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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인생의 컬러 팔레트 - 경단녀에서 창업자로
김희연 지음 / 이유출판 / 2025년 4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맞다. 나는 식모다. 식모이자 아내, 며느리, 엄마, 딸, 가정교사, 베이비시터, 요리사, 비서, 교육 컨설턴트, 재정 관리자, 구매 담당자, 건강 관리사, 상담사, 행사 기획자 등등. 운전을 할 줄 아는 분은 운전기사까지 포함된다. 나는 운전을 무서워해서 운전기사는 못해 봤다.. 식모인데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한다.
그렇다면 남편들도 내가 머슴인가? 내가 ATM 인가? 똑같이 질문할 수 있다. 그래서 남자의 입장은 제외하기로 한다. 식모란 돈을 받고 일하는 가사도우미를 하대하거나 비하하는 말이다. 돈을 받고 청소 빨래 등 정해진 일만 할 수 있다. 나도 가사노동에 지쳤을 때, 내가 식모냐며 스스로를 많이 비하했었다. 그런데 혼자 살아도 가사노동은 필요하다. 삼시 세끼를 다 밖에서 사 먹을 수는 없으니까.
이 책에 나오는 내가 식모냐는 질문은 결혼 생활 매일매일이 하루 세 끼 차리다 끝나는 것 같아서 남편에게 따졌던 공감 100%의 말이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질문을 살짝만 바꿔보자.
"우리 엄마는 식모인가?"
"나는 식모인가?"라는 질문은 뭔가 엄청 억울하게 느껴졌는데, "우리 엄마는 식모인가?"라고 물으니 아니다. 우리 엄마는 영원한 내 편이자 내가 이 세상에서 제일 존경하는 분이다. 우리 엄마 역시 주부다. 그런데 왜 나는 식모냐고 물으면 억울하고, 엄마는 식모냐고 물으면 당연히 아니라는 생각이 드는 걸까?
아이에게 엄마는 아나운서나 선생님이나 사장과 같은 직업이 없어도 그저 엄마라서 좋은 것이었다. 엄마는 그 자체로, 존재 자체만으로 충분한 것이다. 하지만 내가 주부가 되니 모든 일이 가사노동과 육아 지옥이었다. 커리어 우먼, 슈퍼우먼이라는 말은 가사노동도 잘하고, 엄마 노릇과 며느리 노릇도 잘하면서 직장에서는 일도 잘해야 한다는 말이다. 그러니 당연히 자기 능력 이상의 에너지를 써야 하고, 결국 아프거나 번아웃이 온다. 한 사람이 모든 것을 다 잘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자신의 꿈을 유보한 채 가족을 위해 봉사하며 시댁의 노예처럼 사는 억울한 여자의 일생. 성격이 안 맞아서 이혼을 한다지만 내 생각에는 시댁 때문에 이혼을 하지 싶다. 저자도 결국 이혼을 택했다. 그레이에서 벗어나 자기만의 색깔을 찾기로 결심한 것이다. 나도 이제 제사는 벗어났지만, 언제 끝날지 모르는 부양의 의무는 점점 더 큰 부담으로 다가온다.
저자는 일찍 결혼을 하고 20대 후반의 나이에 살림과 육아만 하면서 앞으로 50년 이상을 이렇게 계속 살아야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고 한다. 밥하고, 애 키우고, 신랑 뒷바라지하고 시댁에 봉사하며 사는 게 나머지 인생이라니... 나도 저자와 똑같이 느꼈다.
집안일을 고분고분 수행하지 않을 때 여성에게는 나쁜 엄마, 나쁜 며느리라는 낙인이 찍힌다. 그래서 나도 그렇게 싫었던 제사를 20년 이상 지냈던 것 같다. 알고 보니 나의 개인적인 문제가 아니라 유교 전통이 남아 있는 모든 나라의 여성이 겪고 있는 남성 편향 사회의 문제였다.
아이가 독립해서 생활비가 안 들어가 좋아했더니, 이제는 부모 차례다. 자녀 양육이 끝나면 대충 정년 퇴임을 맞이한다. 직장은 없어졌는데 길어진 수명 때문에 부모 부양이라는 새로운 의무가 주어진다. 이제는 앞으로 몇 년을 더 일해야 나의 노후 대비를 할 수 있을지 상상도 못한다. 그래서 나는 저자의 창업을 응원한다. 브랜미가 아주 잘 되어서 친정 부모님 오래오래 편안하게 사시게 해드렸으면 좋겠다.
늘어난 수명은 부모와 자식 간의 갈등을 부채질한다. 연로하신 부모는 정부 보조금을 받을 정도로 장애인 등급이 있는 것도 아니고, 복지 주택에 입주해서 살 만큼 혼자서 모든 것을 할 정도로 건강하지도 않아서 실버타운이든 실버 하우스든 요양원이든 케어 비 폭탄을 떠안는다. 함께 살자니 내가 죽을 것 같다.
나의 컬러 팔레트는 고정된 칸으로 분리되어 정해진 색깔밖에 쓸 수 없었다. 가족과 사회가 원하는 색깔로 나를 색칠하며 정해진 틀대로 살아온 나의 과거도 저자의 과거와 비슷하다. 마치 식모가 주인의 요구에 맞춰 식탁을 차리고 집안을 정리하듯, 결혼을 했다는 이유로 시댁 위주의 삶을 살았다. 친정 부모님은 마치 무슨 죄인이나 되는 것처럼 친정은 늘 뒷전이고 시댁이 우선이다. 취집이 딱 맞는 표현이다.
저자 역시 나처럼 좋아하는 것을 생각해 본 적도 없다. 교육관도 나와 비슷하다. 아이의 공부나 독서는 스스로 하고 싶을 때 알아서 하겠거니 한 것이다. 저자는 천당 밑 분당에서 선행을 안 시켰고, 나는 강남 8학군에서 선행을 안 시킨 점도 똑같다. 하지만 저자는 교육관이 뚜렷했기 때문에 선행을 안 시켰던 것이고, 나는 시댁과 두 집 살림을 해야 했기에 아이 학원비가 없어서 못 보낸 것이었다.
저자는 2018년 11월 설마 내가 놀겠어 하는 배짱으로 희망퇴직을 한다. 하나밖에 없는 딸은 뉴질랜드에서 공부하고 대학 졸업도 하기 전에 두바이 아랍에미리트 항공사 승무원으로 취직이 되었다. 왠지 내 아들이 취업한 것처럼 기쁘고 자랑스러웠다.
이 책은 한 여성의 삶과 창업 여정을 다채로운 색채로 그려낸 책이다. 그녀의 삶의 여러 순간들이 어떻게 '색'이라는 창업 아이템으로 이어졌을까? 그녀의 자신만의 색을 찾아가는 과정은 잃어버렸던 자신의 컬러를 되찾기 위한 투쟁이었다. 인생의 여러 단계에서 마주한 도전과 기회들을 색깔에 비유하며 창업 과정에서 겪었던 좌절과 시행착오까지 솔직하게 고백해서 더 공감이 되었다.
이 책의 가장 큰 매력은 '컬러'를 통해 자신만의 색을 찾아 나서도록 격려한다는 점이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색을 가지고 있지만, 사회의 기준이나 타인의 시선에 갇혀 본래의 색을 잃어버리기도 한다. 작가는 진정으로 자신이 원하는 삶의 색을 찾아 용기 있게 나아가라고 한다.
창업이란 색을 섞어 새로운 조합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작가가 직접 부딪히며 얻은 현실적인 창업 조언과 경험담은 예비 창업가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창업은 단순히 돈을 버는 행위가 아니라, 자신만의 열정을 따라 꿈을 실현하는 과정이다. 아무리 작은 자영업이라고 해도 고객에게 가치 있는 것을 제공해야 한다. 대충 만든 것을 돈 주고 살 고객은 없기 때문이다. 한 번은 넘어가도 두 번은 없다.
당신의 인생 팔레트는 어떤 색깔로 채워져 있는가? 그 색깔들은 당신이 정말로 원했던 색깔들인가? 나는 이제까지 내 인생의 색깔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모두 검은색 속에 묻혀버렸다. 하지만 검은 대지에서 새싹이 돋아나듯 앞으로의 나의 색깔은 연두색으로 하겠다.
이제 연두색부터 나만의 다양한 색깔을 찾아가면 되는 거다. 그리고 앞으로 나의 색깔을 어둡게 만드는 일이 생기더라도 팔레트를 덮어버리든 비닐을 씌우든 해서 나 자신의 색깔을 보호하는 방어막을 잘 쳐서 나만의 색깔을 유지하며 살 것이다. 1인 다 역을 하는 이 세상 모든 엄마들은 그저 존재만으로도 총천연색으로 아름답게 빛나는 존재다. 그래서 아무것도 안 해도 된다. 애쓰지 않아도 괜찮다.
이 책 '내 인생의 컬러 팔레트'를 통해 자신의 삶을 예술 작품처럼 다채로운 색으로 채워나갈 용기와 영감을 얻길 바란다. 매일 서평을 쓰고, 인덕션 청소를 하며 예술작품을 만들고, 명화 달력을 필사하고, 색칠 공부를 하고, 텃밭을 가꾸고, 외국어 공부를 하고, 화초를 키우고, 댕냥이 집사를 하고, 드라마 몰아보기를 하고~
내 블로그 이웃분들의 일상이다. 이렇게 적어 보니 어떤 일을 하든 그 나름의 컬러로 빛나는 것 같지 않은가? 스스로 나는 식모인가?라는 물음에 스스로에게 밥해 먹이고, 밥 사 먹이는 식모와 머슴임을 인정하자. 더 이상 식모와 머슴이라는 단어가 내 인생에 아무런 상처를 남기지 못할 때까지.
마지막은 저자만의 멋진 색깔을 가져와 봤다.
"나는 예쁜 것, 멋진 것, 잘 어울리는 것을 보면 눈이 가고 감탄이 나오는 컬러를 사랑하는 이미지 컨설턴트다." (p.22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