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자동 사람들 - 왜 돌봄은 계속 실패하는가, 2021년‘올해의 인권책’선정
정택진 지음 / 빨간소금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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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자유주의 체제의 특징은 공공부조인 기초생활보장제도에도 고스란히 투영되어 있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일차적인 복지의 주체를 가족으로 설정하고, 가족으로부터 돌봄과 복지를 제공받지 못하는 대상에 한해서만 수급권을 부여하는 잔여적 (residual) 형태로 구성된다. 수급신청자가 소득 및 자산 기준을 통과하더라도, 법적 부양의무자인 ‘1촌 직계혈족(부모, 자녀) 및 그 배우자(며느리, 사위 등)‘에게 부양능력이 없거나 미약하다고 판단될 때에만 수급권이 보장된다. - P74

"유령"은 존재하지만 존재하지 않는다. 여러 복지 시설과 제도 속에서 정영희는 분명 물리적으로 존재한다. 그러나 그녀의 정체성은 정신지체 장애인, 노숙인, 일반수급자라는 형태로 환원될 때에만 인정받는다. 거기에 ‘정영희‘라는 정체성은 없다. 그래서 그녀는 물리적으로는 존재하면서도 자기 자신으로 인정받을 수 없는 "유령"이 되었다. 하지만 성적 욕망을 표출하고 누군가를 만나 연애 관계를 형성할 때 정영희는 성적 욕망을 자기 뜻대로 통제할 수 있다. 성적 욕망을 매개로 상대방과 상호 돌봄의 관계를 형성하며 스스로를 드러낼 수 있다.
……..
여기에서 정영희가 표출하는 욕망은 자아의 표현이나 주체적 의지가 아닌 일종의 병리적인 것으로 드러난다. 정신지체 장애는 ‘통제할 수 없는 욕망‘이라는 특성으로 이해되고 전문적 시설을 통해 치료되어야 할 것으로 이어진다. 그러므로 정민희가 정영희에게 제공하고자 하는 포괄적 의미의 돌봄과 "사람다운" 삶은, 이러한 욕망을 스스로 제어하지 못하는 그녀를 대신해 그것을 관리하고 통제하는 일까지 포함한다. 폐쇄 시설 역시 가족이 제공하고자 한 일상적 돌봄의 일부분이다.
물론 폐쇄병동을 단순히 통제와 억압의 기제로만 바라보는 관점은 정신질환이나 장애가 가진 병리적 특성과 시설의 치료적 효과를 간과하는 오류를 범할 수 있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점은, 욕망, 정상, 통제와 치료로 이어지는 문법에서 부정될 수밖에 없는 정영희의 욕망이 본인에게는 완전히 다른 방식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것이다. - P85

그런데도 기초생활보장제도에 관한 정보 부족이나 ‘주거조사관이 오고 나서 수급이 끊겼다‘는 식의 무성한 소문은 언제 수급이 중단될지 모른다는 우려와 공포를 불러일으킨다. 현장연구를 진행하는 동안 주민들은 기초생활수급에 대한 우려와 공포를 수없이 내게 들려주었다. 주민들은 자신의 현재 상황 때문에 곧 수급이 끊기는 것은 아닌지, 수급이 끊기면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하는지, 어째서 이번 달 수급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는지 물어오곤 했다. 기초생활수급은 쪽방촌 주민들의 삶을 유지하기 위한 가장 중요한 수단인 동시에, 그 수단이 사라졌을 때 언제라도 일상이 중단될 수 있다는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다. - P94

그래서 그녀는 경제적 궁핍과 불안정에 시달리면서도 홍인택과 관계를 유지하려 했다. 쥬앙 빌(João Biehl)과 피터 로케(Peter Locke)는 질 들뢰즈(Gilles Deleuze)의 논의를 빌려, "욕망은 끼어들고, 회피하고, 자신이 의도하는 것으로 승화함으로써, 권력이 만들어내는 주체화의 양식과 영토화를 지속적으로 비집고 나온다"고 말한다. 정신지체 장애인, 일반수급자, 클라이언트로, 돌봄을 받을 수도 줄 수도 없는 존재로 주체화되었던 정영희는 그것을 "비집고 나오는" 욕망을 관계의 형태로 "승화(sublimation) "함으로써 동자동 쪽방촌에서의 삶을 유지하고 있다. - P104

시신이 안치소에서 차량으로, 차량에서 카트로, 카트에서 화장 시설로 옮겨지는 과정은 행정 규정에 따른 절차다. 주민들이 볼 때 이러한 행정 절차에서 무연고 사망자는 추모와 애도의 대상이 아니라 처리되어야 할 "짐짝"에 가깝다. 그러나 절차와 절차 사이에 존재하는 - P117

그러나 주민들은 각자 동자동 쪽방촌에 오기까지 경험한 "과거 얘기, 가족 얘기, 자식 얘기" 등 서로의 "각자 사정"을 묻지 않는다. 물론 같은 공간에 거주하며 자연스럽게 서로의 과거를 알게 된 경우도 있다. 하지만 "우리는 그런 거 이야기 잘 안 한다"라는 조정일의 말처럼, 쪽방촌 주민들은 서로의 과거와 기억을 의도적으로 묻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현장연구 기간 내내 많은 주민들이 이러한 ‘암묵적 윤리‘를 보여주었다. 자기 이야기를 털어놓다가도 "내가 너무 많이 말했네. 쓸데없는 이야야기를…………"라며 황급히 말을 중단하기도 하고, 나와 대화를 나누던 다른 주민에게 "그런 깊은 이야기는 막 하지 말어!"라고 소리치며 말리기도 했다. 그 이유가 무엇이든, 과거의 기억은 서로 함부로 묻거나 이야기하지 않는 것이 주민들의 암묵적 규범이다.
이처럼 쪽방촌 주민들 사이의 관계는 서로의 과거를 의도적으로 기억하지 않는 암묵적 윤리를 기반에 두고 있다. 누군가를 온전히 알고 기억하는 것이 아니라, 특정한 부분을 의도적으로 망각함으로써 주민들 사이의 연결은 가능하다. 주민들이 보여주는 연결은 완전한 연결이나 가까워짐의 형태가 아닌 부분적 거리 두기와 단절을 포함하는 망각의 관계에 가깝다. - P125

"여기에 나눠주는 게 정말 많잖아요. 이게 주민들을 마비시켜요. 이제 고마움도 못 느끼는 거죠. 나눠주면 좋아하긴 하는데 막상 물어보면 누가 준 건지도 몰라요. 비판적으로 봐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거예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 해야 하는 것도 그렇게 하지 못하게 되는거죠."
김동석은 무언가를 나눠주는 활동 때문에 주민들이 "마비"되고 "길들여진"다고 생각한다. "고마움"에 대한 감각은 사라지고 "비판적으로" 바라보는 눈은 어두워진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것"인데도 자기힘으로 무언가를 해내는 능력은 점차 사라진다. - P158

그가 바라보는 주민은 누구나 두 모습을 모두 갖고 있다. 그중 후자가 주민의 "본모습"에 더 가깝다. 그러나 평소에는 전자에 가려 쉽게 드러나지 않는다. 따라서 설령 주민들이 마비되고 길들여져 있다고 하더라도 강제적으로 없애거나 고쳐야 할 것이 아니다. 가려져 있는 주민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이 주민자조조직의 목적이다.
"그런 거죠, 주민의 본모습을 발견하고 드러날 수 있게 하는 것."
여기에서 김동석이 말하는 "본모습"은 곽주형과 황민욱이 말한 임금노동과 경제적 생산 중심의 독립과는 다르다. 동료 주민을 위해 기꺼이 주머니에서 꺼낸 "3만원"은 주민의 "본모습"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하지만 그는 임금노동을 통해 무언가를 생산하지도, 부를 창출하지도, 독립을 성취하지도 않았다. 자신이 아플 때 병문안을 온 주민의 ‘줌(giving)‘에 응답해 "3만원"의 형태로 ‘되돌려주었을(reciprocat-ing)‘뿐이다. 죽음이라는 경계를 넘어 두 주민 사이에 이루어진 줌, 받음, 되돌려줌을 통해 둘은 상호 의존 관계를 형성하고 상징 차원에서 연결된 ‘우리‘가 된다. 김동석이 말하는 "본모습"이란 바로 이러한 상호의존 관계와 주민 사이에 형성되는 연대(solidarity)를 가리킨다.
그러므로 주민자조조직이 목적으로 삼는 변화란 의존에서 독립으로의 변화가 아니라, 의존에서 또 다른 형태의 의존으로의 변화다. 김동석은 각종 물품 지원에 일방적으로 의지하는 주민이 결국에는 "스스로 할 수 있는 것"과 "해야 하는 것"을 하지 못하게 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러나 그것을 지양해야 하는 까닭은 이러한 의존이 윤리적으로 올바르지 못하기 때문이 아니다. 물품 지원에 대한 일방적 의존이 주민 간의 연대와 상호 돌봄, 즉 긍정적 상호의존으로 이어지지 못하기 때문이다. - P168

식도락에서 밥을 먹는 쪽방촌 주민의 모습, 무언가를 돌려주려 노력하는 1단지 주민의 모습이 일상적 차원에서 나타나는 호혜적 실천이라면, 난협이나 주민협동회의 활동은 조직화된 차원에서의 호혜적 실천이다. 이들은 일상적 · 조직적인 차원에서 상호 의존과 연대의 관계를 형성함으로써 자기 자신과 다른 주민들의 인격과 자존감을 유지하고 마비와 길들여짐의 낙인을 거부한다. 짜장면 나눔과 식도락 사업은 주민을 위해 식사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비슷해 보이지만, 당사자인 주민에게는 결코 같은 경험일 수 없다. - P193

예컨대 칠레 산티아고 빈민 거주 지역(poblaciones)의 주민들은 선물과 증여를 통해 서로를 돕고자 한다. 그러나 이들은 받는 이의 존엄성을 지켜주기 위해 마치 자신의 행위가 주는 행위가 ‘아닌 척‘한다. 주민들은 안부를 묻는 척하며 은근슬쩍 노동을 돕고, 너무 많이 만들었다고 거짓말하며 음식을 나누거나, 우연한 만남을가장해 차를 태워준다.
선물의 순환이 이루어지기 위해서는 선물의 시작, 즉 줌에 대한 최초의 인지가 있어야 한다. 그러나 주민들의 아닌 척하기는 줌에 대한 상호 인지를 차단한다. 따라서 줌에 수반되는 돌려줌의 의무도 발생하지 않는다. 동료 주민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그것이 마치 도움이 아닌 것처럼 우연으로 가장된 이상, 도움을 받는 이는 그 도움을 다시 되돌려줄 필요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설령 자신이 받은 도움이 돌려주지 못할 정도로 큰 것이라 하더라도, 돌려주어야 한다는 의무에 응답하지 못하는 데서 발생하는 인격 손상을 방지할 수 있다.
또한 도움을 받은 주민이 보답할 때에도 이들은 자신의 행위가 돌려주는 행위가 아닌 척한다. 즉 돌려주는 행위는 주는 행위에 대한 답례로서 꼬리를 물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받은 적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주는 행위로 발생한다. 이러한 행위가 계속해서 발생하면 선물은 ‘줌-받음-되갚음-줌‘의 순환이 아니라, ‘줌. 받음1, 줌. 받음2, 줌. 받음3‘과 같은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끊어진 시간들이 마치 지층의 단면처럼 층층이 쌓이는 "동시간적 선물(contemporary gift)"을 통해 주민들은 경제적 불안정성 속에서도 서로의 존엄성을 지키면서 지속적으로 서로를 도울 수 있다. - P195

출구 없는 세계에서 과연 어떤 윤리적 응답이 가능할지, 그 응답의 형태는 무엇일지 쉽게 결론내리기 힘들다. 포비넬리 또한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다만 포비넬리는 하나의 실마리를 제시한다. 그는 "삶은 어떤 구원적 미래를 설정하는 것이 아니라 ‘이것이 지금 여기의 모습이다(this is what is)‘라는 사실을 이해함으로써만 가능하다"라고 말한다. 전미래적 관점에서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대안을 제시하기에 앞서 벽장 안의 아이와 자신이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 아이의 고통 위에서만 자신의 행복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이해해야 한다는 것이다. 또한 이러한 연결이 어떠한 공통의 구조 위에서 등장하는지 ‘지금 여기의 모습‘을 이해하는 작업이 선행되어야만 한다.
이 책이 사회적 관계에서 나타나는 사회적 버려짐의 모습을 포착하고자 한 이유 역시 마찬가지다. 여러 개입에 대해 비판적 관점을 유지하면서도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라는 궁극적 해답을 제시하기보다 동자동 쪽방촌이라는 환경에서 주민들이 보여주는 ‘지금 여기의 모습‘을 가능한 한 충실히 그려내고자 했다.
이러한 작업 이후 다시금 맞닥뜨리게 되는 질문이 있다면 그것은 ’그래서 대안이 무엇이냐‘라는 질문이 아니라, 벽장을 마주하고 난 오멜라스의 시민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 혹은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물음이다.
이제 이 책을 통해 벽장 안을 들여다본 독자와 쪽방촌 주민들 사이에도 부분적인 연결이 생겨났다. 이 연결이 지속될 수 있을지, 지속된다면 언제까지 가능할지, 또 어떠한 형태로 지속될는지는 알 수 없다. 하지만 벽장과 그 바깥의 부분적인 연결이 존재하는 한, 우리는 무엇을 해야 하며 또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물음과 계속해서 마주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비록 그 방식은 같지 않을지라도, 각자가 벽장 안의 고통에 윤리적으로 응답하는 일 또한 이러한 물음을 놓지 않는 한에서만 가능할 것이다.
우리는 타자의 삶을 모른다. 쪽방촌을 개선하기 위한 여러 시도들에도 결국 주민들이 사회적 버려짐을 경험하는 까닭은, 이러한 시도가 전미래 시점에 서서 ‘이렇게 하면 더 나아질 것이다‘라는 구원적 미래를 너무나 섣불리 제시하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 여기의 모습을 그려내는 작업은 중요하다. 공통의 구조 위에서 벽장 안팎의 부분적 연결은 드러난다. 타자의 고통에 대한 윤리적 응답은 이때 비로소 가능해질 것이다. - P2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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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클레어 키건 지음, 홍한별 옮김 / 다산책방 / 2023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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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서로 돕지 않는다면 삶에 무슨 의미가 있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나날을, 수십 년을, 평생을 단 한번도 세상에 맞설 용기를 내보지 않고도 스스로를 기독교인이라고 부르고 거울 앞에서 자기 모습을 마주할 수 있나? - P119

펄롱은 미시즈 윌슨을, 그분이 날마다 보여준 친절을, 어떻게 펄롱을 가르치고 격려했는지를, 말이나 행동으로 하거나 하지 않은 사소한 것들을, 무얼 알았을지를 생각했다.
그것들이 한데 합해져서 하나의 삶을 이루었다. 미시즈 윌슨이 아니었다면 어머니는 결국 그곳에 가고 말았을 것이다. 더 옛날이었다면, 펄롱이 구하고 있는 이가 자기 어머니였을 수도 있었다. 이걸 구하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면.
펄롱이 어떻게 되었을지, 어떻게 살고 있을지는 아무도 모르는 일이었다. - P1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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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의 배신 - 머릿속 생각을 끄고 일상을 회복하는 뇌과학 처방전
배종빈 지음 / 서사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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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각으로 인해 고통을 겪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생각에 빠지는 것을 실제로 문제라고 인식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사회가 생각하는 행동을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어릴 적부터 생각을 많이 하도록 교육받아왔기 때문입니다. 정신건강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은 종종 ‘생각을 바꿔‘ ‘긍정적으로 생각해‘라며 더 많이 생각하기를 권유하지만, 이러한 권고는정신장애를 경험하는 분들에게는 도움이 되지 않는 경우가 많습니다. - P10

환자가 아닌 일반인을 대상으로 한 연구에서도 생각에 빠지는것과 행복감이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하버드대학교 연구진이 수행한 흥미로운 연구가 <사이언스>지에 실렸다. 연구진은 83개 국가의 5000여 명을 대상으로 휴대폰 앱을 활용하여 어떤 행동을 할 때 행복하거나 불행해지는지를 연구했다. 해당 앱은 때때로 사용자에게 메시지를 전달하여 지금 무슨 행동을 하고 있는지, 얼마나 행복한지, 지금 하는 일이 아닌 다른 무언가를 생각하고 있는지를 스스로 평가하게 했다. 자료를 분석한 결과, 사랑을 나눌 때, 운동할 때, 대화할 때, 놀 때, 음악을 들을 때 순으로 행복했고, 반대로 부정적인 생각 속에서 헤매고 있을 때 가장 불행했다. - P20

우리 뇌는 무언가에 주의를 기울이지 않을 때도 여전히 활발하게 움직인다. 흔히 ‘아무것도 안 할 때 오히려 잡생각이 많아진다‘라고 하는데, 실제로도 뇌는 그렇게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휴식할 때 동시에 활성화되는 뇌 영역을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Default Mode Network라고 부르는데, 이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면 우리는 과거의 경험을 떠올리거나 미래에 대한 상상, 자기 인식, 타인과의 관계 등을 살피게 된다. 디폴트 모드 네트워크는 창의적으로 사고하고 대인 관계를 원활히 맺는 데 도움을 주기도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의 경우 이 기능이 과하게 작동하여 뇌가 지쳐버리게 된다. - P33

다양한 메타인지적 신념이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친다. 생각을 반복하게 만드는 메타인지적 신념은 크게 두 가지로 구분된다.
첫 번째는 긍정적 메타인지적 신념이다. ‘문제를 잘 해결하기 위해서는 생각을 많이 해야 한다‘와 같이 생각이 유용하다는 신념이 이에 해당한다. 이러한 신념이 있으면 문제와 관련된 생각
이나 걱정을 반복하는 경향을 보이게 되고, 생각에 쉽게 빠질 수있다.
두 번째는 부정적 메타인지적 신념이다. ‘나는 생각을 멈출 수가 없어‘ ‘이렇게 생각을 반복하다 보면 미쳐버릴 것 같아‘와 같이생각은 통제가 어렵고 해롭다는 신념이다. 생각에 대해 부정적으로 인식함에도 생각의 부정적인 부분에 압도되어 수동적으로대처하게 되고 생각에서 벗어나려는 시도를 하지 않게 된다.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메타인지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 생각의 반추에 보내는 시간이 길고 우울 증상이 심한 경향을 보인다. 또한 부정적 메타인지적 신념을 가지고 있는 경우, 6개월 뒤에 더 우울하고 불안한 경향을 보였다. 이처럼 메타인지적 신념은 생각을 처리하는 방식에 영향을 미치며 우울, 불안 등의 발생에 영향을 준다. - P47

종일 걱정만 할 뿐, 문제 해결을 위한 어떤 행동도 하지 않았다.
이처럼 단순히 걱정에만 그치는 생각을 반복하게 되는 데는 ‘걱정하다 보면 문제가 해결될 수 있다‘라는 메타인지적 신념이 작용한다. 우리가 문제에 대해 걱정에만 그치고 행동으로 옮기지않는 이유에 대해서 M. 스콧 펙M. Scott Peck은 《아직도 가야 할 길》에서 다음과 같이 이야기한다.

"문제 해결에 있어 즉각적인 해결책을 찾느라 성급하게 아무 조치나 취하는 것보다 더 유치하고 파괴적인 결함이 있다. 그 결함은 더 보편적이고 어디서나 찾아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 P67

생각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마음속에는 모든 생각은 중요하고 의미 있다는 잘못된 신념이 작용하고 있다. 생각은 합리적인 생각과 비합리적인 생각들이 뒤죽박죽 섞여 있다.
중요하고 의미 있고 이성적인 생각들도 있지만, 아무 의미 없고우리 삶에 도움이 되지 않는 생각들도 있다. 이러한 다양한 생각에 가치 판단을 하는 것은 우리 자신이다.
뚜렷한 목적이 없을 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의 80% 이상은 아무런 의미가 없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머릿속에서 자연스럽게 사라진다. 그런데 모든 생각이 중요하고 의미가 있다고 여기는 메타인지적 신념을 가진 사람의 경우, 모든 생각에 의미를 부여하기 때문에 생각이 자연스럽게 흘러 사라지는 대신 우리의 의식에 잡혀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 - P72

주아 씨는 남편이 도움을 거절하고 공감해주지 않았을 때, 남편이 거절했다는 사실보다 그 순간 느낀 수치감, 소외감, 서운함이 더 고통스러웠다. 그러므로 나를 힘들게 하는 상대방과 대화하기 위해서는 부정적인 감정이 오더라도 견딜 수 있는 힘이 필요하다. 실제로 환자들을 치료하다 보면, 마음의 여유가 생기고 담담해지면서 상대방을 대하는 게 훨씬 수월해지고 하고 싶은 말도 편하게 하게 되었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이전 같으면 무서워서 피했을 일도 담대하게 마주하게 되었다고 이야기한다. 관계로 인해 힘들어하는 환자에게 치료자의 역할은 환자를 힘들게 하는 대상을 회피하지 않고 담담히 마주할 수 있도록 응원하고 격려하고 함께 있어주는 것이다.
하지만 끝내 상대방이 나를 인격적으로 존중하지 않는다면 그관계는 거리를 두어야 한다. 상대방에게 특정 행동이 부정적인감정을 유발한다는 것을 알리며 행동의 변화를 요청했는데도 같은 행동을 반복한다면, 이는 상대방이 나를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나를 인격적으로 대하지 않는 사람과는 굳이 관계를 이어갈필요가 없다. 그것이 나 자신을,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는 행동이다. 내가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면 그 누구도 나의 삶을 소중히 여기지 않는다. - P96

그러려면 자신의 체력을 정확하게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몇 시간을 일할 수 있는지, 지인과의 만남은 몇 시간 정도가 무리가 되지 않는지를 알고 있어야 한다. 그래야 과도한 업무나 너무 길게 누군가를 만나는 일을 막을 수 있다. 자주 피곤한 사람들의 경우는 자신의 체력을 정확하게 파악하지 못하거나 자신의 체력이 좋다고 잘못 알고 있을 때가 많다.
자신의 체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파악했다면 평상시에는 일부만 사용하면서 여유분을 남길 필요가 있다. 평상시 20~30%의 체력은 아껴두었다가 필요할 때 사용한다면 몸이 지치거나 피로해지는 상황을 피할 수 있다. - P118

이전과 다르게 책이 잘 읽히지 않는다면, 차분한 음악을 듣는 것이 불편하다면, 지인과의 대화가 지루하게 느껴진다면 우리 뇌가 너무 큰 자극에 오랫동안 노출되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해봐야 한다. 뇌가 자극적인 것에 지속해서 노출된 상태에서는 잔잔한 자극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어려워진다. 자극적인 것에 관한 생각에서 벗어나는 유일한 방법은 잔잔한 것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을 반복해서 연습하는 것이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같이 자극적인 것에 노출되는 시간을 줄이고, 독서, 산책, 조용한 음악 등의 잔잔한 자극에 집중하는 시간을 늘리자. 처음엔 쉽지 않겠지만 꾸준히 노력하면 변화할 수 있다. 오늘부터라도 조금씩 실천으로 옮겨본다면 점차 주의력, 집중력, 기억력이 좋아지는 것을 직접 체험할 수 있을 것이다. - P138

습관이 만들어지려면 특정 상황에서 일정한 행동을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습관 형성에는 전전두피질과 기저핵(척추동물의 앞쪽 뇌의 기저에 위치하여 기저핵이라 불리며, 다른 여러 뇌 부위와 연결되어 운동 조절, 학습, 감정을 포함한 많은 기능을 담당함)이 중요한 역할을 하며, 전전두피질은 의지로 행하는 행동에 관여한다. 무언가를 학습하거나 습관이 형성되기 전에 하는 행동은 전전두피질에 의해 일어난다. 습관이 형성되기 전까지는 의지를 통해 일정한 행동을 특정 상황에서 반복해야 하는 것이다. 특정 상황에서 일정한 행동이 반복되면 기저핵은 이를 기억하고 저장한다. 습관이 만들어진 뒤에는 특정한 환경이나 상황에서 기저핵이 자동으로 행동을 발생시킨다. 습관이 형성되면 더 이상 의지적인 노력이 필요하지 않고, 습관화된 행동은 자동으로 실행된다. 이처럼 전전두피질에 의한 의지적인 행동이 특정 상황에서 반복되면, 기저핵은 반복적인 행동을 자동화하여 습관으로 만든다.
반복할 때는 특정 상황과 연관을 지어서 반복하는 것이 중요하다. 습관을 형성하는 뇌의 기저핵은 특정 상황과 행동을 연결해 기억하고 특정 상황에서 자동으로 행동하도록 한다. 상황과관계없이 행동을 반복하는 것은 습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예를 들어, 아무 때나 생각을 글로 쓰는 것을 반복해서는 글 쓰는습관으로 이어지지 않는다. 반면에, 저녁에 샤워한 뒤에 글을 쓰는 것을 반복하면, 어느새 습관으로 바뀌어 글을 쓰겠다는 의지없이도 샤워 후에 자동으로 글을 쓰게 된다. 이렇게 습관이 된 행동은 이후로도 반복되면서 생각을 바꾸고 삶을 바꾼다. - P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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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 - 괴테와 마주앉는 시간
전영애 지음 / 문학동네 / 2021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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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상의 서곡>에서 천사들은 우주의 아름다움을 노래하지만(쓰인 것이 까마득한 오래전인데, 우주선을 타고 바라보는 지구의 모습을 그리는 시각입니다!), 튀어나온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는 온갖 "거름더미에 코를 처박고" 천상의 빛인 이성을 "짐승보다 더 짐승 같은 데나 쓰는 인간의 가엾은 꼴을 한없이 비아냥거립니다. 듣다 못한 주님이 "너 파우스트를 아느냐?"라고 물으시니 메피스토펠레스는 "아 그 박사요?!" 하고 냉큼 대답합니다. 그리고 그런 메피스토펠레스에게 주님은 "내 종이니라" 하십니다. 그러면서 좀 더 부연하시는 말씀이 바로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라는 말입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시험해보라 하시며 메피스토의 손에 파우스트를 맡깁니다. 이로써 방황하겠지만 궁극적으로 구원되는, 그런 큰 그림이 주제로서 제시됩니다.
그런데 "인간은 지향이 있는 한 방황한다"는 주문이나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는 설명문이나 잘 살펴보면 둘 다 비문입니다. 지향이 있다는 것은 갈 곳이 있고 목표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목표가 있는 한 방황한다니. 갈 곳이 있기에 길을 잃는다니. 그러나 이 비문의 함의가 참 큽니다. 뒤집어보면 지금 길을 잃고 방황하는 것은 곧 갈 곳이, 목표가 있다는 이야기일 수 있는 것입니다. 방황하지 않는 인간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런데 그 방황이 바로, 목표가 있고 지향이 있기 때문이라니! 참으로 큰 위로가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방황해도 괜찮아. 다 가고싶은 마음이 있으니 언젠가 어디인가에 닿아. 그런 쉬운 말보다, 말이 될 듯 말 듯한 이 위로가 주는 여운이 큽니다. 참으로 정교한 비문입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선한 인간은 바른 길을 잘 의식하고 있다." 이 부연의 문장에서는 비문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입니다.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힌 인간‘, 단순히 생각해보면 그저 나쁜 사람일 뿐입니다. 그런데 그 안에 선함이 있을 수 있고, 어두운 충동에 사로잡혀 있어도 그 선의 알맹이가 있기에 그에게는 바른 길의 의식도 선연히 있다는 것입니다. 그저 이해하라, 용서하자가 아닙니다. 이 비문은 고개를 갸우뚱하는 사람에게 던지는 참으로 큰 포용의 메시지입니다. 이 얼마나 잊히지 않는 커다란 껴안음인지요. - P15

자신을 빚어나가는 일을 할 사람은, 자기밖에는 세상에 그 누구도 달리 없습니다. - P26

내가 받은 유산 얼마나
찬란하고 얼마나 넓디넓은지
시간이 나의 재산,
내 경작지는 시간 - P43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건 초조,
더더욱 쓸모없는 건 후회
초조는 있는 죄를 늘이고
후회는 새 죄를 만들어낸다 - P47

뒤처진 새

철새 떼가, 남쪽에서 날아오며
도나우강을 가로지를 때면, 나는 기다린다
뒤처진 새를

그게 어떤 건지, 내가 안다.
남들과 발맞출 수 없다는 것

어릴 적부터 내가 안다

뒤처진 새가 머리 위로 날아 떠나면
나는 그에게 내 힘을 보낸다 - P58

라바터를 만나서 그 곁에서 행복합니다. 이건 우리 모두에게 하나의 치유예요. 사랑 안에 깃들어 살고 지향이 있는 사람, 활동하면서 그 가운데서 즐기기도 하는 사람이기 위해서요. 그리고 믿을 수 없을 만큼 주의를 기울여 친구들을 감당하고, 먹이고, 인도하고, 기쁘게 하는 사람이 되기 위해서요. 한 석 달만 이분 곁에서 보낼 수 있다면 참 좋겠습니다. - P67

괴테는 그만한 열림의 소유자였습니다. 그러나 그런 ‘열림‘이 쉬웠겠습니까. 청년 괴테는, 그의 ‘열림‘이 어떠했는지를 이렇게 썼습니다.

조개들이 살을 껍질 밖으로 펼쳐낼 때 물에 뜨듯이, 그렇게 나는 사는 걸 배웁니다.

조개가 연한 살을 내미는 곳은 짠 바닷물입니다. 우리의 세상과의 만남은 연한 살이 소금물에 닿을 때처럼 아플 수 있습니다. 언제나 하고 있는 일에 충실하면서, 상황에 따라, 그 상황이 어떻든 자신의 사고를 유연하게 열고 옮길 수 있는 힘, 그런 힘이 진정 큰 힘인 것 같습니다. - P71

올바른 목적에 이르는 길은
그 어느 구간에서든 바르다 - P101

수천 권의 책 속에서 진실로
혹은 우화로 그대에게 나타나는 것
그 모든 것은 하나의 바벨탑에 불과하다
사랑이 결합시켜주지 않으면 - P104

꿈의 실현같이 좋은 일에도 조금씩 쌓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하물며 어렵고 문제 많은 일들에서야 더욱더 그렇지 않을까요? 그런데 조금씩 고쳐가고 쌓아가는 일에 우리는 별로 익숙하지 않은 듯합니다. 뭐든 확 바꾸고 와장창 뜯어고칩니다. 확 바꾸면 있던 그 문제야 사라지지만, 대신 다른 문제가 무더기로 생겨날 수밖에 없는데도 문제 해결 방식이 대체로 그렇습니다. 사회적, 역사적으로도 이즈음은, 그사이 쌓인 문제가 워낙 많은 터라 그렇지만, 마치 드디어 꿈을 실현할 때라는 듯 여기저기에서 때로는 무리해 보이는 청사진이 쏟아져나오고 있습니다. 그런데 좋은 집이야말로 조금씩, 최소한 몇십 년은 내다보며, 올바른 생각과 수단을 통해 지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러지 않으면 꿈도, 집도 금방 폐가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 P114

세상의 문제가 회피해서 해결될 리 없습니다. 정면으로 대결해야 합니다. 그렇다고 곧바로 답이 찾아진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생각해보면, 세상의 문제에 원천적으로 답은 없습니다. 답이 있고 해결책이 쉬이 있으면 그게 문제이겠습니까. 얼른 답을 내려고 답을 내어 그것을 벗어나려고 모두 노력하지만, 때로는 발버둥을 치지만, 쉽게 찾아진 답은 장기적으로 계속 답이 되기 어렵고 그래서 답이 아닙니다. 그런데 그 문제가 무엇인지 알면, 문제의 전모를 바르게 파악하면, 기이하게도 생겨나는, 문제를 감당해가는 힘. 그 힘이, 답은 없지만 그중 답의 근사치일 수 있습니다. 그 힘으로 모색이 이루어지며, 그 길에서 쌓이는 것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다보면그 문제를 안고 살아가는 슬기가 생기기도 하고, 문제 쪽에서 슬그머니 알아서 풀리는 일이 생기기도 합니다. - P117

『서·동 시집』은 참 사연이 많은 책입니다. 좀더 자세히 말해보면 이렇습니다. 38년간 도서관 감독을 하며 온갖 책을 많이 읽던 괴테의 손에, 1814년 여름 막 출간된14세기 페르시아 시인 하피스의 방대한 번역본이 들어왔습니다. 그 여름 괴테는 오래전에 떠났던 고향 프랑크푸르트를 찾아가는데, 고향의 지인이자 열렬한 독자인 은행가 빌레머 씨 댁에 묵게 됩니다. 빌레머 씨는 딸의 이름의 스펠링을 괴테의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의 등장인물과 같게 고칠 만큼 괴테의 열성 독자인 동시에 오랜 지인이었지요. 마침 65세 생일을 그 집에서 보냈고, 다음해에 한번 더 잠깐 찾아갔습니다.
빌레머 씨에게는, 자기 딸과 함께 친구도 하며 교육도 받게 한 양녀 마리아네가 있었습니다. 유랑극단에서 상당한 돈을 지불하고 데려온 여배우의 딸이었는데, 똑똑하고 사랑스러운 아가씨였던 것 같습니다. 처음 괴테가 그 집에 머물 때 이 영리한 아가씨는 괴테가 읽는 두꺼운 하피스 시집을 속속들이 함께 읽어, 같은 책을 읽은 사람들끼리 교감이 이루어집니다. 급기야는 하피스 시집의 쪽수, 행수만을 적은 쪽지만으로도 자신의 마음을 표현하게 되지요. 시인이 아니던 마리아네도 자기의 마음을 대신할 수 있는 시구를 찾아 두꺼운 책을 읽고 또 읽다보니 자꾸 시를 쓰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다음해 괴테가 다시 프랑크푸르트를 찾았을 때는, 양녀인 마리아네가 이미 빌레머 씨의 아내가 되어 있었지요.
괴테와 마리아네가 함께한 독서는 노년의 괴테에게서 다시 시인의 감성을 활짝 열었고 마리아네에게서는 없던 시인이 깨어났습니다. 이때 쏟아져나온 시들이으로 묶이게 되는데, 그 중심이 <라이카의 서>이고 줄라이카라는 이름 뒤에는 마리아네가 있습니다.
사실 <서·동시집> 안에는 마리아네의 시도 몇 편 들어가 있습니다. 별도의 표시가 없는 이 시들 중 두 편을 괴테의 충직한 비서 에커만이, 그 많은 시들 중에서 가장 좋은 시로 꼽기도 했지요. 바로 그 시에 슈베르트가 곡을 붙이기도 했습니다. 그 시들이 <동풍시>와 <서풍시>입니다. 앞서 인용한 구절이 바로 제목이 없는, 속칭 <서풍시>의 일부지요. 즉, 괴테의 시가 아니라 마리아네의 시입니다. 감성적, 시적 교류가 있었으나 사회적 거리와 정중함을 두 사람은, 특히 괴테는 결코 잃지 않았습니다. 그집을 떠나고 나서는(그가 그 집을 떠날 때 하이델베르크까지 전송을 온 내외를 잠깐 만나고는, 죽을 때까지 마리아네를 다시 만난 적이 없습니다.
「동풍시」는 마리아네가 그렇게 마지막으로 괴테를 만나러 하이델베르크로 갈 때 쓴 것이고, 「서풍시」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돌아오며, 또 돌아와서 쓴 것입니다. 괴테는 편지조차도, 빌레머 씨나 그 딸에게 보내어 간접적으로 소식을 전했을 뿐 직접 쓰는 일이 거의 없었습니다.
그렇건만 마리아네가 괴테에게 보낸 편지들은, 긴 세월을 고이 간직했다가 임종을 1년 앞두고 정성스레 묶어서 돌려보냈습니다. 그리고 그 묶음에는 이런 쪽지가 덧붙여졌습니다.

사랑스럽던 이의 눈 앞으로
이걸 썼던 손길에게로-
언젠가 뜨거운 갈망으로
기다리고 받던 것
그것들이 솟구쳤던 가슴에
이 종이들은 돌아가거라.
늘 사랑에 가득차 거기 있던 것,
가장 아름다웠던 시간의 증인들. - P1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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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락방 속의 자아들 - 누가 내 삶을 몰래 살아가고 있는가
할 스톤 & 시드라 스톤 지음, 안진희 옮김 / 정신세계사 / 2015년 7월
평점 :
절판


나는 가슴 깊이 진실하고 중요하다고 여겨지는 어떤 것을 듣거나 읽을 때면 온몸에 강렬하고 얼얼한 전율이 퍼져나가는 것을 느낍니다. 나는 이 느낌을 ‘진실의 종‘(truth bell)이라고 부르는데… - P7

우리가 다양한 자아들로 이루어져 있다는 생각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어떤 사람들은 이런 이론이 인격을 파편화한다고 주장하면서 반기를 든다. 하지만 우리는 인격은 ‘이미‘ 파편화되어 있다고 느끼고, 우리의 과제는 이 자아들의 파편성 혹은 다수성을 제대로 인식함으로써 삶에서 올바른 선택을 할 수 있게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는 누구나 이런 파편화된 모순적 감정을 한 번쯤은 확연히느낀다. 감정적으로 위태로운 상황일수록 다양한 감정을 경험할 가능성이 더 높아진다. - P29

사실 우리의 인격에서 가장 일찍 발달하는 측면 중의 하나는 보디가드와도 비슷한, 우리를 ‘보호하는 자아‘이다. 그것은 우리 주위에 위험이 도사리고 있지는 않은지를 늘 살피고, 어떻게 하면 위험으로부터 우리를 가장 잘 보호할 수 있을지를 판단한다. 그것은 우리의 안전을 확보해주고 다른 사람들이 우리를 받아들이게끔 해주리라고 느껴지는 일련의 규칙을 정함으로써 부모와 사회가 금지하거나 권고하는 조항들을 만들어내어 우리의 행동을 광범위하게 통제한다.
이 자아가 우리가 얼마나 감정적이어도 되는지를 결정한다. 그리고 우리가 바보처럼 행동하거나 스스로를 난감해지게 만드는 행동을 하지 못하게 한다. 우리는 이 자아를 ‘보호자/통제자‘라고 부른다.
보호자/통제자는 많은 다른 자아들의 배후에 있는 원초적 에너지 패턴이다. 보호자/통제자는 이성적 자아의 에너지와 책임감 강한 부모 자아의 에너지를 이용하여 환경에 대한 통제력을 유지한다. 사실 사람들이 ‘나‘라고 말할 때, 대부분은 자신의 보호자/통제자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다. 많은 사람들에게 보호자/통제자 에너지는 인격의 감독관이다. 많은 사람들이 ‘에고ego‘라고 생각하는 그것이 이것이다. - P32

외면당한 자아들에 대해 더 깊이 탐사해 들어가기 전에 한 가지중요한 점을 미리 구분해놓을 필요가 있다. 일반적으로, 의식되지 않는 자아를 가리키는 용어는 ‘무의식적(unconscious)‘ 자아이다. 하지만 모든 무의식적 자아가 반드시 ‘외면당한‘ 것은 아니다. 무의식적 자아는 단지 ‘의식되지 않을‘ 뿐이다. 어떤 에너지도 그것을 억압하거나 그것을 무의식 속에 붙들어두고 있지 않다. 하지만 모든 외면당한 자아는 에고와 보호자/통제자가 동일시하고 있는 에너지와 정반대의 에너지를 가지고 있다. 예를 들어, 무절제한 성욕과 관련된 외면당한 자아를 묻어두고 있는 여성은 실제로 자기 자신을 도덕적으로 올바르고 규율을 잘 따르는 사람이라고 여긴다. 이 정반대의 에너지, 즉 도덕적으로 올바른 에너지는 보호자/통제자와 손을 잡고 외면당한 자아를 끊임없이 억압한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우리는 어떤 자아를 발견해내기 전까지는 그 자아가 외면당했는지 어떤지를 알 방법이 없다. - P50

우리는 살아가면서 자신의 외면당한 자라들을 반영하는 무수한 인간관계의 무력한 희생자가 될 수도 있고, 아니면 이런 인간관계들을 도전과제로 받아들이며 이렇게 물어볼 수도 있다. "나의 내면의 지성에게) 스승님, 이 사람/상황은 어떻습니까?" 이런 질문을 던지는 것 자체만으로도 의식이 크게 전환된다. 삶 속의 많은 스트레스는 우리가 외면했던 자아들을 대인관계 속으로 끌어들이는 무의식적 경향으로 인해서 야기되고, 똑같은 패턴이 삶에서 반복되는 만큼 우리는 계속 고통에 시달린다. 안타깝게도 대부분의 사람들에게는 이런 과정이 담고 있는 교훈을 배울 수 있는 도움의 손길이 주어지지 않는다. 이런 도움의 손길이 없으면 외면당한 자아들의 에너지는 점점 더 강해지고 더 왜곡되어간다.
생존욕, 성욕, 공격 욕구와 같은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에너지들이 오랫동안 외면당하면 그것은 무의식 속으로 다시 돌아들어가 중대한 변화를 겪는다. 에너지는 사라질 수 없다. 그래서 외면당한 본능들은 무의식 속에서 작동하기 시작하고, 자기 쪽으로 부가적인 에너지를 끌어당긴다. 곧 이 에너지들은 본래의 성질을 잃어버리고 악의적으로 변한다. 여기서 우리는 이 에너지들에게 ‘악마적 에너지‘라는 새로운 이름을 부여한다. 외면당한 자아의 에너지가 악마적으로 변하면 자연적이고 본능적인 공격성은 생명을 위협하는 분노로 전환되고, 질투는 통제할 수 없는 울화로 변하고, 본능적인 성적 충동은 끔찍한 경험들로 변한다. 이런 악마적 에너지들은 개인적, 사회적 차원 양쪽에서 모두 파괴적이고 포악한 행동으로 우리의 일상생활 속으로 파고들어올 수 있다. - P56

에너지 패턴은 통합될 준비가 되면 다양한 방식으로 꿈속에 나타난다. 하지만 그것은 기본적으로 입장료, 곧 항복을 요구한다. 요란한 전화벨 소리, 우리 뒤를 쫓는 사람들이나 집안으로 침입하려는 사람들… 이런 꿈들은 모두 우리와 접촉하려고 애쓰은 다양한 종류의 에너지 패턴들이다. - P64

그렇다면 당신은 어떻게 ‘당신의‘ 외면당한 자아들을 포용하기 시작할 수 있을까?
첫째로, 외면당한 자아가 작용하고 있는 것부터 알아차려야 한다. 누군가에게 짜증이 날 때를 주목하라. 그 느낌이 좋은가? 자기만이 옳다고 느껴지는가? 상대방이 ‘너무‘ 끔찍하지는 않은가? 유감이지만, 이제 당신은 외면당한 자아들에 대해 알았으니 더 이상 도덕적 우월감ㅇ 햇살을 만끽하고만 있을 수가 없다. 당신은 이제 당신이 상대방을 바꿔놓을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당신이 과도하게 동일시한 성품들(당신이 자부심을 느끼게 하는 성품들)을 직시하고 그 성품들이 당신을 어떻게 한정하는지를 알아차려야 할 때이다.
아마 당신은 지나치게 깔끔하거나, 지독하게 열심히 일하거나,
강박적일 정도로 친절하게 남을 배려하거나, 항상 남을 돌보고 베풀거나, 항상 올바른 일만 하거나, 절대 불평하거나 화를 내지 않을지 모른다. 이런 성품들은 자신을 특별한 존재로 느끼게 해서, 우리는 그것을 버리고 싶어하지 않는다. 이런 성품들이 어떻게 우리를 한정할 수 있고, 편협하고 완고해지게 만들 수 있고, 자신과 타인들을 복합적이고도 온전한 인간으로서 느긋하게 받아들이지 못하게 만들 수 있는지를 생각해보라. 완벽한 삶을 살려고 애쓰는 것은 좋다. 하지만 그것이 곧, 실패할까봐 두려워서 새로운 것은 결코 시도하지 않는 것을 의미한다면 어떤가?
이제부터가 재미있는 부분이다. 처음에는 이상하게 느껴질 테지만, 외면당한 자아에게 말을 걸어보라. 외면당한 자아가 어떤 생각을 하는지를 살펴보라. 그것이 통제권을 얻는다면 일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를 물어보라. 외면당한 자아의 새로운 에너지를 느껴보라.
그리고 새로운 관점으로 세상을 바라보라. 우리의 외면당한 자아는 새로운 아이디어, 새로운 영감, 풀리지 않는 문제의 새로운 해결책을 공급해주는 원천이다. 무엇보다 외면당한 자아들은 우리가 지금껏 접하지 못한 새로운 관점을 가지고 있다. 당신은 그 새로운 에너지에 깜짝 놀랄 것이다. 당신에게 ‘외면당한 자아가 되라‘고 하는 것은 아님을 잊지 말라. 그저 외면당한 자아의 에너지가 ‘말하도록‘ 허용하라. - P66

이런 딜레마에 대한 답은 깨어서 의식하는 것, 즉 이런 에너지 패턴들을 자각하는 것이다. 이 자각은 어떤 것도 제거하거나 심판하려 하지 않는다. 샐리의 사례에서 의식한다는 것은 단순히 자각과 경험이었고, 그것이 선택의 가능성을 가져다줬다. 샐리는 그녀의 밀어붙이는 자아와 히피의 이야기를 들었다. 목소리와의 대화 상담에서, 우리는 그녀의 존재방식을 지배해온 생각, 태도, 감정의 시스템으로부터 그녀의 자각의식이 떨어져 나오도록 도와주었다. 그녀는 생애 최초로 ‘자신의 차를 직접 운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녀는 이후에도 계속 밀어붙이는 자아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지만 밀어붙이는 자아는 더 이상 그녀를 지배하지 않았고, 그녀 또한 더 이상 밀어붙이는 자아가 자신에게 하는 말을 무턱대고 믿지 않았다. 그녀는 더욱 깨어 있는 에고를 발달시켜가고 있었다. - P161

최강급의 비판적 자아는 어느 각도에서도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 오직 지속적으로 경계하면서 명치 속의 철렁하는 느낌을 예민하게 감지할 때만 우리는 정신을 차려 비판적 자아의 목표를 잘 겨눈 교활한 공격을 피해낼 수 있다. 세심히 살펴보기만 하면 우리가 어떠하든, 무엇을 하든 상관없이 비판적인 자아의 성에는 결코 차지 않는다는 사실을 금방 깨달을 것이다.
비판적인 자아는 정확히 어디에 비수를 꽂아야 하는지를 잘 안다. 그곳은 항상 예민한 지점이며, 일단 비수가 꽂히고 나면 우리는 우리에게 꽂혀 있는 비수보다 비판적 자아의 불평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다. 비판적인 자아는 뛰어난 칼잡이이다. 비판적인 자아의 능력을 자각할 수 있고, 비판의 내용 너머를 볼 수 있고, 비판적인 자아의 파괴적인 힘을 알아차릴 수 있게 되기 위해서는 강력한 자각의식과 높은 수준의 의식이 필요하다. 이런 자각의식을 진화시켜낼 때까지 우리는 늘 비판적인 자아의 제물로 남아 있을 것이다. - P170

비판적인 자아의 에너지는 변화되어(의식된 후에) 자각의식 속으로 들어오고, 깨어 있는 에고로부터 명확히 구별될 때에만 진정한 협력자 역할을 할 수 있다. 비판적인 자아는 우리의 행동을 객관적으로 평가하여 우리가 어떤 분야의 일을 하든지 기량을 향상시키도록 도와줄 수 있다. 또한 우리가 무의식의 영역에 대해 방심하지 않게 하여 외면당한 자아들을 알아차리게 하고, 우리가 관계의 덫에 걸려 있을 때 알려줄 수 있다. 비판적인 자아의 비난이 부정적 힘을 잃으면 비판적인 자아는 매우 효과적이고 분별력 있고 이성적인 친구가 될수 있다. - P176

우리의 삶에서 우리 안에 그토록 많은 분노를 야기하는 압정은무엇인가? 그것은 승낙할 수도 거절할 수도 있는 능력 혹은 무능력이다. 우리가 자신의 관점에 따라 적당히 승낙하고 적당히 거절하면서 살아간다면 분노가 치밀 일은 줄어들 것이다. - P193

우리 안의 사자는 포효하고 싶어하는데 그 대신 염소가 매에~ 하고 운다면, 우리는 어떤 방식으로든 이 전도된 상황의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대가는 다양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대가는 우울증, 에너지와 열정의 상실, 커지는 무의식으로 경험될 것이다. 어떤 사람들에게 이 대가는 통제할 수 없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행동이 될 수 있다. 이 동안에 재산과 직업과 결혼생활, 혹은 인생 전체가 위험에 처할 수 있다. 그리고 가장 극단적인 형태의 대가는 질병이나 심지어 죽음으로도 이어질 수 있는 육체적 파산이다. - P197

젊었을 때 낸은 술을 많이 마셨다. 술을 마실 때마다 그녀의 외향적이고 질탕한 에너지가 표출되었다. 이는 음주 문제가 있는 사람들에게 흔한 일이다. 외향적인 에너지가 차단되면 음주는 이 에너지를 배출하거나, 이 에너지가 외면될 때 쌓이는 스트레스를 완화하는 주된 방법의 하나가 된다.
안타깝게도 낸은 술을 끊고 나자 모든 면에서 차분하고 냉정해져버렸다. 그녀의 표현적이고 관능적인 여러 에너지 패턴들과 함께 외향성도 외면되어버렸다. 본능은 그녀의 적이 되어 돌아섰다. 그 본능들이 자신을 표현하는 한 가지 통로는 그녀의 비판적인 자아였다. 걷잡을 수 없이 파괴력을 키워가는 종양처럼 힘을 키워가는 자아 말이다. - P206

우리의 외면당한 악마적 패턴들을 대면하는 데는 큰 용기가 필요하다. 이런 자아들의 에너지는 오랫동안 고립되어 있었다. 나병환자들이 일반사회에서 배척되는 것처럼 말이다. 이런 특징을 보이는 사람들을 만날 때, 우리는 가능한 한 그들을 피하려고 한다. 그들은 우리에게 비난받아 마땅하다. 우리가 견딜 수 없는 사람들이 사실은 우리가 무시한 자아들의 반영이라는 사실을 인정하는 것은 얼마나 쉽고도 어려운 일인가. 만약 우리가 그들을 대면하고 귀 기울일 준비를 하여 그들을 우리 삶 속으로 안아 들일 수 있는 마땅한 방법을 찾아 나서기만 한다면, 황금 같은 기회들이 사뭇 규칙적으로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 P211

수잔느의 다음 연애는 상처입기 쉬운 아이를 만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시작됐다. 그녀가 이제껏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종류의 관계였다. 수잔느는 자신의 감정과 반응을 즉각적으로 이야기하고 새로운 파트너와 자신의 과거와 자신의 엄마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녀는 아주 ‘작은‘ 상처와 두려움도 그것이 일어날 때마다 말로 표현했고, 남자도 그렇게 했다. 두 사람 모두 예전에 느껴보지 못했던 속 깊은 나눔을 경험했다. 상당한 용기가 필요했지만 수잔느는 배움이 빠른 단호한 여성이었고 그녀의 용기는 그녀의 파트너에게도 동등한 친밀감을 불어넣어주었다. 그들은 위험을 감수할 때마다 서로 더 깊이 이해하고 사랑하게 되었고, 자신들의 복잡한 인간성을 함께 탐사하는 일에 대해 점점 덜 두려워하게 되고 갈수록 점점 더 용감해졌다. 그것은 늘 쉽거나 즐겁지만은 않았지만 두 사람 모두에게 대단히 만족스러웠다. 이들은 자신들의 상처입기 쉬운 아이들이 준 정보를 가지고 관계 속에서 일어나는 고통에 현실적으로 대처할 수 있었고, 달콤한 에너지의 교환(서로 진정으로 마음을 열고 신뢰할 때 두사람 사이에서 진동하는 따뜻하고 활기 넘치는 에너지)을 지켜갈 수 있었다.
한 가지 경고할 것이 있다. 모든 것이 영원히 완벽할 수는 없다.
깨어 있는 에고의 통제를 넘어서는 상황들은 때때로 상처입기 쉬운 아이가 관계에서 물러서게 만든다. 하지만 일단 이 따뜻함을 경험하고 나면 그것을 얻고자 노력하게 되고, 그것으로 돌아가게 된다. 그리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그렇게 하기 위해 불가피한 불편은 기꺼이 감수한다. - P223

로라는 전능한 목소리와 동일시하기를 멈추고(더 이상 전능한 목소리가 달콤한 말로 그녀를 유혹하도록 허용하지 않고 자신의 겁먹은 아이에게 관심을 기울이면서 아이의 걱정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그녀의 깨어 있는 에고는 겁먹은 아이에게 부모가 되어주었다. 그녀는 자신의 숙제를 했다. 자신이 알아야 할 사실들을 배워서 겁먹은 아이가 더 이상 그녀의 준비부족에 대해 걱정할 필요가 없게 했다. 그녀는 자신의 취약성과 두려움을 삶과 일 속에 품어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능력을 입증하기 위해 전능한 목소리에 의존하기를 그만뒀다는 사실이다. 그녀는 전능한 목소리가 자신을 지지하고 인정할 때는 기분이 매우 좋지만, 그런 힘은 환상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녀의 진정한 힘은 그녀가 자신의 취약성을 품어 안은 이후에, 그녀의 자각의식과 깨어 있는 에고로부터 나왔다. 상품을 파는 그녀의 능력은 이제 다른 사람들을 감탄시키고 그들로부터 무언가를 얻어내려는 욕구보다는 자신의 일에 대한 그녀의 헌신과 믿음에 바탕을 두고 있다. 주위의 다른 사람들도 이런 변화를 느낄 수 있고, 그에 따라 그녀를 더욱 지지해주고 현실적인 격려를 해줄 것이다. 로라는 마침내 자만심과 자기의심의 양극단으로부터 해방되었다. - P232

지금까지 논의된 많은 자아들을 되살펴보면, 그들이 대체로 권력과 취약성의 연속체상에서 반대극을 나타낸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권력의 극은 우리의 부모 측면이고 취약성의 극은 우리의 아이 측면이다. 우리의 에너지들은 이 양쪽 사이를 끊임없이 움직이고 있다. 이 에너지의 전형적 움직임은 다음 그림과 같이 개념화할 수 있다.
이런 에너지 흐름은 대개 우리가 자각하지 못하는 가운데 일어난다. 이것은 원형적 과정이기 때문에 우리가 이것을 멈출 수는 없다. 이것이 균형 잡힌 에너지 시스템의 모습을 보여준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은 흥미로운 일이다. 통제력 부족과 취약성을 상징하는 아들/딸 측면은, 모든 면에서, 권력과 통제력을 상징하는 아버지/어머니 측면만큼이나 크다. 우리는 이 균형을 자각하지 못할 때가 많은데, 그것은 우리가 이 힘의 연속체의 한쪽 끝에 자신을 동일시하고 다른 한쪽 끝은 외면하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의 자각수준이 높아져가면 에너지의 원형적 운동과 이 균형을 더욱 확연히 자각하게 된다. 깨어 있는 에고는 이런 에너지들이 우리 내면에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서 작용하는 방식을 통제하고 선택할 수단을 갖추기 시작한다. - P266

이 책의 초판을 쓴 이래로, 우리는 비인격적 자아와의 작업을 갈수록 더 강조해왔다. 우리는 외면당한 비인격적 에너지를 되찾으면 힘이 커지고 자신을 보호하는 자연스러운 능력이 크게 증가하는 것을 발견했다. 여성들에게 특히 그러했다. 비인격적 에너지를 표출함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심리적 경계를 정할 수 있고, 다른 사람들이 승인이 있든 없든 독자적으로 행동할 수 있으며, 필요할 때 다른 사람들로부터 떨어져 나올 수 있고, 적대적이지 않으면서도 분명하게 자신의 요구를 표현할 수 있다. - P2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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