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은 고립된 비사회적 인간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금욕적으로 세상과 교류를 피하는 이성적 은둔자가 아니다. 자유인의 삶에서 이성이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 외부의 사물과 관계 맺는 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외부 사물도 (그것이 개인의 코나투스, 즉 능력의 증대를 야기할 때)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으므로, 이성은 우리에게 존재 보존과 능력 증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을 찾아 나서라고 명령한다. 여기에는 다른 인간들과의 사회적 교류는 물론 일반적으로 생명의 유지, 즐거움, 성취감의 근원이 되는 대상과 활동이 포함된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 즉 이성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 대해 욕망하지 않는 것을 자신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정하고 정직하며 고결하다." 라고 주장한다. 자유인은 또 쾌활하고 친절하며 관대하다. 그는 기질적으로 대인 관계의 갈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정신 상태, 즉 미움, 질투, 조롱, 경멸, 분노, 보복을 비롯한 여타의 악한 감정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의 미움, 분노, 경멸을 사랑과 관대함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희망과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 행동하지 않으며 자만, 경멸, 비하, 낙담을 하는 일도 없다. - P96

세상이 주는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하다 보면 이성의 지시에 따라 사는 현인의 정신에도 부적합한 관념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인 내부에서 이러한 수동적 정서와 부적합한 관념들이 즐거움을 주고 유용하기는 하지만 적합한 관념에 비하면 실천적 요소로서 부차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들은 자유인의 행동을 추동하지 못한다. 자유인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운 신체의 시각적 유혹이나 값비싼 와인의 향기 같은 정념들은 욕망을 결정할 만큼 정서적으로 강하지 않다. 오히려 자유인이 하는 만큼, 다시 말해 자유인이 선하다고 인식하는 딱 그 정도까지 세속의 기쁨을 좇고 그것에 참여하라고 이끄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따라서 그렇게 이성의 지배를 받는 욕망은 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인은 폭식, 만취, 욕정, 탐욕, 야망을 모른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악덕을 "음식, 음주, 성적 결합, 부와 평판에 대한 지나친 사랑 또는 욕망" 이라고 정의한다. 일종의 사랑의 형식인 이것들은 기쁨과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귀결된다. 그 사람의 전반적인 코나투스, 즉 신체와 정신의 능력을 결과적으로 약화시키고, 특히 그 사람이 진정한 선, 곧 인식과 오성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그런 노력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는 정신의 힘"을 통해 자유인은 절제되어 있고 냉철하며 정숙하다. 그가 음식이나 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놀이들을 즐기는 것은 이성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는 한 능동적인 즐거움이다. 자유인이 그의 방식대로 먹고 마시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감각적 쾌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99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사물의 이행을 침착하게 평정심을 갖고 바라본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에 의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과도하게 분별없이 자극받아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영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강한 자제력과 차분한 마음으로 운명의 부침에 맞선다. 그 결과 그의 삶은 더욱 평온해지고 갑작스러운 정념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바라고 꿈꾸는 외부 대상이 예상치 않게 연달아 찾아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과 대응을 통제하여 타인과 외부 대상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정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고, 외부 원인의 힘은 무한히 그것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사물들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만들 수 있는 절대적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이익의 원칙이 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도,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가진 능력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연장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자연 질서에 따르는 전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그런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명석판명하게 이해한다면, 오성에 의해 정의되는 우리의 그 부분, 즉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은 이에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며 그런 만족감 안에서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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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파블로 솔론 외 지음, 김신양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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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스트롬은 자신이 쓴 책에서 커먼즈의 운영구조를 특징짓는 여덟 가지 원칙을 밝혔다.

*명백히 규정된 멤버십을 가진 조직 : 구성원들은 자신이 어떻게, 그리고 왜 그 집단의 구성원이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커먼즈를 운영하기 위한 일관된 규칙 : 누가, 언제, 그리고 얼마만큼 커먼즈를 이용하거나 관리해야 하는지에 대한 것.
*집단적으로 대표자를 뽑는 민주적인 시스템
*모니터링 시스템 : 운영자는 조직에 보고해야 한다(감사제도).
*규칙을 어기는 자에 대한 제재에 관한 제도• 갈등해결 메커니즘
*국가나 자치단체에게서 자율적으로 조직하기 위한 최소한의 권리를 인정받아야 한다.
*공동자원을 활용한 활동은 이해관계자 조직에 의해 수행되어야 한다. - P94

번즈 웨스턴과 데이비드 볼리어는 커먼즈와 관련한 다양한 유형의 권리를 단순 묘사하는 것을 넘어 ‘공동의 것으로 만들기 make common‘ 혹은 커먼즈의 도래와 발전을 위해 행동함을 뜻하는 ‘커머닝 commoning‘의 중요성을 강조함으로써 한 걸음 더 나아간다.
….
생성하는 권리인 커머닝을 통하여 우리는 모든 커먼즈에 동일하게 작동하는 개념을 접하게 되었다. 이로써 우리는 모든 커먼즈를 아우르는 하나의 원칙, 즉 커먼즈는 ‘돌봄caring(돌보는 활동)‘이라는 원칙을 도출할 수 있게 되었다. 오스트롬은 여러 사례를 통하여 커먼즈가 지속할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보여주었다. 그 방법은 사회 규범과 제도적 조율을 통하여 지역의 주체들이 자원을 운영하는 것이다. 커먼즈에 관한 여러사례를 살펴보면 각각이 다르기는 하지만 이해당사자 공동체가 직접 운영하고 공동체가 돌볼 때만이 커먼즈의 지속성이 보장될 수 있음을 알수 있다. - P104

역사적인 견지에서 볼 때, 커먼즈 영역을 수호하고 확장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이점은, 직접 민주주의와 실질적인 사회적 소유를 실천하는데 용이한 틀을 제공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것은 한순간의 투쟁이나 혁명의 경험으로는 얻을 수 없다. 또한 참여민주주의와 의원 소환제도의 도입, 투표권의 확장을 통하여 정치제도에 권력을 위임하는 대의제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바로잡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을 실행하는 것은 무척 어렵고, 브라질의 포르투알레그레에서 찾아낸 참여민주주의와 같은 혁신적인 정치제도를 지속시키기는 더더욱 어려운 일이다. 커먼즈는 권력구조를 변화시킨다고 만들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커먼즈는 잘 돌보고 직접 참여해야 하는 것이기에 실천적인 사회주의를 건설하는 방법이 된다. 여기서 사회주의란 공산주의, 정치생태주의, 생태사회주의등을 총칭하는 표현이다. 그런 면에서 커먼즈는 오언과 푸리에 등 사회적 실천(교육, 협동조합, 남성·여성의 관계, 공동체적 삶 등)을 해방의 중심에 두었던 19세기 사회주의 전통과도 연결되며, 1960년 1970년대에발흥했던 저항운동의 열망과도 조우한다. - P109

민주주의 사회적 실천을 통한 집단소유, 공공 영역에 의해 관리되지 않는 기본권의 발흥과 수호라는 두 축은 사회의 전환을 실현하고자 하는 좌파의 중심 개입전략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이 두 축은 우리 사회에서 분출하고 있는 새로운 열망과 운동에 대처할 수 있게 해주며, 무엇보다도 국가 조직의 강화와 구별되는 다른 사회주의를 향한 걸음을 진일보하게 해줄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두 가지 방식으로 진행될 수 있다. 첫째는 자유를 제한하지 않고, 커먼즈를 발전시킬 수 있는 법과 규율을 만드는 것이다. 생산협동조합, 공동구매협동조합, 집단 목초지, 공동체 숲 등과 같은 ‘구식‘ 커먼즈와 지식과 자연 같은 ‘신식‘ 커먼즈를 포함, 모두가 참여하여 집단적 소유를 가능하게 하는 모든 것들을 발전시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 나눔과 타인에 대한 관심에 기초한 새로운 가치체계를 전파하는 일이다. 이러한 참여활동을 가능하게 하려면 어떤 가치체계에 기반하여 어떤 식으로 이를 촉진해야 할지 분석할 수 있는 방법을 개발해야 할 것이다. 예컨대 농업커먼즈와 생산협동조합의 생산을 유지하고 향상시킬 수 있는 촉진 방안, 프리소프트웨어 공동체들의 주고 받고 되돌려주는 증여체계, 자연커먼즈에 대한 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공동의 가치에 기반하여 이루어지는 개인적·사회적 실천의 확산 등이 있다.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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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장소, 환대 현대의 지성 159
김현경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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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므로 사회를 유기체나 시계, 또는 벌떼가 와글거리는 벌집에 비유하는 것은 잘못이다. 사회는 그와 같이 물리적으로 분명한 윤곽을 갖는 객관적 실체가 아니라, 각자의 앞에 상호주관적으로 존재하는 공간이기 때문이다. 다른 말로 하면, 사회는 각자의 앞에 펼쳐져 있는 잠재적인 상호작용의 지평이다. 우리는 이 지평 안에서 타인들과 조우하며, 서로의 존재를 인정한다는 신호를 주고받는다. 타인이 내게 ‘현상한다‘는 말은 그가 나의 ‘상호작용의 지평 안에 있다‘는 말과 같다. 따라서 타인의 존재를 알아보고, 그가 나의 알아봄을 알아볼 수 있도록 내 쪽에서 존재의 신호를 보내는 것은 그의 사회적 성원권을 인정하는 의미를띤다. 동시에 나는 이러한 행위를 통해 나 역시 그에게 현상하고 있다는 믿음 -우리가 함께 사회 안에 있다는 믿음-을 표현하며 상대방이 나의 믿음을 확인해주기를 기대한다. 물론 상대방은 나를 ‘무시’할 수 있다. 즉 나의 신호에 화답하지 않고, 마치 내가 ‘보이지 않는다‘는 듯이 행동할 수 있다. 상호작용의 의례는 언제나 위반과 중단의 가능성을 내포하며, 그 때문에 문화적 코드의 단순한 실행-‘국지적 활성화‘-으로 간주될 수 없다. 의례의 사슬을 구성하는 행위들 하나하나는 질문이자 요구이며, 초대이자 도전이다. 말하자면 그것들은 ‘인정투쟁‘의 계기들을 구성하는 것이다. 사회의 경계는 이 나날의 인정투쟁 속에서 끊임없이 다시 그어진다. - P58

결론적으로 말해서, 인정투쟁이 지향하는 타자는 적이 아니라 우리이다. 즉 인정투쟁은 성원권투쟁이다. 이런 이유에서 우리의 논의는 인정투쟁을 인간의 본질이나 실존적 조건과 관련시키는 접근들을 -헤겔주의이건 라캉주의이건― 모두 배제한다. 인정투쟁이 성원권투쟁이라면, 인정투쟁의 양상은 한 사회에서 성원권이 분배되는 방식에 따라 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 P63

외국인이라는 꼬리표는 스티그마와 비슷한 방식으로 작동한다. 외국인이 그 자체로 낙인찍힌 범주는 아니다. 오히려 우리는 외국인들에게 특별한 호의를 베풀면서, 그들이 우리 문화의 장점들을 제대로 평가해주기를 기대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들이 이상적인 외국인의 이미지에 부합하는 한에서이다. 돈 많고, 교양 있고, "원더풀"이라고 말할 준비가 되어 있는,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 그들이 이런 이미지와 거리가 멀다는 게 판명된다면, 가령 그들이 돈도 없고, 교양도 없는 데다 남의 나라에 와서도 자기네 방식을 고집한다면, 게다가 금방 돌아가지 않고 눌러앉아 ‘우리의‘ 일자리를 빼앗고 ‘우리의’ 여자들을 건드린다면, 그들에게 주어졌던 환대는 철회될 것이다. 스티그마가 있는 개인이 그에게 추천되는 특정한 행동 노선 line of action에서 벗어났을 때처럼 말이다. 즉 외국인에게 주어지는 환대 혹은 사회적 성원권은 조건적이다.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을 구별하는 사람은 결국 조건적 환대에 대해 말하고 있는 것이다.
외국인에 대한 환대의 철회는 그들에게 ‘돌아갈 곳이 있다‘는 생각에 의해 정당화된다. ‘우리나라에서 받는 대접이 못마땅하다면 자기네 나라로 가면 된다.‘ 하지만 삶의 터전을 한번 바꾸었다가 다시 바꾸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게다가 ‘외국인‘이라는 말 속에 함축되어 있는 다른 장소는 종종 허구적인 것으로 밝혀진다. 나는 두 가지 예를 들고 싶다. 하나는 재일조선인들의 ‘조선‘이고, 다른 하나는 남아프리카 공화국 원주민들의 ‘홈랜드‘인 반투스탄Bantustan이다. - P69

사람들은 외국인이라는 범주에 집착하면서, 자기들이 하나의 사회 속에 있음을 부인한다. 그들은 외국인은 다른 나라에서 왔고 자기 나라가 있으므로, 내 나라 사람과 다르게 대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말한다. 외국인으로서의 환대와 사회적 성원권의 부여는 구별되어야 한다고 말이다. 어쩌다가 잠깐 외국인이 된 사람이라면 이 말에 동의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외국인으로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 외국인이라는 운명 속으로 추방된 사람에게 그 말은 다르게 들릴 것이다. 외국인으로서의 삶 외에 다른 삶을 택할 수 없는 사람에게 그것은 그가 결코 온전한 사람이 될 수 없다는 말과 같다. - P72

성원권의 문제는 분류의 문제가 아니라 권력의 문제이며, 인식론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학의 문제이다. - P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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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세상을 위한 7가지 대안 - 비비르 비엔, 탈성장, 커먼즈, 생태여성주의, 어머니지구의 권리, 탈세계화, 상호보완성
파블로 솔론 외 지음, 김신양 외 옮김 / 착한책가게 / 201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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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성장은 실제로 성장의 반대나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며, 경제학 연구에 근거하고 경제학에서 기원했지만 사실 경제학적 개념은 아니다. 탈성장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생물물리학적 제약과 생태계의 재생 역량에 조응하여 자연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는 것
*성장과 발전 이데올로기의 기반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전망을 수립하는 것
*자율적이고 검약하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사상, 경험과 전략들의 여러 조류가 함께하는 다중적이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추진하는 것
*성장을 넘어 나아가고 무절제를 거부하는 다양한 방식
*다시 한 번,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대신에 "어떻게 우리가 함께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 것인가?"라는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운동 - P74

탈성장이 경제적 개념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성장은 사회가 가진 표상과 가치를 포함, 사회 전체와 관련된 개념이다. 탈성장은 진보에 대한 서구적 개념과 그것이 이 행성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의문을 제기한다. 탈성장은 인간 활동의 재배치, 부의 재분배, 노동의 의미 복원, 공생적인 소프트 테크놀로지, 속도 늦추기와 풀뿌리 지역공동체로의 권력 반환에 기반을 둔다.
탈성장은 몇 가지 비판적 사상 조류들의 표현이다. 시장과 세계화에대한, 기술과 기술과학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와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호모이코노미쿠스와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한도를 넘어섬에 대한 비판이다.
탈성장은 삶의 속도 증가,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 자연자원의 대규모개발, 에너지 문제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광고와 소비주의, 사회와 환경부정의를 거부하는 사회운동으로 구체화된다. - P80

이러한 성찰을 특출난 개인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깨인 엘리트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러한 엘리트주의적 비전이라면 아무리 생태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관계와 경험들이 우리 성찰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안의 원천은 다양하며 그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 중 하나이다. 이미 언급한 이들에 더하여, 1980년대의 주류적 경향을 거슬러서 발전과 생산주의의 경제적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Castoriadis, 1998).
그는 자신의 비판을 자본주의 및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결시켰고, 그 결과로 ‘필요한 검소necessary frugalit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검소한 사회를 민주사회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에게 있어 민주사회는 공동으로 규정한 한계 내에서 공동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발견하는 사회다. 카스토리아디스는 사회관계, 사회운동과 정치를 분석의 한가운데에 놓는다. 그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검소는 기술과학의 지배와 신자유주의가 부여한 타율성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준다.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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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게더 - 다른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기
리차드 세넷 지음, 김병화 옮김 / 현암사 / 201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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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중 생활의 역사 속으로 떠난 이 작은 소풍은 협력에 관해 두 가지 어려운 문제를 던진다. 하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극적이고도 솔직한 대화가 타인들과 분명하고도 능동적인 협력을 이루게 하는 반면, 보들레르와 짐멜이 보여준 만남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 없이 그저 시각적으로만 이루어지는 만남에서는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잖은가? 구글웨이브의 프로그래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스크린을 사용한 것은 협력을 전화 통화보다 더 생생하고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실패했다. 본래 시선이 목소리보다 덜 사회적이기 때문일까? - P142

두 기술학교에서는 매일 일과를 끝내면 기도 시간을 가졌다. 기도를 통해 구성원 개개인이 그날 성취한 바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세련된 외부인들에게야 하찮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구성원 개개인이 그날 뭔가를 달성했다고 거명되는 자리였다. 기도문의 공식은 "우리 자매 메리가 오늘 치즈 10파운드를 만든 일을 축하합시다"라는 식이었다. 작업장의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종류의 의례가 오래전부터 능력의 차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세의 모든 길드의 모든 작업장에서는 하루 일과를 끝낼 때 이런 기도문과 비슷한 것을 읊었다. 매일 일과가 끝날 때 각 개인이 공동체에서 공동의 선을 위해 기여한 바를 의례를 통해 부각시킨 것이다.
부커 워싱턴은 사람들이 저마다 뭔가 제공할 것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더 낫거나 못하다고 말하는 고통"을, 즉 차별화하는 비교인 개인적 경쟁의 쓰라림을 극복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협력이 강화되었다. 기술학교 학생들이 서로에게, 혹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의례는 기술학교가 수행하는 작업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외부 인사들은 이런 결과를 진지하게 주목하고 받아들였다. 로버트 오웬이 세운 뉴하모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실용적인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 P143

첫 번째는 다소 역설적이다. 의례가 강렬해지려면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대개 반복을 똑같은 일정,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어떤 일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서론에서 논의한 리허설 과정이 보여주듯이, 반복은 다른 경로를 택할 수도 있다. 어떤 악구를 여러번 거듭 연주하면 그 구체적인 점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며, 소릿값이나 가사와 신체 동작이 깊이 새겨진다. 의례에서도 이와 동일한 각인 과정이 일어난다. 성찬식 등의 종교적 의례가 의도하는 것은 이런 성과다. 천 번쯤 반복 실행하면 그것이 우리 삶에 각인될 것이다. 그 위력은 한번만 했을 때보다 천 배 더 커질 것이다. 세속적 의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이 끝난 뒤에 악수를 하는 의례는 그것이 계속 다시 시행되면 더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경험의 패턴이 확립되는 것이다. - P155

두 번째, 의례는 대상을, 즉 신체 동작이나 지루한 단어를 상징으로 변형시킨다. 악수를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의 피부 촉감을 느끼기 위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 혹은 유월절 만찬의 음식은 영양가 있는 음식 그 이상의 무엇이다. - P156

의례의 세 번째 구성 요소는 표현, 특히 연극적인 표현과 관련된다. 결혼식에서 교회의 중앙 통로를 걸어가는 신랑 신부의 행진은 길거리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설사 당신의 걸음걸이가 물리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해도, 결혼식에서 당신은 사람들이 보는 대상이 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구글웨이브에는 교환이 감정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의 연극적 내용이 빈약했던 것이다. - P157

직업 음악가나 배우들의 공연과 달리 일상의 의례는 접근 가능해야 하고 배우기 쉬워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세계에서는 대개 자잘한 이벤트, 즉 영혼을 걸고 참여할 필요까지는 결코 없는 티타임 같은 사소한 일들이 그런 의례에 속한다. 그렇기는 해도 티타임의 잡담이라는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다는 그들의 관심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잡담을 잘하는 법이나, 그 자체로는 극적이지 않은 일을 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나름대로 공연자가되는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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