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인은 고립된 비사회적 인간이나 타인과의 관계를 멀리하고금욕적으로 세상과 교류를 피하는 이성적 은둔자가 아니다. 자유인의 삶에서 이성이 하는 중요한 기능 중 하나는 우리 외부의 사물과 관계 맺는 법을 규정하는 것이다. 외부 사물도 (그것이 개인의 코나투스, 즉 능력의 증대를 야기할 때) 기쁨의 원천이 될 수 있으므로, 이성은 우리에게 존재 보존과 능력 증대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 좋은 것들을 찾아 나서라고 명령한다. 여기에는 다른 인간들과의 사회적 교류는 물론 일반적으로 생명의 유지, 즐거움, 성취감의 근원이 되는 대상과 활동이 포함된다.
스피노자는 "이성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 즉 이성의 지도에 따라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 타인에 대해 욕망하지 않는 것을 자신에게도 바라지 않는다. 그러므로 그들은 공정하고 정직하며 고결하다." 라고 주장한다. 자유인은 또 쾌활하고 친절하며 관대하다. 그는 기질적으로 대인 관계의 갈등을 야기하는 다양한 정신 상태, 즉 미움, 질투, 조롱, 경멸, 분노, 보복을 비롯한 여타의 악한 감정에 쉽게 빠지지 않는다. "이성의 지도에 따라 사는 사람은 가능한 한 자신을 향한 다른 사람의 미움, 분노, 경멸을 사랑과 관대함으로 대응하려고 노력한다." 그는 희망과 두려움의 지배를 받아 행동하지 않으며 자만, 경멸, 비하, 낙담을 하는 일도 없다. - P96

세상이 주는 이러한 즐거움에 참여하다 보면 이성의 지시에 따라 사는 현인의 정신에도 부적합한 관념이 필연적으로 수반된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자유인 내부에서 이러한 수동적 정서와 부적합한 관념들이 즐거움을 주고 유용하기는 하지만 적합한 관념에 비하면 실천적 요소로서 부차적인 수준에 머문다는 사실이다. 간단히 말해 그것들은 자유인의 행동을 추동하지 못한다. 자유인의 일상생활에서 발생하는, 아름다운 신체의 시각적 유혹이나 값비싼 와인의 향기 같은 정념들은 욕망을 결정할 만큼 정서적으로 강하지 않다. 오히려 자유인이 하는 만큼, 다시 말해 자유인이 선하다고 인식하는 딱 그 정도까지 세속의 기쁨을 좇고 그것에 참여하라고 이끄는 것이 바로 이성이다. 따라서 그렇게 이성의 지배를 받는 욕망은 중용으로 이어질 수밖에 없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인은 폭식, 만취, 욕정, 탐욕, 야망을 모른다. 스피노자는 이러한 악덕을 "음식, 음주, 성적 결합, 부와 평판에 대한 지나친 사랑 또는 욕망" 이라고 정의한다. 일종의 사랑의 형식인 이것들은 기쁨과 쾌락을 가져다주지만, 궁극적으로는 슬픔으로 귀결된다. 그 사람의 전반적인 코나투스, 즉 신체와 정신의 능력을 결과적으로 약화시키고, 특히 그 사람이 진정한 선, 곧 인식과 오성을 추구하는 것을 방해하거나 심지어 그런 노력을 아예 할 수 없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감정들을 누그러뜨리는 정신의 힘"을 통해 자유인은 절제되어 있고 냉철하며 정숙하다. 그가 음식이나 술, 삶을 풍요롭게 만들어 주는놀이들을 즐기는 것은 이성의 지배 아래서 이루어지는 한 능동적인 즐거움이다. 자유인이 그의 방식대로 먹고 마시는 이유는 그것이 가져다주는 즉각적이고 일시적인 감각적 쾌락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신체적, 정신적 건강에 필수적이라는 사실을 알기 때문이다. - P99

사물의 필연성을 이해하는 사람은 사물의 이행을 침착하게 평정심을 갖고 바라본다. 그는 과거, 현재, 미래의 일들에 의해 이런저런 방식으로 과도하게 분별없이 자극받아 변화되지 않는다. 그것들을 모두 영원의 관점에서 보기 때문이다. 그는 강한 자제력과 차분한 마음으로 운명의 부침에 맞선다. 그 결과 그의 삶은 더욱 평온해지고 갑작스러운 정념의 훼방에도 굴하지 않는다.
우리는 타인의 행동을 통제할 수 없고, 우리가 중요하게 여기고 바라고 꿈꾸는 외부 대상이 예상치 않게 연달아 찾아오는 것도 마음대로 할 수 없다. 따라서 우리는 우리의 판단과 대응을 통제하여 타인과 외부 대상들 그리고 그들이 일으키는 정념이 우리에게 미치는 영향력을 최소화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인간의 능력은 매우 제한적이고, 외부 원인의 힘은 무한히 그것을 능가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 외부에 있는 사물들을 우리에게 유용하게 만들 수 있는 절대적 능력이 없다. 그러나 우리 이익의 원칙이 요구하는 것과 반대되는 일이 우리에게 일어나도, 우리의 의무를 다했다는 사실과 우리가 가진 능력이 그런 것들을 피할 수 있을 만큼 연장되지 못했을 것이라는 사실, 그리고 우리는 자연 질서에 따르는 전체 자연의 일부라는 사실을 인지한다면, 우리는 그런 일들에 침착하게 대처할 것이다. 만약 우리가 이것을 명석판명하게 이해한다면, 오성에 의해 정의되는 우리의 그 부분, 즉 우리의 더 나은 부분은 이에 전적으로 만족할 것이며 그런 만족감 안에서 존재를 지속하기 위해 노력할 것이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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