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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퍼하지 말아요, 이별도 당신을 떠날 거예요
이승재 지음 / 좋은땅 / 2024년 7월
평점 :
왜 쓰러지면 안 되는지, 절망하면서 왜 버텨야 하는지, 엉망인 마음은 무엇을 위해 감추어야 하는지, 모든 것이 사라져 가는데, 왜 사람만 저항하며 슬퍼하는지, 이러한 질문들을 이해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이 시집은 이별을 다루고 있다. 그래서 슬프다. 이별이 기쁜 것은 어딜 가나 꼭 있는 진상과의 이별밖에 없는 것 같다. 가장 슬펐던 소재는 취객 세 명이 고양이를 몰아넣고 밤새 돌을 던져 죽인 것과 예니세이 강물에 몸을 던진 딸의 시체를 찾아 강가를 떠돌다 얼어 죽은 엄마 이야기였다.
떠나간 존재에 대하여
시베리아의 겨울이 그렇게
신이 없는 곳으로 지나가고 있었다
(p.121)
책 표지에 보면 고양이와 소녀가 잠을 자고 있다. 죽음이란, 이별이란 어쩌면 이렇게 깨지 않을 행복한 꿈을 꾸는 게 아닐까? 듣기만 해도 마음 아픈 끔찍한 죽음들도 모두 다 이제는 행복한 꿈만 꾸었으면 좋겠다.
잊지 않을게
반짝이는 별이 된 너의 짧은 여행
(p.99)
하늘은 은하수로 우는 아이를 덮어주었어
아이는 그날이 처음 자신을 위해 울던 날이었대
올빼미 한 마리가 같이 울어주었어
먹을 것을 주면 대신 울어주던 작은 아이 곡비
곡비는 행복하게 먼 길을 떠났어
누군가 날 위해 울어주네 하면서
이제 그 어디에도 이별이 남아있지 않아
(p.128)
이 시집은 시간 순서로는 3부에서 2부, 2부에서 1부로 쓰였다. 순열을 벗어난 숫자처럼 사람들은 잠시 눈을 감고 뒤돌아보며 살지 않을까. 그러나 시를 잘 모르는 내가 시인의 깊은 속을 헤아려 시간 순서를 생각해 가면서 작품을 이해할 수는 없었다. 이해까지는 못 했지만 이렇게 짧은 말들에 아프다가 분노했다가 위안이 되었다가 슬퍼졌다가 결국 이 모든 것들이 어우러져 참 아름답게 느껴졌다. 이런 게 시(詩) 인가 보다.
뒤돌아본 삶이 아름답게 보인다면 그건 아마 당신에게도 저항해 보지 못한 슬픔이 있어서이다.
나도 엄마가 돌아가시고, 오랫동안 정든 강아지와도 이별했다. 강아지는 아직도 내 블로그에서 살아있는 것 같아서 사진을 바꾸지 못한다. 죽음에 저항할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슬픔에는 저항할 수 있다. 괜찮다고 행복할 거라고 위로가 되지 않는 말들을 늘어놓으며. 하지만 시인이 말한다. 슬픔을 받아들이라고. 슬퍼해도 괜찮다고.
폭염 속에서 부는 바람은 숨이 막혔다. 그런데 요즘 아침저녁으로 부는 바람은 에어컨이나 선풍기가 선사해 줄 수 없는 맑은 공기까지 가져다주니 얼마나 상쾌한지 모르겠다. 시원한 바람이 그동안 더위 속에 지쳐버린 나를 위로해 주듯 이 시집 역시 그동안 꽁꽁 묵어 둔, 아팠던 이별 보따리를 풀게 만들었다.
사실 난 괜찮은 적이 없었던 거야 (p.116)
이별하지 말아야 할 연과 헤어졌다면 언젠가 그 이별과도 헤어지겠지. 그렇게 당신의 슬픔도 지나가기를 바랐다는 시인의 말이 따듯하다. 아팠던 이별과도 헤어지면 나 역시 지구별 여행의 마지막 이별을 하고 남는 이들에게 이별도 떠나간다는 말을 남기고 싶다. 이별마저 떠나간 자리에 위로만이 가득하길 바라며.
이별이 있었기에 지금 내 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더 소중하다. 슬픔과 아픔이 있었기에 평범한 일상이 귀한 줄 안다.
이승재 시인님의 시집 덕분에 한경애의 <옛 시인의 노래>라는 시 같은 옛 노래를 들으며 나도 오랜만에 시인의 가슴이 되어 보았다.
'먼지가 되어도 나무는 널 기다릴게' (p.51)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