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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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이것은 거짓말이 아니다. 여자들은 결혼하면 자리에서 물러나야 했다. 적당한 신랑감을 찾기 원한다는 이유로 공직에서 열외 취급을 받았고, (그토록 바라 마지않던 신사가 짠 하고 마법처럼 나타나면) 소지품을 챙겨서 가정이라는 새로운 인생을 찾아 집으로 떠나야 했다. 이 법은 ‘기혼자 퇴직법‘으로 불렸지만 여자에게만 적용됐기 때문에 ‘유부녀 퇴직법‘이 더 정확한 명칭일 것이다.
물론 예외도 있었다. 가령 타이피스트는 남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는 인식 때문에 여성이 결혼을 해도 계속 남아서 일을 할 수있었다. 대신 임시직에다가 재정지원 혜택이나 연금은 없었다.
교사도 약간 다른 적용을 받았다. 교사는 주정부에 고용된 형태였지만, 대체로 연방정부법도 주정부법과 비슷했다. 하지만 교육은 이상할 정도로 여성 의존성이 강한 분야였고, 휘날리는 색종이 조각 속에서 여성이 대거 이탈할지도 모른다는 사실은 한 국가의 교육 시스템 입장에서 받아들이기 힘들었다. 그래서 많은 주에서 결혼한 여교사들은 정교사 자리를 내놓는 대신 ‘임시‘ 교사로 재임용되었다. - P154

여자 둘이 서로 경쟁 상대인 경우, 즉 한 여자는 아이가 있고 다른 여자는 아이가 없다는 사실을 이력서로 쉽게 추론해낼 수 있을 때 아이가 있는 여자를 능력 면에서 살짝 떨어지는 것으로 간주했다.
또한 일에 대한 헌신도에서도 상대 여자보다 낮게 평가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를 채용에 적합한 인물로 꼽은 비율은 47퍼센트였지만, 아이가 없는 여자는 84퍼센트가 채용을 적극 권장했다. 아이가 있는 여자의 권장 초봉은 평균 13만 7,000달러였고 아이가 없는 여자는 14만 8,000달러였다. 아이가 있는 여자를 응답자의 69퍼센트가 잠재적인 관리잣감으로 여겼지만, 아이가 없는 여자의 장기적 가능성에는 84퍼센트가 손을 들어주었다.
그러나 아이가 있는 남자와 아이가 없는 남자의 경우에는 실험 참가자들이 전혀 다른 반응을 보였다.
아이가 있는 남자를 아이가 없는 남자보다 능력 면에서 조금 더 뛰어나다고 여겼다. 아이가 있는 남자는 일에 대한 헌신도도 더욱 높을 것으로 기대했다. 권장 초봉은 평균 15만 달러였는데,
두 명의 여자 지원자보다도 높은 액수였고 초봉을 14만 4,000달러로 결정한 아이가 없는 남자보다도 높았다. 아이가 없는 남자는 아이를 빼고는 자격 조건이 모두 동일했는데도 말이다. 그리고 93.6퍼센트라는 압도적인 비율로 아이가 있는 남자를 미래의 관리잣감으로 여겼다. 반면 아이가 없는 남자는 응답자의 85퍼센트만이 승진을 시켜도 된다고 생각했다.
따라서 아이의 존재는 여성이 직업을 가질 확률을 떨어뜨렸고,
신뢰도나 승진 가능성에서도 마이너스 요인으로 작용했다. 전반적으로 적합성이 하락했다. 하지만 아이가 있는 남성은 가정을 이룬 사실이 경쟁 우위로 작용했다. 묘하게도 여성에게는 조심스럽게 밝힌 아이의 존재가 헌신성 부족이나 승진 자격 미달 등의 의혹을 가져온 반면, 남성에게는 아이의 존재가 그런 의혹을 한번에 해결해주었다. - P17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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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내 가뭄
애너벨 크랩 지음, 황금진 옮김, 정희진 해제 / 동양북스(동양문고) / 2016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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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약 낮 시간에 라디오 방송을 많이 듣고 경영학회지도 많이 읽어보면, 어느 시점이 되었을 때 이런 말들을 듣게 될 것이다. 남자 상사들은 성차별주의자다. 여자들은 높은 자리를 원하지 않는다. 남자들은 천성적으로 야망이 크다. 남자들은 같은 남자를 승진시킨다. 여자들은 아이가 생기면 나가떨어진다. 남자가 자기 홍보를 더 잘한다. 여자들은 적극성이 부족하다. 일터의 구조가 남자에게 더 적합하게 짜여 있다. 여자들은 리더십에 소질이 없다(줄리아 길라드*를 보라). 남자들은 자기들이 다 안다고 생각한다(케빈 러드**를 보라). 여자들은 주전으로 내보내기에는 실력이 부족하다(토니 애벗***에게 물어보시길).

* 27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10~2013), 노동당 출신 첫 여성 총리로 아이가 없다는 이유로 비난 여론에 시달려야 했다.
** 26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07~2010, 2013), 노동당 출신인 그는 탄소세 신설 정책으로 정치적 위기를 맞아 줄리아 길라드에게 총리직을 내주었으나 2013년에 다시 그녀를 몰아내고 총리직에 복귀했다. 이러한 당권 분열로 노동당은 2013년 총선에서 대패하며 보수 정당에 정권을 내줬다.
**** 28대 오스트레일리아 총리(2013~2015), 보수 정당인 자유국민연립당 대표였던 그는 줄리아 길라드 총리를 반대하는 여성 혐오적인 피켓을 든 인파와 함께 시위를 주도해 논란이 되었다. - P71

‘여자는 가망이 없다‘는 생각은 형태를 불문하고 여성이 직장에서 험한 꼴을 당하는 이유를 설명할 때 두 번째로 등장하는 주제이다. 여기에 대한 자료는 아주 풍부하다. 최신 자료는 페이스북의 최고운영책임자(COO)인 셰릴 샌드버그를 통해 대중에게 알려진 이론으로, 여자들이 직장 생활에 ’린인(Lean In)‘*하지 않기 때문에 여자들이 가망이 없다는 내용이다. 샌드버그는 일반적인 업무 환경에서 여성들은 작전이 펼쳐지고 있는 최전선에 서기보다는 지휘권을 양보하고 뒷자리에 앉아 있으려 한다고 주장했다. 그리고 임신 계획이 있다 싶으면 큰일을 맡으려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구인이나 승진 공고가 났는데 공표된 열 가지 기준 중 여덟 가지를 갖추고 있으면, 여자들은 부족한 나머지 두 조건에 대한 불안감 때문에 망설인다고 한다. 그러다가 열 가지 기준 중 네 가지만 충족시키지만 나머지는 속여 넘길 수 있다며 철통같은 자신감을 내뿜는 의기양양한 남성 지원자 무리에 밀려나게 된다는 것이다.

*멈칫하거나 뒤로 물러선다는 뜻의 린 백(Lean Back)에 반대되는 개념으로, 기회를 놓치지 않고 달려든다는 의미다. - P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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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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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럴 땐 누구 편에서 생각해야 할지를 명확히 해야 한다. 초대한 사람의 환대하는 마음과 상관없이 초대받은 어떤 사람들은 깨끗함 자체에서 불편함을 넘어 배제나 모욕까지 느낄 수 있다. ‘그럴 의도는 없었다‘는 말이나 ‘좋은 마음으로 한 건데, 어떻게 그렇게 받아들일 수 있냐?‘라는 반론은 감수성 없는 발언일 뿐 아니라 모욕을 느끼는 사람의 입을 다시 닫게 하난 말이다. 특히 다양한 소수자들과의 관계에서 역지사지는 필수적이다. - P338

노숙인 광장이야말로 근본적 변혁의 실마리를 엿볼 수 있는 장소다. 터전이 불타버린 자리에서 비로소 제대로 된 시작이 가능하다. 그곳은 광장 바깥 사회에서 당연한 것으로 합의되고 통용되는 가치관과 욕망과 규범과 질서가 깨져버린 재난 공간이다. 내일도 꿈도 희망도 없이 늘 위험하고 불온하며 지금 당장의 불행과 다행만읋 삶이 이어지고 끊어지는 공간이다. 그러니 머물든 드나들든 들여다보는 이곳에 오는 사람들이 견지할 태도는 ‘희망 없음‘과 ‘하염없음‘이다. 어떤 실패나 실패들의 반복에도, 애초에 희망이 없었으니 실망할 일도 없다. 있는 것 털고 생기는 것 받아 함께 즐기며 놀다보면 다시 힘이날 테고, 기회 봐서 가진 자들을 향해 한번 더 싸우면 된다. 성취를 기대하지 않으니 실망도 없고, 요행히 어떤 성취가 오면 달콤하게 즐기면 된다. 어떤 실패에는 신경질도 나고 쌍욕도 내지르겠지만, 그건 사느라 싸우느라 그런 거다. - P352

모든 ‘비정상’에는 우울과 분노, 도발과 저항이 뒤엉킨다. 삿대를 단단히 쥐고 마음과 삶의 향방을 최대한 주도할 일이다. 불온함과 변태야말로, 돈과 가족이 최고라는 세상의 가장자리에서 재난을 줄겁게 통과하고 다음 재난을 맞이할 힘을 키우는 잉여들의 가오다. 불온함이란 사상이나 태도가 통치 권력이나 체제에 순응하지 않고 맞서는 성향을 말한다. 진정한 인간의 길은 불온한 잉여들이 만들어낸다. 하염없이 희망 없이, 때론 전략적으로 좀 쉬면서, 우리들의 놀이판을 벌이며 싸우자. 즐겁게 놀며 싸우는 것이 사는 맛 중 최고임을 아는 사람은 안다. 그 끝에 죽음을 만나거나 적당한 때에 죽음을 집어들면 된다. - P3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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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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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는다는 것은 느려지는 것이고, 포기할 것이 차차 늘어나는 것이다. 포기는 자유의 이면이며, 느려지면 고속이 놓쳤던 다른 것들을 얻는다. 늙음으로 인해 신체와 정신 능력이 차차 하강하는 것을 수긍하면서, 필요에 따라 전략적 대응을 한다. 떨어지는 기능에 연연하지 않고, 필요와 욕망과 일상의 폭을 좁히며 산다. 지식과 정보가 철철 차고 넘치는 세상에서 나이로 인해 이해력과 기억력은 점점 떨어지니, 집중할 것과 대강 흐름만이라도 파악할 것을 취사선택하고 나머지는 이번 생에서는 포기한다. 필요와 욕망과 일상의 폭을 좁히고 갈 곳과 만날 사람을 줄이는 일은 왜 사는가?‘ ’무엇으로 인해 행복한가?‘라는 본질적 질문에더 밀착하며 사는 것이다. 자급하며 소신과 실천을 나누는 단출한 삶이 예나 지금이나 나를 궁극적으로 행복하게 한다. 살아가다보면 나이와 늙음이 제 나름의 속도로 올 테고, 질병과 장애가 나의 일부를 이룰 것이다. 그 끝에서 죽음을 만날 테고, 그 이후는 내 일이 아니다. 죽음 이후는 차치하고, 이승의 남은 삶도 궁금하지 않다. 오는 대로 살 작정만 한다. 늙음을 불호를 넘어 두려워하고들 있다. 두려움의 뒷면은 혐오다. 대체로 혐오의 이유는 낯섦이지만, 늙음은 널려 있으니 낯설 것도 없다. 늙음에 대한 두려움은 실체앖이 흉흉하게 떠도는 소문일 뿐이다. - P259

나보다 상당히 나이가 적은 사람들의 글이 현재의 내게 깨달음이나 사고의 전환을 만들어줄 때가 잦다. 혹은 새롭기는 하지만 내 사고나 삶이 전환되지는 않는, 말하자면 몸이나 사고의 익숙함을 깨뜨리지는 못하는 경우들도 있다. 시대와 문화와 습이 모두 관계하는 문제다. 이럴 경우 우선은 상대의 문제인지 내 문제인지 그 사이 무엇 때문인지를 판단하지 않고, 지금 그와 나는 다르다 정도로만 정리해두고 기회 있을 때마다 다시 들여다보려 한다.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의 글을 통해서는 깨달음이나 사고의 전환보다는 경륜과 나와 다른 여지 혹은 내게 미지/미경험인 것들에 대한 그들의 느낌이나 생각을 알아두고 최대한 열린 태도를 만들어두려 한다. 그러니 나보다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서는 시선의 풍부함을 얻고, 나보다 나이가 적은 사람들에게서는 관점의 전환을 자극받는 편이다. 당장 배운다기보다는 그냥 알아두고 열어두는 거다.
배움이란 내가 직접 접촉하거나 겪어내지 않고는 얻기 어렵다. ‘접’이 중요하지만 ‘촉‘이 있어야 오래 함께한다. ‘촉‘은 문득 오는 설렘에서 시작은 하지만, 대체로 불확실하다. 그 불확실함 때문에 시간이 오래 걸리고, 시간이 지나도 여전히 모호한 무언가가 계속 나를 붙든다. 그래서 하염없이 하게 한다. 필요하다면 희망도 없이.
‘몸소는 나의 한계일 수 있지만, 나의 방식이다. - P267

애도의 진정한 의미은 죽은 이의 삶과 죽음의 긍과 주가 후대에게 기억되고 재해석되고 논란되어, 후대가 그 죽음을 제대로 밟고 나아가게 하는 것이다. - P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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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려움은 소문일 뿐이다
최현숙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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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문화적 아비투스habitus 이자 습이 연출하는 몸은, 도달하거나 놓치지 않고 싶은 각종 ‘다음‘에 관한 욕망의 장이다. 돈 많은 노인에게는 더욱, 몸은 타인의 시선과 벌이는 각개전투에서 속 시끄러운 갈등과 분열의 장이지만, 결과적으로는 타인의 시선이 아닌 시간과의 싸움에서 완패가 정해진, 모처럼 외롭고 공정한 전쟁터다. - P204

여성인 내가 생애 동안 일관되게 해온 돌봄노동들은 그 식모들의 노동과 크게 다르지 않았고, 가족 안이냐 바깥이냐에 따라 임금이 없거나 가장 싸구려 임금이었다. 한편, 저임금이나 일방적으로 특정 성별에게 요구된 것으로 인한 갖은 차별들을 떠나 생각하면, 돌봄노동은 좋은 노동이다. 상품(물신)을 생산하지 않는 노동이어서 신자유주의 강화와 생태파괴에서 비교적 죄가 적은 착한 노동이고, 사회적 약자들의 일상과 관계를 지원하는 살림 노동이며, 생애 내내 모두가 그 안에서 살아가는 상호적이고 공동체적인 호혜의 관계망이다. - P215

늙어 기운이 빠지면서 엄마는 "평생 미친년처럼 살아온거 같아"라는 말을 자주 했고, 그럴 때마다 나는 "엄마는 열정적이고 똑똑한 여자야"라는 말로 받았다. 두 문장은 같은 의미다. 내가 한 구술생애사 작업 속 모든 주인공 여자들도 그랬다. 지지받지 못한 열정과 영리함 탓에 엄마들과 할머니들과 내 또래 여자들은 주변과 불화했고, 아픈 여자이자 미쳐버릴 것 같은 여자인 채로도 열나게 자신과 세상을 살아냈다. 물론 하나같이 분열적이었다. - P221

모든 다른 존재 간에는 잠재적이든 노골적이든 다양한 권력관계가 작동한다. ‘반려‘라는 말의 남발은 관계 속 소수자나 소수자성을 삭제한다. 또 바람직한 관계라고 퉁쳐버리거나 인정받고 싶은 기득권자의 발화일 수 있다.
물론 완벽한 건 없다. 나 자신을 포함해 누구에게도 나는 완벽을 기대하거나 주장하지 않는다. 늘 추구와 질문이 있을 뿐이다. 다른 계층과 다른 조건과 다른 설명들에 대해서도 마찬가지다. 추구와 태도와 질문은 늘 날카롭고 새롭게 이어져야 하고, 또한 겸허해야 한다. 우리는 모두 한계안에서 살아간다. - P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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