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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소모하는 것들로부터 달아나기 - 소로의 미니멀리즘 ㅣ 러너스북 Runner’s Book 1
헨리 데이비드 소로 지음, 청경채 편역 / 고유명사 / 2024년 12월
평점 :
♥ 고유명사 출판사에서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한 리뷰입니다.
우리가 삶을 단순하게 꾸려가면 그에 비례해서 우주의 법칙도 덜 복잡해질 것이다.
어머나~ 이런 책이 다 있네?
내가 책을 받자마자 감탄한 이유는 일단 책이 가볍고 일본 문고본처럼 작다는 것이었다. 게다가 시집처럼 얇고 여백도 있다. 고유명사 출판사의 러너스 북(Runner's Book)은 책과 달리기로 일상의 건강을 회복하자는 모티브로 출발했다. 그래서 페이지마다 숫자 뒤에 'Km'라는 단위가 붙는다.
인생이라는 마라톤에 지친 러너들에게 책이라는 휴식을 제공하기 위해 고전 속에서 뽑은 작가의 문장을 모은 큐레이션 북 시리즈다. 큐레이션(Curation)이란 많은 것들 중에서 특별하고 좋은 것을 골라 보여주는 것이다. 좋아하는 노래만 모아서 플레이 리스트를 만드는 것을 생각하면 된다.
특히 이 책만의 특징이자 내가 너무너무 맘에 들었던 것은 옛날 LP 판 디자인으로 책 내용을 한 장에 노래 가사처럼 담았다는 것이다. 여행 갈 때 이 종이 한 장 들고 가서 좋은 문장을 외워버려도 좋을 것 같다.
나도 소로(Henry David Thoreau)의 <월든(Walden)>이라는 책을 한 번 읽어보고 싶었는데 어려울 것 같아서 못 읽고 있었다. 그런데 큐레이션 북으로 만나니 내용이 그렇게 어렵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좀 어려운 내용도 나오지만 문장이 너무 아름답다.
나는 <월든>이 숲 이름인 줄 알았다. 소로가 숲에서 오두막 짓고 살았다는 말을 들었기 때문이다. 숲이 아니고 호수 이름이다. 월든 호수는 미국 매사추세츠 콩코드에 있다. 헨리 데이비드 소로에 대한 것은 책에 잘 나와 있으니 궁금하신 분들은 책을 참고하거나 검색해 보자.
소로는 숲속에 집을 지으려고 농부에게 도끼 하나를 빌렸다. 그 농부가 자신의 도끼를 빌려주며 눈동자처럼 소중한 거라고 하자, 소로는 숲속의 그 농부는 매일 자신의 눈동자를 나무 위에 내리찍으며 산다고 비유하는 것이 유머러스하다.
소로가 사람들이 일순간 서로의 눈동자를 들여다보는 것을 가장 큰 기적이라고 한 이유는 뭘까?
그대의 눈을 안쪽으로 향해보라. 그러면 그대의 마음속에서 아직 발견되지 않은 천 개의 지역을 발견하게 되리라. 그곳을 여행하여 마음속 우주학의 전문가가 되어라. (107 Km)
모두의 가슴에는 우주가 들어 있다. 한 사람의 우주와의 만남이 경이로워서였을까?
월든 호수는 1845년 12월 22일 밤에야 처음으로 완전히 얼어붙었다.
나에겐 이 말이 엄청난 감흥으로 다가왔다. 이렇게 옛날에 소로가 기록한 것을, 나는 2024년 12월 22일에 읽고 있다. 아주 오래전에 지구별에 왔던 사람의 글을 읽는 자체가 감동이었다. 지금도 월든 호수는 그대로겠지만 사람은 흔적도 없이 왔다가 간다. 하지만 이런 기록이 남아 소로가 살다 갔음을, 그는 이런 생각을 했음을 알 수 있었다. 이래서 기록은 아주 중요한 것 같다.
소로가 숲에 가서 살아야겠다고 생각한 이유 중 하나는, 봄이 오는 걸 지켜보는 것이었다. 호수의 얼음이 벌집 모양으로 변하고, 안개와 비, 따뜻해진 햇살에 눈도 조금씩 녹는다. 낮 시간도 길어지고 장작을 더 마련하지 않아도 겨울을 날 수 있을 것 같다. 도시에서는 느껴볼 수 없는 풍경.
제주도 1년 살기의 원조는 소로 가 아닐까. 나는 굳이 고생을 하면서 오두막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없다. 아파트 창문 밖으로도 봄이 오는 것을 느낄 수 있고 굳이 안 느껴도 괜찮은데 소로는 왜 이렇게 고생을 해가며 2년 2개월이나 월든 호수에서 살았던 걸까?
아마도 미니멀 리즘을 실천함으로써 최소한의 물건으로도 충분히 행복하게 살 수 있음을 직접 보여주려 한 것일지 모르겠다. 집도 짓고, 농사도 하고, 땔감도 마련하는 자급자족의 삶으로 물질 만능주의를 비판하며 자연과 조화롭게 살아가는 삶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이다. 실제로 간디, 마틴 루터 킹, 톨스토이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한다.
아이들은 삶을 놀이로 대하면서 친해진다는 말도 참 와닿았다. 사람은 보통 자신의 어린 시절을 기억하지 못한다. 그것은 어쩌면 부모가 자식을 키우면서, 아이들의 아무런 꾸밈도 없는 행복한 모습을 보며 이 세상을 살아가는 법을 깨달으라는 자연의 가르침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아이들의 근심 걱정 하나 없이 천진난만하게 활짝 웃는 모습을 보며 '참 좋을 때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왜 어른이 되면 그때의 기쁨과 즐거움이 사라지는 걸까? 아이들은 자연과 참 많이 닮았다. 그럼 어른들은 다시 자연과 닮기 위해 노력하면 되지 않을까? 아이의 마음으로 돌아가 힘들고 짜증 날 때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내가 가진 것이 너무도 많다는 것에 흠뻑 취해보자. 아이처럼 즐거워질 것이다.
자연은 아주 느긋하고 여유롭다. 숲속 아침 새 지저귀는 소리를 상상해 보자. 생각만 해도 기분이 막 좋아진다. 숲은 내가 게으르고 나태하고 아무것도 이루지 못했다고 해도 한심하다거나 못났다고 말하지 않는다. 못난이도 내 생긴 모습 그대로 예쁘다고 한다. 자연 속에서는 모든 사람이 다 아름답다. 지치고 우울할 때, 고통스럽고 절망할 때 자연의 품에 안기면 힘든 감정들이 눈 녹듯 녹아내린다.
우리는 스스로 벽을 만들고 그 안에 자신을 가두고 아무도 강요하지 않은 규칙을 만들고 힘들게 살고 있다. 하지만 비록 우리가 빌딩 숲에서 살지라도 우리 가슴속에 자연을 품으면 마음이 곧 자연이 되어줄 것이다
농부는 하루 종일 밭이나 숲에서 일하지만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몰두해서 일하기 때문이라고 한다. 나는 아직 몰입의 경지를 경험해 본 적이 없다. 드라마 몰아보기도 몰입일까? 먹는 것도 까먹을 만큼 몰입하니 말이다. 이것도 몰입이라고 치면 그때 외로움을 느낀 적은 없었다. 그래서 쉽게 스마트폰 중독이 되나 보다. 영상에 빠져 있으면 외로움을 느낄 틈이 없이 세상 편하다.
외로움이라는 단어를 들으니 <그대가 곁에 있어도 나는 그대가 그립다>는 류시화의 시집 제목이 생각난다. 외로움은 상대방이 있는 것과는 상관없이 내 안에 있나 보다. 외로움도 나를 소모하는 것이다. 힘든 감정이다. 외롭다는 생각이 들면 책 속으로 달아나보면 어떨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