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에 서 봄 남프랑스 - 남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
수정 지음 / 지식과감성#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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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식과감성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완벽하지도 영원하지도 못할 것 같은 사랑에 임해 있을지라도. 어쩌면 여행이란 자기 자신을 찾아 떠나는 사랑에 머무는 일이 아닐까?

나는 방구석 여행을 좋아한다. 돈도 안 들고 힘들게 걷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여행 관련 도서로 사진 여행을 즐긴다. 책 속으로의 여행은 가이드를 끼고 여행하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이 책의 작가님은 다른 곳으로 떠날 때마다 멋진 감상을 적어주셔서 문학의 향기까지 느꼈다. 이 책 제목의 <남프랑스에서 한 달 살기>라는 말은 한 곳에서 한 달간 지내는 것이 아닌 남프랑스의 도시 15군데를 거치는 여정이다.

니스의 몽돌 해변과 칸의 별, 에즈의 언덕과 니체의 산책로, 망통과 앙티브, 피카소와 샤갈, 마르세유의 아비뇽, 액상프로방스, 카르카손의 성과 마을, 아를의 고흐와 님의 거리... 저자는 생각만으로 아득했던 그곳에 함께 존재했고 나는 무작정 저자를 따라나섰다.

먼저 니스(Nice). 나이스로 읽을 뻔. 트램을 타고 마세나 광장으로 간다. 컬러풀한 가로등인 줄 알았는데 가로등 모양이 사람이다. 매우 인상적인 가로등이었다. 이 가로등을 보려면 꼭 밤에 가야겠다. 광장 양쪽 공원도 보인다. 강남 대로의 북적함과는 다른 너무나 한가롭고 여유 있는 시골 풍경 같다.

저자는 샤갈 미술관과 마세나 박물관도 구경하고 장을 봐서 음식도 해 먹으며 독수리 둥지라는 별명을 가진 에즈(Eze)로 간다. 천연 요새 마을이다. 영화에서나 볼 법한 성 안이 전부 식물로 둘러싸여 식물원을 이루고 있다. 거칠고 척박한 에즈의 골짜기와 지중해의 바다. 삶이라는 산을 오르고 운명의 대지를 돌아왔어도 마침내 나에게로 돌아오는 것이라는 저자의 표현까지 일품이다.

그 유명한 니체의 산책로를 걸으며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기 위해서 자신을 알아야 한다는 니체의 말도 떠올린다. 니체의 산책로는 고되고 가팔랐다고 한다. 땀도 많이 흘리고 물건도 잃어버리고 갈증도 느꼈다는 곳. 니체는 왜 이런 곳을 산책한 것일까? 힘듦도 즐겼을까?

앙티브(Antibe). 새로운 마을에 도착하면 이른 아침의 산책이 흥미롭다. 운동하는 사람들과 눈인사를 나누며 카레 성채가 보이는 길을 걸었다. 600년 전부터 제노바 가문의 성채였던 곳이 피가소 미술관이 되었다. 앙티브 고고학 박물관 앞 지중해를 바라보고 파도 소리를 들으며 해변 길을 산책하노라면 천국이 따로 없을 것 같다.

대학가 마을로도 알려진 액상 프로방스(Aixen Provence)는 미라보(Mirabeau) 거리의 시작을 알려 주는 로톤데 분수를 지나자 정겨운 시장의 소리가 들린다. 세잔(Paul Cézanne)과 인연이 깊은 생트 빅투아르 산과 산책로가 이곳에 있다. 세잔은 오로지 작품만을 위해 최대한 자연광이 많이 들어올 수 있게 작업실을 설계했다고 한다. 나는 이곳의 아기자기한 시장 풍경이 너무 마음에 들었다.

이탈리아와 국경을 마주한 레몬의 도시 망통(Menton). 이탈리아 땅이었다가 프랑스 국경 안으로 들어온 이곳은 이탈리아 같은 프랑스, 프랑스 느낌의 이탈리아라 같았다고 한다. 성당에서 내려다본 바다는 지그재그로 만들어진 계단이 해변 길로부터 나 있어 그쪽에서 바라보는 성당 모습이 망통의 대표 얼굴이 되기도 한다.

모나코(Monaco)의 국경은 역이다. 경사진 언덕에서 항구로 떨어지는 작은 마을 같은 이곳은 한 나라다. 배우였다가 모나코의 왕비가 된 그레이스 켈리와 그녀의 이야기로 알게 된 이 작은 나라는 스포츠카와 카지노의 천국인 듯했다고.

앙티브에서 기차로 10분이면 도착하는 거리에 (Cannes)이 있다. 칸의 시작은 영화다. 어디로 시선을 주어도 영화의 도시라는 사인이 있다. 칸에서 보트로 15분이면 도착하는 생마게리트섬에는 알렉상드르 뒤마 소설의 모티브가 된 아이언 마스크라고 알려진 죄수가 있던 감옥이 있다. 지금은 해양 박물관이 되었다.

역에서 버스를 타고 생폴드방스(St. Paul Devence)로 오르는 동안에도 예술가들이 모여 살았던 마을의 명성을 짐작하게 하는 조형물과 작품들이 이곳의 이정표가 되고 있었다. 어느 방향으로 돌아도 곧 만나게 되는 도시의 언덕에 샤갈이 잠들어 있다. 이곳에서 20년간 살았다는 샤갈니스에 있던 본인의 미술관을 이곳으로 옮기고 싶어 했을 정도로 생폴드방스를 사랑했다.

기차에서 내리자 아를(Arles)의 론강의 위용이 푸르다.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고흐의 작품을 닮았다. 빈센트 반 고흐가 약 15개월간 아를에서 남긴 작품은 300여 점이라고 한다. 아를의 태양보다 더 뜨거운 고흐의 열정이 아를을 고흐의 도시로 만들었다. 잠시 고갱과 함께 지냈던 곳도 이곳이다.

아비뇽(Avignon)은 성벽으로 싸인 성곽 도시다. 아비뇽 역에서 내려 성벽으로 둘러싸인 구시가를 향한다. 도시 둘레의 반은 강이 흐르고 그곳에는 론강을 건너지 못하는 아비뇽의 다리가 일부만 남아있다. 프랑스의 강력한 국왕 필리프 4세는 교황권을 압도한다. 그래서 교황청을 아비뇽으로 옮기고 1305년부터 1377년까지 7명의 교황들이 머무는 아비뇽 유수의 시대가 있었다.

도시의 얼굴은 찬찬히 보아야 아름답다. (Nîmes)의 시장이 서는 날이라는 말을 듣고 산책 겸 나선다. 1세기에 세워진 원형경기장 아레나는 저녁 산책길에 처음 만났는데, 너무 가까운 곳에 있어 놀라고 아름다운 자태에 두 번 놀랐다고 한다. 표정 없는 검은 투우사 동상과 야자수에 묶인 표식이 인상적이었던 곳이다.

향신료 수입지로 번영을 누렸던 몽펠리에(Montpellier)는 13세기에 의과대학이 창설되었던 도시다. 이제까지 보아 왔던 고풍스러움과는 전혀 거리가 먼 현대 건물들이 많은 도시였다. 로마시대부터 지어진 곳곳의 수도교들은 현재도 일부 지역에서는 그대로 쓰인다고 한다. 고딕 양식의 성 피에르 대성당을 보러 갔는데 몽펠리에에서 유일하게 위그노 전쟁 피해를 이지 않은 곳이라고 한다.

성곽도시의 명성을 듣고 실제로 만나 보기 위해 카르카손(Carcassonne)행 열차를 탔다. 2세기부터 요새화가 진행되어 6세기에 첫 번째 성벽이 만들어졌다. 성벽 위의 전망이 좋은 테라스를 걸어 극장까지 견학하는 가이드 투어도 있다.

툴롱(Toulon)은 프랑스 해군기지가 있는 군항이다. 로마 제국의 군사적 요충지로 지금도 프랑스 지중해 해군 선단의 보금자리이다. 군사 박물관과 유럽 최고 규모의 항구가 툴롱의 지리적 장점을 말해 준다. 케이블카를 타고 북쪽 몽파론을 오르면 툴롱만이 한눈에 보인다. 프로방스 상륙 기념박물관도 있다. 그 시절의 영광과 치열함이 잠들어 있는 도시이다.

이른 아침 마르세유(Marseille)에는 어선들이 항구에 정박하고 새벽에 잡아 온 생선을 팔고 있다. 프랑스에서 가장 역사가 긴 항구의 이름은 그리스 선원들에 의해 '마살리아'라고 불리었다고 한다. 이것이 지금의 마르세유. <몬테크리스토 백작의 배경이 된 섬이자 요새인 이프성칼랑크로 이어지는 해안선을 따라 하얀 바위 절벽이 끝도 없다.

바다나 호수의 좁은 물 어귀라는 뜻의 '칼랑카'에서 유래된 이름이 마르세유와 카시스를 잇는 칼랑크 국립공원이다. 하이킹 코스도 유명하고 워킹투어도 참여할 수 있지만 만만치 않은 루트에 저자는 보트 투어를 선택했다. 2시간의 여행이 다른 세상에 다녀온 듯 인상적이었다고 한다. 나도 저자가 거친 남프랑스 여행 중에서 딱 한곳만 갈 수 있다면 이 보트 투어를 선택하고 싶었다.

무엇을 보려고 무엇을 위해 이렇게 힘들고 먼 길을 왔는가. 고작 돌성과 낡아 가는 마을의 길들을 보러 온 것인가. 무엇을 얻었나. 꼭 와야 했었나. 이걸 봐서 뭐 하려고. 긴 시간과 많은 여비를 들여서 이국의 땅에서 무엇을 하고 있나. 이런 물음을 던지다 스스로 깨닫는다. 삶을 무엇으로 메꾸어야 하는지 이것이 저자에게는 길을 떠나는 필연이 된 것임을. 여행은 물음의 빈칸을 한 방울씩 채우는 것이었음을. 나도 저자와 함께 했던 행복한 남프랑스 여행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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