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멋대로 세상공부
장복남 지음 / 좋은땅 / 2025년 7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침대 패드에 조그마한 나무 가시가 박혀 있다. 그 위에 누우면 따갑다. 그럼 그것을 발견한 사람이 제거하면 해결된다. 아주 작고 사소한 것이라도 그냥 방치하면 불편함이 없어지지 않는다. 문제가 있으면 소통을 통해 적극적으로 가시를 빼 버려야 한다. 저자의 지도 교수였던 W 박사님의 말이다.
실험실 구성원 중 타인에 대한 배려가 부족해서 따돌림을 받게 된 친구가 있었다. W 박사님은 누구에게도 상처를 주지 않고 문제를 깔끔히 해결했다는 이야기가 기억에 남는다. 내 생각에는 문제 행동을 지적하기 보다 경청을 통해 모두가 수용할 수 있는 해결책을 제시하지 않았을까 싶다.
<멋대로 세상 공부>에서 말하는, 세상 공부란 어쩌면 스스로 질문을 던지고 내 멋대로 해답을 찾고, 주체적으로 행동해 나가는 여정이었다는 생각이 들었다. W 박사님의 발견한 사람이 가시를 빼버리라는, 문제가 있으면 외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해결하라는 말 역시 주체적인 행동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이 소신 있게 행동에 옳기는 실행력은, 내가 옳다고 생각하는 내 방식대로, 줏대 있게, 내 멋대로와 잘 어울리는 것 같아 첫머리에 이야기를 꺼냈다.
이 책은 대기업 임원의 도쿄 주재원 생활 5년과 본사 귀임 후 2년간의 멋대로 인생 여행기다. 멋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지내온 저자의 인생 여정을 읽고 나니, 카르페 디엠(Carpe diem)이라는 말이 생각났다. 현재를 잡아라, 오늘을 즐기라는 뜻이다. 현재를 즐기는 현재에 충실한 삶은 후회를 남기지 않는다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책 속 이름은 J 상무다. 그는 단신부임이라 생활이 흐트러지기 쉬운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저 일만 하지 않고, 자신만의 시간을 가꾸며 그것을 기록으로 남긴 점이 훌륭하다. 나같으면 일만 하기도 벅찼을 텐데, 등산, 여행, 좋아하는 TV 시청, 일본어 공부 등 자신만의 방식으로 삶을 채워나갔다. 특히, 책 중간 중간에 나오는 사진들은, 여행 가이드북에 나오는 뻔한 사진이 아니라 저자만의 독특한 시선이 담겨 있어 친근하게 느껴졌다.
게다가 책에서 가끔 나오는 'J 상무는 운이 너무 좋다'는 표현을 접할 때마다, 나까지 운이 좋아지는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책을 읽는 내내 미소를 머금게 되었다.
1. 도쿄
일본으로 주재원이나 장기 출장 가시는 분들은 꼭 읽어봤으면 좋겠다. 소소한 생활 꿀팁을 여기저기서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여행을 하는 분들에게도 흔치 않은 여행지 추천 같은 팁들이 많다. 그래서 나도 일본의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을 방문해 보려고 잘 보관해 놓았다
여행기가 참 좋은 게, 뇌리에 새겨진다고 할까? 베란다에서 내려다본 레인보우 브릿지 사진도 기억나고, 알펜루트에서의 별들이 쏟아지는 하늘도 기억난다. 내 버킷 리스트 중에 하나는 몽고에 가서 별이 쏟아지는 하늘을 보는 것이었는데, 이 책으로 알펜루트에서 별 보기로 바뀌었다.
일본 회사에는 사무실에 들어오고 나갈 때, 전체를 향해 인사하는 문화가 있다고 한다. 이것을 우리나라 식당에 도입해서 손님이 들어오고 나갈 때 종업원들이 다 함께 인사하는 식당이 있었나보다. 특히 일본 음식을 파는 술집에서는 일본어 인사말인 "이랏샤이마세(어서오세요)"를 그대로 사용하기도 했다.
일본에는 47개의 도도부현(都道府県)이 있다. 우리나라는? 서울특별시, 세종특별자치시, 6광역시(부산, 대구, 인천, 광주, 대전, 울산)가 있고, 3특별자치도(제주, 강원, 전북)와 6일반도(경기도, 충청 남북도, 경상남북도, 전라남도)의 17개의 시와 도가 있다. 나도 저자분이 늘 검색을 하셔서 물들었는지 찾아보게 된 것이다. 일본 생활 이야기를 들으며 내가 사는 대전이 광역시인 것을 처음 알게 되었다. 그냥 서울시, 세종시, 대전시인 줄?
주말마다 등산을 하다가 일본 돌아보기로 방향을 전환하며, 의욕적인 생활을 하던 저자는 2019년 코로나로 인해 일본에서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새로운 생활을 시작하게 된다.
2. 코로나
47개 도도부현 돌아보기를 못 하게 되자, 토요일은 승용차로, 일요일은 대중교통으로 도쿄 근교 지역을 돌아보기로 한다. 나는 코로나 때 밖으로 나가지 못하고 거의 집에만 있었는데, J 상무님은 주말마다 도쿄 주변 공원을 돌아다니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자신만의 멋대로 추억을 쌓아 나갔다.
일본은 매년 5월 1일을 중심으로 일주일 내외의 휴일이 이어지는데 이것을 골든 위크라고 한다. 1년 중 가장 여행을 많이 다니는 시기이다. 저자는 2020년 골든 위크 때 10시간 이상을 걷는 걷기 마라톤 대회에 참여했다. 2021년에도 했는데 한국에 있었다면 절대 하지 않았을 거라고 한다. 물집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일본을 제대로 느껴볼 수 있는 탁월한 선택인듯.
나는 돌아다니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아서 지리를 잘 모른다. 하지만 어르신들이 처음 들어보는 장소를 말하면서 길을 물어보면 바로 핸드폰을 검색해서 알려드린다. 저자도 나처럼 어떤 할머니가 무사시 코야마 역까지 간다고 길을 물어보는데 지도 앱에서 찾아 알려주는 모습이 참 보기 좋았다.
하지만 내가 감동한 것은 그다음이다. 백발의 거동도 완전치 못한 연세 지긋한 할머니가 왜 혼자서 움직여야 했을지 궁금해하는 모습에 나도 가슴이 뭉클했다. 그냥 기차에서 내려 알려준 것만으로도 충분히 친절한데, 할머니의 이면에 담긴 사연까지 헤아리는 따뜻한 마음 때문이었을 것이다.
우울(憂鬱)이라는 한자의 울(鬱)자는 쓰기가 너무 어렵다. 그 안의 울창주 창(鬯)자도 어려운데, 이 모든 글자를 합쳐 해서 울(鬱) 자를 외우셨다니 정말 그 집념에 감탄했다. 나도 재미 삼아서 네이버 한자 사전의 필순을 따라 쓰며 외워 보기로 했다.
저자는 일본인 K 씨와의 술자리에서 젓가락 포장지에 이 울(鬱) 자를 직접 써서 보여주었다. 그 일본인 K 씨는 울(鬱) 자가 적힌 젓가락 포장지를 달라고 하더니, 잘 접어서 지갑에 넣었다. 그 이후 일본인 K 씨는 스트레스를 받거나 본인이 느슨해진다고 느껴질 때마다 울(鬱) 자를 꺼내보며 마음을 다잡았다고 한다. 외국인도 한자 하나를 외우기 위해 이렇게 노력했다는 사실이 큰 동기부여가 되었을 것 같다.
작심삼일인 나는 내가 좋아하는 게 뭔지 찾아본다고 독서를 시작했지만, 지속하기가 쉽지 않아서 서평단을 하게 되었다. 하지만 워낙 게으른 나는 자꾸 꾀가 나서 서평단 안하고 드라마나 보며 놀고 싶었다. 이때 인디캣님의 꾸준한 포스팅과 동영상 리뷰를 보며, 남들이 말하는 블태기를 극복했다. 저자의 노력이 K 씨에게 도움이 되었듯, 나도 나의 행동이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는 삶을 살고 싶다.
3. 퇴임
정년 퇴임을 앞두고 계신 분들에게 도움이 되는 파트다. 나는 이 책을 통해 가장 확실한 퇴임 준비 방법을 알았다. 퇴임한 날부터, 평일과 주말로 나누어 스케줄을 촘촘하게 짜서 항상 바쁘게 생활하면 된다. 그래야 정년퇴임 후 겪는 우울증인 은퇴 증후군에 빠지지 않는다.
일본에서는 은퇴증후군을 퇴직 후 증후군(退職後症候群)이나 아내의 입장에서 표현한, 남편 재택 스트레스 증후군(主人在宅ストレス症候群)이라고 부른다.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인해 본인 스스로 심리적 불안감과 우울 증세를 겪게 되는 현상이 퇴직 후 증후군이다. 아내도 오랫동안 사회생활을 하던 남편이 정년 후 집에 머무르는 시간이 늘면서 갈등을 겪게 된다.
입장이 있으면 퇴장이 있듯, 시기에 차이가 있을 뿐 언젠가는 현역에서 은퇴하는 것은 정해져 있다. 누구나 아쉬움이 남는 것은 완전하지 않기 때문이겠지만, 정년 퇴임 다음에 오는 마지막 은퇴인, 인생이라는 무대에서 떠날 때는 완전 하지는 않더라도, 행복하게 웃으며 떠날 수 있으면 좋겠다.
한국에 돌아온 저자는 업무 시간 이외의 여가 시간을 어떻게 보낼지 고민하다가, 철학사를 공부하는 것으로 그 답을 찾는다. '멋대로의 우주, 뇌, 철학사' 요약을 읽으니 나도 쉽게 이해가 되었다. 이참에 인문 교양으로 이 부분을 읽으며 정리해 보는 것도 좋을듯하다.
2019년 초부터 시작한 47개 도도부현 여행이 코로나로 인해 2020년 34번째 현에서 멈췄음에도 불구하고, 남은 13개 현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해낸 저자의 끈기가 정말 대단하다. 나 같으면 미련 없이 그만두었을 것이다. 하지만 끝까지 여행을 계속 한 덕분에 나도 47개 도도부현 이름이라도 들어보게 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리얼한 지진 경험담은 일본에서 살고 싶은 마음을 싹 없애 줘서 좋았다.
은퇴 후, 저자는 원령공주의 무대가 되었다는 가고시마 현의 야쿠시마로 가족여행을 떠난다. 모처럼 가족과 함께하는 여유로운 시간을 통해 생의 다음 페이지를 쓸 준비를 하는 것도 굿아이디어다. 하지만 야쿠시마행 경비행기 이야기를 들으니 강풍이 불면 너무 위험해서, 만약 가게 된다면 배를 이용하자.
마지막은 도쿄에서 지인들과의 만남 이야기다. 지인들은 이구동성으로 아직 젊으니 연봉의 많고 적음에 관계없이 오래 할 수 있는 새로운 일을 찾으라고 했다. 결론은 "J 상무, 여전히 젊다. 뭔들 못 하겠어?"다. 마음챙김(Mindfulness)이라는 말은 지금 이 순간에 온전히 주의를 기울이는 뜻이다. 현재는 선물이라더니, 그 순간순간에 최선을 다한 저자의 모습을 보면서 이런 것이 마음 챙김의 삶이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버나드 쇼의 명언처럼 인생은 자기 만들기이다. 내가 원하는 대로, 나만의 방식대로, 내가 택한 나 자신만의 이야기를 쓰며 살아온, 후회 없는 마음 챙김의 인생을 담은 <멋대로 세상 공부>. 작가님의 은퇴 이후의 멋진 삶을 진심으로 응원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