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아 청아 예쁜 청아 푸른도서관 28
강숙인 지음 / 푸른책들 / 2009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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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청전. 부친의 눈을 뜨고 싶다는 소원을 위해 공양미 삼백 석 대신 인당수에 몸을 던졌다가 효성을 갸륵하게 여긴 하늘의 도움으로 왕비가 되고 아버지도 눈을 뜨게 된다는, 대략적으로 효 하면 떠오르는 옛날 이야기다.

 

이 <청아 청아 예쁜 청아>는 심청전의 재해석이지만 초점을 둔 부분은 효가 아니라 사랑이다. 여주인공이 청이라면 남주인공으로는 새로운 캐릭터 빛나로가 등장한다. 서해 용왕의 아들 빛나로는 자신을 살리기 위해 죄를 지은 아버지와 어머니를 위해 청이의 사랑을 얻어야 한다. 하지만 청이는 우연히 스쳐간 한 선비에게 사랑을 했고, 인당수에 뛰어들면서도 다음 생에서 그를 다시 만나고 싶다고 생각하고 있다. 처음에는 그저 의무감으로 청이를 원했던 빛나로는 청이를 진정 사랑하게 되었고 그녀의 행복을 생각해 자신의 사랑을 포기한다.

 

'청아 청아 예쁜 청아. 너를 보는 것도 이것이 마지막이구나. 난 이제 용궁으로 돌아가 상제님께 자비를 청할 거다. 날 하늘 뇌옥에 가두어 달라고, 거북이인 채로 영원히 하늘 뇌옥에서 벌을 받겠다고 청할 거다. 대신 아버지와 어머니와 용궁은 예전으로 돌아가게 해 달라고. 아버지가 그런 죄를 지으신 건 나 때문이니 이제 내가 그 죄를 다 받겠다고.'
'오랜 세월을 다시 기다리는 일도, 또다른 누군가의 마음을 얻는 일도 이제 난 할 수가 없어, 내 마음 속에는 오직 너뿐이니까. 어쩌면 상제님께서 자비를 베푸셔서, 내 청을 들어주실지도 모르겠다. 그럼 난 영원히 거북이인 채, 하늘 뇌옥에 갇혀 있어야겠지. 바다보다 깊은 슬픔을 안고. 하지만 내 슬픔이 바다보다 깊어도, 네가 사랑을 이룬다면, 그래서 네가 행복하기만 하다면, 난 더 이상 슬프지 않을 것 같구나.' - p. 119

 

청이는 행복해진다. 빛나로가 뭍으로 데려간 그녀를 구한 것은 그녀가 연모했던 선비였고, 그는 이 나라의 동궁이었다. 연꽃에서 나타나 효의 보답처럼 왕비가 되는 심청전의 청이와 달리, 이 작품의 청이는 동궁과의 사랑을 이루면서-장 승상댁 수양딸이 되어서 신분적 핸디캡을 극복하는 치밀함까지 더해- 빈궁이 된다. 살고 싶다며 거북이를 상대로 눈물짓거나, 부친이 기적적으로 눈을 뜨는 것이 아니라 치료를 하면 나을 수 있다는 가능성을 비추는 등, 여러 면에서 타당한 해석이 나온다.

 

하지만 이 청이에게 그다지 호감을 안을 수 없는 건, 빛나로의 존재 때문이다. 효녀 심청이 소녀 청이로 변해 사랑이 이루어지는 대신, 청이를 왕자비로 꿈꾸었던 빛나로는 영영 결코 이루어지지 않을 짝사랑을 계속해 나간다. 이야기의 중심 가치로 불변의 효보다 불변의 사랑을 택했지만, 어쨌거나 불변의 가치도, 희생하는 사람도 여전히 남아있다. 청이는 보다 현실적으로 원본과 다르지 않게 효와 사랑의 모든 가치를 이루었지만 대신 빛나로는 철저히 비현실적인 희생자적 입장에 섰다. 중요한 건 자신이 끝없이 사랑하는 것이라면서 이루어지지 않는 사랑을 죽 이어나가는 것은 어쩌면 어떤 희생이라도 부모를 위해 마다하지 않는 효성과 참 닮아있지 않은가 싶다.

 

"중요한 건 그런 게 아니랍니다. 중요한 건 아직도 내가 그 사람을 사랑하고 있고, 죽는 날까지 끝없이 사랑할 거라는 사실이지요." - p.142

 

빛나로의 용궁은 돌아왔을까? 만약 빛나로가 하늘 뇌옥에 갇히는 대신 어머니 아버지와 용궁에 돌아왔다고 해도, 그건 진짜 완전한 행복은 아닐 것 같다. 빛나로는 상제가 어여삐 여기는 청이라는 소녀에게 사랑을 하는 것으로, 조금 다른 형태지만 결국 죗값을 계속 치르고 있는 게 아닐까.

 

감상이야 가지가지겠지만 책장을 마지막으로 넘기는 순간 청이나 동궁이나 빛나로에게 실망하는 게 아니라 에이 더러운 세상; 이라고 생각하게 되는 건 '청이에게 실연당한 여러분에게'라는 글 때문인 듯. 녹록한 세상은 물론 없지만... 동화에서나마 녹록한 세상을 꿈꾸어보는 건 안 되는 걸까? 실현되지 못할 고귀한 가치, 현실에서 요구할 수 없는 정당함이라도 그것이 고귀한 정당함이기 때문에 동화의 세계에서나마 이루어지는 걸 꿈꾸는 건. 빛나로가 실연당한 게 현실적이고 이해는 하지만, 해설에서 '이런 게 현실이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음' 이라는 말을 들으니 문득 반감이 치솟는달까; 동화에서 이런 잔인한 현실을 느끼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다. 난 아직 동화에서는 메르헨을 꿈꾸나 보다.

 

/101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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