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 - 현대 물리학의 존재론적 질문들에 대한 도발적인 답변
자비네 호젠펠더 지음, 배지은 옮김 / 해나무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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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양자역학 때문이라던가, 할머니가 살아계시긴 하는데 다만 지금 여기에 있지 않을 뿐이라네요. 그 말이 맞나요?  


간단히 답하자면 완전히 틀린 얘기는 아니다. 정보는 파괴될 수 없다. 차 키를 어딘가에 두고 잊어버렸지만 사라진 것은 아니다. 할머니가 돌아가시면 할머니의 친절함, 지혜, 유머 감각들은 돌이킬 수 없지만, 정보는 여전히 존재한다. 우주 전체에 퍼져 있지만 어딘가에, 어떤 식으로든 영원히 보존된다.


물리학이란 사의 치를 탐구하는 학문이다. 이 책의 가장 큰 특징은 어려운 개념을 우리가 쉽게 이해할 수 있는 예로 설명해 주는 것이다. 또한 현재 물리학이 어디까지 와 있는지도 알려준다. 


< 물리학은 어디까지 설명할 수 있는가>라는 책을 왜 쓰게 되었느냐 하면  물리학자들은 문제의 답을 기가 막히게 잘 찾지만, 그렇게 찾은 답에 사람들이 왜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를 잘 설명하지 못하기 때문이었다. 물리학은 수학이 아니라 과학이다. 물리학의 목적은 자연현상의 관측을 서술하는 것이다.


'엔트로피는 어떤 거시적 성질이 불변인 계의 가능한 구성들을 공식적으로 서술한 것이다.' 무슨 말인지 너무 어려워서 이해할 수 없다. 그런데 밀가루 반죽을 예로 설명해 주니 훨씬 이해가 잘 된다. 그릇 안의 설탕, 밀가루, 달걀 등의 분자들은 계의 미시 상태라고 부른다. 미시 상태는 구성에 관한 완전한 정보다. 즉 모든 분자 하나하나의 위치와 속도가 미시 상태에 해당한다. 


반면 매끄러운 반죽은 거시 상태라고 부른다. 평균적으로 변하지 않는 상태이다. 반죽하기 전 초기 상태의 분자들은 버터 옆에 달걀이 있고, 밀가루 위에 설탕이 있듯 올바른 각자의 영역에 순서대로 잘 배열되어 있다. 그러나 섞인 후에는, 즉 엔트로피가 증가하면 더 이상 순서대로 놓여 있지 않는다. 엔트로피의 증가를 질서의 파괴라고도 하는 이유다. 그러므로 안 섞인 반죽은 엔트로피가 낮고 섞인 반죽은 엔트로피가 높다. 


초기 상태의 우주는 엔트로피가 낮았다는 과거 가설은 그냥 그렇다고 가정하는 것 이상으로 더 좋은 설명은 아직 없다. 왜 초기 상태가 그랬는지는 현재 이론들로는 답을 찾을 수 없다고 분명히 밝힌다. 또한 로저 펜로즈의 등각 순환 우주론으로 과거 가설을 설명할 수 있지만 정보 역시 영원히 파괴된다는 점을 감수해야 한다. 줄리언 바버는 우주가 '야누스 포인트'에서 시작되는데 이 지점에서 시간의 방향이 바뀐다고 가정한다. 이런 생각들은 다 좋지만 뒷받침할 증거가 없다. 현재로서는 이들이 단지 추정일 뿐이다. 현재 물리학은 딱 여기까지 설명해 줄 수 있다.


학자들은 알아듣지도 못할 용어로 빈약한 통찰을 값진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사회학자 스티브 풀러가 말했다. 나도 어떤 분야든 초등학생도 이해할 정도로 설명할 수 있게 공부하라는 말을 들어 본 적이 있다. 저자는 최대한 많은 예를 들어서 알기 쉽게 설명해 주고 있지만, 워낙 어려운 개념이다 보니 어떤 것은 그럴 수도 있겠구나 했지만 이해를 못 한 것도 많았다.


총 9개의 장으로 되어 있는데 각 장마다 질문을 던지고 현재 물리학이 어디까지 설명을 해줄 수 있는지를 밝힌다. 지금 이 순간이 과거와 다르고, 각각의 기본 입자에 과연 우주가 깃들어 있을까? 자연법칙이 우리의 판단을 결정할까? 이런 의문들에 최종 답을 내놓는 것이 아니라, 적어도 과학자들이 현재 어디까지 알고 있는지, 과학과 추측이 어느 지점에서 교차하는지 알려준다. 또한 증거를 바탕으로 수립된 이론만 채택한다.


독자들이 오로지 저자의 의견만 듣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아서 몇몇 전문가와의 인터뷰도 더했다. 책 말미에는 중요 전문 용어집을 수록했다. 이 용어들이 본문에 처음 등장할 때는 볼드체로 표시했는데 책을 읽다가 볼드체 부분 중 좀 더 자세히 알고 싶은 것은 용어집에서 찾아보면 좋을 것 같다.


저자는 이 책으로 영적인 개념 중 어떤 것이 현대 물리학과 완벽하게 양립할 수 있고, 어떤 것은 현대 물리학의 지지를 받기도 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었다고 한다. 물리학이 우리와 우주의 관계에 관해 뭔가 할 말이 있다는 것이다. 


은하 필라멘트는 뇌 신경망을 닮았다. 이 책에 나온 사진을 보면 정말 뉴런이 연결된 모습과 비슷했다. 하지만 별로 관심이 가지 않는다. 그러면 우주가 생각을 할 수 있을까? 이 질문은? 우주 자체가 의식이 있다고? 정말 궁금하다. 만약 우주가 정말로 생각을 하고 있다면 생각을 아주 많이 하지는 않을 것이다. 우주가 존재하기 시작한 이후로 생각할 수 있었다 해도 우주의 어마어마한 크기로 인해 사고량은 제한적일 수밖에 없다. 그래서 크기는 중요하다. 크기에 따라 물리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만일 생각을 많이 하고 싶다면 모든 것을 작고 조밀하게 유지하는 것이 좋다. 


우주의 종말에 관해서는 우리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면, 조바심을 내봐야 의미가 없다. 우주의 종말에 관한 물리학자들의 예측을 신뢰해서는 안 된다. 그럴 바엔 차라리 초파리에게 내일 날씨를 물어보는 편이 낫다. 초기 우주에 관한 이론과 우주의 종말에 관한 것은 아는 게 전혀 없으니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원하는 대로 자유롭게 믿자. 


팽창하는 우주는 자체적으로 에너지를 만들 수 있다. 따라서 우리 우주가 어떻게 시작되었는지 알아낼 수 있으면 새로운 우주의 성장에 시동을 걸 수 있다. 급팽창 이론은 부정확할 수도 있고, 정확하더라도 이에 필요한 기술은 현재로서는 구현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원칙적으로는 가능하다. 어느 날 실험실에서 우주를 창조할 수도 있다는 이야기다. 


만약 미래의 누군가가 실험실에서 우주를 창조하는 것에 성공했다고 가정을 해보자. 지금 내가 살아가는 이 지구 역시 나와 같은 누군가가 과거에 실험실에서 우주를 창조해서 우리가 있는 것은 아닐까? 그 누군가를 창조주라고 하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상상을 해본다.


나는 이 책에서 코흐 눈송이가 가장 인상적이었다. 만약 이 삼각형을 우주의 입자라고 생각한다면 그 입자 하나하나에 우주 전체가 들어 있는 것이다. 어쩌면 우리 안에 우주가 들어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많이 하면 내 안에 우주가 있다는 말을 과학적으로도 설명할 수 있을 것 같다.


이 책은 거대한 물음을 서슴없이 떠올리고, 그 답을 두려워하지 않는 이들을 위한 책이다.(p14)


♥ 인디캣 책 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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