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칼코마니 - 신들의 화폐
안형기 지음 / 좋은땅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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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라는 제목은, 인간의 화려한 겉모습 뒤에 숨겨진 추악한 욕망이 결국 하나라는 것을 말한다. 겉으로는 정의를 외치는 대통령이지만, 뒤로는 자금을 세탁하는 모습은 동전의 양면처럼 한 몸인 데칼코마니다. 말과 행동은 반대지만 똑같은 데칼코마니같다. 


신들의 화폐란 마치 신처럼 세상의 운명을 결정짓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휘두르는 돈이 아닐까? 그들에게 화폐란 세상을 내 입맛대로 바꾸고 지배하기 위한 신의 권능이고 권력의 도구일 테니까. 내가 쓰는 돈은 그냥 생활의 화폐?


이 책에서 가장 인상적이었던 건 어떤 할머니가 알려주신 삶의 지혜였다. 사랑은 아낌없이 주는 게 아니라는 것. 사람은 첫 번째 선심엔 모두 고마워하고, 두 번째는 왜 자꾸 선심을 베푸나 이유를 찾고, 세 번째부터는 그게 당연한 권리라고 생각한다. 결국 그 선심이 끊기면 적이 된다는 거다.


오른손이 한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것도, 나조차 잊어버려야 보상을 바라는 마음이 생기지 않기 때문이 아닐까?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한쪽이 늘 양보하고 배려하면 결국 그 관계는 무너진다. 부부도 부모와 자식도 일방적인 사랑은 때로 아픈 상처로 되돌아올 때가 많다. 사랑이 부족한 게 아니라, 넘쳤기 때문이다. 


여주인공 안혜경이 그럼 어디까지 베풀어야 하냐고 할머니에게 물으니, 고마움이 권리로 넘어가지 않는 그 지점에서 딱 멈춰야 한다고 알려준다. 아니면 베풀고 까먹던가. 그 균형이 깨지면 '선도 악을 낳는다!'


p.78  사람이란, 결국 데칼코마니였다. 그녀 역시 자신 안에 또 하나의 다른 나를 품고 살아간다. 한쪽은 정의를 추구하지만, 다른 한쪽은 욕망을 좇는다.


안형기 작가님은 해군 장교 출신으로 한국 IBM 영업대표와 자문 위원을 지낸 IT 전문가이자, 민족문제연구소 이사와 한국일보 자문 위원을 거쳐 날카로운 사회 비판적 소설을 집필하시는 분이어서 그런지, 단순한 상상이 아닌 실제로 일어날 법한 미래의 일처럼 느껴졌다.


특히 지하 궁전에 관한 상상은 현대 기술과 자본의 위력을 생각하면 충분히 실현 가능할 것 같았다. 국제 정세의 흐름을 읽고, 주식·파생상품 등 경제를 잘 아는 독자에게는 더 리얼하게 느껴질 것이다. 


『데칼코마니, 신들의 화폐』는 국제 정세와 주식에 관해서 잘 몰랐던 나에게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는지 마치 영화를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보여줬다. 


돈을 소수 권력자들이 사용하는 신들의 무기로 보고, 정의를 내세우면서 실제로는 세계를 인질 삼아 자기 배를 채우는 모습을 데칼코마니에 비유한 게 인상적이었다. 앞으로 데칼코마니라는 말을 들으면 겉으로는 정의, 뒤로는 내 배 채우기라는 이미지가 떠오를 것 같다.


p.7  인류의 상위 1%의 행복은, 곧 99%의 불행이 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돈이 신이 된 시대에도 인간의 마음을 다시 비추려는 시도다. 


이 책을 읽기 전에 주요 등장인물 이름을 미리 알고 읽으면 좋을 것 같아서 정리해 보았다. 


전동혁(전실장) : 주인공. 대통령 비서실장. 시국사범으로 감형 받아 7년 복역 후 출소. 


안혜경 : 여자 주인공. 전동혁에게 운명적 이끌림을 느낀다. 유토피아 신문사 기자. 


최기영 : 전동혁의 오랜 친구. 변호사.


박창근 부사장 : . 안혜경과 미국 학교 동창. 오성 그룹의 외아들


서지혜 : 안혜경의 절친. 친일파 후손.

김기용 : 서지혜의 남편. 독립운동가의 후손. 문학을 전공한 자칭 소설가. 


이종철(이차장) : 전동혁의 선배. 국정원 제1차장, 일본 스파이.


최상호(가명) : 간첩. 강정연을 키운 아버지 같은 사람. 북한 국가 안전보위부의 최고 수장 최병일.

강정연 : 김동혁에게 자금을 전달해서 함정에 빠뜨림. 영화배우


알프레드 프롬펠 : 부와 명예, 권력을 모두 가진 미국 대통령


제인 칼로스 :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인 BR(Briar Ridge Capital)사의 수석매니저로, 월가의 마녀로 불리던 여성. 프롬펠에게 정보를 받아 투자하고, BR 사와 SM(Solomon & Marks Investment)사에 은밀히 귀띔해 주며, 그들로부터 또 고정급과 성과급을 챙긴다. 


한트 케리 : CIA 국장. 제인 칼로스와 은밀한 동맹을 맺고, 프롬펠 대통령을 크게 한 번 골탕 먹이자고 한다.


주식 시장 말고 파생시장은 뭔지 궁금해서 찾아봤다. 


p.52  만약 평균 주가지수가 두 배로 뛴다면, 파생시장(선물·옵션·스왑·CDS)은 추천 배, 어쩌면 수만 배의 수익을 안겨 줄 것이다. 


선물은 미리 정해둔 가격에 물건을 무조건 사거나 팔기로 친구와 약속하는 것이고, 나중에 물건값이 오르면 쿠폰을 써서 싸게 사고, 값이 떨어져 손해일 것 같으면 쿠폰을 버려도 되는 특별한 쿠폰을 미리 받아두는 것이 옵션이다. 


나는 매달 용돈을 받고 너는 명절에 몰아서 받으니까 서로 바꾸자거나, 서로 가진 물건을 정해진 기간 동안만 서로 맞바꿔서 사용하는 것이 스왑(Swap)이다. 내가 가진 자전거와 네가 가진 게임기를 일정 기간 동안만 바꿔서 사용하는 것도 넓은 의미의 스왑이다.  


친구에게 빌려준 돈을 못 받을까 봐 걱정될 때 다른 사람에게 미리 수수료를 주고, 친구가 돈을 안 갚으면 네가 대신 갚아달라고 약속하는 보험이 CDS(Credit Default Swap, 신용 부도 스왑)다. 그래도 잘 이해는 안 되었지만, 이 책을 통해 파생상품 용어를 들어본 것으로 만족했다.


화폐가 신적 권위를 가진 신들의 화폐를 읽으니 단순히 주가가 올랐다는 뉴스만 볼 게 아니라, 그 뒤에서 자금을 움직이는 제인 칼로스나 미국 대통령 프롬펠의 의도까지 생각해 보게 된다. 우리나라 주가가 단순히 국내 상황에 그치지 않고, 미국의 금리 결정이나 전쟁 등 국제 정세와 연결되어 있다는 것도 좀 이해하게 됐다. 


p.627  결국 행복이란 돈과 권력이 아니라 사람의 온기와 웃음에서 피어나는 것 같아요.


이 소설의 마지막 장면에서 안혜경이 한 말이다. 프롤로그에서 저자가 말한 '이 이야기는 돈이 신이 된 시대에도 인간의 마음을 다시 비추려는 시도'라는 말의 결론으로 딱이라고 생각한다. 신들의 화폐인 돈도 중요하지만 소중한 사람들과 나누는 밥 한 끼의 온기가 진짜 신들의 화폐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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