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 모든 판단의 순간에 가장 나답게 기준을 세우는 철학
히라오 마사히로 지음, 최지현 옮김 / 북하우스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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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의 균형이 깨지면 누군가 손해를 보게 되고 그래서 억울하다. 모든 억울함은 정의와 관련되어 있다. 우리가 원하는 윤리는 정의와 사랑과 자유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다.

나는 한우인 줄 알고 샀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값싼 외국산 소고기를 속여 판 것을 알았다. 그 집은 사라졌지만 그때 많이 억울했던 기억이 난다. 양심도 없지 어떻게 그렇게 속여서 팔까. 이때 양심이 뭘까?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기준?

나는 왜 나도 모르게 그 정육점 주인을 양심이 없다고 했을까? 억울해서다. 상도덕을 안 지켰기 때문이다. 공중도덕을 안 지키고 빨간불인데 내 맘대로 운전을 한다면 다쳐서 억울한 사람이 생긴다. 이런 억울함이 없는 사회를 만들려면 다 함께 도덕을 지켜야 한다. 그것이 윤리다.

왜 그렇게 살아야 할까? 왜 윤리를 지키면서 살아야 할까. 윤리는 인간 모두에게 해당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에게도 해당된다. 윤리는 3 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다. 사회의 윤리는 정의라고 한다. 개인의 윤리는 자유다. 친밀한 관계의 윤리는 사랑이다. 윤리학의 역할은 스스로 생각할 수 있게 하는 것이고 내 인생은 스스로 생각하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윤리학은 왜 필요할까. 사람마다 생각하는 게 다 틀려서 윤리학이 필요하다. 사람에 따라 무엇을 윤리라고 생각하는지 다 다르다. 밤에 차도 사람도 하나도 없는데 빨간불에 길을 건너도 될까? 이때 윤리가 필요하다. 나는 사람도 없고 차도 없다면 건너도 된다고 본다. 그런데 절대 안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의견이 대립되고 갈등이 생기고 그러다가 살인이나 전쟁이 나기도 하는 거였다.

이 책은 행동이 망설여지는 순간 스스로 어떤 것이 윤리적인 판단인지 생각해 보고 답을 찾을 수 있는 힘을 기르는 책이다. 그리고 내가 그 윤리적인 판단을 한 이유를 잘 설명할 수 있게 하는 것이 이 책의 목표다.

나는 사람과 차들이 없으면 건너도 된다고 본다. 그 판단의 이유는 교통질서를 지키는 것은 적어도 남들이 한 명은 있어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없는데 파란불이 되기까지 혼자서 기다리고 있는 것은 나 혼자 찝찝해서 그런 것이 아닐까? 그래도 내 마음이 아무도 보는 사람이 없지만 찝찝할 것 같으면 그냥 신호를 지키면 된다. 그래서 저자는 윤리란 사람에 따라서 천차만별이라고 한 것 같다. 이 책을 읽고 나니 맞건 틀리건 이렇게 이유와 다른 선택지까지 고려해 보게 되었다.

저자는 윤리학을 실생활에서 써먹을 수 있게 하려는 목적으로 이 책을 썼다고 한다. 원제가 생활에서 바로 써먹는 윤리학 정도로 번역이 되는 것을 보면 이 책의 목적을 밝히는듯한 원제도 한국어 번역본의 제목도 둘 다 제목까지 훌륭한 책이다. 오랫동안 대학에서 윤리학 강의를 해온 저자는 학생들이 어떤 부분을 궁금해하는지를 잘 알기 때문에 그 학생들의 목소리까지 이 책에 실었다. 강의에 참여한 수만 명의 학생도 이 책의 저자에 포함된다. 이 책을 읽으면 나 또한 이 책의 저자가 된다. 윤리학은 배우는 지식이 아니라 나도 참여해서 만들어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도덕이라고 하면 조금 개인적인 느낌이 들고 윤리라고 하면 사회에서 쓰는 말인 것 같다. 도덕이란 내가 잘 살기 위한 것이고, 윤리란 사회가 잘 사는 것일까. 그럼 잘 산다는 것은 무엇일까. 돈이 많으면 잘 사는 것일까? 이 잘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우는 것 또한 윤리학이다. 잘 사는 게 무엇인지 정해진 규칙이나 답이 있으면 좋겠다. 그럼 고민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래서 윤리가 생겼다. 말을 하다 이게 맞나? 싶을 때 필요한 것은 문법이다. 행동을 하려다 이래도 되나? 헷갈릴 때 필요한 것은 바로 윤리학이다.

사람이 있는 곳에는 반드시 윤리가 필요한 이유를 생각해 보자. 살인, 강도, 뇌물 수수 등 왜 이런 일을 하면 안 될까. 의사가 윤리가 없다면? 수술하다가 피곤하면 환자를 그냥 죽여버리면 된다. 식품 공장 사장이 윤리가 없다면? 유해 물질을 음식에 첨가해서 팔아도 괜찮다. 부실시공으로 삼풍백화점, 성수대교 붕괴 사고가 일어났지만 윤리가 없다면 또 일어나지 말라는 법도 없다. 그래서 윤리와 도덕을 지키며 살아야 하는 것이다. 윤리를 지키려고 노력하면 이런 말도 안 되는 일들은 생기지 않게 할 수 있다.

당신은 누군가 나타나서 이 버튼을 누르면 내가 모르는 사람이 죽는다. 그 대신 1억을 주겠다면 누르겠는가? 처음에는 공짜인데 무조건 눌러야지 생각을 했다. 어차피 나랑 상관도 없을 텐데. 그러다가 이 책에서 배운 대로 내 기준으로 한 번 생각을 해보았다. 나는 1억을 받으면 돈 쓸 때마다 계속 그 사람 진짜 죽었을까? 나쁜 짓을 한 사람이 맞겠지? 다른 사람 목숨 값인데 이렇게 써도 되나? 아마 매일 이런 고민 속에서 괴로워하다가 찝찝해서 결국은 다시 돌려주던가 기부를 했을 것 같다. 내 인생을 1억 원에 굳이 스트레스 속으로 몰고 가고 싶진 않다. 그래서 그냥 1억 원 안 받고 버튼 안 누를 것이다.

인생론은 이렇게 살라고 하지만, 윤리학은 이렇게 스스로 판단할 수 있게 해 준다. 책에서는 다른 사람도 누를 수 있으면 결국 돌고 돌아 나도 죽게 된다고 한다. 나만 버튼을 누를 수 있는 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버튼을 누를 수 있다. 내가 해도 되면 너도 해도 되는 것이다. 그럼 서로가 서로를 죽여도 괜찮다는 뜻이 되어 버린다. 이런 상호성이 윤리학의 기본 원리고, 이렇게 이유를 설명하며 대답할 수 있게 되려고 윤리학을 배운다.

다문화 가정을 하도 우리가 무시하니까 외국인이 많은 동네에서는 한국인이라고 무시한단다. 우리가 외국인을 차별하면 결국 돌고 돌아 우리도 무시당한다. 내가 널 무시해도 되니까 너도 날 무시해도 되는 거다. 그러니 외국인들도 우리와 똑같이, 아니 언어도 안 통하는 나라에서 고생하니까 더 따듯하게 잘 챙겨줘야 한다. 내가 당신에게 잘하면 언젠가 돌고 돌아 나의 자녀들이 어떤 나라에서 외국인들에게 신세 지게 될지도 모르니 말이다.

<데스 노트>이야기는 나도 재밌게 본 것이라 흥미롭다. <지옥에서 온 판사>도 재밌게 보고 있는데 과연 천벌받아 마땅한 인간은 사람이 못하니 신의 힘을 빌려서라도 처단하는 게 옳을까? 주인공 야가미와 강빛나 판사 모두 죄인을 처벌하니 내 속은 후련했다. 그런데 아무런 죄도 없는 경찰관까지 자기의 비밀을 지키려다가 죽이게 된 야가미는 갈수록 좀 지나치다 싶었다. 그리고 강빛나 판사가 살인자에게 그 사람이 한 짓 그대로 겪는 벌을 내리지만 후련하면서도 뭔가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마 인간은 나쁜 사람을 벌하는 것보다 착한 사람이 복을 받는 모습을 보는 걸 더 좋아하나 보다.

정의란 사전을 찾아보니 사회를 유지하는 공정한 도리라고 나온다. 그래서 나도 죄를 지은 사람을 그 죄에 합당하게 처벌하는 것이 정의라고 생각했다. 이 책에서는 개인이 모인 사회 안에서 최대한 균형을 맞추는 것을 정의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처벌이 아니라 균형이다. 사람이 병에 걸리는 이유는 신체 균형이 깨져서다. 사회도 균형이 깨지면 병에 걸리는데 이때 이 균형을 회복하는 것이 정의다.

원래 내가 한 대 때리면 상대방은 나를 두 대 때린다. 나는 더 화가 나서 네 대 때릴 것이다. 그러면 상대방은 나를 더 때릴 것이고, 결국은 둘의 싸움이 집안싸움이 되고 집안싸움이 나라 싸움이 되는 것 같다. 이렇게 끝도 없이 계속 싸워야 하니까 사회를 대표하는 법원이 죄와 벌의 균형을 맞추기 위해 판결을 내리는 것임을 이제서야 이해했다.

장기를 기증하지 않고 매매를 하면 어떠냐는 의견이 있어서 학생들에게 물어보니 서로 동의하면 괜찮다고 했다고 한다. 그럼 인신매매도 원조교제도 서로 동의하면 괜찮아지기 때문에 뭐든 자유롭게 팔고 사지 못하게 정한 것이 법률이다. 아 그렇구나 그래서 법이 있는 거구나. 이 책으로 사회를 조금 더 많이 이해하게 된 거 같다.

사람은 누구나 자유를 원한다. 그러나 서로의 자유가 성립되려면 남을 상처 입히지 않을 정도의 최소한의 제한도 필요하다. 자유라고 해서 사람을 막 죽여도 되고 다른 사람의 물건을 빼앗아도 된다면 그런 자유는 의미가 없다.

진정한 자유는 나에게로 향하는 적극적인 자유다. 내가 잘 사는 것이 무엇인지 내가 정하는 것이다. 제대로 판단을 했다고 해도 그 판단의 이유를 스스로 구체적인 언어로 말하지 못하면 그것은 나다운 판단이 아니라 사회의 기준에 무의식적으로 맞춘 판단일 뿐이다.

나는 지하철 타면 빈자리로 있는 임산부석에 왜 앉으면 안 되는지 이해가 안 갔다. 임산부나 노약자가 없으면 빈자리로 가느니 아무나 앉아도 되지 않나 생각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책을 읽으면서 만약에 내가 노약자라면 거기에 누가 앉아 있는데 좀 일어나 달라고 말할 수 있을까? 그래서 이렇게 말 못 할 것까지 배려해서 임산부와 노약자석을 비워 놓는 거구나 최초로 이해가 갔다.

이 책을 읽으니,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서도 나도 모르게 윤리를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까지 해도 되나? 되면 왜 되는 거지? 이러고 있다. 특히 내가 너에게 상처를 입혀도 되면 너도 나에게 상처를 입혀도 되는 것이다. 이 부분이 가장 기억에 남는다. 나는 이제까지 나는 너에게 이렇게 해도 되고 너는 나에게 이러면 안 되지라는 식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이 책을 읽고 내가 제일 크게 반성한 점이다.

"윤리학의 역할은 하나가 아니라 여러 요소의 균형을 맞추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p.317)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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