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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나 인간적이지만 현실감각 없는 당신에게
발타자르 그라시안 지음, 임정재 옮김 / 타커스(끌레마) / 201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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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판절판


400년 전 철학자의 아포리즘이 마치 인생의 조언자처럼 다가왔다.
정말 존경하는 분이 던져준 책인데 명언들만 가득해 일반적이고 진부한 자기계발서라 생각하고 묵혀뒀다. 그런데 뜻밖에도 4~6년 만에 다시 펼친 이 책은 지금을 살아가는 내게 큰 지혜와 용기를 얻게 해주었다.

언제 빌려주셨는지도 긴가민가 한데, 그 때는 너무나 어려서 읽어봤자 별 도움이 될까 싶었던 책이 관계와 일, 일상에 대한 고민으로 침체기를 맞는 지금 상황과 딱 맞아 떨어졌다.

발타자르 그라시안. 생소한 사상가다. 대학에 간다면 철학과에 가고 싶은 내게 철학은 항상 뜬 구름 잡는 이야기, 내지는 당장 펼쳐지는 일상에 써먹기엔 너무도 방대하고 어려운 학문으로 다가왔는데 이 책은 현실에 기반한 실질적 태도에 대한 길라잡이, 도움을 주는 처세서에 가까웠다.

감성적이고 신중한 나는 뜻 밖의 일을 만나면 멘붕에 빠지곤 했다. 큰 일이 생기면 소심해져 결정을 미루고 미루는 나는 대담함과 현명함이 부족하다. ‘쉬운 일은 신중하게 어려운 일은 과감하게‘ 라는 말이 크게 와 닿았다. 두려움과 직면하고 감정을 컨트롤 하는 것. 아마 평생의 과제일테지만 만날 때마다 초연하게 맞이할 수 있도록 항상 잘 준비해야겠다고 생각했다.

챕터 하나하나 모두 구체적인 상을 그려보며 지난 날을 돌아보고 앞으로 어떻게 대비하고 대처할 것인지 생각하게 했다.
책장을 넘기다 보면 나의 부족한 면과 사소한 상황 속 대처들을 곱씹으며 스스로에 대한 진단을 할 수 밖에 없었다. 짧은 명언들이 긴 생각에 잠기게끔 나를 붙들었다. 나를 돌아보고 사람을 돌아보고 세상을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아직도 충격이다. 몇 백년이나 된 책을 21세기에 읽는 데도 전혀 무리가 없다니. 삶에 대한 태도의 이야기는 어디 물을 데도 없어 답답했는데 좋은 인생 선배를 만난 기분이었다. 기회가 된다면 같은 저자의 다른 책도 읽어보고 싶다. 언뜻 보니 다 절판 같은데😂 코로나 상황이 좋아지면 헌 책방 투어를 떠나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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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년세세 - 황정은 연작소설
황정은 지음 / 창비 / 2020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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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아버지가 그걸 다 알면서도 우리 자매를 어머니 옆에방치했다는 걸 알았어. 그 두 사람 때문에 괴로울 때마다 아버지는 나더러 잊으래. 편해지려면 잊으래. 살아보니 그것이 인생의 비결이라며. 그 말을 들었을 땐 기막혀 화만 났는데 요즘 그 말을 자주 생각해. 잊어. 도저히 용서할 수 없다면, 잊어. 그것이 정말 비결이면 어쩌지.
하미영은 그런 이야기를 한 끝에 한참 침묵하더니 생각을 분명하게 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 P147

안나가 거기서 살았다면 다르게 살았을 거라고, 안나는 한국에서 덜 외롭고 더 행복하게살았을지 모른다고 노먼은 말했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아. 안나는 안나의 삶을 살았어, 여기서.
- P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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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니가 보고 싶어
정세랑 지음 / 난다 / 2019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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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다. 역시 정세랑.

앞서 읽은 소설들에 비해서 가볍게 읽혀서 그런가 좀 아쉽긴 했다.
그래도 ‘와 이 작가 너무 글 잘 쓴다‘ 감탄하며 읽어내려갔다.


막상 재화와 용기의 에피소드에는 큰 애착이 가지 않았다. 결국 남녀의 로맨스라는 점이 기대치에 미치지 못한 듯 하다. 보건교사 안은영도 그랬는데? 하는 아쉬움이랄까.


재화의 소설들이 정말 예술이었다. 시사하는 바가 컸다고 생각한다.
정세랑 작가는 불편하지 않게 불편함에 직면하는 법을 보여주는 것만 같다.
그 중에서도 나는 <항해사, 선장이 되다>라는 작품이 참 마음에 들더라.


‘기본 상수들이 변했다. 변수가 문제가 아니었다. 상수였다. 우주가 팽창하는 속도가 변했다. 존재하는 항로들이, 지도들이, 축적된 데이터들이 모두 쓰레기가 되었다‘ - 146p


우리가 알 수 없는 미지의 세계에서 변화를 꾀하는 것들은 꿈에도 모르는 새에 모든 설정 값을 비틀어놓는다. 세대의 경험이 그렇고, 5년 내지 20년 안에 멸종할 인간이란 게 그렇고, 더 이상 돌이킬 수 없는 기후변화가 그렇다. 이에 대처하는 자세, 담담히 운명을 받아드리고 제 본부를 다하는 항해자의 태도가 인상적이였다. 저런 사람이 되고 싶다 스치듯 생각했나?




용기의 몸 곳곳에 재화의 소설 마지막 구절들이 적히는 장치가 인상적이었다.
결국 각인되는 존재인 것이다. 우리는 서로에게. 잊을래야 잊을 수 없는 사람이다. 스치듯 지나간 사람이라도 인생의 마지막 순간까지 어떻게든 연결되는 삶과 관계. 이 어려운 이야기를 정세랑이 풀어낸다. 정세랑이 해낸다! 피프티 피플과 닮은 두드러진 특징이 아닐까.

어떻게 이리도 톡톡 튀는 스파클링 같은 소재들을 생각해내는건지 정세랑, 그가 알고 싶다!! 메인 스토리와는 별개로 재화의 단편은 너무도 다양한 주제의 폭넓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점이 놀라웠다. 어쩜 이렇게 유쾌하고 재미질 수가 있지. 작가님 정말 팬이에요.

재화의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항상 누군가를(용기를) 죽이며 끝난다는 점이겠지만, 그 방법이 독자인 내게는 결코 난해하거나 거북하지 않았다. 죽음인데도 그랬다. 암울하고 어둑해보이지만 유쾌한 일상의 블랙코미디 같았다. 재화의 그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알 것도 같기에 오히려 나를 투영하며 읽었다. SF, 아포칼립스 등 장르를 오가는 다소 심란한 소설에서 왠지 모를 인류애를 느꼈다.

용기 특유의 인물 설정 재질이 뭔가 멍청하게 느껴져서, 괜히 귀여워서 유심히 봤다. 비정규직 노동자로 일하며 느꼈던 심정을 이야기 한 구절이 인상 깊어 첨부해두었다. 책임진다는 것보다야 자동 운전 모드로 사는 것이 어쩌면 속 편한 삶이 아닐까 아직도 유효한 생각이다. 머리 아픈 것은 질색하는 용기, 남주의 바람과는 별개로 거듭되는 문제들에 나도 꽤나 골치가 아팠다.

선이라는 인물도 개인적으로 굉장히 마음에 들었다. 자신의 사람들에게 최선을 다하는 모습에 제법 어른다운 어른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용력 있고 따스하며 강단있는 여성. 충청도 사투리가 매력적인 그녀. 나도 이렇게 인간적인 인물이 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다른 작품들과는 다르게 흐르는 메인 스토리가 머리에 남기보다는 인물을 오래도록 곱씹어보게 되는 것 같다. 이 책 형식 진짜 무슨 일 ㅠ 너무 이색적이고 특별하게 다가왔다. 개연성이라거나 맞닿는 지점들을 너무도 잘 살리는 것 같다. 작가의 강점이다.

다만, 앞서 읽은 작품들의 임팩트가 크기에 별달리 추가할 코멘트가 떠오르지는 않는다. 재밌다. 멋지다. 잘생겼다. 다만 아쉽다. 빨리 읽혀서 좋았다.


연애는 도움이 되기도 하고 되지 않기도 했다. 되도 않는이야기를 토해내고 나면 조금 괜찮아지는 편이지만, 언젠가이야기가 더이상 생각나지 않으면 어떻게 되는 걸까? 제대로 기능하는 사회인으로, 독립적인 경제인으로 산다는 것은생각보다 대단한 일이며, 간절히 유지하고 싶은 상태이다.
- P55

엉망인 내부를 숨기면서 사는 건 모두가 마찬가지 아닐까? 뭔가 중요한 부분이 고장나버렸다면 더욱 들켜서는 안 된다. 안쪽에 나쁜냄새가 나는 죽은 것들이 가득하다는 걸 상대가 알아버리면바로 도망치고 말 테다. 용기가 그랬던 것처럼.
- P55

나는 오늘도 네 좌표를 알지 못해, 우리의 좌표가 어디서부터 어긋났는지 알지 못해. 네가 나빴는지, 내가 나빴는지,
우주가 나빴는지 알지 못해. 그렇게 말할 필요가 있었다.

재화는 정말로 우주선에 있을 법한 작고 딱딱한 침대에서 잠이 들었다. 발끝이 시렸다. 잠결에 엔진처럼 무언가 허밍하는 소리를 들었던 것도 같았다.
- P150

병원에 갔다 오느라 수면 시간이 부족했다. 언제쯤이면 야간 근무에서 벗어날 수 있을지 요원했다. 팀장급은 되어야 그럴 수 있을 텐데, 용기는 팀장이 되기 싫었다. 다른 사람을 책임질 만한 그릇은 못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지시받는 일만 하고 자동운전 모드로 살고 싶었다. 그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란 걸 알면서도.
- P8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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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가서 살 거야.
쇼코는 ‘언젠가는 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도, 스물세 살에도.

-쇼코의 미소
- P9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 P24

엄마가 떠났을 때, 그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앤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우울했었지.‘ ‘영리한 에는 아니었던 것 같아. 큰이모와 작은이모마저도 엄마를 그런 식으로 회상할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응웬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 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 신짜오, 신짜오 - P92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갇아 걸었다.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P116

빙하가 반사하는 빛을 바라보면서 너를 생각해.
백 일간의 백야.
빛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동시에 깨어 있게 해, 나는 여기서 눈을뜨고도 꿈을 꾸네. 네가 저 빙하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햇빛 아래에서 푸른빛을 내던 너의 몸.
빛뿐인 고립 속에서 나는 남극 심부의 얼음을 시추하고 그 얼음에 새겨진 육십오만 년 동안의 기억을 알아내려 해, 나에게 이런 일을 할 만한 용기도 힘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나는 여기에 왔다.
남극과 빙하, 백야와 흑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가 나이로비가 아닌 이곳, 얼음의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했어, 환한 빙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너, 너에 대한 그 환상이 나를 이 얼음투성이 대륙으로 이끌었던 거야.

- 한지와 영주 - P125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한지와 영주 - P164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없을 테니까. 언제든 양껏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고기 가격이 내렸다고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간씩 서서 일할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카엘라 - P217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 신짜오, 신짜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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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란하늘 빨간지구 - 기후변화와 인류세, 지구시스템에 관한 통합적 논의
조천호 지음 / 동아시아 / 2019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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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근현대 역사상 유래 없는 장마가 49일 째 이어지며 수많은 피해를 양산했다.

합천에 살던 소가 80km 떨어진 밀양에서 발견 되었고, 산사태로 인해 수도권의 도로는 통제되어 출근길의 혼란을 야기했다. 또한, 일찍이 하동과 남원, 구례 등은 물에 잠기며 집이 무너져 내리고 곰팡이가 스는 등 막심한 피해를 받았다. 또한 농경지가 침수되어 농가들의 근심걱정은 이어질 전망이다. 도로가 내려앉아 씽크홀이 생기고, 제방은 무너져 내리는 등 재난 상황의 안전과 대응에 대한 해결책을 찾아가고는 있지만, 현재 인력과 인프라로 피해를 막아내기에는 역부족인 것으로 보인다.

어려운 시기에 가장 취약한 것이 들어난다는 말은 사실이었다. 이번 집중 호우에서는 실제로 가장 취약한 계층인 1인 가구, 노인, 유아, 장애인 등 이러한 기상이변을 직접적으로 만든 사람이 아닌 시골의 무고한 사람들이 가장 큰 피해를 받았다. 수도 공급이 중단돼 식수가 끊기고, 가족이 없어 집에 가득 들어찬 물을 빼낼 수가 없는 이들이 생겼다는 이야기다.

그렇기에 우리는 이들을 책임져야 할 마땅한 사유가 존재한다. 피해 받은 사람들을 위해 정부 뿐만 아니라 잘 먹고 잘 살아온 우리 또한 마땅한 비용을 지불해야 한다. 경제적 피해와 인명 피해에 대한 발빠른 해결 또한 가장 중요한 사안이지만, 우리의 포커스는 단순 ‘장마‘에 맞춰져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우리의 언론은 피해 복구를 위한 기부행렬에 참여한 연예인을 칭찬하기에 급급하며, 기후변화로 인한 기상 이변에 대한 언급을 쏙 빼놓고 이 현상을 다루고 있다.

근본적으로 우리는 왜 이러한 집중호우와 맞닥뜨리게 되었는지 알아야 한다. 이 책은 우리가 이미 미미하게 진행되는 듯 하다가 어느 순간 전체 균형이 깨져버리는 ‘티핑포인트‘의 임계점에 도달하고 있다는 사실을 전하며, 현재 우리가 마주한 ‘집중호우‘가 기후변화의 ‘양의 되먹임‘ 현상으로 나타난 작은 ‘징조‘에 불과하다는 이야기를 담담히 이야기 한다. 지구온난화는 단순히 탄소 배출로 이루어지는 현상이 아니다. 지구는 긴밀하게 엮여있는 수많은 관계들 속에서 되먹임 작용을 한다.

어떠한 되먹임들이 일어날 수 있을까? 먼저, 지구온난화로 지구의 기온이 상승하면 바다가 함유할 수 있는 이산화탄소의 양이 줄어듦으로써, 대기의 이산화탄소 농도가 높아진다. 지구의 온도가 3도 높아지면, 그린란드 빙하가 녹음으로 인해 대서양의 순환이 변화하고, 이로 인해 전세계적인 기상 이변을 초래한다.

인간에게 보다 직접적인 되먹임을 살펴보자. 기후에 의존하며 곡물을 생산해내던 농업의 예측 불가능한 기온과 강수량에 의해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 먹고 살 길이 보장되지 못하니 기아가 발생하고, 불안정한 사회가 되어 기후난민이 발생할 수 있다. 선사시대부터 내려오듯, 강의 면적이 점점 사라져 식수가 보장되지 않으면 전세계 사람들이 다시금 전쟁을 벌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이와 같은 되먹임 현상으로 살아남기 힘든 현실과 마주했을 때는, 이미 되돌릴 수 없을만큼 늦었다는 것을 상기할 수 있을 것이다.

우리 인류는 현재 온도에서 2도 높은 지구에서 생존해 낸 경험이 없다. 또한, 당장 내일 일기예보도 알아낼 수 없는 오만한 인간이 기후를 컨트롤 한다는 주장에는 많은 허점이 존재한다. 그레타 툰베리가 말했듯, 우리는 ‘지금‘ 기후위기를 늦추기 위해 앞장서야 한다. 한국이 전세계 탄소 배출에서 제법 큰 비중을 차지하는 만큼, 정부는 함께 사는 터전인 지구를 위한 비용과 노력을 두 배로 해야 할 것이다.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언제나 기후에 의존하며, 기후를 기반으로 한 문화와 체제를 만들어왔다. 홀로세가 지속되는 한 우리는 계속해서 자연과 지구의 환경 아래에서 살아가야 할 것이다. 우리는 지구 앞에서 겸손해야 한다. 만병통치약 따위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지구의 자생효과로 이루어지는 ‘음의 되먹임‘ 현상을 일깨우려면, 우리는 어느정도 포기하고 지켜나가야 할 책임을 느껴야 한다. ‘기후 변화와 인류세‘, 부제로도 언급되었듯, 홀로세의 시기는 결국 인류에게 달렸다. 1.5도 상승을 막기 위해 우리는 어떤 노력을 할 수 있을까?

락토 생활을 하다가 페스코, 다시 육식의 세계로 역행 해버린 나의 식습관과 비건 생활을 다시 영유해야 할 때가 찾아온 것 같다. 제로 웨이스트, 분리수거 잘하기 등 일상 속 작은 습관을 먼저 기르며, 국가적 차원의 그린 뉴딜 정책을 유심히 지켜보고 직접 운동하는 실천적인 사람이 되고 싶다. 나는 깨끗한 공기를 마시며 살고 싶다. 깨끗한 물을 마시고, 파란 하늘이 보이는 안전한 공간에 살고 싶다. 이러한 욕구가 있으면 이에 따른 책임과 대가가 필요하다는 것을 반드시 기억하며 나의 세대에서 이러한 안일한 고리를 끊어내야 한다.

보다 과학적이고 실재적으로, 기후학에 대한 기초적 지식이 없는 내가 이해하기 쉽게끔 풀어낸 그 어떤 진실보다도 진실다운 이야기를 담고 있다. 구름의 역할 , 먼지의 역할, 나무의 역할, 대기의 역할 등 당연하게 여겨왔기에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던 사실들을 다시 깨닫고,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객관적 통계와 사례를 바탕으로 존재론적인 고민마저 하게 만드는 위대한 책이다. 당신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더는 외면하지 말고, 지금 당장 이 책을 펼쳐들기를 바란다.

지구온난화가 일어나면 지구적으로 해양 증발량이 많아져 강수량도 증가하지만, 그보다 더 큰 영향은 대기와 해양 간의 물 순환을 더욱더 빠르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일정하게 내리는 비는 줄어들고 집중호우는 많아진다. 집중호우가 쏟아지면 하천 유출량이커져, 물을 저장하고 사용할 수 있는 효율이 낮아지고 경작지의 토양 침식이 커진다. 반면 공기가 하강하는 지역인 건조지역은 더욱건조해져 가뭄 가능성이 훨씬 커진다. 2012년에 발간된 IPCC 특별보고서에서 현재 20년에 한 번 발생하는 기록적인 집중호우와 가뭄이 앞으로는 각각 5년과 2~5년마다 발생할 것으로 전망했다. - P133

지금까지 지구는 인류가 배출한 이산화탄소가 가한 충격을 스스로 흡수해왔다. 배출된 전체 이산화탄소량에서 육상식물이 30퍼센트, 해양이 23퍼센트를 흡수해 대기 중에는 약 47퍼센트만 머무른다. 또한 바다가 온실가스로 인한 열기의 90퍼센트 이상을 흡수한다. 이처럼 지구는 충격이나 교란이 일어났을 때 불안한 상태를 회복시킬 수 있는 복원력을 가지고 있다.
- P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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