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의 일기
다니엘 페나크 지음, 조현실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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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했던 사람들이 죽을 때 우리에게서 뭘 앗아가는지 알아채기란 쉽지 않지. 애정의 둥지가 없어졌다는 건 견딜 수 있더구나. 감정에 대한 신뢰, 공감의 희열을 잃는 것도 마찬가지고, 죽음이 상호 간의 관계를 앗아가는 건 사실이지만, 기억 덕분에 그럭저럭 보상이 되거든(지금도 기억할 수 있어. 아빠가 가끔씩 혼자중얼대던 것.……… 비올레트 아줌마가 날 안심시키려고 들려주던얘기들………… 티조가 싱겁게 들려주던 웃기는 얘기들...... 기숙학교에 다닐 때의 에티엔……… 그레구아르의 웃음……). 그들은 몸이 살아 있는 동안 기억할 거리들을 만들어놓은 것이다. 하지만 내겐 그 기억들만으론 충분치 않았다. 내가 그리워한 건 그들의 몸이었으니까! 내 앞에 마주하고 있어 손만 뻗치면 만질 수 있는 몸, 그거야말로 내가 잃어버린 것이었다! 그 몸들은 더 이상 내 풍경 안에 들어 있지 않았다. 그들은 집을 조화롭게 꾸며주다 지금은 없어져버린 가구들과도 같았다. 그들의 육체적 존재가 갑자기 얼마나 그립던지! 그들 없는 세상이 얼마나 허전하던지! 당장 여기서 그들을 보고, 그들을 느끼고, 그들의 소리를 듣고 싶었다! 후추 냄새 나는 아줌마의 땀, 티조의 허스키한 목소리, 거의 꺼져가는 아빠의 숨소리, 보기만 해도 흐뭇해지는 그레구아르의 탄탄한 몸.
머리가 맑은 순간이면 난 스스로에게 물어봤다. 내가 무슨 몸에관해 말하고 있는 건지. 도대체 어떤 몸 타령을 하고 있는 거냐?
티조는 거무튀튀하고 덩치 크고 호방한 친구가 되기 전엔 목소리는 가늘고 비쩍 마른 다섯 살짜리 어린애였는데, 넌 그중에 어떤 티조를 얘기하는 거냐고, 그레구아르 역시 우람한 근육에 세련된 매너의 청년이 되기 전엔 아기 목욕통 속에 들어 있던 조막만 한 아기였는데 어느 그레구아르를 얘기하는 거냐! 어쨌든 너무도 분명한 건, 내가 그레구아르의 몸을, 티조의 몸을, 비올레트 아줌마의 몸을, 한마디로 그들의 육체적 존재를 그리워했다는 것이다!
아빠의 몸, 그 앙상한 손, 각이 져 있던 뺨, 그들에겐 원래 몸이 있었는데 이젠 없어졌다, 바로 그게 문제였다, 난 오로지 그 몸들을 간절하게 필요로 했던 것이다. 그들이 살아 있던 동안엔 거의 만져보지도 않았으면서! 그토록 스킨십에 인색하고 몸엔 관심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으면서! 그러던 내가 지금 이렇게 그들의 몸을 필요로 하고 있다니! - P44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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