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계곡
스콧 알렉산더 하워드 지음, 김보람 옮김 / 다산책방 / 2025년 1월
평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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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다산책방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되기로 정해져 있는 건 없다. 하나의 결과가 다른 결과로 대체된 거야.

이 책의 결말은 하나의 결과가 다른 결과로 대체된 해피엔딩이다. 끝까지 읽어보면 이 말의 의미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특히 끝부분은 몰입도가 엄청나다.

<시간의 계곡>의 주인공은 오딜 오잔, 16살이다. 1부는 오딜 오잔의 10대 이야기, 2부는 헌병이 된 오딜 오잔의 20년 후인 36세 때의 이야기다. 이야기는 진로 선택을 앞두고 있는 오딜과 친구들의 이야기라 잔잔하게 시간이 흐른다. 그러나 에드메 피라의 죽음 이후 서서히 재밌어지더니 2부는 너무 재밌어서 마지막 페이지를 다 읽고서야 잠들었다. 2부는 자기 전에는 읽지 않는 것이 좋을 듯. 드라마 몰아보기 뺨친다.

이 책의 특징이라면 자연의 묘사가 뛰어나서 아름다운 호수 근처로 놀러 간 듯한 느낌이 든다는 것. 책을 읽으며 이때 나 같으면 어떤 선택을 했을까 생각해 보며 읽었다. 주인공이 사는 마을로, 그때의 시간으로 여행을 다녀온 것 같기도 하다. 주인공의 10대는 호수도 골짜기도 아름다웠는데, 헌병이 된 30대는 어쩐지 자연마저도 주인공처럼 황량하고 쓸쓸했다.

오딜 오잔은 동쪽으로 가면 20년 후의 마을이, 서쪽으로 가면 20년 전의 마을이 있는 곳에 살고 있다. 똑같은 마을은 동서 양방향으로 계속된다. 오딜이 사는 곳은 누군가에게는 미래이고 또 다른 누군가에게는 과거이다. 자문기관과 헌병대는 그 경계인 철책에 있는데 모든 방문에 균형을 유지하며 마을 주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한다.

그리고 이 책의 1부를 읽기 전에 오딜 오잔의 친구들 이름도 성까지 붙여서 기억해 놓는 게 좋다. 왜냐하면 친구 조 베르디에라고만 부르거나 베르디에라고만 부르니 다른 사람인 줄 알았기 때문이다. 외국 이름은 성인지 이름인지 낯설어서 풀 네임을 기억해 놓는 게 1부 읽기 팁. 2부에서는 이름을 불렀다 성을 불렀다 하지 않으므로 굳이 기억하지 않아도 된다.

♂️ 에드메 피라 : 주인공이 사랑하게 된 학생이다. 음악원에 지원하고 싶어 하고 바이올린을 연주한다. 부모님은 바이올린을 그만두고 정육점처럼 실용적인 일을 하라고 강요한다.

♂️ 알랭 로소 : 서슴없고 방정맞고 예측할 수 없는 성격. 일단 저지르고 보자는 식으로 장난을 친다. 어릴 때부터 성격이 정반대인 에드메 피라의 단짝이다. 괴롭힘을 당하는 주인공도 도와주고 2부에도 나온다.

♀️ 조나 쥐스틴 - 사슴 같은 눈의 보조개가 있는 예쁜 육상팀 학생이다. 에세이를 제출했지만 추천받지 못했고, 알랭 로소와 사귀다가 에드메의 죽음 이후로 헤어진다. 알랭이 에드메의 죽음이 쥐스틴 탓이라고 했기 때문이다.

♀️ 조 베르디에 - 둥그스름한 뺨에 초록색 눈동자를 가진 부잣집 딸. 부모님은 호숫가 양조장을 가지고 있다. 자문관 시험에 처음 합격했을 때 오딜과 친해질 뻔하다가 1차에 떨어지고 다시 멀어졌다. 2부 선상 카페에서 오딜과 재회하는데 시간이 흐르면 섭섭함도 질투도 반가움으로 변하는 것 같다.

♂️ 앙리 스와인 - 한때 주인공 오딜을 괴롭혔다. 아버지가 약사이고 제1동편에 다녀온 적이 있는 뤼시앵 과 아버지가 자문관인 르네가 나온다. 나중에 조 베르디에와 결혼한다. ♂️피슈그뤼 선생님이 담임이다. 그랑제콜이라는 곳에는 자문관이자 자문관이 될 학생들을 뽑는 이브레 선생님이 근무한다.

오딜 오잔의 아버지는 식품점에서 일하다가 오딜이 4살 때 오딜의 할머니네 과수원에 딸린 낡은 차고 안에서 돌아가셨다. 하지만 이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너무 어려서 이해하지 못했다. 그래서 담임 선생님이 숙제로 내준 에세이를 쓸 때 방문 기회를 거절하겠다는 내용을 한결 수월하게 쓸 수 있었다.

헌병을 하다가 우연히 미래의 자신의 모습을 보게 된 오딜 오잔은 자신이 사랑했던 사람을 구하고 자신도 행복해진다. 영화로 봐도 이 마지막 부분이 제일 재밌을 것 같다. 이 소설의 초점은 주인공인 오딜 오잔과 그녀가 사랑했던 에드메 피라에 맞춰져 있는 것 같다.

하지만 나는 주인공과 엄마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오딜 오잔은 왜 엄마와의 관계를 개선하려는 생각을 하지 않았는지 모르겠다. 오딜 오잔이 사랑하는 친구를 잃었어도 만약 엄마와 사이가 좋았다면 함께 이야기를 하며 아픔을 잘 극복했을 것이다.

오딜 오잔의 엄마는 무조건 오딜이 자문관이 되어야 한다고 했다. 옛날에 심사 프로그램에 들어갔는데 엄마보다 못했던 애들이 자문관이 되어 엄마가 일하는 기록보관실에 와서 명령하는 것이 한이 맺힌 것이다. 그래서 오딜을 통해 대리 만족을 얻고 싶었나 보다. 자문관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직업이라도 엄마가 바라는 삶의 기준을 결코 만족시키지 못 했을 거라고 오딜은 말한다.

엄마가 딸에게 자문관이 되라고 강요를 할 때는 그 이유를 알려줬더라면 조금 더 주인공이 마음을 열지 않았을까. 그래서 어쩌면 진짜로 자문관이 되었을지도 모른다. 나중에 알고 보니 정말 말도 안 되는 황당한 동기여서 어이가 없긴 했지만. 그런 말도 안 되는 이유라도 딸과 이야기를 했더라면 헌병이 되는 일만은 막을 수 있었을 것 같다. 하지만 주인공의 엄마도 방법을 몰라서 그랬을지도 모른다.

자신의 생각을 누군가에게 이야기할 때는 꼭 이유를 알려줬으면 좋겠다. 우리 엄마도 왜 공부를 해야 하는지 이유는 알려주지 않고 무조건 공부하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제일 듣기 싫은 말이 공부하라는 말이었다. 나는 부모가 되면 우리 엄마처럼 자식에게 공부를 강요하지 않겠다고 다짐을 했다.

지금은 중고등학교에서 배운 공부가 모든 과목을 접해 볼 수 있는 내 인생의 마지막 기회였다는 것을 안다. 그런 거 몰라도 살 수 있지만 내가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 찾으려면 폭넓게 다양한 분야를 접해보는 인생의 단 한 번뿐인 기회라 공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나는 내 아이에게 공부하라는 말을 안 하겠다는 꿈을 이루었다. 아들의 꿈은 프로게이머였는데 자기 실력으로 프로 게이머는 어림도 없다는 현실을 깨닫닫고, 나중에는 게임을 하도 해서 재미없다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지금은 꿈이 뭔지 모르겠단다. 나도 그렇다. 그런데 꼭 꿈이 있어야 하는 건 아닌 것 같다. 오늘 하루 행복하다면 행복한 꿈이 이루어진 것이니까.

자신의 꿈인 자문관이 되지 못했다고 딸인 오딜 오잔을 망가뜨린 것은 엄마다. 오딜은 하나밖에 없는 소중한 딸이라는 그 하나만으로도 귀하게 대해줬어야 했다. 자식은 부모의 꿈을 대신 이뤄주는 수단이 아니니까.

하지만 나처럼 너무 내버려두는 건 방관인 것 같다. 그때는 공부하라는 말이 싫어서 안 한 건데, 학생의 의무가 공부인 것을 알려주지 못했다. 나에게 공부하라던 잔소리가 왜 싫었나 생각해 보니까 딸인 나보다 공부를 더 소중히 여기는 것 같아서 섭섭했던 것 같다.

결국 엄마와 함께 살 수 없어서 오딜 오잔은 할머니 댁에서 지낸다. 두 분 다 돌아가시자 과수원과 집이 팔리고 집을 허물어뜨린다고 집주인이 짐 정리를 요구한다.

헌병이 된 오딜이 근무하는 경계 지역으로 추억의 물건이 든 상자가 배달된다. 오딜은 엄마가 자신의 추억의 물건을 신경 써 줘서 좋아했는데, 내 소관이 아닌 물건이었고 새 집주인이 집에 아무것도 남아 있지 않기를 바라서 보냈다고 엄마는 확실히 선을 그어버린다. 자기 꿈을 망친 딸에게 복수라도 하는 것처럼. 이런 앙금은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나 보다. 서로 아끼고 있으면서도 말이다.

나중에 오딜 오잔의 생일날, 선상 카페에서 엄마를 만나 승진할지도 모른다는 얘길 하자 "네가 좋다니 잘 됐구나"라고 말한다. 이렇게 간단한 말 한마디 하는 게 이렇게까지 오래 걸릴 일이었나 싶어 오딜은 짜증이 솟구쳤다. 하지만 엄마가 먼저 다가오기를 바라지 말고 오딜이 먼저 엄마에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도 있었을 텐데 내성적인 성격이어서 말을 못 했을 것도 같다.

오딜 오잔은 그랑제콜에서 치르는 1차 시험을 조와 함께 통과한다. 시험 문제는 L.M. 씨가 죽은 아내를 그리워하는데 철책을 넘도록 청원을 승인하겠느냐는 것이다. 오딜은 반대했다. 아내의 죽음을 부부가 함께 대비할 수 있었고, 서로 마지막 인사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는 것이다. 마지막 인사는 한 번으로 족하며 누구나 죽기 때문에 모두의 방문을 허락할 수 없다는 입장이었다.

그런데 조의 말이 참 마음에 들었다. 거부당하는 청원인의 마음을 위로하는 것도 자문관의 역할이라는. 거부할 때 청원인의 사연에 조금도 신경 쓰지 않는 사람처럼 말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철책을 넘어가 버리는 사고를 저지를 가능성이 커지니까. 내가 자문관이었으면 웬만한 사연은 다 들어 줄 것 같다.

2차 시험 문제는 C. R. 씨 사건이었는데 조는 논리적인 설명이 부족해서 떨어지게 되자 오딜과 사이가 멀어진다. 그리고 다음 사건을 해결해야 하는데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을 맞게 된 것이었다. 사랑하는 사람을 살려야 할까? 질서에 순응해야 할까? 난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겠다. 그런데 만약 주인공이 미래에 행복했다면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사랑하는 사람을 살리러 과거로 갔을까?

오딜 오잔에게 추파를 던지던 질 나쁜 가뉴로부터 보호해 준 장교 레몽 라블레를 진심으로 사랑했다면 오딜은 과거로 갔을까? 레몽이 주변의 위반 사항을 장사빌이나 콜텔리에게 열성적으로 보고하는 밀고자였고, 오딜은 그를 좋은 동료로 밖에 생각하지 않았다.

만약 알랭 로소가 사고 치지 않았다면 그래서 장교가 됐다면 과연 과거로 갔을까? 비참한 자신의 또 다른 20년 후의 미래의 모습을 안 봤더라면 과거로 갔을까?

과거로 간 2부의 내용에서 이 책을 왜 철학적인 소설이라고 하는지 알 것 같았다. 정말 사람들은 나이를 먹어도 안 변한다는 사실, 개과천선은 거의 없다는 것, 모두 다 이기적인 것, 질투의 감정은 인간의 본성이란 것, 시간이 흐르면 다 그리움이 된다는 것 그리고 환경이 인간을 만든다는 것 등등 나도 모르게 생각이라는 것을 하고 있었다.

어쩌면 한 사람의 과거의 실수와 아픔을 통해 현재 내가 그렇게 살기를 반복하지 않음으로써 미래의 내 모습을 바꿔가는 것이 인생이 아닐까 싶다. 늘 현재에 최선을 다한다면 과거로 돌아가거나 미래로 가고 싶지 않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과거로도 미래로도 가고 싶지 않은 이 책을 읽고 글을 쓰는 지금이 참 행복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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