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프티 피플 - 2017년 제50회 한국일보문학상 수상작
정세랑 지음 / 창비 / 2016년 11월
평점 :
절판


함께 서점에서 일했던 분께 추천 받아 읽었던 정세랑 소설이다.

저번 달 부터 정세랑 작가의 ‘보건교사 안은영‘을 시작으로 신작인 ‘시선으로부터,‘ 그리고 50명이 펼치는 이색적인 스토리에 현혹되어 집어들게 된 ‘피프티 피플‘까지.
제법 머리에 남는 문장들이 많아 쉰 명의 사람들의 연결점들을 이어나가는데 큰 무리는 없었지만, 간혹 가다 알쏭달쏭 할 때는 목차를 참고해 앞 페이지를 뒤적여 가며 재미나게 읽었다.



열 여덟, 세상에게 깨져가고 또 좌절할수록 현실에 대한 자각을 위해 노력하고는 한다.
나조차도 무관심한 어른들과 그리 다를 것 없는 바보 같은 존재라는 사실을 잊지 않도록.

쏟아지는 뉴스들을 보며 오히려 피해자와 희생자들을 향해 날을 세우는 어른들을 볼 때,
누구에게나 일어날 수 있는 불가피한 사고들을 마주하며 그저 유머를 가장한 조롱을 일삼는 또래 친구들을 볼 때,
그리고 그런 주변인들을 보며 아무 말 하지 못하는 나를 볼 때, 지금 당장 내게 닥친 일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멍하니 그들의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때.
‘어쩔 수 없다‘라는 멕아리 없는 변명만을 늘어놓으며 외면해왔던 지난 날들에 대한 환기와 후회로 무거운 마음으로 읽어나간 소설이었다.



‘아무것도 놓이지 않은 낮고 넓은 테이블에, 조각 수가 많은 퍼즐을 쏟아두고 오래오래 맞추고 싶습니다‘ - 작가의 말 중

작가의 말의 첫 구절처럼 우리는 모두 긴밀하게 이어진, 사람을 통해 맞춰져가는, 잊혀져 가는 사람까지도 없어서는 안될 퍼즐 조각들 같다는 생각을 한다.
결국 이 세상을 구성해나가기 위해서는, 무쓸모해 보이는 이들 또한 모두 필요한 존재라는 사실을 일깨워 준다.
필요 없는 생명이 어디 있으며, 무의미한 존재가 어디 있겠나.



부모와 사소한 이야기를 나누더라도 세대 차이의 한계를 실감하고는 한다.
산업의학과를 나와 노동자들의 사업장을 돌아다니며 작업환경을 체크하고 임시 건강검진을 하는 방승화의 에피소드가 가장 기억에 남는다.

조선소에서 일어난 사망사고에 대해 조선소는 원래 그런 데라, 약한 소리 하지마라며 아들의 발언에 심기불편한 아버지를 보고

˝원래 그런 데가 어디 있어요? 사람이 죽어나가는 게 당연한 직업 같은 건 없어야 해요.˝
˝믹서기에 들어가기 싫어하는 건 나약한 게 아니에요.˝

라며 일침을 가하는 주인공이 새삼 멋있어 보이면서도, 어디에서 일을 하던 ‘죽을 각오‘를 해야 하는 이 사회가 너무나 기형적으로 느껴졌다.

주인공의 아버지와 같은 어른이 있는 반면, 자신이 ‘쉽게 늙었다‘며 자신의 한계와 세대의 한계와 가능성을 이야기 하는 슈크림 교수님과 같은 어른도 있다.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 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 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 합니까?˝



매 에피소드마다 사회의 가장 취약한 면들을 떠올리며 암울해지고는 했다.
순간 순간 세월호가 스쳤고, MB의 규제완화 정책으로 목숨을 잃어야 했던 지하철 노동자들이 스쳤고, 가습기 살균 피해자들의 모습이 스쳤다.


우리 사회 이면의 온상을 적나라하게 통찰해 녹여낸 이 소설은 한국인이라면 꼭 아파하고 슬퍼하며, 그러면서도 마음 따스해질 이야기들을 담고 있다.

"눈썹이 너랑 좀 닮은 것 같아."
"사람들이 다 그러더라? 눈썹 위로는 나랑 닮았대."

민희가 그 말을 듣고 좋아했다. 사실 눈썹 위로는 아무것도 없지 않나, 하면서도 의진은 재준의 이마를 골똘히 보았다. 가만 서 있으니 다시 버둥거렸다. 혼자 바닥을 돌아다니면서 노래를 부르는 태엽 도마뱀을 쫓아다니며 재준을 계속 흔들어주었다. 도마뱀이 부르는 동요는 뭉개져서 잘 들리지 않았다. 흥분해서 벌린 입안으로 보이는 재준의 이가 쌀알처럼 희고 가지런했다. 치열도 민희를 닮은것 같았다. 뭐, 아직 이 몇개로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나중에 하나도 기억 못하겠지? 니가 자기를 얼마나 사랑했는지."

의진은 저도 모르게 그런 말을 했다. 우리가, 한사람 한사람이 기억하지 못하는 사랑의 기간들이 얼마나 길까. 갑자기 그런 생각을했더니 눈물이 조금 고였다. 의진답지 않았다. 민희가 보지 못하게등을 돌렸다.

"그래도 괜찮아. 기억하는 나이가 되면 더 좋아해줄 거야" - P141

"나한테 충고 같은 걸 바라는 건 아니지요?"

바라면 안되는 건가, 현재는 희미하게 웃었다.

"젊은 사람들은 착각을 해요. 노인들이 해답을 가지고 있다고 믿지. 별거 없어요. 나는 그냥 쉽게 늙었어요."

"다른 분들은 몰라도 선생님은 다르지 않나요?"

"아부 듣기 좋군요. 나는 충고 같은 거 하기 정말 싫어하지만 소선생이 원하는 것 같으니까 말해주는 거예요. 충고가 제일 싫어. 나는 자격도 없고, 그냥… 우리가 하는 일이 돌을 멀리 던지는 거라고 생각합시다. 어떻게든 한껏 멀리. 개개인은 착각을 하지요. 같은위치에서 던지고 사람의 능력이란 고만고만하기 때문에 돌이 멀리나가지 않는다고요. 그런데 사실은 같은 위치에서 던지고 있는 게아닙니다. 시대란 게, 세대란 게 있기 때문입니다. 소 선생은 시작선에서 던지고 있는 게 아니에요. 내 세대와 우리의 중간 세대가 던지고 던져서 그 돌이 떨어진 지점에서 다시 주워 던지고 있는 겁니다. 내 말 이해합니까?"

"릴레이 같은 거란 말씀이죠?"

"그겁니다. 여전히 훌륭한 학생이군요. 물론 자꾸 잊을 겁니다.
가끔 미친 자가 나타나 그 돌을 반대 방향으로 던지기도 하겠죠. 그럼 화가 날 거야. 하지만 조금만 멀리 떨어져서 조금만 긴 시간을가지고 볼 기회가 운 좋게 소 선생에게 주어진다면, 이를테면 40년쯤 후에 내 나이가 되어 돌아본다면 돌은 멀리 갔을 겁니다. 그리고 그 돌이 떨어진 풀 숲을 서 선생 다음 사람이 뒤저 다시 던질 겁니다. 소 선생 던질 수 없던 거리까지." - P3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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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일인 나에게 가장 오래 본 친구가 선물해 준 그림책.

‘내 장미에 너의 모든 색 스펙트럼이 비칠 테니까,
너의 세상이 무슨 색이라도 사랑해줘. 너의 색을 응원해!‘

라며 유리로 되어 모든 색이 구슬처럼 빛나는 사진들과 함께
구구절절하진 않지만 그렇다고 무심하지도 않은 응원을 보내주었다.

세상은 색으로 가득하고, 마음만 먹으면 무슨 색이든 발견해 낼 수 있다.
어떤 색에 동화되어 내가 그 색의 에너지를 뿜을 수도 있을 것이고.

어떤 사물이든 모두 고유한 ‘색‘을 가지고 있다.
어떤 색이든 변신할 수 있는 이 책 속의 귀여운 주인공 처럼
나 또한 어떤 색이든 녹아들어 자연스레 섞이고 싶다.

팔레트 처럼, 어디에서나, 언제나 그렇게 섞이고 싶다.

쌀쌀한 봄의 기운 속 발견한 보라색으로 새로움을 꿈꾸는 주인공이 마냥 사랑스럽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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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영의 삐삐 책방에서 사들고 온 ‘보건교사 안은영‘.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한 책이었는데, 유독 이런 판타지? 비스무리한 장르 소설에는 워낙 일가견이 없는 사람이라 여태껏 주저해왔다. 언젠간 손에 쥐어지리라 여겼는데 그게 바로 오늘일 줄이야.

책방지기님의 추천으로(엄청 흥미진진한 줄거리 설명에 홀라당 넘어가버렸다!) 에라 모르겠다 질러버린 이 책. 생각보다 정말 가볍게 읽혔다!

서점에서 일하며 호기심에 몇 장 펼쳐보며 ‘난해하기 그지 없네‘ 생각함과 동시에 책장을 덮었던 기억이 난다. 어후. 무지하고 편협하기 짝이 없는 그 놈의 고상한 취향은 틀림없는 내 것인데, 가끔 이렇게 쓸 데 없는 고집을 피울 때가 있다. 이제서야 깨닫는다. 편협과 무지와 편견으로 가득한 내 뇌의 구조가 궁금해진다.

마음 같아서는 은영의 장난감 칼과 비비탄 총알로 이 고상함들을 다 말살해버리고 싶은데 말이다.

사실 감상적이고 마음을 울리는 감동적인 소설들을 주로 읽어왔던 유년시절의 영향 탓인지 유독 이런 장르 소설에는 거부감을 느꼈던 터라, 언제나 요즘 소설들의 정서나 분위기에 쉽게 적응하지 못한다는 것을 깊게 느낀다. 이제서야 나도 열 여덟이 되어가며 세상의 현실과 마주하고 마냥 따스한 사람들과 이야기들은 없을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품기 시작했지만. 시작했지만 나도 내가 왜 유독 문학에서는 눈물이 핑 도는 따스함을 갈망하는 건지는 잘 모르겠다.

젊은 작가 시리즈는 언제나 내게 차갑고 허구적으로 다가오면서도 무어라 말 할 수 없는 트렌디함과 독특한 세계관들이 돋보이는 흥미로운 책들이다.

버스에서부터 저녁을 먹기까지, 팬텀싱어의 시작과 끝을 모두 보면서까지 이 책을 놓고 싶지 않았다. 네 시간 남짓, 훌쩍 넘어가버린 페이지 수가 괜시레 아쉬워지는 순간이었다.

허무맹랑한 로멘스가 아닌, 어딘지 모르게 엉뚱하면서도 독창적인 인표와 은영만의 사랑이 돋보였다. 꼭 두 남녀의 사랑 뿐만 아니라 사랑으로 이어진 세상에 대해(사랑만이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그 사랑이 가지는, 친절이 가지는 힘에 대해, 정의에 대해 이야기 하는 듯 보였다.

이렇게 말하니 감성 착즙단의 수장 같지만, 정말 그랬다. 은영의 의무감과 책임감. 자신에게 주어진 운명을 좀처럼 잘 품기란 어려웠을텐데 기꺼이 자신을 받아들이는 은영. 그 운명을 통해 친절을 베푸는 이 당찬 여성 히어로에 대해서는 정말 오장육부로 박수를 쳐 주고 싶을 만큼의 쾌감과 존경심이 떠올랐다. 틱틱대며 할 건 다 해주는, 기충전 담당 인표 또한 현실에 있을 법한 캐릭터였다.

보는 내내 피식피식 웃었던 기억이 난다. 터무니 없음과 툭 내뱉는 듯 하지만 잘 정제된 적당한 유머러스함이 읽는 이에게 즐거움을 선사했다. 드라마화 된다고 하는데, 이런 장면들 가능하려나 하며 읽느라 몰입에 조금 방해가 되었다. 원작의 재미는 절대 못따라 갈 듯 하다. 읽으며 그것만은 확신했다.

주인공들 뿐만 아니라 등장하는 여러 인물들과(주로 학창시절과 관련된) 어딘지 모르게 모자라보이는 매켄지의 하찮음까지 너무 재미난 포인트들은 넘쳤다.

나도 보건교사 안은영을 찾아가서 내 끊어진 발목의 원인을 규명 받고 싶었다. 내게도 옴이 붙은 것일까?! 위 절제술을 한 백혜민 덕에 원인이 옴인지는 알 수 없겠지만 어찌 되었든. 그들이라면 무엇이든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는 인간에게선 느낄 수 없는 무한한 가능성을 상상하게끔 했다. 해결하는 과정에서의 인간미는 있지만 말이다.

은영과 인표가 알고보니 한 쌍이었고, 든든한 파트너이자 기충전 메이트라는 사실이 뒤로 갈수록 선명해지니 흥미진진 했던 것 같다. 아 유쾌한 소설. 재미난 환상.

왠지 베스트 서가는 읽고 싶지 않았다. 오기 때문일까 내 안목이 대중의 픽보다 믿을만 하다고 생각해서 일까. 이제야 막 아무데나 손 뻗어보기 시작한 자식이 쓸데 없이 존심만 세서 탈이다. 베스트 서가에 있던 ‘시선으로부터,‘도 기꺼이 도전해보고 싶은, 정세랑 작가의 매력과 센스가 가득한 책이었다.




"나? 너보다 훨씬 고급 능력자. 그렇게 첨벙첨벙 다 잡아없애고 돌아다니면 뭐 해요? 돈 되는 일을 해야지."

문득 아주 오랫동안 움직이지 않았던 마음의 한 부분이 잠시 경련을 일으키듯 움직였다. 은영도 언젠가 그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이렇게 위험하고 고된데 금전적 보상이 없다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이다. 하지만 은영의 능력에 보상을 해 줄 만한 사람들은 대개 탐욕스러운 사람들이었다. 좋지 않은 일에만 은영을 쓰려고 했다. 아주 나쁜 종류의 청부업자가, 도무지 되고 싶지 않았다. 은영은 다른 종류의 보상이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가, 어느새부터인가는 보상을 바라는 마음도 버렸다.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고 해서 자신의 친절함을 버리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은영의 일은 은영이 세상에게 보이는 친절에 가까웠다. 친절이 지나치게 저평가된 덕목이라고 여긴다는 점에서 은영과 인표는 통하는 구석이 있었다.

만약 능력을 가진 사람이 친절해지기를 거부한다면, 그것 역시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가치관의 차이니까. - P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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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30
박시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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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사2 중

갈망은 기도를 낳았다.
기도는 절망을 낳았다.
롤로는 다만 아무것도 낳지 않고 싶었다.
낳는다는 건 퍼져나가는 일이지.
퍼져나가고 싶지 않았다.
롤로는 그러나 낳고 또 낳았다.
퍼져나간 그림자에서 잎사귀가 또 돋아났다.
- P1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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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언가 주고받은 느낌입니다 문학동네 시인선 130
박시하 지음 / 문학동네 / 202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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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는 참 재미있다. 시인들의 언어를 통해 느끼는 세상은 살고 있음에도 일상을 새롭게 한다. <죽은 새>와 <물고기>라는 시를 읽으며 시인이 비거니즘을 실천하며 살고 있는 걸까 하는 생각도 들었다.

역시 읽는 이로 하여금 각자가 추구하는 방향대로 흘러가기 마련인가 보다. <죽은 새>를 읽으며 한 달 전에 있었던 새의 죽음에 대해 생각했다. 유리창에 얼굴을 박고 죽어버린 작은 생명.

˝인간이 미안해˝

라며 무게를 담은 말 한마디와 함께 핑계와 새를 함께 묻어주었던 기억. 절친하고도 사랑하는 친구와 함께였는데, 그 자그마한 아이가 피로 떡져서 떼어낼 수가 없는 그 처참하고도 착잡한 마음에 있는대로 꽃을 뜯어왔다.

비로소 나는구나. 너는. 아니, 그곳에서도 날 수 있는걸까?

날아갔다고 믿기로 했다.
날아간 그곳에서는 네가 펼치지 못할 날갯짓을 온전히 누릴 수 있기를.

너보다 나은 것 하나 없는 인간이 참 미안하다.
지난 날의 과오와 지금의 죄를 회상하게 해 준 고마운 시.

새를 향한 묵념.
묻어주자는 말을 먼저 꺼내준 내 소중한 친구의 반성에 존경을.

<죽은 새>

흰옷을 입은 음악

죽음이 준 꿈

잘린 깃털

검은 물

피 흐르는 얼굴날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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