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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사전연명의향서 - 죽음을 인식하면 삶은 다시 정의된다
김지수 지음 / 북루덴스 / 2026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나의 사전 연명 의향서』는 기자의 시선으로 난치병으로 투병했던 아버지와 죽음의 현장을 기록하며 깨달은 존엄한 삶과 죽음의 의미를 생각해 보게 하는 책이다.
저자의 아버지는 병명도 치료 방법도 없이 근육이 굳어가는 병으로 고생하다가 중환자실로 옮겨졌다. 목에 구멍을 뚫고 인공호흡기를 단 아버지. 아버지의 고통을 지켜보며 단순히 살아있는 것을 넘어 결국 어떻게 존엄하게 살고 존엄하게 떠날 것인가가 저자의 인생 질문이 되었다.
저자는 오프라 윈프리를 담고 싶은 열망으로 쉼 없이 달려왔다. 아버지 몫까지 더 열심히 살아야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음은 조금씩 병들어 간다. 새해 목표는 늘 잘 살아가는 거고, 인생 목표는 잘 죽는 거였다. 행복을 느끼지 못하는 인생 또한 소중하기에. 아버지는 돌아가셨지만 슬픔을 이기고 나아갈 수밖에 없음을, 그게 삶이라는 것을 받아들인다.
이 책의 마지막 부분에 있는 아버지와의 대화를 읽으니 아버지의 투병 기간 동안 힘들었던 기억보다 행복하고 따뜻했던 사랑을 기억하며 스스로 닫아두었던 마음의 문을 활짝 여는 것 같아 나도 덩달아 기분이 밝아졌다. 그리고 나도 돌아가신 엄마가 생각났다. 사전 연명 의료 의향서가 없어 모든 소생 치료를 다하며 고통스럽게 보내드려야 했던 기억에 마음이 아팠다.
그때 나는 한동안 슬픔에 빠져 있었는데, 저자는 삶은 평가나 판단이 아닌, 어떻게든 살아가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라며 독서를 택한다. 다른 사람들은 시련이 닥쳤을 때 어떻게 극복하는지 삶을 대하는 태도에 주목하며 읽었다고 한다. 아버지의 죽음을 슬퍼만 하지 않고, 스스로를 책을 통해 다독였다는 게 훌륭하다.
기자로서 저자는 삶을 지탱하려는 의지로 중환자실의 비인격적인 풍경을 담아낸다. 평생 가족과 자식들을 위해 살았는데 외면당하는 엄마들, 후두 암으로 죽어가면서 세상을 향해 담배 피우지 말라고 했던 환자를 이야기하며 존엄한 마무리가 무엇인지 묻는다.
연명의료는 과연 누구를 위한 것인가? 본인의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는데, 그저 기계에 의존에 숨만 쉬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 치료도 아닌데, 생명을 강제로 연장하는 건 누구의 뜻인가?
2018년 연명의료 결정법이 시행되면서 말기 환자 중 임종기로 접어든 환자는 심폐소생술, 혈액 투석, 항암제 투여, 인공호흡기 착용 같은 4가지 연명의료를 중단할 수 있다.
사전 연명 의향서란 나중에 회복이 불가능한 상태가 되었을 때, 인공호흡기 착용이나 심폐소생술 같은 연명의료를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미리 문서로 남겨두는 것이다. 본인이 마지막 순간을 직접 결정함으로써 삶을 존엄하게 마무리하기 위한 장치다.
인터넷 작성은 불가능하고 전문 상담사의 충분한 설명을 듣고 작성한다. 신분증을 가지고 지역 보건소나 보건복지부가 지정한 등록기관을 직접 방문해야 한다. 병원에서 갑작스러운 상황이 닥쳤을 때, 말로만 "안 하겠다"라고 하는 것보다 국가 시스템에 등록된 '사전연명의료의향서'가 있어야 법적으로 확실하고 신속하게 본인의 뜻을 이행할 수 있다.
호스피스(Hospice)는 더 이상 질병의 호전을 기대하기 어려운 말기 환자와 그 가족을 대상으로 하는 완화 의료 서비스다. 단순히 생명을 연장하는 치료 대신, 환자가 남은 삶을 고통 없이 평안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돕는다. 인위적으로 생명 연장을 하지 않는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나라의 호스피스 병상은 수요에 비해 턱없이 부족하다고 한다. 호스피스 뺑뺑이라고 여러 군데 대기를 걸어두는데 결국 자리가 나지 않아 사망하거나, 입원 당일에 사망하는 안타까운 사례가 많다. 환자가 생의 마지막 순간을 존엄하게 마무리할 수 있도록, 국가 차원의 호스피스 병상 확충과 제도적 지원이 마련되길.
우리나라도 조력 존엄사(의사 조력 사망)가 가능하게 되었으면 좋겠다. 몇 천만 원씩 들여서 굳이 스위스까지 안 가도 되니까. 의사가 약물 등을 제공해 죽음을 돕는 '조력존엄사법'은 현재 국회에서 계속 논의 중이라고 한다. 매일매일 고문 당하는 것 같은 삶을 스스로 거부할 수 있게 빨리 실행됐으면 좋겠다.
이 책을 통해 죽음을 막연히 닥쳐오는 불행이 아니라, 내가 미리 준비하고 설계할 수 있는 '삶의 마지막 과업'임을 알게 되었다. 가족이 죄책감 없이 나를 보내줄 수 있도록 '결정의 짐'을 덜어주는 일도 사랑이 아닐까? 죽음을 구체적으로 생각할수록, 지금 이 순간 내가 누구를 사랑하고 무엇을 해야 하는지 뚜렷해진다.
엔딩 노트도 써두자. 내가 떠난 뒤 남겨질 살림살이는 어떻게 할지, 통장 비밀번호 등을 메모해 놓는 것이다. 책 중간중간에 나오는 편지 쓰기도 엔딩 노트에 써 놓으면 좋을 것 같다. 그러면 막연한 죽음에 대한 공포가 준비된 계획으로 바뀐다.
이상하게 죽음을 대비하니 마음이 편해진다. 마지막을 정리해 두면 남은 삶을 더 행복하고 가치 있게 살 수 있다. 이 책을 통해 스스로의 마지막을 상상하고 준비해 보면 어떨까?
p.12 그들은 죽어가는 게 아니라 마지막 순간까지 살아간다는 걸 알게 됐다.
국내 존엄사의 법적 토대를 마련한 연명의료결정법이 제정된 지 10년이 되어간다. 저자는 여러 한계를 드러내고 있는 이 법이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얻고 현실을 반영하는 방향으로 개정되길 바란다. 이 책이 인간의 존엄한 삶과 죽음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무르익는 데 도움이 되면 기쁘겠다고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