그래서 제대로 외워야 시가 살아서 온다고 한 것 같다.
<슬픔이 기쁨에게>와 <쉽게 씌어진 시> 그리고 <나와 나타샤와 흰 당나귀>라는 시는 검색해 보니 고등학교 교과서에도 나오는지 학생들을 위한 해설도 있어서 오랜만에 시(詩) 공부도 좀 해봤다. 나머지는 공부가 아닌 마음으로 감상했다. 이 책에 있는 시 13편은 죽어라고 전부 다 외우고 싶다. 시 한편 한편이 어쩌면 이렇게 아름다울까?
이 책에 있는 시 13편을 어떻게 외울지 생각해 봤다. 첫 번째는 YouTube 영상을 계속 들으며 외울 수 있는 한 최대한 외워서 연습장에 써 보는 것이다. 그리고 이 책에 나온 순서대로 예쁘게 필사한 다음, 시의 첫 음 순서를 암기하고, 순서 정렬하기와 빈칸 넣기로 확실하게 외운다. 마지막으로 암기하면서 부분 필사를 하고 한 줄씩 암기해서 쓰기로 마무리한다. 시 완성하여 쓰기와 필사하기 암기 확인은 시간이 좀 지나서 복습용으로 활용하면 좋을 것 같다.
나는 <저 거리의 암자>라는 시가 가장 좋았다. 그런데 처음 외우려다 보니, 이 거리였는지, 그 거리였는지도 헷갈렸다. 하지만 아들이 좋아하는 산낙지가 떨어져서 난리를 쳤다는 부분은 지금도 바로 기억이 난다. 그래서 4번째 연인 산낙지가 나오는 부분만 3줄 외웠다. 젓가락으로 집던 산낙지가 꿈틀 상 위에 떨어져 온몸으로 문자를 쓰지만 아무도 읽어내지 못합니다. 답답한 것이 산낙지뿐입니까.
<사평역에서>는 상상의 역인 줄 알았는데 9호선 고속 터미널 다음 역이었다. 6호선 녹사평역은 들어봤는데, 이 시를 읽으니 지하철 탈 때마다 생각날 거 같다. 막차는 좀처럼 오지 않았다로 시작하는.
책 표지에 있는 나무 한 그루의 뿌리는 펜이다. 전영관 시인님의 <분갈이>라는 짧은 시를 보자. "뿌리가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내가 당신을 만진다면 흙이 그랬던 것처럼 당신도 놀라지 않겠지 / 느리지만 한 번 움켜쥐면 죽어도 놓지 않는 사랑"이라고 속도와 끈기를 비유한 듯하다. 펜으로 필사하며 흙을 파고드는 속도로 죽어도 놓지 않는 시 외우기를 해 보면 어떨는지. 어쩌면 공부도 이런 것 같다. 죽을 때까지 놓으면 안 되는 모든 배움은 시처럼 아름다운 것 같다.
목표를 향해 늘 열심히 사는 것도 중요하고, 죽어라 무언가를 하는 순간도 필요하겠지만, 이 책에 그려진 나무 한 그루처럼 그냥 목표를 향해 안 가고 그 자리에서 뿌리를 내리면 또 어떤가. 아름다운 시를 죽어라 안 외우면 또 어떤가. 목표를 향해 가지 않더라도 나처럼 시 한편 감상한 것으로 행복해진다면 이 책 역시 행복하지 않을까.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