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 생활의 역사 속으로 떠난 이 작은 소풍은 협력에 관해 두 가지 어려운 문제를 던진다. 하나는, 낯선 사람들과의 극적이고도 솔직한 대화가 타인들과 분명하고도 능동적인 협력을 이루게 하는 반면, 보들레르와 짐멜이 보여준 만남에서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대화 없이 그저 시각적으로만 이루어지는 만남에서는 협력이 전혀 이루어지지 않잖은가? 구글웨이브의 프로그래머들이 그렇게 되기를 바라지 않은 것은 분명하다. 스크린을 사용한 것은 협력을 전화 통화보다 더 생생하고 더 강력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그 프로그램은 사회적으로 실패했다. 본래 시선이 목소리보다 덜 사회적이기 때문일까? - P142
두 기술학교에서는 매일 일과를 끝내면 기도 시간을 가졌다. 기도를 통해 구성원 개개인이 그날 성취한 바를 공개적으로 알렸다. 세련된 외부인들에게야 하찮게 보이겠지만, 그래도 구성원 개개인이 그날 뭔가를 달성했다고 거명되는 자리였다. 기도문의 공식은 "우리 자매 메리가 오늘 치즈 10파운드를 만든 일을 축하합시다"라는 식이었다. 작업장의 역사를 보면 이와 같은 종류의 의례가 오래전부터 능력의 차이라는 문제를 해결해왔음을 알 수 있다. 중세의 모든 길드의 모든 작업장에서는 하루 일과를 끝낼 때 이런 기도문과 비슷한 것을 읊었다. 매일 일과가 끝날 때 각 개인이 공동체에서 공동의 선을 위해 기여한 바를 의례를 통해 부각시킨 것이다. 부커 워싱턴은 사람들이 저마다 뭔가 제공할 것이 있음을 강조함으로써 "더 낫거나 못하다고 말하는 고통"을, 즉 차별화하는 비교인 개인적 경쟁의 쓰라림을 극복하기를 원했다. 그 결과 협력이 강화되었다. 기술학교 학생들이 서로에게, 혹은 모든 사람들이 서로에게 뭔가 특별한 것을 줄 수 있음을 인정하는 의례는 기술학교가 수행하는 작업의 생산성과 품질을 높이는 데 기여했다. 외부 인사들은 이런 결과를 진지하게 주목하고 받아들였다. 로버트 오웬이 세운 뉴하모니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각각의 특성을 강조하는 것이 실용적인 가치를 갖기 때문이다. - P143
첫 번째는 다소 역설적이다. 의례가 강렬해지려면 반복되어야 한다. 우리는 대개 반복을 똑같은 일정, 감각이 둔해질 때까지 어떤 일을 계속 되풀이하는 것과 동일시한다. 그러나 서론에서 논의한 리허설 과정이 보여주듯이, 반복은 다른 경로를 택할 수도 있다. 어떤 악구를 여러번 거듭 연주하면 그 구체적인 점에 더욱 집중할 수 있게 되며, 소릿값이나 가사와 신체 동작이 깊이 새겨진다. 의례에서도 이와 동일한 각인 과정이 일어난다. 성찬식 등의 종교적 의례가 의도하는 것은 이런 성과다. 천 번쯤 반복 실행하면 그것이 우리 삶에 각인될 것이다. 그 위력은 한번만 했을 때보다 천 배 더 커질 것이다. 세속적 의례에서도 마찬가지다. 시험이 끝난 뒤에 악수를 하는 의례는 그것이 계속 다시 시행되면 더 많은 것을 의미하게 된다. 경험의 패턴이 확립되는 것이다. - P155
두 번째, 의례는 대상을, 즉 신체 동작이나 지루한 단어를 상징으로 변형시킨다. 악수를 하는 목적은 다른 사람의 피부 촉감을 느끼기 위한 것에 그치지 않는다. 성찬식의 빵과 포도주, 혹은 유월절 만찬의 음식은 영양가 있는 음식 그 이상의 무엇이다. - P156
의례의 세 번째 구성 요소는 표현, 특히 연극적인 표현과 관련된다. 결혼식에서 교회의 중앙 통로를 걸어가는 신랑 신부의 행진은 길거리에서 천천히 걸어가는 것과는 전혀 다른 일이다. 설사 당신의 걸음걸이가 물리적으로는 비슷하다고 해도, 결혼식에서 당신은 사람들이 보는 대상이 되고, 내딛는 한 걸음 한 걸음은 엄청난 것으로 보인다. 구글웨이브에는 교환이 감정을 일으키는 것보다는 정보를 공유하는 데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다. 즉 컴퓨터의 연극적 내용이 빈약했던 것이다. - P157
직업 음악가나 배우들의 공연과 달리 일상의 의례는 접근 가능해야 하고 배우기 쉬워야 한다. 그래야 누구나 참여할 수 있기 때문이다. 노동의 세계에서는 대개 자잘한 이벤트, 즉 영혼을 걸고 참여할 필요까지는 결코 없는 티타임 같은 사소한 일들이 그런 의례에 속한다. 그렇기는 해도 티타임의 잡담이라는 의례에 참여하는 사람들은 그냥 이리저리 어슬렁거리면서 다른 사람들을 지루하게 만들기보다는 그들의 관심을 붙잡고 싶어 한다. 그러려면 잡담을 잘하는 법이나, 그 자체로는 극적이지 않은 일을 극적인 것으로 만드는 법을 배워야 한다. 즉 나름대로 공연자가되는 것이다. - P1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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