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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 18세기 조선경제학자들의 부국론
한정주 지음 / 다산초당(다산북스) / 2007년 12월
평점 :
절판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
한정주(다산초당)
우리의 역사를 돌이켜보면서 많은 사람들이 아쉬움을 토로하는 역사가 바로 조선시대가 아닐까 싶다.
나역시 조선시대의 당쟁으로 빚어진 사화로 얼룩진 조선의 역사만을 기억하면서 그들이 그토록 원했던
당론이 뭐기에 목숨도 바쳤던 것일까?라는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하지만 조선을 구한 13인의 경제학자들의 책을 접하면서 나의 시각이 일제의 식민사학에서 벗어나지 못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었다.
수많은 사대부들의 당파싸움속에서 자신이 깨우친 진리와 새로운 세상을 만들고사
했던 개혁자들의 노력을 잊고 있었던것이다.
조선사 편수회의 전략적이고 체계화적으로 진행된 역사 왜곡에 우린 그동안 너무나 너그러웠던거였다.
지금이라도 우리만의 시각으로 우리 조상님들의 삶을 되짚어 우리의 역사를 바로 세워야할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 책이 갖는 의미는 나에게 더 큰 깨달음을 주었다.
빠르게는 16세기에서 부터 시작해서 18세기에 이르기까지의 실학사상을 펼쳤던 13분들의 업적과 서책의 내용을 통해
그들이 이룩하고자 했던 세상의 고민을 함께 느꼈다.
특히 첫 도입부에서 정약용 선생님을 사회자로 해서 진행된 가상좌담을 신선했다.
우리의 기억속에 저멀리 밀려져 있던 그들의 토론을 통해서 그들의 열정을 느끼기에 충분했다.
중농주의로 대표되는 유형원-이익-정약용과 중상주의 이지함-유수원-박지원-박제가-박규수로
이어지는 계보를 따라간다.
이제 13분의 조상님네를 만나를 가보자.
김육은 인조시대 충청도관찰사를 하시면서 충청도 지방의 대동법을 실시를 건의했다. 대동법은 나라에서 현물로 내던 공물을
쌀이나 베로 통일해 받는 조세 정책이다.
김육의 대동법은 현종때 되어서야 비로소 전국적으로 시행될 수 있었다.
자신이 직접 농사를 지은 경험이 있었기에 자신의 주장을 굳건히 내세웠고 결국은 이루어냈다.
대동법 실시이후 조선 후기 농업, 수공업, 상업의 생산및 교환 활동을 자극하면서 시장 경제의 싹을 틔웠다.
정조시대에 떠오르는 인물이 정약용과 채제공이다.
채제공은 남인세력으로 노론에 밀려 있었으나 정조가 등극하면서 빛을 보기 시작한 인물이다.
채제공의 사상과 정책의 핵심이 가장 잘 드러난 것이 신해통공과 신도시 화성건설이다.
선조와 인조당시에 시전상인들에게 주어졌던 금난전권의 악페가 심해지자 정조때 채제공의 건의로
금난전권을 폐지하게 된다. 그결과 조선의 상품유통과 화폐경제 발달의 분수령이 되었다.
이번책에서 유일한게 등장하는 여성인 빙허각이씨이다.
빙허각 이씨는 서울을 거점으로 세력을 가진 경화거족중의 하나인 달성서씨의 며느리였다.
시아버님인 서명응, 남편 서호수, 시동생 서유구로 이어져 내려온다.
집안에 쌓여있는 수많은 서적을 통해서 규합총서라는 경제백서(실용경제서적)를 펴냈다.
후에 시동생인 서유구의 임원경제지에 많은 영향을 미치기도 했다.
조선의 유교사회에서 여성이라는 것 만으로도 많은 불이익을 받았을터인데, 자신마의 자유로운 사상을
펼쳐냈다는 사실만으로도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얼마전에 모방송국에서 방영된 허난설헌을 보면서 시대를 잘못타고만 여인의 굴곡된 삶을 보면서
같은 여성으로 안타까움이 일었는데, 빙허각이씨와 같은 여성이 있었다하니 조금이나마 위로가 된다.
우리가 흔히 지도책으로 알고 있는 이중환의 택리지를 살펴본다.
이중환의 택리지는 지리적 조건 및 환경과 경제간의 상호관련서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이다.
단순히 어느지역의 특산물의 정보 정도만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책을 통해서 인민지리사상과 이용후생의 실학정신을 파악할 수 있다.
박제가의 북학의를 살펴보자. 연경을 다녀와서 보고, 듣고 , 느끼고, 깨달은바를 자세히 기록한 북학의는
내편, 외편, 진소본으로 이루여져있다.
백성들의 삶이 부유해야 올바른 사회윤리와 도덕을 세울수 있다고 주장을 하고, 또한 양반 상인론을 주장했다.
신분과 체면때문에 사대부의 허울에 갇힌 채 살기보다는 자신과 나라의 부강을 위해 경제 활동에 나서야함을 펼쳤다.
즉 소비가 미덕이고 외국가의 통상이 살길인것이다.
조선의 나라에서만 공자왈, 맹자왈을 읊으면서 굶어죽어도 농사를 지을 수 없다던 많은 사대부, 급변하는 시대의 흐름을
외면시 해버리고 개혁을 비난했던 사대부들의 모습을 보면서 그는 얼마나 많은 울컥거림을 참았을까 가히 상상이된다.
중농학파의 시조를 이수광으로 보는 사학자들도 있으니 저자는 유형원을 지목한다.
유형원은 김육과 동시대 인물로 균전론을 주장한다. 모든 토지는 국가가 소유하고 농민에게 재분배함을 주장한다.
그의 저서 반계수록에서는 토지개혁을 다루는 부분이 많은 분량을 차지한다.
또한 대토지 소유 철폐, 녹봉제 개혁, 지방체재 개혁등 국가 전반적인 개혁과 미래 사회의 총체적 방안이 들어있다.
그 당시의 시대상황에서 먼 미래를 내다볼수 있는 거시적 관점은 지금 우리에게 미래 대비의 중요성을 암시한다.
중상주의 학파를 개척한 선구자는 잘알려진 인물은 아니지만 유수원이다.
그의 저서 우서는 문답형식으로 저술 되었있는데 조선의 현실과 제도를 중국과 비교, 분석하고 있다.
신분질서와 차별을 철폐하고 사회개혁, 상업적 농업과 상공업의 발전을 꾀하는 경제개혁을 주장했다.
이익은 유형원의 뒤를 이어 중농주의를 주장한다. 그가 저술한 성호사설이나 곽우록에서는 노비를 점차적으로 해방시키는
양천합일 주장하면서 주자성리학을 비판한다.
유형원과는 토지개혁에서는 의견을 같이해서 유형원의 균전론을 발전시켜 한전론을 주장하나 상업에 있어서는 의견을 달리한다.
상업 발달이 농업 중심 경제 체제를 파괴한다고 보면서 부정적인 인식을 드러냈고 박제가의 소비론과 대립된는 근검절약을 주장했다.
이익이 주장한 노비 해방은 고려때의 최충헌의 노비였던 만적이 시도했던 만적의 난을 떠올리게 했다. 황우장상의 씨가 따로 있나? 라면 절규했던 만적의 사상이 조선의 학자에 의해서 면면히 이어져 오고 있다.
이제 곧 신년이 오면 많은 사람들이 재미나 심심풀이 정도로 한해의 운수를 점치는 토정비결을 많이 볼 것이다.
토정비결의 토정은 바로 이지함의 호이다. 이지함은 고려때 삼은중의 한사람인 목은 이색의 6대손이다.
이지함은 화담 서경덕을 스승으로 배움을 남명 조식과 이이와는 사상적 동지이다.
그는 양반으로 자신이 실제 상업을 통해 많은 부를 이루었고, 백성들의 가난을 구제하기 위해 기술을 가르치는등
적극적으로 활동을 벌였다. 그는 본말 상보론을 주장했는데 이는 곧 상공업을 발전시켜 농업을 보완한다.
나라와 임금이 실천해야 할 자원,인재, 공동체경영을 주장했다. 바로 삼대부고론이다.
자신이 깨달은 바를 몸소 실천해서 백성을 도와준 모습에서 바로 우리가 원하는 정치가의 모습이 아닌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박지원은 당시 연경을 다녀오고서 열하일기를 펴냈고, 그의 책은 젊은 실학자들에게 베스트셀러였다.
열하일기는 단순히 여행기록이나 이야기 책이 아니라 이용후생의 학문을 담고 있는 사회 경제서이다.
또한 그는 상업을 활성화시키기 위해서 선반과 수레를 이용한 유통경제의 중요성을 강조헀다.
박지원을 중심으로 지금의 탑골공원(백탑)에서 모임을 통해 그들은 그들만의 점진적인 살학사사을 발전시킬 수 있었던 것이다,
빙허각이씨의 시동생인 서유구는 집안의 몰락을 겪으면서 그만의 사상를 정립했다.
우리가 흔히 농업서로 알고 있는 임원경제지를 편찬했는데 농업과 일상의 경제학을 위한 백과 경제서이다.
서유구는 주자학을 익히고 배우는 것을 "흙으로 끓인 국이요, 종이로 만든 떡이라."라면서 일침을 가했다."
그의 날카로운 말한마디는 압축적으로 그당시의 사대부의 허상을 풍자했던것이다.
또한 농업기술을 개선하고 둔전제를 실시할것은 주장했다.
다산 정약용은 이익을 만난적은 없으나 이가환을 통해서 이익의 사사을 접하게된다.
토지개혁은 여전론을 주장했는데 토지경작권과 점유권을 농사짓는 사람에게만 주어야하고
'여'라는 촌락을 단위로 농민을 집단화하여 공동 경작하고 노동량에 따라 수확을 분배하자는
공동소유- 공동노동- 공동분배를 주장했으나 갑작스러운 정조의 죽음으로 개혁은 물거품이 되어버린다.
18년간 강진 유배생활을 하는 많은 저술활동을 하고, 그가 남긴 책으로 인해 그의 사상이
갑오농민 혁명으로 연결되어진다. 만약 정조가 갑작스러운 죽음을 맞이하지 않았더라면 우리역사는 크게 달라질것이다.
마지막으로 박지원의 손자인 박규수이다. 할아버지를 뵌적은 없지만 아버지가 편낸 연암집을 통해서
박규슈는 할아버지의 실학사상을 고스란히 물려받았다.
그리고 박지원의 사상은 개화파들에게 까지 김옥균, 박영효, 박영교, 홍영식, 서광범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조선시대 중기, 후기의 많은 회오리바람속에서 자신의 뜻을 관철시키기위해, 수없이 많은 상소를 임금에게
올리면서, 기대를 걸고 희망을 꿈꾸었던 13분, 아니 책에 소개되지 않았지만 함께 같은 길을 걸었던
많은 동지들과 그분들은 그래도 행복했을것이다. 올바를 세상을 만들고자 나누었던 많은 사상들이 지금까지 전해져 내려오고
언젠가는 이루어낼 함께 더불어 사는 세상을 후손인 우리도 꿈꾸고 있으니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