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밤이여, 안녕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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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입을 연다. "나는요, 인생을 이렇게 봐요. 누가 내게 ‘태어나고 싶어서 태어났느냐?‘고 물으면 내 대답은 ‘아니다.‘예요. 분명 나는 그렇게 대답했을 텐데, 단지 아무도 내게 그걸 묻지 않았지요. 내가 여기 있는 것은 나의 의지가 아니에요. 내 일생에서 발생한 대부분의 사건들은 내가 의도해서 발생한 것이 아니지요. 그래서 나는 내 자신에게 항상 이렇게 말한답니다. ‘너는 네가 부탁해서 태어난 것이 아니다. 세상을 이렇게 만든 것은 네가 아니다. 네 지금의 모습도 네가 만들지 않았다. 그러니 네 자신을 괴롭히지 마라. 그저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너는 그럴 권리가 있잖느냐? 너는 세상을 이 꼴로 만든 죄 많은 자들 중 하나가 아니니까. 우리가 부자도, 힘 있는자도, 권력 있는 자도 아니라면 우리는 죄 지은 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인생이 돌아가는 대로 그냥 수용하고, 능력껏 행복하게 살면 되는 거지요." - P82

사람들은 행복한 인생에 대해서 말하지. 그러나 우리가 죽느냐 사느냐에 더는 관심이 없을 때, 그게 바로 행복한 삶이야. 시간이 많이 지난 후에 그리고 많은 불행을 거치고 난 후에 우리가 그런 걱정 없는 경지에 도달하게 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행복한 상태에서 오래 살 수 있게 누가 그냥 둘 것 같아? 결코 그런 일은 없어.
무관심의 천국에 도달하자마자 우린 또 거기서 끌려나오게되는 거야. 천국에서 다시 지옥으로 떨어지는 거지. 우리가 세상에서 잊혀진 존재가 될 때, 즉 죽은 존재가 될 때, 세상이 그때 우리를 구해 주지. 구해서 어떻게 하냐고? 아주 우스꽝스러운 존재로 만들어버리지. - P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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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밤이여, 안녕 마카롱 에디션
진 리스 지음, 윤정길 옮김 / 펭귄클래식코리아 / 2015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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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잘해 보려고 애를 쓰지만, 그들은 항상 내 능력을 속속들이 알게 되고, 내가 가는 길은 결코 다른 길로 연결되지 못한다. 항상 막다른 골목이다. 문들은 늘 닫혀 있다. 나는 안다…. - P41

누운 관 뚜껑의 마지막 못이 꽝 소리를 내며 박혀 버렸다. 이제나는 사랑받기 원하지 않으며, 아름답기를 원하지도 않고, 행복이나 성공을 바라지도 않는다. 내가 원하는 것은 단지 한 가지다. 나를 가만히 놔두는 것. 내가 사는 방의 문을 발로 긁지마, 문을 열고 들여다볼 생각도 하지 마, 그저 나를 가만히 놔둬..…. - P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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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R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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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녀가 벌이는 먼지와 햇빛과 모래를 상대로 하는 싸움, 행복하고 두려운 삶과 사랑과 불안이 겹치는 어쩔 수 없는 슬픔, 세상에 다가가면서도 멀어지려 하는 애증과 어디서나 오도카니 자신을 지켜가는 시린 고독이 눈에 보였다. 자기 것이 분명한 여자, 타인과 자신의 것을 절대 섞지 않는 여자, 세상과의 구분 속에서 외로움과 달콤한 우월감을 느끼는 여자. R과 정반대지만, 그녀 역시 어딘가 R과 겹치는 부분이 있었다. 해변에서 옥수수를 구워 파는 노파가 그렇듯이. 나는 모든 여자에게서 R의 일부를 발견했다. 호연도 처음부터 R과 같은 부류였다. 삶의 표면 위로 튀어오르는 섬광 같은 기쁨과 심연으로 가라앉는 영원한 그늘 사이에서 모든 여자의 불안과 외로움, 좌절과 질투와 결핍과 우울, 가난과 사치와 슬픔과 공허, 그리고 상실과 해독되지 않고 쌓여만 가는 독은, 같은 것을 나눈 듯 서로 닮아 있었다. - P2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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굿바이 R
전경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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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라마를 보는 이유는 대개 무언가에 싫증나거나 지루하거나 권태로워서이다. 싫증은 피로에서 생기고 지루함은 반복에서 생기고 권태는 억류에서 생겨난다. 이것은 삶의 주된 상태이고 셋 다 불감증의 양상을 드러낸다. 그리고 싫증은 중단을 바라고 지루함은 일탈을 바라고 권태는 전복을 바란다. 그러나 일상은, 중단되지 않고 일탈도 없고 전복도 없이 드라마와 패키지여행과 기념일에 의지해 간신히 흘러간다.
-승객- - P12

현은 공허하게 웃었다. 그는 막다른 곳에 기대 사는 사람 같았다.
"옷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닿는 것을 못 견뎌요. 그러니 아마도, 마지막 순간에도 난 혼자 죽겠지요. 그게 좀 걸리는 일이었지만, 이젠 아무렇지도 않아요. 모든 죽음은 아무리 포장해도 결국 자연이 되는 일이니까요. 혼자 죽든 가족에 둘러싸여 죽든, 중환자실에서 산소호흡기를 매달고 죽든 마찬가지예요. 속일 수 없는 건 자연으로서의 죽음 그 자체지요."
그리고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하루에 한 번씩 또박또박 사는 일뿐이다.
-승객- - P38

"이별도 자기 한계를 감당하는 하나의 방법이지. 하지만 슬픔은 오래 계속돼. 돌아보면 그때의 마음과 풍경들이 너무 아름다워서, 현실에 담을 수 없는 것을 납득하게 돼. 난 사람들이 어떻게가정을 가지고 오랜 세월을 함께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어. 차라리 송곳 같은 현실 위에 나 혼자 살아가는 일을 이해하기가 더 쉬워."
"서로가 쓸모없어지는 것에 익숙해질 때까지만 견디면 돼. 그러면 면적이 생겨. 같이 있어도 존재감이 안 느껴질 정도로 편안해지는 게 진짜 관계의 묘미라고 생각해. 난 그런 경지를 바라."
-붓꽃- - P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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숨결이 바람 될 때 - 서른여섯 젊은 의사의 마지막 순간
폴 칼라니티 지음, 이종인 옮김 / 흐름출판 / 201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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눌랜드는 어렸을 때 손가락으로 할머니의 피부를 꾹 누른 뒤 원래대로 돌아오는 데 얼마나 걸리는지 지켜보는 장난을 쳤다. 전과 다르게 짧아진 호흡과 함께 이런 노화 현상은 할머니의 "울혈성 심부전이 서서히 진행 중이며, 오래된 피가 오래된 폐의 오래된 조직에서 가져 나오는 산소의 양이 현격하게 줄었음을" 보여주는 징후였다. 눌랜드의 이야기는 이렇게 계속되었다. "하지만 가장 확실한 건 할머니가 삶에서 천천히 멀어져가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할머니는 기도를 그만두었을 때쯤 사실상 다른 모든 일도 멈추었다." 할머니에게 치명적인 뇌졸중이 찾아왔을 때, 눌랜드는 토머스 브라운경의 <의사의 종교(Religio Medici)>에서 본 구절을 떠올렸다. "우리는 엄청난 투쟁과 고통을 딛고 이 세상에 오지만, 세상을 떠나는 일도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 P76

레지던트로서 내가 꿈꾸었던 가장 높은 이상은 목숨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누구나 결국에는 죽는다), 환자나 가족이 죽음이나 질병을 잘 이해하도록 돕는 것이었다. - P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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