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현하는 일은 내 한계를 드러내는 일이기도 하잖아요. 나는 내가 아는 만큼만 표현할 수 있으니까, 내 인식의 경계를 확인하는 과정이기도 해요. 한계에서 멈추지 않기 위해서 우리는 계속 쓰고 읽고 말하고 듣는 거 아닐까요? 제가 제 이야기를 하기 시작하면서 당신의 이야기에 몸을 바짝 당겨 앉게 된 이유는 그 때문이에요. 서로의 한계가 만나 연립하는 순간을 믿어서요. 우리는 부딪치며 넓어지는 중이에요." - P140

나는 오해한다. 쉽게 오해한다. 두려움은 오해일 수도, 아닐 수도 있다. 미움도, 적의도, 분노도 오해일 수 있다. 설사 그게 오해가 아닌 진실이어도 나에게는 소통할 기회가 있다. 그 기회를 겁이 난다는 이유로 미리 차단하고 싶지 않다. 일단 진심으로 표현한다. 언젠가 상대에게 내 말이 ‘문득 떠오르는 순간‘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마음으로. 샤워하다가, 밥 먹다가, 변기에 앉아 있다가, 혹은 자기와 사랑하는 이들이 차별이라는 벽 앞에서 멈칫하거나 다쳤을 때. 어떤 순간이든 그에게 이 말이 절실해지는 순간이 있을 수 있다. 그 가정법을 안고 계속 말한다. 우리는 서로를 오해하고 쉽게 두려워하지만, 결국 우리가 연결되어 있다는 사실을 함께 느끼는 순간은 온다. 내 오해가 깨졌던 순간들처럼, 내 두려움이 억측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처럼. 그렇게 두려움과 오해를 넘어 말을 건넨다. - P146

"저는 사랑의 신화를 믿습니다.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알 수 있을까요. 우리가 사랑하지 않으면 내가 어떻게 나를 알 수 있을까요. 타자가 있어서 나를 아는 것인데, 내가 사랑하지 않고 누구와 공감하고 이해했다고 할 수 있을까요. 그래서 언제나 사랑을 꿈꾸죠.
비록 사랑을 통해서 상처 입고 눈물 흘리고 때로는 에로스의 바다에 빠져서 익사한다고 할지라도 징검다리로 올라올 수 있는 힘이 사랑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는 죽음의 바다를 건너기 위한 하나의 징검다리로서 사랑을 잡으려고 하는 것이 아닌가. 그런 의미에서 사랑이야말로 어떤 의미에서 구원이지요. 내가 죽지 않기 위하여, 죽음으로부터 나를 살아 있게 만들어주는 것이 사랑이기 때문에요. 사랑이라는 건 누구한테나 가능한 것이고, 사랑 때문에 우리가 살아 있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각종 오물을 몸에 간직한, 사악하고 비겁하고 연약한, 타자를 삼키며 살아가는 어쩔 수 없는 뱀파이어인 우리가 서로를 사랑하며 세계를 책임지는 일. 혐오와 사랑, 무수한 아이러니가 흐르는 곳에 아이러니한 내가 있다. - P163

줌파는 책에서 자주 술에 의존했던 내 엄마의 이야기를 읽었다면서 다정한 눈빛으로 말했다. "어머니의 술은 제 슬픔과 같다고 생각해요. 저도 자주 생각했거든요. 술이 몸에 받았다면 정말 술에 기댔을 거라고요. 저는 승은 씨 어머니의 술이 제 눈물처럼 보였어요. 그러니까 어머니에게 술은 꼭 필요한 표현이었을 수 있어요." 그 말을 듣는 동안 나는 눈물을 훔쳤다. 엄마는 자주 말했었다. "술을 먹으면 솔직할수 있었어. 울고 싶을 때 마음껏 울 수 있었어." 줌파와 엄마의 울음이 겹친다. 나는 말이 되지 못한 그녀들의 울음을 들으며 자랐다. 슬픔의 이유는 묻지 않았다. 묻지 않아도 짐작할 수 있었으니까. 나 또한 말이 되지 못한 울음을 삼키거나 뱉으며 살았으니까. - P190

울부짖음은 주로 짐승의 소리, 여성의 소리로 폄하되어 왔다. 눅눅한 감정을 제거하고 바짝 말린 소리만이 공적인 언어가 될 수 있다고 배웠다. 나는 그 잠언에 적극적으로 저항하고 싶다. 나는 당신의 슬픔을 하나하나 파고들고 싶지 않다. 오늘 하늘이 너무 맑거나 흐려서 눈물이 흐를 수도 있고, 아픈 기억을 직면하는 괴로움으로, 사무친 그리움으로, 이유 모를 슬픔에 잠길 수도 있다. 다만 당신이 울음을 참거나 홀로 삼키지 않길 바란다. 당신에게 울 수 있는 무대가 마련되길 바란다. 그 울음이 독백이 아니라 대화로 이어지길 바란다. 울음 뒤에 가려진 이야기를 적극적으로 꺼내 자기만의 언어로 재해석할 관계가 곁에 있길 바란다. 당신의 울음을 듣기 위해 자세를 잡는다. 어떤 울음은 가장 적극적인 말이라는 걸 알기 때문이다. - P194

불안정하고 불안하다고만 여겨왔던 침묵을 다시 생각한다. 침묵은 여러 가지 메시지를 품고 있다. 이미 다른 방식으로 표현하고 있는데 당신이 못 듣고 있어서 힘들다는 서운함의 표현이기도, 아직 상처가 아물지 않았다며 뱉는 신음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갇혀 있어서 진공 상태에 있다가 무언가 서서히 열리며 피어오르는 불씨이기도, 당신과 이 공간이 이야기를 꺼내기 믿을 만한 곳인지 가늠할 시간이 필요하다는 요청이기도 하다. 침묵을 불안이 아닌, 다른 방식으로 사유하는 것만으로도 불안은 희미해진다. - P250

목소리를 가진다는 것은
단순히 무언가를 말할 수 있다는 뜻만은 아니다.
그것은 또한 역할을 가진다는 것,
주체성을 가진다는 것,
"이 경찰이 폭력을 쓰는 것을 내가 목격했습니다"라는 말이든
"아니, 너랑 섹스하기 싫어"라는 말이든
"내가 꿈꾸는 사회는 이렇습니다"라는 말이든 남들에게 영향을 미치는 말을 할 수 있다는 뜻이다.
- 리베카 솔닛, 《이것은 이름들의 전쟁이다》 - P2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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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괴롭다면, 숨고 싶다면, 나는 왜 이 일을 할까? 왜 굳이 드러낼까. 표현할까. 지난 7년간 망설일 때마다 스스로에게 물었다. 나는 누구에게 어떤 이야기를 전하고 싶은 걸까? 이 질문이 있었기에 드러내는 쪽으로 몸을 기울일 수 있었다. 나에게는 하고 싶은 말이 있었으니까. 편견을 먹고 자라는 성장 위주의 언어가 아닌, 편견을 해체하고 세계를 돌보는 언어. 배제가 아닌 연대의 언어. 나를 자유롭게한 언어. 당신에게도 꼭 닿길 바라는 이야기들. 자유들. 그이야기를 전할 때만큼은 익숙한 문장을 뒤로하고 용기 낼 수 있었다. - P6

나는 아직 더 많은 이야기들이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인종, 계급, 젠더, 섹슈얼리티, 장애, 연령, 이주 상태 등 다양한 영역에서 정상 규범을 강화하는 단일화가 주위를 감싸고 있는 이 세계에 더 다채롭고 아름다운 이야기가 흘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 이야기는 다른 누군가의 말이 될 수도 있지만, 누구보다 우리 안에 가라앉은 이야기에서도 찾을 수 있다. - P9

나는 신뢰받지 못했다. 모두에게 친절하게 굴며 간결하지 못한 화법이 몸에 밴, 꾸미는 걸 좋아하는 여자. 그건 사회에서 주입받은 ‘여자’의 모습이었고, 신뢰와 거리가 멀어지는 일이었다. 물론, 나도 불편한 상황에서는 싸늘한 눈빛으로 무표정을 짓기도 한다. 화장과 렌즈를 생략하고 안경을 낀 채 앞에 서는 날도 있다. 고개는 끄덕이고 싶을 때만 끄덕이며 싫은 건 정확하게 싫다고 표현한다. 특히 타인을 깎아내리며 자기를 과시하거나 자기 주제(위치)를 모르고 함부로 중립이나 평화를 외치는 사람은 참지 못한다. 그런 순간이면 나는 기꺼이 변할 수 있다. 그렇게 표현해도 상대는 자기 관리 못하는 여자가, 감정적으로, 히스테리를 부린다고 받아들이는 게 문제였지만 말이다. 그러니까 사실 모든 말과 태도를 앞서는 건 발화자의 위치라는 사실을 이미알고 있었다. - P39

나는 레즈비언 대통령을 원한다. 에이즈에 걸린 대통령과 동성애자 부통령을 원한다. 건강보험이 없는 사람, 독성폐기물이 쌓인 땅에서 자라 백혈병에 걸릴 수밖에 없었던 사람을 원한다. 열여섯 살에 낙태해본 대통령을 원한다. 두 악인 중 덜 나쁜 자가 아닌, 기꺼이 뽑을 수 있는 후보를 원한다. 마지막 연인을 에이즈로 잃은 사람, 자려고 누울 때마다 죽은 연인을 떠올리는 사람, 연인이 죽어가는 걸 알면서 품에서 그를 놓지 못했던 사람이 대통령이 되기를 원한다. 나는 집에 에어컨이 없는 대통령을 원한다. 병원, 차량국, 복지센터에서 줄 서본 적 있는 대통령을, 실업과 해고를 경험한 대통령을, 성폭력, 동성애 혐오 폭력을 겪고 강제 추방 당한 대통령을 원한다. 마당에서 십자가가 불태워지고, 무덤가에서 밤을 지새워본 사람, 강간에서 살아남은 사람, 사랑에 빠지고 상처 입어본 사람, 섹스를 존중하는 사람, 실수하고 실수에서 배워본 사람을 원한다. 나는 흑인 여성 대통령을 원한다. 치아가 엉망이고 태도가 불량한 사람, 끔찍한 병원 밥을 먹어본 사람, 크로스드레서, 마약에 중독되었던 사람과 회복 중인 사람을 원한다. 시민불복종 운동에 헌신했던 대통령을 원한다.
그리고 나는 왜 이런 일이 불가능한지 알고 싶다. 왜 우리는 대통령이 항상 우리와 동떨어진 세계에 사는 광대여야 한다고: 항상 창녀를 사는 사람이며 결코 창녀여선 안 된다고 배우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왜 대통령은 항상 사용자이며 결코 노동자여선 안 된다고 배웠는지, 왜 항상 거짓말쟁이고 도둑이면서도 결코 잡히지 않을 거라고 배우게 되었는지 알고 싶다.
- 조이 레너드Zoe Leonard, 〈나는 대통령을 원한다! Wanta President〉(1992) - P42

아빠는 내가 사람들을 ‘당당하게‘ 대하지 못한다고 답답해했다. 내가 생각하기에 당당한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의 차이는 성향보다 지위의 문제였다. 사업에 실패하기 전까지 아빠는 다른 사람들에게 지시하고 명령하며 살았다. 나는 한 번도 그런 위치에 있었던 적이 없었다. 아르바이트생이거나 계약직이었던 20대에도, 대필 작가나 외주교정자였던 30대에도 갑보다는 을의 위치에, 때로는 병의 위치에 놓여 있었다. 나는 ‘당당하게‘ 지시하고 요구하는방법을 알지 못했다.
<친애하는 나의 집에게, 하재영> - P55

청소년들을 만날 때마다 ‘가르친다‘는 말의 의미를 곱씹게 된다. ‘가르친다‘는 말은 새롭게 정의되어야 한다. 나이와 권력에 따라 당연히 주어지는 역할로 착각하지 않으려면, 언어에 담긴 위계를 직시하고 그 의미를 비틀어야 한다. 어른/아이의 이분법으로 누군가를 훈육하려는 오만, 평화를 가장한 무지를 경계하기 위해서라도. - P62

내가 일부러 자극적인 단어를 쓰는 건 아니다. 그저 나에게 화두인 이슈를 포장하지 않고 표현하는 거다. 나누고 싶어서, 나눠야 살 것 같아서. 그저 내 소매 끝에 매달린 먼지를 떼듯, 그것을 입 밖으로 꺼낼 뿐이다. 그럼 다른 누군가 입을 뗀다. 그 사람의 목소리가 또 다른 이야기를 부른다. 그렇게 우리는 우리가 꺼내지 않은 말 속에 숨어 있던 뱉고싶은 말을 배운다. 꼭 직면해야 할 이야기가 있다는 사실을 배운다. 누군가 꺼낸 말들 사이에서 내가 꺼내지 않은 말들을 돌아본다. 그렇게 함께 해방하는 감각을 배운다.
말만으로 모든 것에서 자유롭긴 어렵지만, 꺼내지 않고 시작되는 자유는 없으니까. 내 해방이 당신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 당신의 해방이 내 해방과 어떻게 연결되어 있는지를 배운다.
당신이 입을 떼는 그 순간에. - P74

누구나 실수할 수 있다. 말을 통해 타인을 언짢게 할 수도, 상처를 줄 수도 있다. 하지만 글을 쓸 때처럼 대화에도 퇴고의 기회가 있다. 진심으로, 너무 늦지 않게 사과하는 것. 그 일에는 무엇보다 용기가 필요하다. 자존심을 내려놓고, 먼저 사과하면 불리해질 거라는 고정관념을 내려놓고 진심으로 사과하기. 나는 사과하는 법과 용서하는 법을 너무 모르고 지냈던 것 같다. 나는 바란다. 말을 뱉기 전에 신중해지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그보다 기꺼이 사과하는 사람이 되고 싶다고. 초고를 쓴 뒤에 여러 번 퇴고하며 보다 무해한 글로 다듬듯, 말을 뱉은 뒤에도 퇴고할 기회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싶다. - P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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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 - 생활클럽치바그룹의 도전
오자와 쇼지 지음, 조유성 옮김 / 한살림(도서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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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생활협동조합연합회가 2006년에 제시한 생협의 복지 비전
-2020년도 생활클럽치바그룹협의회 행동 방침
-생활클럽치바그룹협의회(설립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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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브리바디 - 모든 몸의 자유를 향한 투쟁과 실패의 연대기
올리비아 랭 지음, 김병화 옮김 / 어크로스 / 2022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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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드는 항상 동시에 두 가지 모두이다. 빈 공간으로 통하는 문이자 그물 혹은 우리다. 그것이 당신을 풀어주는가, 아니면 잡아가두는가? 두 가지 모두 매력적이고 필요할 수도 있으며, 또 무섭고 위험하기까지 할 수도 있다. - P198

이제 혁명은 신경 쓰지 말라. 해야 할 것은 리비도를, 생명의 에너지를 직접 다룰 길을 찾아내는 것이다. 부서진 사람이 만드는 세계는 부서진 세계다. 제약 없는 삶의 에너지를 가진 사람만이 진정한 자유를 다룰 수 있으리라. - P206

태어난다는 것은 다른 사람들과의 관계 네트워크 속에 놓인다는 것이며, 자연스럽고 필연적으로 보일지 모르지만 사회적으로 구축되고 엄격하게 감시되는 언어적 범주 속에 강제로 끼워 넣어지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우리의 몸속에 갇혀 있는데, 이는 그 몸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무엇을 할 수 있고, 무엇이 허용되며 금지되는지에 대해 상충하는 생각들의 그리드 안에 붙들려 있다는 뜻이다. 우리는 그저 배고프고 유한한 개인이 아니라 전형적인 유형이며, 우리가 살게 된 몸의 종류에 따라 엄청나게 다양한 기대와 요구와 금지와 처벌의 대상이 되는 존재다. 자유는 단순히 사드 스타일로 온갖 물질적 갈망을 채우는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우리가 갖게 된 몸이라는 범주에 허용되는 영역 개념이 끊임없이 강화됨에 의해 파괴되는 일 없이, 혹은 방해받거나, 발이 묶이거나 파손되는 일 없이 살아갈 방식을 찾는 문제이기도 하다. - P225

그가 범한 최대의 오류는 자신을 외부 세계로부터 고립시킬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이다. 그것은 불가능하다. 우리의 과거는 우리와 함께 남아 있고, 우리 몸에 자리 잡고 있으며, 우리는 싫건 좋건 간에 대상 세계 속에서 다른 인간 수십억 명과 함께 현실의 자원을 공유하면서 살아간다. 각각의 사적인 몸에 허용된 행동이나 존재 양식에 구체적이고 고통스럽게 제약을 가하는 힘들의 그리드로부터 당신을 보호해줄 수 있는 강철상자는 없다. 도피는 없고, 숨을 수 있는 장소도 없다. 세계에 복종하거나 세계를 바꿔라. 내게 그사실을 가르친 것이 라이히였다. - P2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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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협이 왜 이런 것까지 할까 - 생활클럽치바그룹의 도전
오자와 쇼지 지음, 조유성 옮김 / 한살림(도서출판) / 2022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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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일본 대지진, 후쿠시마 제1원자력 발전소 사고 이후, 경제평론가인 고 우치하시 카츠토스는 먹을거리 Food, 에너지 Energy, 돌봄 Care을 가능한 한 자급함으로써 스스로 지속가능한 지역을 만들어갈 수 있다고 제창했다. 자본주의의 세계화, 시장 원리주의에 대항해 가기 위해서는 사람들의 연대와 참여, 협동을 통해 FEC라는 인간의 기본적 생존권을 지켜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생활클럽의 활동들은 이에 호응한 것이다. - P86

"기본적으로 우리가 꽉 붙들고 있는 건, 협동조합 정신이에요. 협동조합의 일곱 번째 원칙인 ‘커뮤니티에의 관여’가 모든 활동의 밑바탕에 흐르고 있지요. 우리들만을 위한 것이 아니라 커뮤니티의 지속적인 발전을 위해서 활동한다는 것이 협동조합의 기본 방향이기도 하고요. 지역사회 전체를 대상으로 한 배려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이를 위해서는 생활클럽 내부에서 만이 아니라 지역의 다양한 단체들과 협력하고 연계하며, 때로는 의지하는 관계를 맺는 것 또란 필요하다고 느끼고 있어요. 따라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한다‘라는 게 아니라 ‘우리도 한다‘라는 관점인거지요." - P105

바람의 마을은 사업 안내에 ‘태어날 때부터 삶의 마지막 순간까지 인생의 모든 단계에서 필요로 하는 것을 지원하도록 지향합니다‘라고 밝히고 있다. 이처럼 고령자복지, 장애아·장애인서비스, 보육·육아지원, 아동양호시설과 유아원 운영, 생활자 자립지원, 그리고 더 나아가 지역 주민의 생활 지원 등 그야말로 모든 복지 분야를 망라하고 있다. 치바현 내에 7개의 거점 복합시설을 보유하고, 상근과 비상근을 합해약 1,800명의 직원이 움직이는 현 내 최대 규모의 사회복지법인이기도 하다. 이 ‘복지백화점‘은 어떤 이유로, 어떻게 탄생하여 지금에까지 발전해 온 것일까. - P145

인가를 받자 설립 준비는 착착 진행되었다. 먼저, 특양을 운영하는 조직인 ‘사회복지법인 서로돌봄클럽’을 설립했다. 사회복지법인 설립의 기본 요건인 1억 엔의 자금은 생활클럽치바가 냈다. 이 1억 엔을 거출하는 사안에 대해 조합원들로부터 반대의 목소리도 터져 나왔다. 사회복지법인이 되어 버리면 생활클럽생협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이므로, 입소자나 이용자를 조합원으로 한정짓거나 우선순위를 부여할 수 없다. 게다가 설립하는특양의 정원은 단 50명뿐이다. 이런 일에 생협이 1억 엔이란 큰돈을 선뜻 내어도 되느냐는 볼멘소리도 나왔다. 이런 의견에 대해 이케다는 다음과 같이 설득했다.

"사회를 향해서 바람직한 모델을 제시하는 것이 생활클럽조직 본연의 마음가짐이었습니다. 사회의 모델이 되는 특양을 만든다면, 그것이 정부의 기본 기준이 되어서 생활클럽 조합원만이 아니라 여러 사람들이 고르게 혜택을 볼수 있습니다." - P153

"조합원들은 지금까지 만들어 온 내용을 프로인 직원들에게 맡길 수밖에 없지요. 그래서 결국 이 같은 의구심에서 촉발되어 만들게 된게 있어요. 자신들이 생각한 특양의 모습으로 프로들이 제대로 운영해 줄까 하는 질문을 가지고 살피는 것, 자원활동으로 관여해가는 것, 이와 더불어 자금 면에도 지원하는 것. 이 세 가지 기능을 실행하는 단체를 만든 거지요."

이 조직이 바로 ‘서로돌봄클럽을 지지하는 모임‘이었다. 이른바 ‘입도 내고, 손도 내고, 돈도 내는 단체’인 것이다. - P155

치바리 이나게구의 UR도시재생기구단지 그린프라자 손노 지역에있는 ‘생활클럽 이나게 빌리지 무지개와 바람‘은 바람의 마을거점의 하나이다. 도시재생기구가 추진하는 옛 손노단지 재생사업으로 마련된 이곳은 지역포괄케어 실현을 목적으로 치바그룹 전체가 참여하는 형태를 취했다. 바람의 마을 이나게에는 돌봄서비스가 제공되는 고령자 대상 주택 ‘서포트 하우스 이나게‘
를 비롯해서 데이서비스, 소규모 다기능형 거택개호, 방문개호,
정기순회, 방문간호, 방과 후 데이서비스인 아카톤보이나게가있다. 무지개의 거리의 매장 손노도 병설로 입주해있다.
뿐만아니라 앞서 언급했던 CANS도 이곳에 터를 잡고 있으며,
‘특정NPO법인 커뮤니티케어 마을넷‘도 이곳에 본부를 차렸다.
이외에 다른 법인에서 운영하는 재택 클리닉과 레스토랑도 입주해 있다. 이나게와 야치마타 등 바람의 마을의 시설 여덟 곳은 ‘생활클럽 안심시스템‘의 거점으로도 활약하고 있다. - P163

"생활클럽 자체가 설립 이래 줄곧 다양한 사업을 펼쳐 온 생협이지요. 바람의 마을이 노인복지사업만을 운영했다면 아마 활동이 그다지 재밌지 않았을 것 같아요. 하지만 지역의 염원을 생각해 봤을 때에, 요청 받은 것은 노인복지문제만이 아니었지요. 보육, 장애인 등 특정 주제 지원에 한장된 것도 아니었고요. 바람의 마을은 그때그때 지역사회에서 나타나는, 필요로 하는 문제에 대응해가며 유연하게 움직이는 법인이자 운동체이지 않을까 해요." - P165

마치넷의 사업은 ‘주민 주체의 활동 창출에 의한 지역 만들기‘와 ‘안심하고 살아가기 위한 지원과 연계‘라는 두 개의 축으로 구성된다. - P176

제1부에서 소개한 ‘치바그룹협의회 2020년도 방침‘에서 첫 번째로 등장하는 ‘생활클럽 안심시스템(이하 안심시스템)‘과 ’거리의 툇마루‘는 치바그룹 각 단체가 연계해서 활약하는 사업이다.
안심시스템은 지역에 가족, 친구, 이웃과의 교류가 없어 고립된 사람들을 지지하기 위한 목적으로 2014년부터 시작한 활동이다. 일상 생활권역(중학고 권역 정도)을 기준으로 살아가는 모든 지역 주민을 대상으로 하며, 바람의 마을의 아홉 군데의 시설을 거점으로 두고 있다.
안심시스템은 두 가지 사업으로 크게 나뉜다. 그 중의 하나인 ‘안심지원시스템‘은 먹을거리와 환경, 복지 등 여러 생활 문제에 대해, 주민이 주체가 되어 지역에서 서로 지지할 수 있도록 지원한다. 장보기버스 운행이나 어린이식당, 지역식당, 다양한 생활 지원, 살롱, 취미강좌, 치매카페, 육아 이벤트, 교육 지원, 라디오체조, 안부 묻기 등 폭넓은 활동이 이에 해당된다. 고령자, 장애인,생활곤궁자 등 고립상황에 빠지기 쉬운 사람들을 대상으로 한다. 한마디로 표현하면 ‘지역 내에서 삶의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지원시스템인 것이다. 동네에는 전문가가 아니어도, 조금의 시간을 내어주는 것만으로도 이웃의 삶을 지원할 수 있는 분들이 많다. 이런 지역 주민들을 자원활동가로 등록해서, 지원이 필요한 분들에게 연결하기도 한다. 이는 마치넷 설립 이후 꾸준히 실천해 온 일이기도 하다.
한편 ‘안심케어시스템‘은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지역 내에서 삶을 지속할 수 있도록 지지하는 제도이다. 안심케어시스템은 안심지원시스템과 다르게 일정 비용을 지불하고 이용 계약을 맺어 전문적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
안심시스템의 지정 거점 이외에도, 동네 곳곳에 지역 주민의 안식처를 확장하고자 설치한 것이 ‘거리의 툇마루’이다.

"안심시스템은 바람의 마을 거점이 있는 인근 지역에서의 시스템이잖아요. 하지만 거점까지 찾아가지 않더라도, 주민들에게 가까운 공간이 필요하기에 이를 마련하고자 한거예요. 치바그룹 각 단체들과 또 치바그룹에 관련된 워커즈 콜렉티브들 중에서는, 생활클럽 매장, 찻집, 교류스페이스 등 공간을 운영하고 있는 곳들이 있어요. 이런 기존의 장소들을 거리의 툇마루로 등록해서 안심시스템으로서의 기능을 넓혀 가고 있어요. 주민들의 안식처이자 사회 참여의 장이 되는 거지요."

‘여기에 머물러도 좋다‘라는 의미로 마음 편안한 안식처를 제공하는 것이 일차적인 목표이지만,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게 중요하다고 한다. 거리의 툇마루의 목적은 지역 주민이 주체가 되는 ‘지역 공생사회의 실현‘이다. 2020년에는 치바그룹에 ‘안심시스템·거리의 ‘툇마루 추진실‘이 설치됐다. 마치넷은 추진실의 운영을 맡았다.

…….

마치넷의 사업 범위는 매우 폭넓다.

"폭넓은 활동과 행동력을 지닌 것이 마치넷의 특징이라 할 수 있어요. 치바그룹 안에서 무언가 새로운 실천을 해야 할 때에 가장 먼저 나서는 조직이라 할까요. 물론 모자라는 구석도 매우 많지만요. 그룹 차원에서 새롭게 대처할 일이 생겼을 때 그 손발이 되지요."

또한 ‘다양한 사업 경험이 있기 때문에 이런저런 분야나 운영방식에 대응해가는 힘이 있어요‘라고 힘주어 덧붙였다.

그렇다 손 치더라도 이렇게나 다종다양한 일들을 비상근 직원 50명, 등록되어 있는 유상 자원활동가 150명이 해내고 있다. 이들을 통합적으로 묶어내서 지원한다는 건, 어지간한 운영 역량을 지니지 않고서야 불가능한 일이다. 게다가 NPO법인 특유의 경영상의 어려움도 발생한다. 이에 대해 이와가미는 이렇게 말한다.

"위탁사업은 행정의 방향성이 바뀌게 되면 사업 자체가 없어져 버리는 일도 있고, 공모가 원칙이므로 다른 곳에 빼앗기는 경우도 있어요. 인재를 모아 조직체제를 마련해 놓았어도, 사업이 종료되어 버리는 일도 생기는 거죠. 비영리 활동법인은 일정 기준에 의해서 직원을 정규직으로 확보하면서 지속적인 고용을 보장해야 해요. NPO는 무언가 이뤄내고자 하는 의지가 없으면 앞으로 나아갈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의지만 있어서는 사업이 지속적으로 성립되지 못하지요. 그 균형을 잘 맞춰가고자 노력하고 있어요." - P176

지금까지 몇 번이나 별도의 설명 없이 ‘유니버셜근로‘라는 단어를 써 왔다. ‘유니버셜근로‘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일하기 힘든, 삶의 어려움을 안고 있는 사람들이 일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드는 동시에 어떤 사람도 일하기 좋고, 일의 보람을 가질 수 있는 일터 환경을 만들어 가는 방안이다. - P199

"대부분의 사람들은 고용되는 것만이 일하는 방식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그것만이 아니라고, 새로운 노동방식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걸 알아주었으면 해요.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을 실천해 온 한 사람으로서 이 법률이 생긴 것을 계기로 이 새로운 노동의 방식이 확대되기를, 일의 기회가 확장되기를 바래요. 아무것도 없던 불모지에서, 스스로의 힘으로 무에서 유를 창조해 낼 수 있는 게 우리 워커즈컬렉티브이거든요. 한 걸음 내딛는 용기를 가지면, 지금까지 보이지 않았던 세상이 보이게 되지요. 그렇게 한 발짝 옮겨온 그 곳이, 자신에게 편히 기댈 수 있는 안식처가 되어주고요. 워커즈 콜렉티브 운동이 한 발짝 더 나아가기위해서, 저희 연합회도 눈에 보이는 형태의 중간지원을 계속해 갈 수 있도록 해야겠지요." - P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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