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더니즘 : 위기의 문학 - 모더니즘 입문서 테리 이글턴 컬렉션
테리 이글턴 지음, 도원우 옮김 / 21세기문화원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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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테리 이글턴의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어려운 이론과 문학사를 동시에 다루며 핵심을 압축한 입문서이자 비평서다. 모더니즘을 알고 싶은 인문 교양 독자나 깊이 있는 해석을 원하는 독자에게 권한다.


나처럼 모더니즘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는 어려운 책이지만 AI에게 단어 뜻과 처음 들어보는 인물들에 대해 물어보면서, 이해하려고 하다 보면 어렵지만 이해가 되는 신기한 책이다. 


모더니즘이라고 하니 먼저 '새롭다'는 생각이 떠올랐다. 모던(modern)이 현대라는 뜻이기 때문일 것이다. 저자는 이 지점부터 바로잡아 준다. 모더니즘은 모더니티(Modernity, 근대성)가 아니라고. 모더니티는 르네상스나 종교개혁, 구텐베르크의 인쇄술, 콜럼버스의 신대륙 발견 등을 생각하면 된다. 모더니티는 특정 인물이 아니라 이들이 이끈 여러 변화가 모여 형성된 새로운 세계관이다.


모던이라는 단어는 고대의 modernus라는 용어에서 유래했다. "지금의 시간" 정도를 의미한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지금이 새로운 것과 동의어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비행기 여행은 현대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는 이미 오래됐다. 비행기 여행은 한때 극소수만 누리던 첨단 기술이었지만 이제는 대중적인 교통수단이 되었다. 설령 지금의 것이 한때 새로웠더라도, 모던이라는 개념은 20세기 초중반에 완성된 사실상 꽤 오래된 혁신의 결과물이다. 


p.36  지금은 시간 속에 있으면서도 동시에 시간 밖에 있으며, 나타나자마자 사라지는, 끊임없이 흐르는 시간의 흐름에서 잠깐 떼어낸 한 조각의 시간성에 불과하다. 


이글턴 왜  모더니즘을 '위기의 문학'이라 불렀을까. 모더니즘은 세계대전과 혁명, 파시즘의 대두, 경제 공황이라는 총체적 위기 속에서 예술이 자기 자신에게 던진 절박한 물음의 산물이다. 위기 앞에서 예술이 스스로를 근본부터 다시 물었던 것이다. 예술은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모더니즘이 도저히 이해가 안 되고, 형식 파괴적으로 보이는 이유는 그 물음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 자체가 기존 언어와 형식으로는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새로운 언어를 요구했고, 모더니즘은 그 언어를 발명하려 했다. 모더니즘은 위기에 처했을 때 탄생한 예술이라 '위기의 문학'이라고 부른 게 아닐까.


이제 모더니즘이라는 말을 들으면, 난해한 시, 해독 불가능한 소설, 또는 알 수 없는 그림 같은 게 떠오를 정도는 됐다. 이상의 시나 피카소의 그림처럼! 읽어본 적은 없지만 조이스의 『율리시스』는 의식의 흐름 기법으로 쓰여 문장이 구두점도 없이 수십 페이지 이어진다고 한다. 


"왜 이렇게 어렵게 썼을까? 이런 걸 누가 읽으라고?" 이글턴은 쉽게 소비되기를 거부한 저항의 형식이라고 한다. 나처럼 평범한 사람은 읽지 말라는 거다. 이글턴은 마르크스주의적 시각으로 모더니즘을 해부한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와 전쟁, 종교적 가치의 혼돈, 부르주아 문화의 균열 속에서 탄생한 역사적 산물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가 원하는 건 쓸모 있는 예술이다. 대중이 즐기고 돈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모더니즘은 예술이 대중문화의 소비재로 전락하지 않기 위해 쓸모없는 예술을 택했다. 나만 해도 절대 읽을 것 같지 않기 때문이다. 이해하기 어렵고, 즐겁지 않고, 팔리기 어려운 예술. 이 무용성(無用性, 쓸모없음) 은 무능함이 아니라 의도된 불복종이다.


모더니즘은 자본주의에 등을 돌린 예술이다. 어렵고 불편하더라도 상업 논리에 흡수되지 않겠다는 고집이 있었다. 하지만 포스트모더니즘은 그 고집을 내려놓았다. 모더니즘이 예술의 자기 고집이라면, 포스트모더니즘은 자본주의와 사이좋게 손잡은 예술이다. 


포스트모더니즘은 싸우는 대신 그 안에서 능청스럽게 노는 쪽을 택했다. 진지함 대신 유머, 저항 대신 타협, 엘리트 예술 대신 대중문화와 적극적으로 섞였다. AI의 비유가 재밌다. 모더니즘이 "예술은 달라야 한다"라고 외쳤다면, 포스트모더니즘은 "뭐가 달라야 해?"라고 되물으며 어깨를 으쓱한 셈이라고 한다. 


상징주의, 아방가르드, 미래주의, 다다이즘, 초현실주의 등에 관한 내용은 책을 직접 참조하길 바란다. 내용이 너무 어려워서, 나에게는 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만 이해하기도 벅찼기 때문이다. 


이글턴은 모더니즘을 과거의 운동으로 끝내지 않는다. 그는 오늘의 위기 현실을 20세기 초 모더니즘이 마주했던 전쟁과 경제 공황의 위기와 나란히 놓는다. 그때 예술이 스스로를 재검증해야 했던 것처럼, 오늘날의 예술과 문학도 다시 한번 자신의 존재 이유를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모더니즘: 위기의 문학』은 과거의 예술 운동이 아니라, 지금 이 시대를 읽는 눈을 뜨게 해 준다. 이글턴의 글은 명쾌하다. 어렵고 추상적인 이론들이 구체적인 맥락 속에 놓이니 조금씩 이해되기 시작한다.


p.163  모더니즘은 문학이 단어 자체에 관한 것이 되고, 회화가 물감에 관한 것이 되며, 조각이 돌에 관한 것이 되는 순간이다. 이 속에서 예술은 오직 자기 존재에만 몰두하는 실험과 혁신의 가능성을 얻는다.


위기가 모더니즘을 만들었고, 그 예술은 다시 위기를 이해하는 눈을 만들었다. 결국 모더니즘이 ‘위기의 문학’이라 불리는 이유는, 예술이 위기 앞에서 스스로 무엇을 할 수 있는지를 묻고 그 답을 찾으려는 과정에서 탄생했기 때문이다. 


위기는 모더니즘을 낳았고, 모더니즘은 다시 위기를 이해하는 방법이 되었다. 그래서 '위기의 문학'이라는 부제는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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