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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처는 생명의 사랑을 기다리며 산다 - 나는 나를 초대하여 정신분석 삶을 고백하다?
김현미 지음, 윤정 감수 / 북보자기 / 2023년 6월
평점 :
정신분석의 삶이란 서로 다른 삶을 보면서 품을 수 있는 공간을 찾아 살아가는 여정이다. 그래서 인간은 상처의 노래를 부른다. 상처의 노래는 삶을 살아낸 일상의 순간순간들이다. 상처는 삶으로 살아내기에 사랑이고 생명이다. 살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소중한 생명인지. 상처는 사랑의 생명을 내어준다. 상처는 생명을 기다리는 희망이다.
윤정 신경정신분석연구소 9년 차인 저자는 프로이트와 라캉을 연구하고 정신분석가 윤정의 '정신적 바이러스'로 자아를 해석하는 정신분석 치료 세계를 공부했다. 일치할 수 없는 정신분석학의 시선과 응시의 세계는 끊임없는 분열속에서 자아가 하나의 의미 있는 가치로 전이한다. 본인의 고백이 새로운 여명을 여는 기회가 되기를 바라면서.
<상처는 생명의 사랑을 기다리며 산다>의 구성은 매우 독특하다. 스스로의 정신분석 과정을 통해 성장하는 모습을 소설이나 수필형식이 아닌 정신분석학에서 사용되는 용어로 구성했다. 시선→ 응시 → 분열 → 전이 그리고 상처의 노래이다. 상처의 노래는 저자의 마음을 담은 시(詩)다. 이렇게 스스로를 분석하며 어떻게 성장하게 되었는지 함께 따라가다 보면 나도 모르게 살아 있음 자체가, 생명이 소중하고 감사해 진다.
부모를 향한 원망과 불만을 가지고 겉으로는 밝게 웃으며 끊임없이 이중적인 삶을 살았던 저자의 고백에 나의 옛 모습이 떠올랐다. 늘 과하게 웃었던 나도 부모를 향한 불만 때문이 아니었나 생각해 본다. 안정적인 가정에서 부모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란 아이는 밝게 웃으려 노력하지 않아도 자신도 모르는 편한 웃는 모습이라고 한다.
진실을 왜곡하며 살아야 했기에 늘 행복한 삶을 동경하며 생을 학대하고 다른 이들에게 아픔을 주었다. 나 역시 나의 아픔을 가장 소중한 가족에게 투영하며 산 것이었다. 생은 준비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되는 것을 보며 행복할 줄 아는 순간순간임을 알게 된 저자는 지금의 나와 같은 마음이 아니었을까.
부모를 선택할 수 없지만 무능력한 아버지 밑에서 동생들을 돌보며 살아야 했다. 스스로 감당할 수 없는 고통 속에서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학교에 입학하고 싶었다. 하지만 남동생이 중학교에 가려면 고등학교를 다닐 수 없었다. 그래서 구청 민원실에서 사무보조로 일하게 된다. 여학생들이 입고 다니는 교복이 부러워 교복 비슷한 옷을 입고 구청에 출근하면서 남에게 보이는 삶이 시작된다. 평범하게 교복 입고 학교 다니는 학생들이 얼마나 부러웠을까... 하지만 그런 창피하고 수치스러운 삶이 없었다면 새로운 삶을 꿈꿀 수 없었다고 한다.
구청에서 일하면서 고등학교를 다닐 수 있는 야간 상업고등학교에 입학한다. 야간 고등학교에 입학 후 성적이 좋아서인지 학급 대표가 되어 책임지는 삶의 모습이 무엇인지 배우게 되었다. 3년간 낮에 일하고 밤에 공부하는 학생으로 생활한 것이 학문의 열정과 사회 구성원으로 책임지는 삶으로 전이되어 안정된 보금자리를 얻었고, 특히 자녀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책임지는 자세를 갖게 되었다.
야간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건설 회사에 취직하여 회계 업무 담당 부서에서 2년간 근무하면서 노동의 가치와 돈에 대한 의미를 알아가며 성공한 삶에 대해 고민한다. 교회를 다니며 아동 복지선교 단체를 소개받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의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사무 간사로 일한다. 존경스러운 인물들을 많이 만나게 되었고, 그 삶을 선망하면서 누군가에게 인정받을 수 있는 선망의 대상이 되고자 꿈을 키워간다.
교회에서는 즐겁게 웃다가 집에서는 늘 불만을 갖고 원망과 비참함을 부모에게 투사하고 살았다. 겉으로만 웃는 척하며 살았던 것이다. 새로운 빛을 얻기까진 긴 여정의 시간이 필요했다. 인정받고 싶은 나를 상상하는 삶 속에 부모의 외로움과 아픔은 없었다. 오로지 타인에게 인정받는 것이 중요했다.
종교 단체에서 기획하는 세미나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났다. 처음으로 남편을 바라보면서 세심하고 배려 있는 인상을 받았던 이유가 아버지에게 느낄 수 없었던 삶의 부분이었기에 더 기대를 하면서 결혼했다. 정신분석 치료를 받지 않았다면 모든 불만은 남편에게 향했을 것이다. 14년 가까이 일하던 여성 운동 단체가 개편되면서 퇴사하고 구직 여성들을 위한 직업 교육과 취업을 지원하는 실무자로 일하게 되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견디지 못한 저자는 갑자기 질병을 얻게 된다. 공황장애였다.
불행은 상처를 바라보게 하고, 살아내는 의지가 얼마나 값진 행복인지 알게 해 준다. 정신분석 치료를 받을수록 상처는 새 삶을 열어주고, 새로운 생명을 얻을 수 있는 기회임을 깨달았다. 정신분석에서 자신을 되돌아보는 세계를 '응시의 세계'라고 한다. 응시 속에서 자신에게 혼잣말을 건넨다. 사람은 이 응시의 세계를 있기에 자신의 문제를 기억하면서 새로운 삶을 선택할 수 있다. 영혼이란 어쩌면 기억과 이미지에 불과한 것인지도 모른다.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느 여름날 해바라기 속에 비친다. 이런 '비침'은, 내 의식 위로 어떤 기억이 떠올라 내 삶의 모습에 투영되는 것이다. '비침'의 응시는 끝끝내 상실하지 않게 해주는 신성한 신의 선물이자 새로운 삶을 바라보게 하는 위대한 신이다.
고등학교를 다니지 못해 남몰래 입었던 교복의 '비침' 속에 거짓된 모방이 머물러 있었다. 그 모방은 교육을 대신하는 '상징적 대타자'였다. 이것은 라캉의 정신분석학에서 '말하는 주체'이다. 이제 저자는 거짓된 모방을 부끄럽지만 자신 있게 말할 수 있게 되었다. 미워했던 아버지, 제대로 사랑하지 못한 남편 그리고 사랑하는 자녀에게 이 책이 생명의 고백이 되길 기도한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