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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날레 - 끝까지 강하고 자유로운 나
수전 구바 지음, 정지인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6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피날레』는 문학 비평가인 수전 구바가 여성 예술가 9명의 삶을 통해 알아보는 '이 힘든 인생을 왜 살아내야 하는지'에 대한 답이다. 연인이든, 이단아든, 현자든 서로 다른 삶을 살았지만 하나같이 대담하고 자기답게 살았다. 끝이 보이는 삶은 오히려 그들을 더 자기답게 만들었다. 그녀들의 이야기 중, 인상적인 내용을 중심으로 정리해 보았다.
1. 조지 엘리엇
조지 엘리엇은 메리 앤 에번스(Mary Ann Evans)의 필명이다. 그녀는 말년에 자신을 숭배하던 20살 연하의 크로스와 결혼했다. 수전 구바는 그녀를 생의 마지막까지 멈추지 않는 지적 열정과 대담한 문제의식을 보여준 작가로 평가한다. 영국 사회의 유대인 차별에 대해 '우리는 사람들을 박해하는 자들'이라고 말한 용기도 멋있었다. 나도 누군가의 삶을 조금이라도 덜 힘들게 해주는 사람이고 싶다.
2. 콜레트
프랑스 작가 시도니 가브리엘 콜레트(Sidonie-Gabrielle Colette)는 노년에 관절염 때문에 거의 침대에서 생활했다. 그러나 침대를 작업실 삼아, 나무판자를 걸쳐 책상으로 쓰며, 이를 생존 도구라는 뜻에서 ‘뗏목’이라 불렀다. 휠체어를 타고 레스토랑 가서 맛있는 식사도 즐기고, 거의 움직일 수 없는 상태에서도 쾌활했다. 불운 속에서도 작은 즐거움을 찾아낸 그녀를 보며, 노년이 꼭 우울한 것 만은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3. 조지아 오키프
조지아 오키프(Georgia O'Keeffe)는 미국의 대표적인 여성화가다. 노년에 59살 연하의 도예가 후안 해밀턴과 풍성한 작품 활동을 이어갔다. 누구의 시선도 의식하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개척한 강인한 여성이었다. 그림 그리는 자체를 용기 있는 도전이라고 했다. 그녀의 말년 작품은 넓은 공간과 자유로운 상상력으로 아름다움에 대한 끝없는 호기심을 보여준다. 특히 <구름 위 하늘> 시리즈는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탁 트였다.
4. 이자크 디네센
『아웃 오브 아프리카』로 유명한 소설가 이자크 디네센(Isak Dinesen)의 본명은 카렌 블릭센이다. 젊은 시절 아프리카 농장 경영 실패, 이혼, 질병 등 많은 고난을 겪었지만, 노년에 이르러 극도로 마르고 쇠약한 몸이었음에도 우아한 옷차림과 독특한 카리스마로 사람들을 매혹했다. 여자는 젊음이나 아름다움에 의존할 필요가 없어졌을 때 오히려 가장 자유롭고 강력한 존재가 된다는 생각을 평생 간직했다고 한다.
5. 메리앤 무어
시인 메리앤 무어(Marianne Moore)는 평생 독신으로 살았다. 초기부터 고양이와 개도 읽을 수 있는 평이한 미국식 언어를 표방했다. 그녀는 평생 시를 썼고, 늙어서는 미국이 사랑하는 시인이 되었다. 검은 삼각 모자와 망토로 이루어진 조지 워싱턴 복장은 그녀의 아이콘이 되었다. 무어는 생의 마지막 몇십 년을 도시 문화의 즐거움을 마음껏 누리며 살았다. 나도 이렇게 나이 들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6. 루이즈 부르주아
조각가이자 설치미술가인 루이즈 부르주아(Louise Bourgeois)는 노년에 훨씬 더 유명해진 예술가다. 90대에도 왕성하게 작업하며, 젊은 시절의 상처와 불안, 분노를 가장 강력한 예술로 승화시켰다. 90년 세월이 자신의 몸에 남긴 흔적을 전혀 부끄러워하지 않았던 그녀에게, 노년은 인생에서 가장 생산적인 시기였다. 창작 에너지는 나이와 상관없다는 것을 그녀가 증명했다.
7. 메리 루 윌리엄스
재즈 피아니스트이자 작곡가 메리 루 윌리엄스(Mary Lou Williams)는 자신이 들은 음악을 그대로 연주할 수 있는 신동이었다. 음악으로 사람들을 치유했고, 인생 후반부에는 남을 돕는 일에 더 큰 의미를 찾았다. 재능보다 사명이 더 큰 만족을 줄 때가 있다. 젊어서 의미를 찾지 못했어도 나이가 들어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는 것, 인생의 절정이 꼭 젊은 시절에만 있는 건 아님을 그녀가 보여줬다.
8. 궨덜린 브룩스
시인 궨덜린 브룩스(Gwendolyn Brooks)는 아프리카계 미국인 최초로 퓰리처상을 수상했다. 나이 들수록 흑인 정체성을 숨기거나 백인의 기준에 맞추기보다,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공동체를 더 소중히 여겼다. 백인이 되려 애쓰지 않고, 백인의 기준을 따르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이 와닿았다.
9. 캐서린 더넘
무용가이자 안무가인 캐서린 더넘(Katherine Dunham)은 보통 30대에 은퇴하는 무용수들과 달리 50대까지 공연했고, 82세에는 난민 강제 송환에 항의하며 47일간 단식 투쟁까지 벌였다. 춤은 그녀에게 단순한 직업이 아니라 자신과 세상을 잇는 행위였다. 나이가 들어도 열정과 행동력이 사라지지 않음을 보여준 사람이다.
이 책은 내 세상은 이제 다 끝났다고 생각하게 되는 나이에 오히려 자기 자신을 발견한 여성들의 이야기다. 읽다 보면 늦었다는 조급함 대신 앞으로 남은 삶에 대한 기대가 생긴다. 그녀들의 피날레를 기억한다면, 우리 역시 언젠가 자신만의 방식으로 빛나는 마지막 장면을 만들어갈 수 있다는 희망을 품게 될 것이다. 나이 드는 것이 불안한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