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태전환매거진 바람과 물 4호 : 돌봄의 정의 - 2022.봄호
재단법인 여해와함께 편집부 지음 / 여해와함께(잡지) / 2021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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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세의 인간‘과 ‘가이아의 복수‘는 동전의 양면이다. 동아시아 고전 개념으로 말하면 ‘천인상여(天人相與)‘로 표현된다. 천인상여란 ‘하늘과 인간이 서로 함께한다.‘라는 뜻이다. 한나라 때의 유학자 동중서와 조선말기의 동학사상가 최시형이 각각 다른 맥락에서 쓴 말이다. 특히 최시형은 하늘과 인간의 상호협력이라는 의미로 천인상여를 사용하였다. 그래서 동학의 천인상여는 지금 식으로 말하면 지구와 인간의 상호행위성으로 해석될 수 있다. "인간의 행위가 지구에 영향을 끼치고, 지구의 행위가 인간에 영향을 끼친다."라는 것이 천인상여다.
인류세 시대에 인간은 지구와 분리되어 생각할 수 없고, 지구 역시 인간과 분리되어 이해될 수 없다. 인간과 지구의 힘이 대등해지고, 그로 인해 서로가 서로에게 영향을 주는 존재가 되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구가 아프면 인간도 아프고, 인간이 병들면 지구도 병든다. 지구와 인간은 한 몸이고 서로 돌보는 사이다. - P47

이름부터 흥미로운 ‘에코 페르소나 워크숍‘은 자연과 생태와 연결된 나의 진짜 모습, 숨겨져 있던 자신의 모습을 찾아보는 프로그램으로 청냔허브에서 지원을 받아 진행했다. 브랜딩 회사에 오래 다녔던 친구와 함께 송포어스를 열기 전에 무중력지대 G밸리에서 유사한 워크숍을 진행했는데 회차를 늘려야 했을 정도로 반응이 좋아서 다시 시도해보게 되었다고 한다. 행사에 참여하신 분들도 이렇게 스스로를 깊이 관찰해보는 환경 프로그램은 처음이라는 소감을 나누어주셨다. - P96

사람과 사람 사이의 짧은 인연이 끝난 후에도 그 소중한 감정이 휘발하지 않고 온전히 마음 속에 자리 잡기 위해서는 글이나 사진, 이야기가 담긴 소품, 추억의 장소, 혹은 집이라는 물리적 실체가 필요하다. 불안정한 기억과 순간적 감정은 사물에 정착할 때 객관적 거리를 얻어 영속성을 갖게 되기 때문이다. 어떤 사회가 가진 집단기억은 충혼탑 같은 거대한 기념비나 공식적 의례를 필요로 하지만 개인의 내밀한 기억은 작고 친밀해서 주머니 속에 넣을 수 있는 사사로운 것들에 잠들어있다. - P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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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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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규범 체계에 맞서 자신이 처한 실존의 총체적이고도 구체적인 상황 한가운데서 자신을 드러내는 일은 몸의 외침과 목소리의 외침 사이에 어떤 차이도 알지 못한다. ‘그림자‘로 존재하고 일하며 느끼던 사람들이 이름을 부여 받고 권리를, 자신의 몫을 찾는 과정은 언제나 동시에 언어 투쟁의 과정이다. - P211

돌봄권이라는 새로운 권리는 돌봄의 주체를 구성해내는 데서 출발한다. 다시 말해 각자가 시민의 자리에서 돌봄권의 주체로 자신을 재발명해야 한다.
권리를 외친다는 것은 ‘자신’을 드러내고 자신을 설명하는 행위다. 자신에 대해 설명하려면 자기를 둘러싼 세계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자기를 받아주지 않는 사회적 인프라, 자기와 돌봄자를 고립과 빈곤으로 내모는 노동시장과 복지 수준, 사회문화적 감수성과 태도, 24시간 요구되는 돌봄을 몇 시간에 한정하려는 사회서비스, 돌봄을 가족의 책임과 성별화된 역할로 돌리는 지배적인 통념. 이 모든 것에 대해 말하지 않을 수 없다. - P212

자기는 의존하지 않는다고, 자립적이라고 자부해온 사람들이 돌봄의존자의 ‘외침‘과 소통하면서 보편적 의존성과 관계 속의 자율성을 깨닫는 것이 한 축이라면, 돌봄에 의존한다고 해서 침묵의 세계로 추방되는 것이 아니라 존재의 외침은 계속된다는 것, 그 외침이 기존의 권리 체계를 보다 인간화하는 방향으로 재구성하는 데 핵심 요소라는 것이 다른 한 축이다. 일방의 결단이나 실천이 아니라 서로 연결되면서 서로에게 적응하며 변화하는 것이 돌봄권의 주체를 재구성하는 것이다. - P214

그런데 자기결정/권과 관련해 ‘조력사(안락사, 존엄사)’가 심각한 문제로 부상했다. 소위 이성적인 판단 능력이 있는 상태에서 결정한 내용만을 자기결정권에 해당한다고 여기고, 그 결정권을 소유 가능한 것으로 해석하는 문제는 더 깊이 고민해봐야 한다.
이성적이고 합리적인 상태의 ‘자기‘가 있다. 그는 언젠가 사고, 노화, 질병 등으로 정신이 혼미해지고 신체 능력을 상실할 ‘자기‘를 염려하고 혐오한다. 그래서 그런 상태가 되면 살고싶지 않으니 깔끔하게 살다 떠날 수 있도록 해달라‘고 ‘미리 결정해놓는다.‘ 이때 자기결정권의 주체는 병들고 신체·정신 장애가 있고 늙은 자기를 분명 자기로 인정하지 않고 있다. 이럴 때 이성적 자기가 ‘행사하는’ 것만 자기결정이고 취약한 상태의 자기가 ‘행사할 수도’ 있는 그것은 자기결정이 아니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마치 이성에 따른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때까지만 ‘자기‘가 유지될 수 있다는 듯이 말이다. 특정 맥락에서 자기가 포기하려는 것이 치료나 삶인지, 누군가가 해줘야 할 마지막까지의 돌봄인지 묻고 싶다. - P222

돌봄과 관련해 우린 이런 말을 할 수 있을 것이다. 돌봄을 쌍방향에서 행하기, 즉 호혜적으로 순환시키기, 돌봄이 필요한 의존적 사람을 돌봄 실천의 경계 밖으로 내치는 것을 금지하기, 돌봄 수행이 가능할 뿐 아니라 시민 개개인의 주체성 형성에 필수 요소가 되게 만들기 등등이 주관의 상태, 자발성, 처지, ‘숙명‘ 등을 넘어서 객관화를 동반하는 문화적 코드와 사회적 대본으로 조직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이 동학의 발전소는 ‘신뢰의 호혜성‘이다. 상품의 교환을 넘어서 신뢰가 계속 호혜적으로 이어지고 파생됨으로써, 신뢰는 정동적으로 전염되고 더 많은 신뢰와 사회적 관계/연대를 생산한다. 이러한 사회적 관계에서 ‘사회적‘은 societal(제도와 구조), socius (벗과의 교제)라는 두 측면을 동시에 지닌다. - P250

그래서 그냥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 아니라 ‘정의로운 돌봄 사회로의 전환‘이다. 시민들 ‘모두‘가 참여해 실패를 거듭하며 살아가면서 고치고, 또 새로운 상상력으로 다른 질문을 진지하게 던지는 사회, 시장으로 빠르고 넓은 길이 나는 것을 막고, 작은 모색의 골목들을 만드는 사회가 돌봄 사회이기 때문이다. - P282

누구나 정치 공동체의 구성원일 권리가 있다. 현실은 다르다. 많은 사람이 국적, 인종, 성정체성, 젠더, 지역, 신체 상태 등을 이유로 정치 공동체에서 배제된다. 이 배제는 구조(societal, 통합된 사회적 체계)와 벗들과의 관계(social, 사회적 교제), 두 차원에서 일어난다. social 차원의 두툼한 연결을 통해서 societal 차원의 방어벽을 뚫을 수 있을 것이다. 벗들이 함께 하는 장소인 사회에서는 ~하기(doing)와 있기/존재하기 (being) 사이에 적대적인 경계를 세우지 않는다. 신자본주의 문화에 물든 우리는 임금 생산노동을 하는(doing) 사람만이 존재한다고(being) 생각한다. ‘그냥 있을 뿐인‘ 사람은 사회구성원으로 세지 않는다. 그러나 ‘하기‘와 ‘그냥 있기‘ 사이를 돌봄이 매개할 때, 존재는 실존이 된다. ‘그냥 있기‘란 없으며 존재하기의 무수한 형태 중 하나일 뿐이라는 게 분명해진다. 하기와 있기가 돌봄을 통해 비로소 하나로 통합되어 ‘삶’을 이룬다. 그렇기 때문에 돌봄을 어딘가에 뚫린 구멍, ‘하기‘를 좀 더 강화하기 위한 대책쯤으로 여기는 건 심각한 오류다. 쓸모 있는 생산을 하는 사람도 하지 않는 사람도, 서로 맺고 있는 관계를 통해 존재한다. 이런 존재는 관계적 실존을 산다. - P2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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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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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에는 드라마가 아니라 실제 사례로 옮겨 가보자. 의료인류학자 아네마리 몰은 『돌봄의 논리』에서 tinkering(팅커링)이라는 조어를 제시한다. 이 말은 조율하기, 매만지기, 땜질하기 등으로 번역할 수 있다. 구체적인 상황에서 인간과 비인간을 포함한 다양한 행위자들이 협력해 잘 맞출 때 케어가 출현한다는 개념이다. 팅커링 개념을 실제에 적용한 휠체어 맞추기라는 작업을 살펴보자. 휠체어를 이용하는 A라는 사람이 있다. 몸이 점점 더마비되고 그에 따라 휠체어 조종장치에도 변화가 필요하다. 더굳어진 몸으로 휠체어를 조금이라도 더 수월하게 조작하려면 매만져야 할 게 많다. 게다가 그의 휠체어는 심하게 마모됐으나 단종된 제품이라 수리할 부품을 구하기도 더 이상은 어렵다. 새 휠체어가 필수인데 어떻게 해야 할까? 상품소개서를 펼쳐놓고 선호와 주머니 사정을 고려해 그중 하나를 고르면 되는 것일까? 그리고 이때 선호와 비용 등 휠체어 이용 당사자의 조건들만 고려하면 되는 것인가?
실제 펼쳐진 과정은 이러하다. 돌봄지원센터의 케어매니저가 조율을 위한 자리를 만든다. 휠체어 이용 당사자를 포함해 휠체어 전문 기술자, 사회복지사, 주 돌봄자가 모였다. 휠체어를 자기 몸으로 여기는 이용자의 ‘몸‘ 자체가 최우선 고려 대상이다. 또 중요한 고려 대상은 돌봄을 수행하는 사람이다. 돌봄대상자가 턱을 넘거나 경사로를 오를 때 휠체어를 밀고 동행하는 역할을 오래 해온 그의 몸도 노화가 진행돼 큰 힘을 쓰기 어렵다. 그가 힘을 덜 들이고 관절을 보호하면서 계속 돌봄에 참여할 수는 없을까? 사회복지사는 정부 지원 비용과 최적의 훨체어 값의 차이, 돌봄자의 경제 상황 등을 두루 고려해 가용한 최대 자원에 대한 정보를 내놓는다. 휠체어 기술자는 기성 제품 그대로를 구매할 때의 장단점을 설명하는 데 그치지 않고 어떤 장치를 개조하거나 부가해야 최적의 휠체어가 될 수 있을지 몇 가지 대안을 제시한다. 이때 휠체어를 이용해본 경험자들의 다양한 데이터와 사례가 참조된다. 이런 조율을 거쳐 비로소 새로운 휠체어를 결정한다. 완벽할 수는 없지만 주어진 상황에서 최선을 조합한 의사결정이다.
한국 사회에서 ‘땜질한다"는 말은 임시변통, 근본적 조치 없이 대충 때운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쓰인다. 하지만 몰의 관점에서 보면 그것은 아쉬운 점이 남더라도 끊임없는 조율 속에서 행해지는 돌봄 과정의 역동성이다. 돌봄은 어떤 상황에서도 멈출 수 없는, 실패를 무릅쓰면서도 지속되어야만 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휠체어 조율하기 사례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당사자의 몸과 휠체어를 둘러싸고 형성된 관계와 그 관계의 확장, 관계 속에서 이뤄지는 자율적인 결정의 과정이다.
돌봄을 말할 때 핵심은 돌봄의 곁이다. 돌봄이 필요한 사람에게 돌봄을 제공하고, 돌봄을 제공하는 그 돌봄자를 공동체와 제도가 보살피며, 이러한 돌봄 행위들의 선순환 속에서 돌봄의 가치를 인정하고 지켜내는 것이 돌봄권의 대상이다.
결국 돌봄권이 시민 모두의 일상에 뿌리내려야 사회적인것이 재생산된다. 돌봄 관계는 상호의존적이며 호혜적이어야 한다는 것, 이러한 상호성이 시민사회 전반에 실핏줄처럼 퍼져야 한다는 것이 돌봄권의 기본 정신이다. 돌봄을 주고받는 것이 모든 사회구성원의 시민적 덕성과 활동의 기본이 되는 사회가 돌봄 사회다. - P193

자유는 방해만 없으면 되는 게 아니다. 자유의 내용을 실현할 만한 강한 제도들로 쌓아올린 방벽이 있어야 한다. 흔히 사회적 권리라 부르는 주거, 노동, 교육, 여가, 사회보장 등과 관련된 방벽 없이는 돌보고 돌봄 받을 자유를 이야기할 수 없다.
흔히 자유로 논해지는 자기결정, 자율 같은 것은 돌봄이 처한 사황을 고려하지 않은 상태에 있는 경우가 많다. - P198

삶 자체를 상호돌봄으로 이어진 공생으로 이해할 때라야 생산적인 ‘하기(doing)‘가 없어도 ‘존재(being)‘만으로 평등한 존중과 인정의 대상으로서 온전한 인간임을 서로 확인하고 감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 사람도 사람인데…‘라는 동정과 두려움 섞인 반응은 ‘○○ 임에도 불구하고 사람으로 대하라‘는 명령이나 ‘여전히 사람이다‘라는 선언만으로 가능하지 않다. 구체적으로 매개하는 활동이 필요하다. 그것이 돌봄이다. 인간을 인간이게끔 하고 인간이 되게 하는 활동이 돌봄이다. 인간의 얼굴을지켜주는 한 겹의 옷, 그것이 돌봄이다. - P2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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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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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해야 할 일은 좋은 돌봄의 기본 요소를 발견해 이를 돌봄 현장의 필수 요소로 만드는 것이다. 열악한 노동 환경에도, 늘 부족한 시간에도, 사회적으로 너무나 낮은 인정에도 불구하고 가슴 뭉클한 돌봄이 존재하는 건 오로지 돌봄을 하면서 "생겨버린 책임감과 ‘차마‘ 외면하지 못하는 ‘마음‘때문이다. 좋은 돌봄 사례의 가장 중요한 의미가 있다면 돌봄자를 지키고 돌보는 노동 환경과 제도적·사회문화적 지원이 마련된다면 믿고 기댈 만한 돌봄이 가능하다는 사실의 증명이다.
이것은 도움이 필요한 의존 상태에 있는 사람과 그 필요에 응답하는 사람의 관계 속에서 행해지는 실천이기에 가능한 일이다. ’당신과 내‘가 기댈 수 있는 그 돌봄을 공적으로, 조건을 갖춰 시민사회 안에 기본값으로 만드는 일이 절실하다. 그때 우리는 요양보호사의 지식과 역량을 마음껏 기대할 수 있다. 이 지식은 몸으로 체화한 실천지식이다. 이 실천지식이 돌봄의 생태계를 비옥하게 만들 수 있도록 돌봄노동자의 전문성을 소중히 여기고 돌보는 방향으로 사회문화 환경을 구축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시민사회 논의와 정책과 생명윤리, 인간의 취약함에 대한 이해, 정치 등을 현장에서의 실천을 중심으로 통합해 연결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아야 한다.
통합적 연결은 현장의 돌봄 경험에서부터 시작해야 한다. 누가 어떻게 돌보고 있는지 돌봄의 보람과 기쁨, 좌절과 고립, 심지어 살해를 포함한 현장에서의 경험을 공론의 주제로 만들어야 한다. 이때 시민사회가 등장해 다양한 돌봄 경험들을 통용 가능한 지식으로 만들고 논의의 장을 마련해야 한다. 이 과정을 통해 최적화된 합의를 만들고 이 합의를 정책으로 만들라고 압박한다. 권리의 이름으로 압박하는 것이 효과적일 수 있다. 시민사회의 압박은 개별 정책을 마련하는 데서 멈추지 말고 정치의 지평, 방향성, 철학으로까지 확장되어야 한다. 이 과정은 순차적이지 않고 끊임없이 섞이고 순환될 것이다. 그리고 언제든 현장에 입각해서 질문 받고 비판받고 수정되는 방식이 될 것이다. - P161

런던에서 시작된 돌봄 단체인 ‘더 케어 컬렉티브’는 ‘돌봄선언’에서 "난잡한 돌봄"을 말한 바 있다. 돌봄의 위계를 해체하고 급진적 평등주의로 방향을 전환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제안한 표현이다. 난잡한 돌봄 윤리는 "인간, 비인간을 막론하고 모든 생명체 간에 이루어지는 모든 형태의돌봄이 필요와 지속가능성에 따라 공평하게 그 가치를 인정받고 사용되어야 함을 강조한다." 돌봄에는 어떠한 차별도 위계도 있어서는 안 된다. 그러나 구별 짓기나 경계 짓기가 없다고 해서 그 돌봄이 가볍거나 진정성을 결여하고 있는 건 아니다.
가볍고 진정성 없이 거리를 두고 행하는 돌봄은 신자유주의적 자본주의의 돌봄이다. 그리고 그 결과는 끔찍하다. 우리는 난잡한 돌봄이 가장 가까운 관계부터 가장 먼 관계에 이르기까지 돌봄의 관계를 재정립하며 증식해가는 윤리 원칙이라고 생각한다. 난잡함이란 더 많은 돌봄을 실천하고 또 현재 기준에서는 실험적이고 확장적인 방법으로 실천하는 것을 의미한다. 우리는 너무 많은 돌봄 요구를 너무 오랫동안 ‘시장‘과 ‘가족‘에 의존해 해결해왔다. 우리는 그 의미의 범주가 훨씬 넓은 돌봄의개념을 만들 필요가 있다. - P169

이 부정의를 부정하는 의미로서 ‘아무나‘는 혈연관계나 성역할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돌봄 책임자의 범위를 바꾸고 확장하려는 의지를 표명한다. 돌봄자의 자리는 친밀한 관계, 믿고 의지하는 관계, 구체적인 삶의 장소와 일상을 공유하는 관계로 확장될 필요가 있다. 전통적 통념이 이 확장을 가로막고 있다. 법제도는 이 통념을 뒷받침하거나 강화한다. 이에 맞서 혼인과 혈연관계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가족 형태를 인정하고, 실질적인 돌봄 관계를 보호하고 이에 대한 차별을 철폐하고, 생활과 돌봄을 공유하는 관계를 인정하는 제도적 지원이 필요하다.
돌봄을 혈연관계나 성역할 고정관념에 붙들어 매는 통념은 현실 속에서 수행되는 여러 다른 돌봄 형태를 인정하지 않을 뿐더러 그것이 구현하는 돌봄의 확장과 새로운 상상력을 방해한다. 성소수자, 중증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는 신뢰와 우정의 커뮤니티 안에서 통념을 벗어난 돌봄을 이미 하고 또 받고 있다. 이들의 돌봄은 사회적으로 기대되지도 않고 지원되는 바도 없기에 ‘실험적이고 확장적‘이다. 이들은 허들 경기하듯 ‘보호자 자격 없음‘이 가로막는 방해물을 계속 넘어야 한다. - P1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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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봄과 인권 - 돌봄으로 새로 쓴 인권의 문법
김영옥.류은숙 지음 / 코난북스 / 202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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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외 없이 보편적으로 취약한 우리 모두가 폐를 끼치며 살아간다. 폐를 끼치기에 삶이 가능하다는 엄중한 사실에 겸허한 존재들은 폐 안 끼친다고 자부하고 위장하는 세력의 위선을 드러낸다. 적극적인 폐 끼침의 사유와 실천, 곧 돌봄을 통해 기존 사회의 시간과 공간에 변화를 요구한다.
폐 끼친다는 말은 달리하면 의존한다는 것이다. 적극적으로 상호의존하는 가운데 시민들은 의존과 자립의 관계를 기존과는 다른 관점으로 이해하게 된다. 의존에 관한 주류 담론이나 관행, 사고방식에 비판적으로 개입함으로써, 타자의 의존이나 폐 끼침은 자신들의 의존이나 폐 끼침에 대해 인지하지 못하는세력의 허위의식을 흔든다. 폐 끼친다는 것을 인식하고 있는 존재들은 폐 끼치기의 호혜성을 위해 시민사회 차원의 토론과 각성을 추동한다. 의존과 돌봄을 무시하려는 사회적 과정과 흐름을 중단시키고 돌봄의 연대를 추동한다. 의존에 대한 낙인과 차별을 철폐하려 한다. ‘폐 끼치는 사람들의 연대‘야말로 서로의 차이를 넘어 의존에 대한 공통 감각을 시민적 덕성으로 만들 수 있는 힘이다. - P117

돌봄은 아동, 장애인, 노인, 환자 등 구체적이고 물리적인 돌봄의존자를 대상으로 하는 활동이다. 동시에 돌봄은 대상 영역으로 환원될 수 없는 포괄적이고 보편적인 활동이기도 하다. 돌봄자-보호자와 돌봄의존자의 관계, ‘좋은 돌봄’의 불가능성, 돌봄의 탈/여성화 · 탈/가족화 또는 공공화·시장화, 돌봄 자원·부담·책임의 평등하고 정의로운 분배 등은 어떤 돌봄 현장에서든 중요한 핵심 의제다.
그래서 각 부분을 서로 연관성이 없는 개별 복지정책의 대상이나 돌봄 서비스 등의 자원 분배 대상으로 다루면 돌봄을 중심축으로 생산과 재생산의 관계를 새롭게 정립하고 모든 사람이 돌보고 돌봄 받을 권리를 인권으로 정초하려는 지향과 만날 수 없다. - P122

뒤돌아보는 보호자는 기관과의 소통과 협력을 이어간다. 당사자가 (대부분 안 좋은 방향으로) ‘변화‘하는 상태라는 걸 알기에 이전의 모습에 집착하지 않는다. 지금의 ‘좋은 머무름’을 위해 당사자의 변화에 따라 함께 변할 수밖에 없는 돌봄의 양태를 수용하며, 필요한 단계의 조치를 선택하고 결단할 수 있게 된다. 협력은 내 가족만을 위한 것이 아니다. 요양시설을 ‘돌아오지 못할 곳‘이 아닌 계속 가꾸고 보듬어야 할 삶의 장소로 만들 수 있다. - P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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