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차가운 모래 속에 두 손을 넣고 검게 빛나는 바다를 바라본다.
우주의 가장자리 같다.
쇼코는 해변에 서 있으면 이 세상의 변두리에 선 느낌이 든다고 말했었다. 중심에서 밀려나고 사람들에게서도 밀려나서, 역시나 대양에서 밀려난 바다의 가장자리를 만나는 기분이라고, 외톨이들끼리 만나서 발가락이나 적시는 그 기분이 그렇게 좋지는 않다고 했다.
"언젠가는 바다를 떠나서, 사방을 둘러봐도 빌딩밖에 없는 도시에가서 살 거야.
쇼코는 ‘언젠가는 이라고 말했다. 열일곱 살에도, 스물세 살에도.

-쇼코의 미소
- P9

어떤 연애는 우정 같고, 어떤 우정은 연애 같다. 쇼코를 생각하면 그애가 나를 더이상 좋아하지 않을까봐 두려웠었다. - P24

엄마가 떠났을 때, 그녀를 위해 울어줄 수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그앤 어릴 때부터 예민하고 우울했었지.‘ ‘영리한 에는 아니었던 것 같아. 큰이모와 작은이모마저도 엄마를 그런 식으로 회상할 뿐이었다. 그제야 나는 엄마가 사랑이 많은 사람이라고 말하던 응웬 아줌마를 떠올렸다. 그녀는 세상 사람들이 지적하는 엄마의 예민하고우울한 기질을 섬세함으로, 특별한 정서적 능력으로 이해해준 유일한사람이었다. 아줌마의 애정이 담긴 시선 속에서 엄마는 사랑받아 마땅한 사람으로 보였었다.

아줌마라고 해서 엄마의 모든 면이 아름답게 보였을까. 엄마의 약한 면은 보지 못했을까. 아줌마는 엄마의 인간적인 약점을 모두 다 알아보고도 있는 그대로의 엄마에게 곁을 줬다. 아줌마가 준 마음의 한 조각을 엄마는 얼마나 소중하게 돌보았을까. 그것이 엄마의 잘못도 아닌 일로 부서져 버렸을 때 엄마가 느꼈던 절망은 얼마나 깊은 것이었을까.

- 신짜오, 신짜오 - P92

이십대 초반에 엄마는 삶의 어느 지점에서는 소중한 사람들을 만날수 있으리라고 생각했다. 어린 시절에 만난 인연들처럼 솔직하고 정직하게 대할 수 있는 얼굴들이 아직도 엄마의 인생에 많이 남아 있으리라고 막연하게 기대했다. 하지만 어떤 인연도 잃어버린 인연을 대체해줄 수 없었다. 가장 중요한 사람들은 의외로 생의 초반에 나타났다. 어느 시점이 되니 어린 시절에는 비교적 쉽게 진입할 수 있었던관계의 첫 장조차도 제대로 넘기지 못했다.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이 생의 한 시점에서 마음의 빗장을 갇아 걸었다.

- 언니, 나의 작은, 순애 언니 - P116

빙하가 반사하는 빛을 바라보면서 너를 생각해.
백 일간의 백야.
빛은 사람을 취하게 하고 동시에 깨어 있게 해, 나는 여기서 눈을뜨고도 꿈을 꾸네. 네가 저 빙하 앞에 서 있는 것 같다. 햇빛 아래에서 푸른빛을 내던 너의 몸.
빛뿐인 고립 속에서 나는 남극 심부의 얼음을 시추하고 그 얼음에 새겨진 육십오만 년 동안의 기억을 알아내려 해, 나에게 이런 일을 할 만한 용기도 힘도 없다는 걸 알아.
그런데도 나는 여기에 왔다.
남극과 빙하, 백야와 흑야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면서 어쩌면가 나이로비가 아닌 이곳, 얼음의 땅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했어, 환한 빙하 앞에 우두커니 서 있는 너, 너에 대한 그 환상이 나를 이 얼음투성이 대륙으로 이끌었던 거야.

- 한지와 영주 - P125

"기억은 재능이야. 넌 그런 재능을 타고났어."
할머니는 어린 내게 그렇게 말했다.
"하지만 그건 고통스러운 일이란다. 그러니 너 자신을 조금이라도무디게 해라. 행복한 기억이라면 더더욱 조심하렴. 행복한 기억은 보물처럼 보이지만 타오르는 숯과 같아. 두 손에 쥐고 있으면 너만 다치니 털어버려라. 얘야, 그건 선물이 아니야."

- 한지와 영주 - P164

엄마의 감사 타령 속에서 그녀는 오히려 엄마의 초라한 현실을 봤다. 언제든 외식할 수 있는 사람이라면 굳이 그런 일에 감사할 필요가없을 테니까. 언제든 양껏 돼지고기를 먹을 수 있는 사람이라면, 돼지고기 가격이 내렸다고 감사할 필요가 없을 테니까. 돈이 있다면, 부유한 부모나 남편이 있다면 통증을 견뎌가며 매일 열 시간씩 서서 일할수 있음을 감사할 필요가 없을 것이므로, 그녀는 차라리 엄마가 스스로의 처지에 솔직해져서 불평하기를 바랐다. 초라한 현실에 대한 엄마의 감사가 얼마간은 기만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미카엘라 - P217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나는 투이의 유치한 말과 행동이 속깊은 애들이 쓰는 속임수였다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그런 아이들은 다른 애들보다도 훨씬 더 전에 어른이 되어 가장 무지하고 순진해 보이는 아이의 모습을 연기한다. 다른 사람들이 자신을 통해 마음의 고통을 내려놓을 수 있도록, 각자의 무게를 잠시 잊고 웃을 수 있도록 가볍고 어리석은 사람을 자처하는 것이다.

- 신짜오, 신짜오 - P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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