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성장은 실제로 성장의 반대나 마이너스 성장이 아니며, 경제학 연구에 근거하고 경제학에서 기원했지만 사실 경제학적 개념은 아니다. 탈성장이 의미하는 것은 다음과 같다.
*생물물리학적 제약과 생태계의 재생 역량에 조응하여 자연자원과 에너지의 소비를 줄이는 것 *성장과 발전 이데올로기의 기반과 반대되는 새로운 정치적·사회적 전망을 수립하는 것 *자율적이고 검약하는 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사상, 경험과 전략들의 여러 조류가 함께하는 다중적이고 다양한 사회운동을 추진하는 것 *성장을 넘어 나아가고 무절제를 거부하는 다양한 방식 *다시 한 번, "어떻게 성장할 것인가?" 대신에 "어떻게 우리가 함께 그리고 자연과 더불어 살 것인가?"라는 정치적이고 민주적인 질문을 제기하는 운동 - P74
탈성장이 경제적 개념이 아닌 이유가 여기에 있다. 탈성장은 사회가 가진 표상과 가치를 포함, 사회 전체와 관련된 개념이다. 탈성장은 진보에 대한 서구적 개념과 그것이 이 행성 전체에 미치는 영향에 의문을 제기한다. 탈성장은 인간 활동의 재배치, 부의 재분배, 노동의 의미 복원, 공생적인 소프트 테크놀로지, 속도 늦추기와 풀뿌리 지역공동체로의 권력 반환에 기반을 둔다. 탈성장은 몇 가지 비판적 사상 조류들의 표현이다. 시장과 세계화에대한, 기술과 기술과학에 대한 인간중심주의와 도구적 합리성에 대한, 호모이코노미쿠스와 공리주의에 대한 비판이며 한도를 넘어섬에 대한 비판이다. 탈성장은 삶의 속도 증가, 경제 및 금융의 세계화, 자연자원의 대규모개발, 에너지 문제에 대한 무책임한 태도, 광고와 소비주의, 사회와 환경부정의를 거부하는 사회운동으로 구체화된다. - P80
이러한 성찰을 특출난 개인과 전문가들로 이루어진 깨인 엘리트들의 손에만 맡겨둘 수는 없다. 우리는 그러한 엘리트주의적 비전이라면 아무리 생태적이라 하더라도 새로운 형태의 전체주의를 초래할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다. 구체적인 사회관계와 경험들이 우리 성찰의 바탕이 되어야 한다. 대안의 원천은 다양하며 그것들을 다시 찾아내는 것이 우리의 과제 중 하나이다. 이미 언급한 이들에 더하여, 1980년대의 주류적 경향을 거슬러서 발전과 생산주의의 경제적 이미지에 대한 비판을 이어간 코넬리우스 카스토리아디스의 작업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Castoriadis, 1998). 그는 자신의 비판을 자본주의 및 ‘국가자본주의‘에 대한 비판과 연결시켰고, 그 결과로 ‘필요한 검소necessary frugality‘라는 개념을 제안했다. 그의 정치사상은 검소한 사회를 민주사회의 조건으로 삼는다. 그에게 있어 민주사회는 공동으로 규정한 한계 내에서 공동으로 선택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을 재발견하는 사회다. 카스토리아디스는 사회관계, 사회운동과 정치를 분석의 한가운데에 놓는다. 그가 정의한 바에 따르면, 검소는 기술과학의 지배와 신자유주의가 부여한 타율성으로부터 우리 스스로를 자유롭게 해준다. - P8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