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말들 - 사랑도 혐오도 아닌 몸 이야기 아르테 S 5
강혜영 외 지음 / arte(아르테) / 202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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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몸에 ‘대한‘ 책이 아니라는 점에서 의미 있다. 『몸의 말들』은 ‘몸 = 나‘임을 잘 보여준다. 흔히 하는 ‘내가 내 몸에 대해 쓴다‘는 말은 어불성설, 두 개의 자아가 부닥치는 정신분열이다. 사회운동에서 몸에 대한 자기 결정권은 여전히 중요한 권리지만, 정확히 말하면 내 몸은 내 것이 아니다. 내가 내 몸의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아니다. 내가 사는 삶이 몸이다. 몸이 나다. 그러나 육체와 정신의 분리와 위계는 너무나 뿌리 깊어서, 이 말은 생각보다 어려운 언설이다. - P4

몸은 외모 외에 건강, 자기표현, 공중 보건, 관계, 정체성, 생애주기, 취업 문제까지 생을 망라하는 행위자다. - P7

‘사회적 약자‘는 평생 자신을 사랑하는 문제와 투쟁해야 하는 이들이다. 성별, 인종, 계급, 나이 등은 인간의 본질이 아니라 사회적 해석이다. 몸의 영역에는 쉽거나 작은 실천이 없다. 인생에서 가장 어려운 일이 자신을 알고 변화시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타인의 시선을 상대하는 용기, 나이듦을 인정하는 갓, 아픈 상태도 인생의 소중한 부분이라는 인식, 남의 몸에 대해 되도록 적게 말하기부터 시작하자. - P14

내 피부, 내 몸을 사랑한다는 건 사실 자존감의 문제다. 있는 그대로의 나를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건 있는 그대로의 내 몸도 받아들일 수 있다는 거니까. 하지만이 자존감은 높거나 낮거나의 두 가지의 선택지만 있는 것이 아니며 어느 한쪽에만 멈춰 있는 고정된 형태도 아니다. 어제 술을 마셨다면 내 몸을 사랑하지 않는날이 되고, 오늘 운동을 하고 건강한 음식을 먹는다면 내 몸을 사랑하는 날이 된다. 언제든지 나는 나를 사랑하거나 싫어할 수 있다. 그렇기에 사랑하지 못했다고 해서 나 자신을 통째로 부정하거아 자책할 이유도없다. - P42

그렇게 내 몸 이곳저곳은 삶을 기록하는 저장소가 되었다. - P125

타투는 우리가 살며 하는 수많은 선택들 가운데 몇 안 되는, 오로지 나만의 것이다. 벽은 너무나도 높게 느껴진다. 어느 정도의 고통이 수반되는지, 이 타투가 정말 상상하는 모양대로 내 몸에 남을 것인지, 늙으면 어떻게 될지, 경험해보지 않으면 알 수 없는 일이다.
그런 과정 끝에 내 몸에 남는 것은 나이테와 같은 기억의 흔적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잉크는 내 몸과 함께 늙는다. 햇볕과 시간에 의해 톤이 변하기도 한다. 작업을 받고 아무는 과정에서 조금 많이 떨어져 나갔지만 그냥 그대로 둔 경우도 있다. 내 몸 몇 군데에 같이 늙어가는 친구를 두는 것이다. - P129

실제로 운동을 즐기는 사람들에게 왜 그렇게 힘들게 운동하는지 물었을 때 무언가를 확인해보고 싶었다는 대답을 꽤 들었다. 자신 안에 있는 변화의 가능성을 확인해보고 싶었거나, 가시적으로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보고 싶었던 것일 수도 있다. 자영에게 성적 판타지를 이야기할 때 현주는 왜 나이 많은 남자와 자고 싶은가에 대해 이렇게 답한다. 젊은 남자들은 다 자기 몸을 인정해주길 바란다고. 그런데 정작 힘들게 만든 자신의 몸은 제대로 봐주지 않았다고 한다. 타인을 통해서 자신의 변화를 인정받고 싶은 마음이 현주에게도 있는 것이다.
섹스도 결국은 상대방의 반응을 통해 나를 확인하는 과정이 아닐까 생각한다. 타인과의 관계를 통해서만 나의 현재 위치를 확인받고 싶은, 누군가는 이기적이라고 볼 수도 있는 그런 마음이 있을 수 있는 것 아닐까. - P186

상처난 마음과 몸을 묻기로 결정한 나는 침묵했다. 이 시간만 잘 버텨내면 괜찮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자꾸만 삐져나오는 감정을 더 깊이 묻어두기 위해 노력했고 그럴수록 나는 스스로에게 더 가혹해졌다. 진솔한 마음이 드러나는 순간 인내해왔던 모든 시간과 노력이 무용지물이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 P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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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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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디스 버틀러가 그랬다. ‘나는 누구인가’말고 ‘함께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누구인가’를 질문해야 한다고. - P199

자매애는 약자들 속의 약자를 알아보는 깊숙한 시선입니다. 알아볼 수 있기 때문에 혐오하고 증오하고 사랑할 수 있었어요. 여성들 사이에서 실제로 일어나는 관계를 자매애로 한정하는 일은 또 한번 여성의 감정과 욕구를 억압하는 일이 될 수 있습니다. 자매애 안에서도 모진 말들과 악의가 무럭무럭 자랍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자매애만큼 말할 수 있어야 합니다. - P228

굳이 어렵게 쓸 필요가 있나요?

어렵고 쉽고의 기준은 차치하고, 어렵다는 게 대충 무슨 말인지도 안다 치고 말하자면 그렇게 쓸 수밖에 없는 삶이 있다. 말끔하게 정제된 이야기는 어떤 주요한 규칙으로 세상에 있는 무언가를 삭제하고 편집한 결과다. 그 규칙은 누가 만드는가, 라고 시작하기에는 이 얼굴도 모르는 이를 향한 애정이 아예 없었으므로 나는 되도록 짧게 혼잣말한다. 정제된 이야기라고 썼지만 이것 역시 간명하게 설명되지 않는다. 그냥 번번이 정육점의 포장육이 떠오르더라는 것. 살아서 고통받는 소의 이미지를 불편하게 그리지 않고 깔끔하게 포장된 부위를 원하는 만큼 사갈 수 있으면 아무 문제가 없는 이들의 이야기. 죄책감을 떠올리지 않으려고 우리가 외면하고 망각하는 게 놀랍도록 많다는 사실만 헤아려도 이야기가 그렇게 딱 떨어지게 설계될 수 없다는 걸 이해할 수 있을 텐데. - P271

내가 하는 말은 제일 먼저 내게 들렸다. 말이 되기도 전에 들렸다. 대답도 내게 먼저였다. 시끄러. 웃기지 마. 거짓말. 너나 잘해. 많은 사람 앞에서 발언할 때 나는 나 자신도 거기 사람들 사이 어딘가에 앉혀놓고 말한다. 다양한 자기모순 안에 똬리 튼 사람들 틈에 앉아, 가장 잘 아는 한 사람의 모순을 직시하는 내가 언제나 부끄럽다. 그럴 때 시도하는 농담은 결과가 늘 좋지 않다. 더 부끄러워진다. 말의 뼈들이 다 부러진다. 말이 눕지도 서지도 앉지도 못하면서 그 모든 것을 하려고 애쓴다. 나를 마주보고 앉은 이들은 모를 그런 순간, 나만 감각하는 순가. - P295

‘아, 못하겠다……‘ 다음을 채우는 것들. 멈춤이고 하차이고 쉼이고 영영 그러지 못해서 치닫는 슬픔이다. 궤도 밖에도 삶이 있으므로 우리는 계속 고통받겠지만 "아, 못하겠다……" 하고 일단은 밖으로 탈주하는 상상. 트랙에서 병실에서 이 행성과 몸에서. - P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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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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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뮈의 일기를 떠올렸다.
치유의 단계들. 자유의지를 잠들게 하라. ‘해야 한다‘는 이제 그만. - P154

힘들 때 힘들다고 말할 줄 아는사람이 내 주변에는 별로 없다. 말하지 않으면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모르는 채로 살다가 과거 어느 순간을 뒤늦게 이해하는 방식으로 한 사람의 고통과 연결된다. 아니, 이해한다기보다 그 시간을 수긍한다고 해야 할까. 그렇구나, 그런 일이 있었구나. 그런데도 너는 고맙게 살아주었구나. - P16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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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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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내 방향으로 움직였을 뿐인데 그 결과 누군가와는 멀어지고 누군가와는 가까워진다. 너도 그랬을 것이다. 우연과 의지와 기호와 욕망이 추동하는 움직임이므로 그 멀어지고 가까워짐에 내 책임이 아예 없다고 할 수는 없다. 하지만 관계 변화의 책임을 추궁당하면 좀 억울해진다. 그 정도로 명백한 의도는 없었다 느끼고 그게 사실일 테니까. 내가 움직이고 네가 움직여서 일어난 관계의 변화는 필연적일 뿐 책임을 물을 일은 아닐지도 모른다. 근 몇 년, 관계와 연결된 고민을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멀고 가까워짐이 용케 순조로웠다. 보통은 그렇지 못하다. 지금도 그렇다. 나는 모든 걸 무효화하고 혼자 있고 싶다. 피곤하다. 이 달라진 위치에 대한 감각으로부터 오는 모든 어긋남이 좋아하는 마음이 관계를 지탱하는 골격이라 했을 때 그 마음이 서서히 빠져나가면서 무너져내리는 관계의 빈껍데기를 보는 건 어쨌거나 고통스러운 일이다. 여전히 너를 좋아하지만 그 마음에는 이제 힘이 없을 때. 왜 이렇게 되었는지 모르겠다싶을 때, 아니 너무 잘 알고 있을 때. 우리는 그냥 매일 조금씩 움직이며 잃고, 매일 무언가를 잃고 마는 자신을 외면한다. 너는 이런 사람, 나는 이런 사람. 처음 만난 그 자리의 허상을 압정으로 꾹 눌러둔다. 하지만 나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그런데도 나를 계속 좋아해줄 거야? 이런 질문은 영영 하지 못한다. 원래 있던 자리로부터 쉽게 물러난다. 뭐든 내가 할 수 없는 일인 것처럼 느끼면서 무능력함을 곱씹으면서 암담해지면서 자책하면서 나는 그냥 있다. 관계 실패와 회피에 익숙한 사람이면 흔히 그렇듯 몸피를 줄이고 체온을 낮추는데도 능하다. 관계는 그렇게 취소된다. 존재도 취소될 수 있다면 가장 먼저 나를 그 취소의 순서에 세우겠지만 그럴 수가 없다. 이 불능의 감각, 존재 대신 자꾸 취소되는 마음들. 그러려니 하고 살았더니 그것 봐라, 하고 돌아오는 삶의 단념들에게 묻고 묻고 또 묻는다. 집요한 질문일수록 틀린 질문이다. 틀린 질문일수록 집요해진다. 이제 나는 그걸 안다. - P108

몸은 차별과 혐오가 기입되는 가장 첨예한 장소다. 몸을 기울인다는 건 그런 장소의 닿음이다. 내 몸은 어디에 닿아 있는가. 질문이 저 멀리 앞서가고 있다. 나는 이제 겨우 내 몸에 도착한 상태다. 방청소에 몸을 쓰다가 알았다. 살려고 이러는 거구나. 약속을 취소하고 책상 앞에 앉자마자 알았다. 애쓰고 있는 거구나, 내가. 문제는살자, 하고 애쓴 일들이 도무지 삶 쪽으로 나를 인도하지 못한다는 거였다. 내 마음 편한 방식이 내게 정말 도움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 P124

약속이 취소되면 안심이 된다. 약속 상대를 좋아하지 않아서도 아니고(그런 경우도 있다) 외출 준비가 귀찮아서도 아니다(그럴 때도 있다). 그건 전적으로 내 문제다. 약속이 상대방의 사정으로 취소되는 순간 긴장이 풀리면서 나른해진다. 거절에 언제나 실패하는 이들이 기댈 데라고는 비자발적 ‘취소‘밖에 없으니까. 타인과는 어느 정도 긴장이 수반되기 마련이지만 그 정도가 유난히 심한 편이다. 타인 앞에서 늘 과장되어 있고 과도한 에너지를 쓰며 사회화된다. 통화할 때도 마찬가지이다. 누구와 함께든 살아 있는 동안은 그럴 것이라는 예감. - P1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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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승일기
김지승 지음 / 난다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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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은 욕망의 선택이죠. 욕망이 수호하는 시간만이 남게 되는겁니다. 그러니 왜 잊히지 않냐고 묻지 마세요. 욕망이 하는 일인 겁니다. - P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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