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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끔은, 비건 - 7가지 키워드로 들여다보는 기후 식사 ㅣ 알고십대 8
정민지 지음, 민디 그림 / 풀빛 / 2025년 1월
평점 :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난각 번호란 계란에 찍힌 초록색 도장 맨 끝 1자리 숫자다. 앞 숫자는 산란 일과 농장 번호. 1번은 자연에서, 2번은 실내에서 풀어 놓고 기른 것.
동물은 사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함께 지구에 존재하는 생명이다. 그래서 A4 용지보다 작은 케이지 안에 가둬 놓고 알만 낳게 하는 동물 학대 환경은 없어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계란과 비건이 무슨 상관? 이 책은 비건을 실천하자는 책이 아닌가? 아니다. 비건에 관한 것도 알려주는 기후 식사에 관한 책이다. 지구를 덜 아프게 하자는 책이다. 그렇다면 닭들도 덜 아프게 살아 있는 동안은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공장식 축산이라는 황당한 말도 처음 들었다. 계란 생산도 공장에서 자동차 부품 찍어내듯 자동화 한 것이다. 꼼짝 못 하는 케이지 안에 갇힌 닭들은 알을 낳는 기계가 된다. 환기도 잘 안돼서 악취가 코를 찌르는 환경에서 낳은 달걀은 스트레스가 심해 사람 몸에도 안 좋다. 이 공장식 축산 닭들이 낳은 달걀에는 케이지 크기에 따라 살짝 넓은 건 3번, 매우 좁은 건 4번이라고 계란에 찍힌 녹색 도장 맨 끝에 표기되어 있다. 나부터 시작해서 점차 많은 사람들이 학대당한 닭이 낳은 3번과 4번 란을 사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이런 가혹한 환경은 사라지지 않을까?
닭을 학대하는 것으로도 모자라 소비자를 우롱하는 동물복지, 유정란, 친환경, 유기농, 자유방목, 좋은 것을 먹였다는 둥 헷갈리게 예쁜 말로 포장한다. 난각 번호도 안 보이게 포장도 잘 되어 있다. 나도 유정란이래서 샀는데 맨 끝자리 수를 확인해 보니 4번 란! 먹고 죽는 건 아니니까 돈이 아까워 먹긴 했지만... 어쩐지 닭의 고달픈 눈물을 삼키는 기분이었다.
난각 번호 1번은 자연 방사. 2번은 축사 내 평사로 평평한 실내에서 사육하는 닭을 말한다. 둘 다 자유롭게 돌아다니며 먹이도 먹고 알도 낳는다. 자연에 풀어놓은 1번 란에는 비타민 D가 30%나 더 많다. 당연히 신나게 돌아다니며 햇빛도 받고 흙 목욕도 하니 그럴 것이다. 하지만 자연 방사는 키울 땅도 많이 필요하고, 닭들이 자연스럽게 놀며 휴식을 취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적어서 알도 조금밖에 안 낳는다고 한다. 그래서 계란값이 비싸다.
하지만 비싸더라도 불쌍한 닭들을 생각해서 3, 4번 란을 안 사야 한다. 닭장에 가두고 날갯짓 한번 못하게 하면서 좋은 사료를 주면 동물복지인가? 동물에게도 이러니 사람에게도 나만 안 먹으면 되니까 살충제를 먹던 항생제 덩어리를 먹던 알 바 아닌 것이다. 이런 비양심적인 업자들이 더 이상 소비자를 기만하지 못하게 우리가 3, 4번 계란을 안 사면 된다. 그러면 너도나도 자연에서 닭을 키우게 돼서 닭들도 신나고, 1번 란이 많이 팔리면 가격도 내려갈 테니 우리도 신나지 않을까?
이 책의 표지에는 '지구를 위한 기후 식사'라는 말이 있다. 나는 기후 식사라는 말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그래서 기후 식사를 제일 먼저 쓰려고 했는데 이 책을 읽고 나니 내가 매일 먹는 계란이 젤 먼저 생각났다. 오로지 케이지에 갇힌 닭들을 구해야겠다는 마음에 난각 번호 1, 2번부터 쓰게 된 것이다. 비건도 환경보호 운동도 모두 지구를 살리자는 것인데 인간의 생명만 중요한가?
기후 식사란 탄소 배출을 줄이는 식사를 말한다. 탄소가 많이 배출되면 지구가 따뜻해져서 이상 기온으로 우리 역시 피해를 입게 된다. 먼 나라에서 배나 비행기로 싫어 나르는 운송과정에서도 온실가스가 다량 배출되므로 가까운 곳에서 생산되는 식재료를 소비하자는 것이다. 로컬 푸드 운동은 유통거리가 짧아지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다는 기후 식사의 실천이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보면 소 4마리 = 자동차 1대라고 한다. 소고기 먹는 횟수와 양을 줄이는 것도 기후 식사다. 영국의 골드스미스 칼리지는 학생들이 투표를 통해 교내에서 소고기를 금지했다. 소는 되새김질을 하는 동물이라 닭고기나 돼지고기보다 10배나 많은 온실가스를 발생시키기 때문이다. 꼬북칩과 에이스 크래커 같은 과자들에도 조미료에 소고기 성분이 들어간다니, 불쌍한 소를 생각해서라도 과자를 좀 줄여보자.
비건(Vegan)의 정확한 뜻도 알게 되었다. 영국 비건 협회 공동 설립자인 도널드 왓슨이 베지터리언(Vegetarian)에서 Veg와 맨 끝의 an을 합쳐서 Vegan이라는 말을 만든 것. 채식주의자 중에서도 유제품까지 먹지 않는 엄격한 채식주의자를 비건이라고 한다. 생선과 꿀도 안 먹는다.
비거니즘(Veganism)이라는 말도 있다. 비건의 철학과 삶의 방식인데, 먹는 것은 물론 생활 전반에 걸쳐 동물을 해치는 일체의 것을 반대하는 삶의 방식이다. 인간은 동물을 착취하지 않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원칙을 가지고 옷, 화장품, 의약품도 동물성 제품은 모두 거부한다. 나는 동물을 학대하거나 착취하지 않는다는 부분이 아주 마음에 든다.
이 책은 K-김밥 이야기로 시작한다. 미국은 수출 검역이 까다로워서 김밥에 들어가는 햄과 계란 대신 유부랑 채소로 속을 채워서 팔았는데 채식하는 뉴요커들 사이에서 품귀현상까지 일어났다는 것이다. 선진국에서는 점점 채식을 하는 사람이 늘어난다는데 내 주위는 거의 모두 삼겹살 마니아들이다. 밥 대신 고기를 먹어야 근 손실을 예방한다니 나도 가능하면 고기를 먹었다.
영국 국민 모두가 일주일 중 하루 고기를 안 먹으면 자동차 500만 대가 운전을 하지 않는 효과가 있다는 발표가 있었다. 전 국민까지는 아니더라도 최대한 많은 사람들이 하루 한 끼 채식이라던가 일주일에 하루 채식 데이 같은 것을 실천해 보면 좋을 것 같다.
그래서 이 책의 저자는 일주일에 하루 고기를 안 먹는 식단에 도전 중이다. 성공한 날은 성취감도 있고 오늘 하루는 지구에 무해한 하루를 보냈다는 뿌듯함도 있다니 가족과 함께 일주일에 하루 고기 안 먹는 날은 어떨까? 반려견과 반려묘를 키우면서 소, 돼지, 닭도 다 같은 생명인데 잡아먹는다는 게 불편해서 육식을 끊은 사람도 있다. 종교 때문에 채식을 하거나 고기가 안 받아서 못 먹는 사람도 있다.
하지만 나처럼 고기를 좋아한다면 저자처럼 일주일에 하루 채식은 실천할 수 있을 것 같다. 요즘에는 텀블러를 이용하는 사람도 많아졌고, 일회용품 사용도 많이 줄었다. 하지만 전기차를 이용하는 것보다 채식을 하는 것이 지구 환경에 더 도움이 된다니 저자처럼 나도 지구에 무해한 하루를 만들어야겠다.
비건 버거? 나도 들어보긴 했는데 먹어 본 적은 없다. 표고버섯이나 밀과 콩으로 대체육을 쓴 것이다. 인공육은 살아 있는 동물의 생명을 해치지 않고 사육이 없으니 축산으로 인한 환경오염도 없다. 환경친화적이다. 다시마에서 추출한 단백질로 패티를 만든 해초류 버거도 있다. 기회가 되면 KFC나 롯데리아에서 비건 버거를 한번 먹어봐야겠다. 그리고 계란 대신 콩으로 만든 비건 마요네즈도 판다니까 한번 먹어봐야겠다.
내가 경험한 바로는 밥, 떡, 빵 같은 정제 곡물로 만든 음식을 먹고 나면 정말 빨리 배가 고프다. 먹어도 먹어도 계속 배가 고파서 하루 종일 자주 먹어야 한다. 하지만 고기나 현미 같은 통곡물을 먹고 나면 소화 시간이 길기 때문인지 포만감이 오래간다. 그래서 통곡물이나 단백질 위주의 식사를 하는 것 같다. 고기는 먹지만 이왕이면 돼지고기와 닭고기를 먹고, 식물성 단백질도 함께 먹자. 탄수화물 위주에서 단백질 식단으로 바꾸니 집중력 시간도 좀 늘어난 듯?
음식물 쓰레기 배출량이 세계 2위! 우리나라가 기후 악당이라니. 먹방의 영향도 있고 많은 반찬 수와 자주 외식하는 습관도 한몫한다. 식당에 가면 먹지도 않는 반찬을 푸짐하게 제공해야 대접받는 기분이 든다. 그래서 나는 반찬을 세팅해 주지 말고 자기가 먹고 싶은 반찬을 가져다 먹을 수 있게 셀프 바를 의무적으로 하게 하면 어떨까 싶다. 하지만 셀프 바에서 반찬을 많이 가져와 남긴다면 의미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
프랑스에서는 대형 마트를 대상으로 유통기한 임박 상품은 자선단체나 저소득계층에 기부하는 것이 의무화되었다고 한다. 우리나라도 이 제도를 도입해서 모든 편의점과 마트를 대상으로 식품을 기부하면 세금도 깎아주고 안 지키면 벌금을 크게 매기면 좋겠다.
이란격석(以卵擊石). 계란으로 바위 치기기같이 개인의 작은 행동이 헛된 것처럼 보이지만, 그런 노력들이 쌓이면 던져진 계란으로 바위가 뒤덮인 모습을 보고 뭔가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늘어나 지금의 상황을 다른 시선으로 보게 될 것이라는 비유가 인상적이었다. 여럿이 함께 같은 소리를 내면 변화는 반드시 생긴다! 이왕이면 고기 말고, 이왕이면 쓰레기를 덜 남기고, 이왕이면 탄소 배출을 줄이는 쪽을 택하자.
플렉시테리언은 유연하다는 플렉시블(Flexible)과 베지테리언의 합성어로 식물성 식품을 먹는 걸 목표로 삼는 사람이다. 불완전한 채식으로 비건 지향이라고도 한다. 우리 모두 비건 지향을 해 보면 어떨까? 고기는 먹지만 가능하면 채식을 하겠다는 비건 지향은 <가끔은 비건>이라는 이 책의 제목과도 잘 어울리는 것 같다. 무엇을 먹느냐에 따라 나 자신의 건강은 물론 지구에도 영향을 끼치니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