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할 수 있는 전쟁 - 국제 정상급 정치인이 직접 경험하고 분석한 미중 패권 경쟁
케빈 러드 지음, 김아영 옮김 / 글항아리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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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가피한 전쟁은 없다. 역사는 길잡이가 되어야지 주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는 반드시 평화를 유지해야 하며, 선조들이 수 세기에 걸쳐 싸워 얻어낸 국가와 개인의 자유를 지켜내야 한다.

러시아와 우크라이나가 전쟁을 하더니 이젠 이스라엘과 하마스까지 하고 있다. 드라마 <스위트 홈>에서 사람이건 괴물이건 무차별 적으로 사살하는 장면이 있다. 민간인이건 하마스건 무차별 적으로 학살하고, 습격당한 마을에서는 영유아 시신도 무더기로 발견되었다니... 적어도 드라마에서는 아기 괴물은 놓아주었다. 그런데 현실은 드라마보다 더 심한 것 아닌가.

엄마에게 6.25 때 이야기를 옛날이야기처럼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전쟁은 지나간 역사로만 생각했는데 지금도 일어나고 있다. 영화에서나 있어야 할 이야기들이 현실에서 일어나고 있는 것이다. 가공의 이야기도 가슴 아픈데 현실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이들의 아픔은 어떨지 상상할 수조차 없다.

그래서 전쟁을 피할 수 있다는 책 제목에 이끌려 읽게 되었다. 저자 케빈 러드는 호주의 총리로서 지난 40년간 중국과 타이완을 방문하고 시진핑은 물론 중국 고위 지도자들과 여러 차례 사적으로 만나기도 했다. 시진핑은 긴 대화를 하면서도 메모하는 법이 없었고, 연설문을 보고 읽는 식으로 낭독하는 일도 거의 없었으며, 자신의 생각을 직접적이고 단호하게 말했다고 한다. 중국어를 잘 하셔서 시진핑과도 더 오래 친분을 이어 올 수 있지 않았을까.

이 책은 시진핑이 가진 야망의 우선순위를 10개의 동심원으로 설명한다. 이것은 앞으로 수십 년 동안 중국의 여러 정책결정을 이해하는 주요 통로가 될 것이다. 이 동심원은 시진핑의 관점을 가장 중요한 것부터 외부로 확장해 나간다. 즉, 시진핑의 당내 위치에서 시작해 국내의 정치적 우선순위와 국제적 포부로 확장해 나가는 순서로 되어 있다. 현재 진행 중인 미중 문제, 타이완을 비롯한 제반 국제 문제를 누구나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한다.

10개의 동심원을 중심으로 구성된 책이라 시진핑의 사상에 대한 책인 줄 알았다. 그러나 14장부터 미국의 입장에서 바라본 중국과 세계에 대해서도 나와 있어, 좀 더 객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2017년 앵커리지 회담을 기점으로 미중관계는 근본적으로 다른 길을 걷게 되었다. 그래서,

이 책의 목적은 두 나라가 미래를 향해 같은 길로 나아갈 수 있도록 공동의 로드맵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로드맵에는 외교적 협상의 지속 가능한 원칙, 정보를 통한 검증, 효율적인 전쟁 억지력, 상호 존중에 입각한 포괄적이고 현실주의적인 구조가 포함되어야 한다. 그래서 학술적으로 쓰지 않았다(p.42)

두 나라와 다양한 분야에서 교류해온 저자는 서로 다른 시점에 나라를 이끌었던 두 정부에 조언한다기보다, 중국인과 미국인이라는 두 친구에게 편지를 보낸다는 마음으로 이 책을 쓰기 시작했다고 한다. 두 나라가 서로 간의 차이점을 이해하고 공동의 미래를 탐색하는데 저자의 조언도 미약하게나마 도움이 되었을지 모른다고.

시진핑은 마오쩌둥 이후 볼 수 없었던 무자비함을 지닌 정치의 대가다. 적절한 퇴직금도 주지 않고 실시한 대규모 숙청과 구조조정, 인민 해방군의 대규모 병력 감축은 대학살만 빠졌을 뿐 마치 히틀러를 연상시킨다.

중국은 부정부패를 당연한 것으로 여기며 부자들에게 기부를 강요한다. 강제적인 자선활동이다. 결국 마윈의 알리바바와 같은 중국 거대 민간 기업들은 당과 국가가 휘두르는 주먹에 속수무책으로 당하고 있다. 그 여파로 대기업에 들어가기는 더 어려워졌고 중국 젊은이들은 대학 졸업 후 취직해도 회사에서 요구하는 가혹한 996근무제(오전 9시~오후 9시까지, 주 6일 근무)에 시달리게 되었다.

종교 탄압도 심하다. 교회를 불도저로 밀어버리거나 폭파로 철거해 버리고, 십자가를 불태우고 선교사들을 색출해 내보낸다. 이것은 전국 기독교인이 1억 명에 육박하는 공산당원 수와 맞먹기 때문인데 앞으로도 기독교뿐 아니라 타 종교의 강경한 탄압 정책을 계속할 가능성이 크다. 또한 언론은 물론 법조계까지 점점 더 억압적으로 변해가고 있다.

중국 공산당은 모든 사람의 위치 또한 알고자 한다. 그래서 디지털 기술을 이용해 국가가 일반인들의 거의 모든 행동을 추적한다. 감시하고 추적하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다. 게다가 앱도 정부 마음대로, 은행도 마음대로, 하물며 빈부격차를 줄이기 위해 사교육까지 금지시켰다.

미성년자가 일주일에 3시간 이상 게임하는 것도 금지되었다. 학생들은 스트레스 해소할 곳이 없어져 반정부 주의자들이 될 것이라고 저자는 예측하지만, 나는 독서를 장려하면 더 긍정적인 결과가 나올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보았다.

예전에 상해에서 산 적이 있다. 이때는 게임 금지 조치나 사교육 금지는 없었다. 하지만 카톡도 안 되고 접속이 안 되는 사이트가 많았다. 인강도 vpn을 깔아야 수강이 가능했다. 그때는 단순히 공산 국가라 그런가 보다 했다. 지하철 출입할 때도 공항처럼 짐 검사를 하는데 안전을 위한 것이라 생각했다. 정부가 국민을 통제하는 것이었다.

쌍순환 경제는 내수시장과 수출 모두를 중요시하는 정책이다. 중국의 경제 실패 가능성은 앞으로의 미중 간의 세력 균형을 결정할 10년 동안 시진핑에게 가장 중대한 정치적 위협이 될 것이다. 중국은 내수시장 개방과 수출 보조금과 관련된 WTO 가입 조건을 지킬 생각이 없어 보인다. 중국인들은 미국이 중국을 봉쇄하고 있으며, 미국의 전략이 그저 자국의 핵심 이익을 추구하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내셔널리즘을 중요시하게 된 것이 아닐까.

저자는 미래를 예측하는 가장 좋은 방법은 다양한 잠재적 시나리오를 설정해 놓고, 앞으로 지켜보면서 발생할 가능성이 큰 것에 대해 지침을 제공하는 것이라고 한다. 16장에서는 가능성 있는 10개의 시나리오를 제시한다. 그중 시나리오 9, 중국이 미국과 군사적 대치 없이 지역 및 글로벌 전략을 성공으로 이끄는 것이 시진핑이 바라는 최적의 시나리오다. 하지만 5개의 시나리오는 전쟁이 일어나는 것이어서 마음이 무거웠다.

내 견해는 두 문화에 대한 평생의 관찰과 경험에 기반한다. 내가 발견한 한 가지 놀라운 점은 두 문화권의 사람들 모두가 비슷한 미래를 열망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들은 가족이 번영하고 자녀가 최고의 교육을 받을 수 있기를 원하며, 최소한의 정부 간섭으로 그들의 사업을 구축할 수 있기를 바라고, 개인이나 국가가 이룬 탁월한 업적에 대해 존경받고 싶어 하며, 이웃과 평화로운 분위기 속에서 살기를 간절히 바란다(p.475)

책장을 덮으니 우리나라 주변국에만 한정되었던 나의 시야가 전 세계 지구촌으로 확장된 느낌이 든다. 우리가 지금 행복을 누릴 수 있는 것은 과거 세대의 덕분이다. 또한 우리나라 및 다른 나라들의 참전 용사들에게도 빚을 지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다시는 전쟁이 일어나지 않게 해야 한다. 그러려면 갈등보다는 상생의 협력을 우선시해야 한다. 저자의 말처럼 2020년대는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10년이 되겠지만, 전쟁은 피할 수 있다.

♥ 인디캣 책곳간 서평단에 당첨되어 작성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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