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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 - 어떻게 정신적 빈곤에서 벗어날 것인가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 지음, 김유경 옮김 / 북하우스 / 2026년 4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스페인의 철학자이자 비판적 사고의 전도사인 호세 카를로스 루이스(José Carlos Ruiz)의 『우아한 사고를 위한 철학』을 읽고 나는 바로 OTT 구독 서비스를 해지했다. 이제까지 스크린에서 쉼과 위안을 얻는다고 생각했는데, 그것이 하이퍼 모던 시대가 만들어 낸, 끊임없이 콘텐츠를 보게 만드는 장치인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이 책은 "책이란 무릇 우리 안에 있는 꽁꽁 얼어버린 바다를 깨뜨리는 도끼가 되어야 한다."라는 프란츠 카프카의 말에 딱 어울리는 책이었다. 스크린의 노예로 살고 있는 줄도 모르고 살았던 내 안의 무언가가 깨지는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스크린 보는 시간을 줄이자, 이상하게도 마음에 여유가 생겼다.
미완성된 존재들(Incompletos) 정도로 번역되는 이 책의 원제처럼 우리는 원래 불완전한존재다. 그러나 현대 사회는 핸드폰, 태블릿, 노트북, TV 등 수많은 화면(옴니 스크린)을 통해 완벽한 행복의 모습만 보여준다. 그 결과 우리는 화면 속에서 끊임없이 연출되는 행복과 자신을 비교하며 살게 되었다.
저자는 불완전함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우아함이라고 말한다. 우아함은 화려함이 아니라 의심하는 힘이다. 나는 이 책을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 vs 우아한 삶으로 나누어 생각해 보았다. 수많은 화면이 쏟아내는 가짜 행복(포스트 행복)을 믿지 말고, 내 안의 진짜 가능성(뒤나미스)을 찾기 위해 잠시 멈춰 생각해 보자.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
나는 멀티태스킹이 능력인 줄 알았고, 늘 휴대폰과 TV의 자극 속에서 살았다. 스트레스는 드라마 몰아보기로 풀었고, 다 보면 또 다른 재밌는 드라마를 찾았다. 의심하고 생각하기 보다 끊임없이 소비했다. 우아함을 잃어버린 삶의 대표적인 단어는 하이퍼 모던, 옴니 스크린, 포스트 행복이다.
하이퍼 모던 (Hyper-modern, 초현대성)
현대는 하이퍼 모던 사회다. 현대(modern)보다 더 빠르고(Hyper) 극단적인 시대라는 뜻이다. 지금 주문하면 곧바로 배달음식이 온다. 하이퍼링크를 클릭하면 바로 상품 구매 페이지로 연결된다. 이처럼 모든 것이 빠르게 이루어지니, 그 속도에 뒤처지지 않게 끊임없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빠르게 돌아가는 세상에서 정보를 놓치지 않으려다 보니 우리는 늘 스마트폰에 연결되어 있어야 할 것 같다. 하지만 알림과 메시지에 끊임없이 반응하며 스스로 시간을 통제할 자유를 잃는다. 알고리즘은 우리가 좋아할 만한 비슷한 콘텐츠만 반복해 보여 주고, 결국 필터 버블(정보 편향)에 갇힌다.
옴니 스크린 (Omniscreen)
우리는 아침에 눈을 뜨자마자 스마트폰을 확인하고, 컴퓨터와 TV, 태블릿 등 여러 화면을 바라보며 하루를 보낸다. 우리 일상은 이렇게 여러 화면에 둘러싸여 진짜 세상을 볼 틈이 없다. 이렇게 일상 곳곳에 스크린이 존재하는 환경을 옴니(Omni, 모든, 어디에나 있는)스크린이라고 한다.
삶의 거의 모든 곳(Omni)에 화면(screen)이 있다. 우리는 현실보다 화면 속 세상을 더 많이 보고 믿게 된다. 스크린은 끊임없이 움직이며 새로운 자극을 주고, 우리 시선과 생각을 계속 붙잡아 둔다. 몸은 누워서 쉬고 있지만 뇌는 계속 자극을 처리해야 하니 피곤이 풀리지 않는다.
옴니 스크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바이럴이다. 화면 속 콘텐츠는 공유와 추천을 통해 빠르게 퍼지기 때문에, 깊이 있는 내용보다 사람들의 즉각적인 반응을 끌어내는 콘텐츠가 더 주목받는다. 사람들은 현실의 지루함을 잊기 위해 스크린 속에 빠지고, 스크린은 현실을 잠시 잊게 하는 도피처가 되기도 한다.
포스트 행복 (Post-happiness)
SNS나 블로그에 포스팅한다고 할 때 포스트(post)는 게시한다는 뜻이다. 포스트 행복은 이렇게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가짜 행복을 말한다. SNS에는 보통 맛있는 음식, 즐거운 여행 등 행복한 모습만 올라오기 때문에 사람들은 슬프거나 힘들어도 웃는 얼굴을 보여줘야 한다는 압박감을 느낀다. 이렇게 만들어진 행복은 진짜 감정이 아닌 포스트 행복이다.
사람들은 내가 진정으로 행복한 삶을 고민하기 보다 남들에게 행복해 보이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더 신경을 쓴다. 행복은 더 이상 철학적 주제가 아니라, 남과 비교하고 소비되는 이미지가 된 것이다. 저자는 이런 포스트 행복을 의심하고 행복을 다시 생각해 보라고 말한다.
<우아한 삶>
지금 우리는 정신적 빈곤 상태에 있다. 물질은 넘쳐나는데 정작 내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모른다. 장난감이 산더미처럼 쌓여 있어도 "난 뭘 할 때 즐겁지?"라는 질문에 대답하지 못하는 아이처럼 나는 계속 심심하다. TV나 핸드폰이 없으면 불안하고 뭘 해야 할지도 모르겠다.
당연한 것을 의심하는 힘이 우아함이다. 아침에 일어나면 핸드폰을 보는 일이 당연한가? 주말마다 배달음식을 시켜 먹으며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는 것이 진정 내가 원한 삶이었나? 나는 한 번도 물은 적이 없다. 당연한 것을 의심할 때 비로소 내 삶에 대한 주권이 생긴다. 스크린에 빠져, 내 안의 진짜 가능성인 뒤나미스(Dynamis)가 있다는 것도 몰랐다.
뒤나미스는 그리스어로 잠재력, 될 수 있는 가능성을 뜻한다. 무엇이든 될 수 있는 내면의 힘이다. 도토리 안에 커다란 참나무가 될 힘이 숨어 있듯, 우리 안에도 아직 꺼내지 못한 힘이 있다. 어쩌면 이 책을 읽고 OTT 구독을 해지한 것 역시 뒤나미스가 아닐까?
우아함의 반대는 촌스러움이 아니라 아무 생각 없이 흘러가는 삶이다. 우아한 삶은 많은 정보를 쌓아두지 않고 하나를 깊이 보며 자신의 잠재력인 뒤나미스를 깨운다. 우아한 사람은 쉽게 단정 짓지 않는다. 내가 틀릴 수 있다는 여지를 늘 열어두기 때문에 만날 때마다 새롭다. 지나치거나 과하지 않고 강요하지 않으니 오래 봐도 질리지 않는다.
이런 우아한 사람이 되려면 먼저 화면을 꺼야 한다. 스크린을 보는 동안 나는 생각하는 힘을 잃기 때문이다. 그동안 나는 드라마나 영화를 보며 너무 재밌어서 행복하다고 느꼈는데, 화면을 끄면 그 행복감은 금방 사라졌다. 내 안에서 나온 행복이 아니라 잠깐 소비되는 자극이었기 때문이다.
이젠 스크린이 아닌 내 안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살아야겠다. 독서를 통해 생각을 천천히 깊게 하며 나 자신을 조금씩 바꾸고 싶다. 그렇게 천천히 생각하고 읽으며 나만의 우아한 행복을 만들어 가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