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담벼락에 끌고 들어가지 말라>. 조아라 연재 때 재미있게 읽어서 1부 개인지 발매 당시에도 무척 기대되었었는데 1부+1.5부 출판으로 만나게 되니 더 반가운 소설이다.
왕위계승자들이 서로 싸운 끝에 최후의 한 사람만이 살아남아 왕위에 오르는 나라, "오스트레반트 도르커 팔메(혼자 가거라)" 를 말하는 왕국 게외보르트의 왕녀 외르타. 왕위에는 관심 없지만, 왕위를 포기하기 위해 치러야 할 불임 처치는 하지 않았다. 자신의 아이를 갖는 것이 그녀의 꿈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녀의 꿈은 끔찍한 형태로 실현되고 말았다.
세월이 흘러, 라르디슈와 딤니팔 간에 벌어지고 있는 전쟁터. 딤니팔 진영, 딤니팔의 총사령관이자 공작인 발렌시아 앞에 라르디슈 왕비 외르타를 자칭하는 여성이 나타난다. 자국을 배반한 왕비는 서슴없이 고급 정보들을 흘리지만, 적국 총사령관은 왕비가 진짜 왕비 본인이 맞는지조차 확신할 수 없기에 의심한다. 그녀가 품은 증오는 대체 어디서 유래하였는지조차 모르는 발렌시아와 달리, 딤니팔 왕과 수뇌들은 게외보르트 왕녀가 겪은 비사를 기억하고 있었기에 이윽고 딤니팔 진영은 그녀를 받아들여 라르디슈와 싸우게 된다.
외르타의 증오의 원천은 아이였다. 외르타가 갖고 싶어했던 아이는, 외르타의 동기가, 게외보르트가 용납할 수 있는 평민과의 아이가 아닌 이웃나라 라르디슈 왕 로크뢰의 피를 받아 태어났다. 로크뢰는 외르타를 안전하게 소유하기 위해 자신의 피를 이은 딸 아델라이데를 죽였고, 끔찍한 강압으로 시작된 관계를 거부하던 외르타는 거짓 미소를 두른 채 그 날부터 복수의 칼날을 갈기 시작하고, 딤니팔로 망명함으로써 그를 이뤄냈다.
외르타와 발렌시아의 만남, 그리고 외르타와 로크레의 관계를 끝맺은 1부는 마냥 먹먹했다. 외르타가 겪은 일은 끔찍하며, 외르타가 품은 증오의 색은 새카맣다. 상처입다 못해 메말라 버린 자에게 어설프게 동정하여 그 상처 위에 눈물을 흘리느니 차라리 냉철히 선 그어 담담한 자가 오히려 어울릴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1.5부를 읽은 다음, 1부를 보다 깊게 이해했다(그렇다고 1.5부를 먼저 읽기는 애매하지만). 작가님이 창조해낸, 게외보르트, 라르디슈, 딤니팔이라는 각각의 색채가 뚜렷한 세 나라와 인물들의 개성은 이 1.5부에서 더욱 빛을 발한다. 1.5부는 1부에 등장하는 인물들, 혹은 2부에 등장하게 될 인물들이 나오는 외전집이다. 1부를 읽은 뒤 보다 자세히 1부 등장 인물들에 대한, 그 과거에 대한 이야기를 들을 수 있었다.
1.5부를 읽자 2부가 어떤 내용일지, 또 엔딩은 어떤 내용일지 궁금해진다. 외르타가 걸을 미래, 그리고 발렌시아가 걸을 미래. 두 사람의 길은 평행선처럼 쭉 곧은데, 어떤 형태로 겹쳐지게 될까. 그 길에선 또 어떤 모습을 보여주게 될까. 꽤 두꺼운 책을 읽었는데도, 아직 외르타와 발렌시아의 이야기는 초엽에 불과한 느낌이다. 하루빨리 다음 권을 기대하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