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
알콩달콩 뚱딴지네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알콩달콩 뚱딴지네의 『신입사원 스파이입니다』는 북한에서 파견된 최정예 스파이가 남한의 공공기관에 위장 취업해서 임무를 수행하다가 남한의 꼰대식 직장 문화를 마주하고, 혼란과 좌절을 경험하며 헤쳐나가는 이야기다.
주인공의 이름은 서파이(본명 김정금). 그의 임무는 남한의 행정망을 담당하는 한국 인트라넷 진흥원에 위장취업해서 남한 행정망의 구조를 확보하는 것. 세계 최정예 해킹 기술로 신입사원 명단에 그의 이름이 삽입되었다.
그런데 신입 사원 연수는 회사에서 필요한 교육이 아니라 재롱잔치 준비에 불과했고, 회식 자리에 참석해 보니, 실제 사용하고 있는 쓰레기통에 남은 술을 모두 가져다가 붓고, 신입 여사원들의 발을 담갔다가 잘 저어서 쓰레기통주를 만들고 그것을 마시는 게 관례였다! 🗑
옛날에도 군화에다가 온갖 술을 섞어 마시게 했다던가, 큰 대접이나 사발에 술을 붓고 호기롭게 한 번에 마셔야 하는 사발주가 있다는 소리를 들어봐서 쓰레기통주가 정도는 훨씬 심하지만 완전히 없는 말도 아닐 것 같았다. 지금도 폭탄주라는 이름으로 남아있긴 하지만 점차 사라져 가는 문화라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옛날에는 직장 상사를 잘 모시는 게 사회생활의 기본이었다. "나 때는 말이야, 명절 전에 상사 조상 묘까지 벌초했다니까"라는 말도 과장된 말은 아니다. 나도 남편의 상사 사모님이 호출해서 김장을 도운 적이 있기 때문이다. 남편의 직위가 곧 와이프의 레벨이었고, 안 가면 남편에게 불이익이 간다니 할 수 없이 갔지만, 내 상사도 아닌 사람에게 복종해야 했던 억울하고, 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p.68 자유와 평등이 있다고 배웠던 남한은 알고 보니 눈치와 위계, 조용한 강요가 지배하는 또 다른 세상이었다.
이 소설은 이런 억울함과 황당함을 파고든다. 북한에서 온 스파이조차 당황하게 만드는 남한의 직장 문화. 직장 꼰대들 이야기는 현실감이 넘쳐, 누구나 겪었을 법한 회사 생활의 한 장면을 들춰보는 듯한 느낌이 들 것이다. 이런 꼰대 문화는 아직도 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서파이가 이런 문화에 대항해서 싸워 나가는 모습은, 사회 초년생에게는 위로를, 이미 그 시기를 지나온 나와 같은 독자에게는 통쾌함을 선사할 것이다.
그림도 많아서 책장도 술술 넘어가고, 나도 모르게 몰입이 돼서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었다. 속도감 있는 전개와 글 사이의 여백이 지루할 틈을 주지 않는다. 전라도 사투리의 정겨움도 매력 플러스.
서파이는 노조를 만들었다가 부당 해고를 당한다. 이후 우연히 이겨따 변호사를 만나 결국 복직하게 되기까지의 과정도 인상 깊었다. 법원 소장에 담긴 구체적인 내용도 그렇고, 회사 측이 마지못해 과거 징계 사례들의 구체적인 사유까지 제출하는 대목도 리얼했다.
실제로 저자가 공공기관에서 노조를 설립했다가 해고당해서 그런지 더 현실감 있게 와닿았다.
'알콩달콩 뚱딴지네'라는 독특한 필명에서부터 예감할 수 있듯, 유쾌하게 직장 현실을 풍자한다. 상사에게 밉보이지 않으면서도 자신의 임무를 완수해야 하는 서파이는, 어찌 보면 오늘날 대부분의 직장인이 처한 현실이 아닐까?
서파이의 끝까지 포기하지 않고 복직을 위해 노력하는 모습에서 회복탄력성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근성이 짱이다. 부당한 상황을 그저 묵묵히 따르지 않고, 결국 꼰대들을 물리치고 좀 더 나은 환경으로 만들어 가는 모습이 속 시원하다.
총 13화로 이루어진 각 장의 제목은 모두 북한 말로 되어있어 재미를 더한다. 려명거리는 북한 평양의 신도시, 오물재는 쓰레기, 농태기는 북한 농민들이 몰래 빚어 만들어 먹던 술, 떼질은 억지부리는 것, 직업동맹은 노종조합, 뼈다구 파내기는 개인의 약점을 파내기 위해 무덤속의 조상 뼈까지 들추어 내는 것, 된방 맞기는 호되게 얻어맞음, 까리는 기회, 역전이김은 역전승, 직승기는 헬리콥터라는 뜻이다.
처음 들어보는 북한의 낯선 단어들이 내게는 너무나 생소하듯, 꼰대 문화도 서파이의 입장에서는 정말 이해가 안 될 것 같아서 괜히 웃게 된다. 게다가 주인공 서파이의 본명은 김정금이었다! 김정은도 아니고.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면서 바로 다음 편을 기대하게 됐다.
다음 편이 나온다면 서파이가 좋아하는 최애순을 어떻게 다시 만나게 될지가 가장 궁금하다. 그럼 최애순은 어디서 살게 될까? 남한? 북한?
분량도 부담 없고, 꼰대 응징에, 쓰레기통주 퇴장까지, 속이 뻥 뚫려서 직장 스트레스를 풀고 싶은 독자에게 딱인 힐링 소설이다. 퇴근 후 침대에서 아무 생각 없이 스트레스를 내려놓는 시간을 가져보는 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