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 - 창의성은 어떻게 현대사회의 중요한 가치가 되었는가
새뮤얼 W. 프랭클린 지음, 고현석 옮김 / 해나무 / 202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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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창의성이라는 말을 들으니까 제일 먼저 생각나는 게 고속도로 분기점 진입로에 색깔별 화살표로 길 안내를 표시한 아이디어였다. 정말 창의적이고 유용하지 않은가? 운전자들이라면 모두 공감할 것이다. 복잡한 분기점에서는 내비보다 훨씬 쉽게 경로를 파악할 수 있다. 누가 이렇게 신박한 아이디어를 냈나 찾아보니, 도로교통 개선 아이디어는 집단적 창의성의 결과물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속도로 분기점에서의 혼란과 사고 위험은 꼭 해결해야 할 문제였다. 이때 어떤 단체였는지, 개인이었는지는 모르지만 모두가 함께 창의성을 발휘함으로써 색깔 화살표로 이 문제를 해결했다. 모든 사람의 아이디어를 모아 해결책을 찾아냈으니 창의성은 문제 해결의 도구라고 할 수 있다.

사람들은 끊임없이 더 안전하고 효율적인 도로 시스템을 만들고자 했다. 이런 사회적 요구와 국민의 편의를 도모하려는 정책이 어우러져 직관적이고 효율적인 색깔 화살표가 탄생한 것이다. 그러면 창의성이란 혁신을 위한 수단으로 볼 수도 있다.

혁신적인 창의성은 옛날에는 천재들이나 가능하다고 생각했지만 브레인스토밍 때문인지 현대사회는 모든 사람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믿음을 갖게 되었다. 다양한 색깔로 방향을 안내하는 화살표도 한 사람의 천재가 발명해낸 것이 아니라, 집단으로 브레인스토밍 과정을 거쳐 탄생했을 가능성이 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자유롭게 이야기한다 질보다는 양이다 다른 사람들이 내놓는 아이디어에 대해 비판은 절대 금물이다. 이렇게 아이디어를 많이 많이 내 놓고 다른 사람의 아이디어를 조합하거나 개선하여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들어 내는 것을 브레인스토밍(Brainstorming)이라고 한다. 나는 최근에 나온 이론이라고 생각했는데 1938년 경 미국의 광고 대행사 경영자이자 창의성 연구의 선구자였던 알렉스 오스본(Alex Osborn)이 창안했다고 한다.

브레인스토밍은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대량 생산하기 위한 기법으로 기업과 조직에 빠르게 확산되었다. 비판을 금지하고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쏟아내기 때문에 '모든 사람이 창의적일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예가 되었다. 오늘날 실리콘밸리 기술 기업들은 '혁신'과 '창의성'을 핵심 가치로 내세우며, 직원들에게 끊임없는 아이디어 창출을 요구하고 있다.

이 책의 원제는 창의성의 숭배(The Cult of Creativity)다. 제목인 《창의성에 집착하는 시대'》라는 표현과 같은 말이다. 사이비 교주를 생각해 보자. 사이비에 빠지면 교주를 숭배하면서 다른 모든 종교를 배제하며 오로지 이 사이비 종교에만 집착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이 책의 제목에서 창의성에 집착한다고 표현한 것은 창의성이 중요한 것은 맞지만 강요되고 과장되어 숭배되는 현상을 꼬집는 표현 같다.

먼저 창의성을 숭배하게 된 배경을 살펴보자. 냉전시대, 미국은 기술 경쟁에서 소련(러시아)을 이기고 싶었다. 과학 기술의 눈부신 발전과 함께 새로운 무기와 제품을 개발하는 데는 창의성이 필수적이었다. 단순한 모방이 아닌 새로운 것을 창출하는 능력이 국가 경쟁력의 핵심이 된 것이다.

자본주의 경제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제품과 서비스를 만들어내고 소비를 촉진해야 한다. 안 팔리면 망하니까. 이때 창의성은 마케팅과 광고 분야에서 브레인스토밍과 같은 기법을 통해 혁신적인 광고 아이디어를 찾아냈다. 창의성은 소비자의 구매 욕구를 자극하는 독창적인 광고를 만들어 냈고 창의성은 더더욱 중요해졌다.

1950년대 후반부터 광고 업계는 더욱 창의적으로 소비자의 감성에 호소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제품의 기능을 설명하는 광고에서 벗어나, 유머나 예술적 감각을 결합한 혁신적인 광고들이 등장하여 소비자의 마음을 사로잡았다. 기술 개발을 넘어 기업 문화와 브랜드 이미지도 창의성을 내세우기 시작했다.

전후 사회는 거대한 조직과 관료주의가 만연했다. 윗사람의 눈치를 보며 명령에 복종하는 사회였기에 개인의 개성과 자율성을 회복하려는 움직임이 생겼다. 머리가 좋은 소수만 창의적인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창의성을 가지고 있다는 희망의 메시지를 담은 창의성은 사회에 활력을 불어넣었다.

게다가 심리학자들은 1950년대 이후 창의성을 측정하고 개발할 수 있는 특성으로 연구하기 시작했다. 지능지수(IQ)와 감성 지수(EQ)와는 다른 독자적인 개념으로 창의성 지수(CQ,Creativity Quotient)가 생겼다 그래서 창의성이 과학적으로 검증되고 육성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주게 된 것이다.

1960년대 이후에는 교육 과정에서 '창의성 교육'이 중요한 목표가 되었다. 아이들의 잠재된 창의성을 개발해서, 문제 해결 능력을 키우는 것이 미래 인재라는 생각이 퍼졌다. "창의적인 어린이"라는 개념도 이때 탄생한 것이다. 다양한 창의성 테스트가 개발되기도 했다. 자기 계발서도 인기를 끌면서 개인이 스스로 창의성을 개발해야 한다는 압박감도 생겨났다.

냉전 시대 미국 정부와 국방부, 그리고 주요 재단들은 창의성을 키우기 위한 연구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다고 한다. 미국은 소련보다 과학 기술이 훨씬 뛰어나다고 생각했는데 소련이 스푸트니크 1호를 쏘아 올리는 데 성공하는 바람에 미국은 충격을 받는다. 소련에게 뒤처지고 있다는 위기감을 느낀 충격을 스푸트니크 쇼크라고 한다. 이 스푸트니크 쇼크 이후 과학 기술 분야에서 창의성은 더더욱 중요시된다.

창의성이 단순한 예술적 재능을 넘어, 국가 안보, 경제 성장, 개인의 심리적 안정까지 책임질 수 있는 만능 해결책이 된 것이다. 창의성은 현대 사회의 진보를 이끄는 핵심 동력으로 여겨졌기에 숭배의 대상이 됐다.

저자는 다양한 관점으로 창의성을 조명해 봄으로써 창의성이 현대 사회의 핵심 동력인 것은 맞지만 여러 부작용을 낳는 양날의 검임을 말하고 있다. 저자는 창의성이라는 개념을 없애자는 것이 아니라 창의성을 숭배의 대상이 아니라 하나의 도구로 보자는 것이다.

저자는 창의성을 강조할 경우, 예술, 문화, 과학의 핵심이 새로움이라고 오해할 여지가 있기 때문에 창의성을 숭배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새로운 작품을 만드는 것만이 창의성이라고 하면 그림을 배워서 작품을 완성하지 못하는 사람은 창의성이 없는 것인가? 생각을 바꿔 미술관이 창의성을 기르는 장소가 아니라 소통을 촉진하는 장소라면 어떨까?

창의성은 복잡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수적인 것이 아니다.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다양한 해결책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을 높이 평가할 필요도 없다. 다른 형태의 일을 하는 사람들을 경시해서도 안된다. 우리가 편하게 집에서 아이스크림을 시켜 먹을 수 있는 것은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아니라 묵묵히 자기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분들 덕이다. 모든 기반 시설이 우리 모두를 살아가게 하는 것이다.

정해진 틀을 깨고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것은 창의력의 한 형태로 볼 수 있다. 하지만 기존의 것을 활용하고 발전시키며, 문제를 해결하고, 아이디어를 실현하는 모든 과정에서 창의력이 발휘될 수 있다. 그래서 저자는 창의력을 고정된 하나의 능력이라기보다는 다양한 방식으로 나타나는 유연한 사고방식이라고 본다.

창의성은 숭배나 집착의 대상이 아니라, 꾸준한 개발을 통해 향상될 수 있는 능력이 아닐까 한다. 다양한 분야의 분야의 지식을 폭넓게 습득함으로써 서로 연결하고 융합할 때,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오를 가능성이 높아진다.

창의성은 특정 능력만을 의미하기보다는, 문해력, 수리력, 판단력, 이해력 등 기본적인 지적 능력과 더불어 다양한 지식을 깊이 있게 탐구하고 활용하는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발현되는 통섭적 사고의 결과라고 생각한다.

창의력 이전에 다양한 지식과 기술을 폭넓게 읽히고 이를 연결하고 합쳐서 새로운 길을 발견하는 능력은 어쩌면 자기에게 주어진 것에 최선을 다했을 때 자연스럽게 따라오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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