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기행 : 변경의 사람들 - 경계와 차이를 넘어 사람을 보다
김구용 지음 / 행복우물 / 2025년 7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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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길에서 마주친 풍경, 우연히 만난 사람에게서 무엇을 얻게 되는가? 여행은 자아를 대변하고 완성해 가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이 글은 기행문이다. 단순히 중국의 변경을 여행하고 소개하는 것이 아니라, 그곳에서 만났던 사람들과 저자의 생각을 적었다. 여행이 너무 힘들면 나는 그냥 집으로 왔을 것이다. 하지만 온갖 고생을 다 하면서도 포기하지 않는 작가님이 멋있었다.

이 책을 읽는 내내 평생 단 한 번도 경험할 수 없는 엄청 힘들고, 황당하고, 아슬아슬한 여행을 따라갔더니, 책장을 덮는 순간, 내가 살고 있는 우리나라가 얼마나 안전하고 축복받은 나라인지 새삼 감사의 마음이 솟구쳤다.

p.80 실상 여행은 종종 고행이나 다름없다. 그 과정 중에 무엇을 느끼고 남길 것인지는 개인의 선택이다. 불쾌한 경험만 남길 것인가? 아니면 그 경험을 통해 사유를 확장하려 노력할 것인가? 티베트에서는 유난히 그 선택을 자주 해야 했다.

이 책에서 가장 독특한 풍습은 조장(鳥葬)이다. 처음에는 게으름을 조장한다? 아니면 우리 조의 조장? 을 생각했는데 한자를 보니 새 조(鳥) 자이다. 새🐦로 장례를 치른다고? 맞다. 그 새는 독수리다.

티베트고원 기후 특성상 시체가 안 썩어서 매장도 못하고, 척박한 고원이라 나무가 없어서 화장도 못하니까 조장을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시신을 토막 내고 썰어 독수리에게 먹인다. 다 먹고 난 뼈도 잘게 빻아 보릿가루와 섞어 독수리에게 준다.

시신은 윤회를 위해 버려진 껍질로, 독수리에게 보시함으로써 영혼이 극락 왕생할 수 있다고 믿으며, 새가 영혼을 극락으로 가도록 돕는다는 뜻도 있다. 하늘 장례라는 뜻의 천장(天葬)이라고도 한다. 시신을 독수리가 먹어서 하늘로 데려다준다는 의미이다.

처음 듣는 문화라 엽기적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불교에서는 보시의 가장 높은 경지가 몸을 바치는 것으로, 불경에도 몸을 호랑이에게 줘서 먹게 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사후에 시신을 독수리에게 먹이는 것은 내 삶의 마지막 선행이라고 보는 것이다. 땅속에서 썩는 것보다는 조장이 나을 수도 있을까?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했는데 이해를 하고 나니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바뀌었다. 어찌 보면 내가 좋아하는 치킨은 닭의 시체이고 소고기나 돼지고는 역시 소와 돼지의 시신 아닌가.

위구르 족은 한족을 아주 싫어한다는 걸 처음 알았다. 한 족은 자부심이 엄청나다고 들었는데 내 위구르족은 한족을 '중국 것들'이라며 대놓고 비아냥거린다. 한족들이 중화인민공화국 건국부터 들어와서 위구르 사람들이 살던 땅을 자기 땅이라고 우겨댄다는 것이다. 최고급 교육을 받은 인재에게 중국 정부는 농사를 지으라고 한다. 이게 말이 되냐며 울분을 토한다. 한족들은 그래서 다 나쁜 놈들이다.

좋은 직업은 다 한족이 차지하고, 위구르족에게는 아예 기회 자체가 없다. 누군가에게 미움을 받는다는 건 등골에서 뱀이 스멀거리듯 기분 나쁜 일이라는 표현이 확 와닿았다. 하물며 그 이유가 자기 잘못이 아닌 타고난 원죄라면 어떤 기분이었을까? 인종차별이나 성차별이나 내가 선택해서 태어난 것도 아닌데, 차별은 정말 서럽고 기분 나쁠 것 같다. 하지만 저자의 여행 중에는 내가 들어도 화가 나는 어이없는 사람들도 많았다. 차별이 아니라 아예 상종을 하고 싶지 않다.

서유기에 화염산이라는 곳이 나오나 보다. 저자가 이 화염산에 갔는데 차가 이상한 위구르족 토기 공예품 전시관에 내려줬다고 한다. 할 수 없이 매표소 직원에게 화염산이 어디냐고 물으니, 매표소 아가씨가 저자를 멀뚱멀뚱 쳐다보며 '뭐 이런 병X이 다 있지?' 하는 듯한 표정으로 "네가 서 있는 곳이 화염산인데요."라고 대답했단 말에 생각 없이 읽다가 빵 터졌다.

화염산은 투루판 인근을 동서로 100km나 가로지르는 거대한 산맥이다. 거칠게 마모된 산 옆면이 세로 방향으로 지그재그 문양을 그리고 있었는데, 흙마저 붉은색이라 강한 햇빛 아래선 충분히 불꽃 모양으로 보일만했다. 가이드북에 나오는 사진은 아스타나 고분군에서 포도구 가는 길에 볼 수 있다.

투루판에서 누군가 '우루무치 - 이닝 - 쿠처' 구간을 버스로 가면 그 아름다움에 눈물을 흘리게 된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실제로 가보니 정말 눈물이 났다고 한다. 그런데 아름다움 때문이 아니라 허리가 아파서 눈물이 났단다. 생각 없이 여행을 따라가다 보면 이런 작은 유머에 웃게 된다.

나는 코라를 도는 동안 등에 포대를 멘 장족 아이들 이야기가 마음에 남았다. 열서너 살 남짓한 아이들은 코라를 돌면서 사람들이 버려 놓은 쓰레기를 수거한다. 학생들에게 힘들지 않냐고 물어보니 이렇게 쓰레기를 주우면서 코라를 돌면 보람도 있고, 공덕을 쌓는 일이라며 안 힘들단다. 자기 덩치만 한 포대자루에 무거운 쓰레기를 가득 채워 코라를 도는 아이들. 비록 때가 고질 꼬질한 얼굴들이었지만, 눈은 티 없이 맑고, 미소는 싱그러운 그 아이들이 성자(聖者)였다는 저자의 말에 어쩌면 주어진 일을 즐겁게 하는 것이 기도가 아닐까 싶다.

일상에서 기쁨을 찾고 평범한 삶 속에서 성자의 모습을 보여 준 아이들. 저자는 삶의 원칙이 철저하게 신앙에 맞춰진 그들의 생활방식을 무의미한 삶이라고 평가하지 않는다. 시대를 역행하며 살아가는 그들의 삶은 언뜻 답답해 보일 수도 있지만 오히려 숭고함을 발견한 저자는, '과연 나는 어떻게 살고 있는가?'라고 물으며 스스로를 되돌아본다. 훌륭한 업적을 세운 사람만 가치 있는 인생을 산 것이 아니라, 내게 주어진 환경과 일에 만족하며 기꺼이 받아들이는 삶도 참 아름답다.

티베트인들은 일생에 한 번은 라싸로 순례 가는 걸 꿈꾼다. 자신이 사는 곳에서부터 라싸 포탈라궁까지 수백, 수천 킬로미터를 두 팔꿈치와 무릎과 이마의 5가지 신체 부위를 땅에 붙이는 절인 오체투지(五體投地)로, 세 걸음 걷고 한 번 절하는 삼보일배(三步一拜)의 수행을 하며 걸어간다. 태어난 김에 세계 일주 8화에 오체투지가 나오는데 이 책을 읽고 나서 보니 더 실감 났다. 몸을 많이 쓰면 마음이 맑아질까?

넓은 초원에서 말타기를 배워서 말을 타는 승마체험은 드라마에서 초원에서 말 타는 장면을 연상시켰다. 분명히 땅 위를 달리고 있는데 하늘을 나는 착각이 든다고 한다. 넓은 초원을 총알처럼 내달리는 그 짜릿한 기분은 말을 달려보지 않으면 모른다고 하니, 나도 한 번 경험해 보고 싶었다. 하지만 떨어지면 평생 불구로 살 수도 있으니 생각만 하기로.

여행 중에 만난 많은 사람 중에 결국 인연으로 남은 건 친절한 사람이다. 이기적이고 불쾌한 사람들에게 지쳐갈 때쯤 그런 인연들을 만났기에 여행을 계속할 수 있었던 것 같다는 말을 들으니, 새삼 이 세상이 아름다운 것은 이렇게 착하고 친절하고 좋은 사람들이 훨씬 많기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

p.156 모든 삶에는 의미가 있다. 자신의 잣대로 남의 삶을 판단하는 건 오만이다. 반대로 남이 나의 삶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것에 일일이 반응할 필요도 없다. 내 방향이 맞는지, 틀리는지는 나만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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