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에서 사옥까지
김진철 지음 / 좋은땅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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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앞으로도 항상 '연결'을 통해 '미래'로 나아갈 것이다. 그냥 밥 먹듯, 숨 쉬듯 '연결'하다 보면 또 즐겁고 새로운 일들로 나의 삶이 가득 채워질 것이기에.


표지에 창업 스릴러라는 말이 있어서 기업 관련 미스터리 소설인 줄 알았다. 그런데 이 소설 같은 이야기가 커피 한 잔의 사진까지 전부 실화였다. 이 책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다. 첫 번째 챕터는 2016년부터 2024년까지, 장장 91개월에 걸친 창업 경험담이다. 


새옹지마. 이 책의 주인공 진혁의 삶 자체였던 말. 소설의 형식을 빌려서 기록했을 뿐 진혁은 곧 저자 자신이다. 진혁은 수많은 지옥 같은 시간들을 거쳐 지금의 사옥을 가지게 되었다. 그래서 제목이 <지옥에서 사옥까지>인 것 같다. 표지에 있는 건물이 리모델링 한 사옥이다. 


돈을 벌어볼만하면 코로나가 터지고, 조지아에서 개최하려던 행사는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해서 수포로 돌아갔다. 하지만 태국에서의 행사 때는 행사가 잘 끝나고 행사팀이 떠난 다음에 기록적인 폭우가 쏟아져 도시 전체가 정전이 되었다. 만약 대회가 일주일 후에 열렸다면? 이처럼 행운도 불운도 함께 왔다.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가 이렇게 딱 들어맞는 이야기가 있을까?


독일 대회의 성공에 이은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글로벌 챔피언십 결승전의 성공으로 진혁은 창업 이래 최대의 매출을 기록한다. 미국은 인터넷 속도도 느리고, 일정이 지체되면 그냥 퇴근을 하거나 엄청난 초과 근무 비용을 지급해야 했다. 그마저도 근로자 본인이 원하지 않으면 거부할 수 있어서 행사를 진행하는 것 자체가 지옥이었을 것 같다. 왜 미국에 사는 사람들이 우리나라가 제일 좋다고 하는지 이해가 된다. 


나는 직원들 챙겨주는 사장님은 본 적이 없다. 월급 주니까 악착같이 노동력을 쥐어 짠다. 하지만 진혁은 함께 고생한 직원들에게 가장 먼저  인센티브를 지급했다. 직원들의 노고를 인정해 주고 인센티브를  최우선시하니 자연스럽게 늘어난 직원들로 인해 사옥을 매입하게 된 것이다. 누가 건물주 됐다면 괜히 떨떠름했는데 진혁의 사옥 구입은 내 일처럼 기뻤다. 처음 매입 당시의 허름한 사진까지 정겨운 것은 왜일까?


오래된 건물이라 리모델링을 할 때도 사람을 우선시했다. 직원들과 입주 예정자들의 사용 편의를 극대화하기 위해 많은 부분들을 디테일하게 보수했다. 리모델링 이야기를 읽으며 어쩌면 나를 위하는 것이 남을 위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불편하고 싫은 것은 남도 싫어할 테니 말이다


2016년에 시작한 회사는 2018년  글로벌 게임 대회를 진행하며 55억의 매출을 찍고, 다음 해 다시 119억을 달성하며 사옥을 계약한다. 2020년 코로나로 위기를 맞았지만 2021년 70억을 지나 2022년 태국과 두바이를 거치며 130억 매출을 달성해 정점에 이르렀다. 


그러나 한국 고척 돔에서 열린 L(League of legend)드컵을 끝으로 영화보다 더 스릴이 넘쳤던 이야기가 끝난다. 내부 갈등의 심화로 2팀 전원이 동반 퇴사를 했고, 김 부장과 팀원들은 방송사에 스카우트 된 것이다. 진혁은 창업을 시작한 지 정확히 7년 6개월 만에 혼자 남겨졌다. 보통 중소기업의 위기가 3, 5, 7년 단위로 온다는 속설이 있는데 7년의 벽에 막혀 주저앉게 된 것이다.


중소기업의 삶이 마치 <오징어 게임>의 '징검다리 건너기 게임'과 비슷하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나 같으면 내가 그렇게 잘 해 줬는데 다들 떠나가 버리면 너무 속상하고 미울 것 같은데, 저자는 그들의 인생을 내가 영원히 책임질 수 없다며 떠나간 직원들을 응원한다. 자신의 꿈을 찾아 떠난 것일 뿐 내가 무언가를 잘못해서 나를 떠난 것이 아니라면서.


창업을 준비하는 분들이 이 책을 읽다 보면 아무리 작은 중소기업이라도 대기업 못지않게 직원들을 대접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무엇을 가장 염두에 두면 좋을지, 직원 관리는 어떻게 해야 할지 등 주인공 진혁의 경험에서 느끼는 점이 많을 것이다. 저자가 만들었던 직장은 내가 내 아이에게 물려주고 싶은 곳, 사람이 대접받는 곳, 우리가 꿈꾸는 작지만 행복한 세상이었다.


아쉽게도 이 소설은 열린 결말로 마무리된다. 저자는 결과와 상관없이 새로운 스릴을 만나기 위해 다시 출발선으로 이동 중이기 때문이다. 




두 번째 챕터는 전쟁터 같은 사회에서 살아남기다. 진혁이 창업 전, 다양한 규모의 중소기업 4군데를 거치면서 겪은 이야기.


중소기업은 체계가 없다. 대표의 기분에 따라 혜택이나 복지가 바뀐다. 그래서 진혁은 '잡플래닛'이라는 구인·구직 사이트에 들어가 다른 회사들에 달린 나쁜 리뷰를 보며 반면교사로 삼았다. '공을 쫓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동네 축구의 교훈처럼, 돈보다 사람의 신뢰를 얻는 데 공을 들였다. 회사의 기준을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 나는 다음 2 가지가 인상적이었다. 


1. 고약한 바이러스는 빠르게 정리한다. 성인들에게 잔소리를 하면 반발심과 적개심만 유발할 뿐 나아지지 않는다. 먼저 설득과 설명으로 방법을 찾아보고, 한계점에 도달하면 조용히 연을 끊어야 한다. 사람 만들어 보겠다는 오지랖은 그만. 고약한 바이러스는 쉽게 전파되기 때문에 빠르게 정리하지 못하면 큰 낭패를 볼 수 있다. 업체의 경우는 개선의 여지가 없으면 바로 바꾼다. 언쟁은 무의미하다


2. 묻기 전에 먼저 알려 주지 마라.  이것은 자녀 교육에 적용해도 좋을 것 같다. 내가 부모나 상사의 입장이라면, 제대로 못 하는 자녀나 신입사원을 보면 속이 터질 것이다. 빨리 해결해 주고 싶은 마음에 내가 먼저 나서서 알려 주면 꼰대다. 친절이 꼰대짓이었다니 나도 놀랬다. 자신만의 방식대로 해결하다가 막혀서 물어볼 때 알려줘야 멘토가 된다. 그리고 본인이 결정할 수 있게 여지를 남겨서 스스로 결정하고 책임지게 해야 한다. 


나는 <서진이네 2>를 보면서 어떤 외국인이 종업원을 도우려는 작은 마음으로 다 먹은 그릇을 정리해 놓은 장면이 참 인상적이었다. 작지만 남을 배려하는 귀한 마음. 그런 따뜻함을 진혁 사장님에게서도 느낄 수 있었다. 그 많던 직원들은 곁에 없지만 각자 자신들의 삶 속에서 진혁 사장님을 응원하는 팬들로 남아 있을 것이다.


내가 중소기업을 다니면서 아쉽고 힘들었던 것들을 반영해서 나는 그렇게 하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회사를 운영했던 진혁 사장님 자체가 너무 멋있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잘못된 줄 알면서도, 본인도 싫었으면서도 그대로 답습하기에 바쁘기 때문. 이 악습을 고치는 것은 이 책의 주인공 진혁과 같은 실천하는 강한 영웅들이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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