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쥐 이야기 청소년시대 2
토어 세이들러 지음, 프레드 마르셀리노 그림, 권자심 옮김 / 논장 / 2014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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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를 단박에 알아봤다. 여전히 민들레 술에 절어 굼뜬 몸으로 인간이 나타나자 약삭빠르게 자신의 몸을 숨기지도 못한 채 인도 끝에 걸쳐 진 그의 뒷다리 하나가 내 시야에 들어왔다.

 

컴컴하고 냄새나는 하수구에서 앞발을 이용하여 무언가에 열중하는 쥐들이 있다. 엄마 쥐는 깃털과 여러 과일의 색을 이용해 화려한 모자를 만들고 아빠 쥐는 하수구 안에서 둑을 쉼 없이 만들어낸다. 그들의 아들, 몬태규는 엄마가 사용하고 남긴 물감을 이용해 조개껍데기에 세심하고 아름다운 그림을 그려 넣는다. 그 순간만큼 그는 행복하다. 하지만 이건 그들처럼 앞발을 사용하지 않는 쥐들로 인해 비웃음을 사기도 하고 무시를 당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앞발을 사용하지 않는 일명 부자 쥐들은 더 이상 대가없이 무언가를 생산하지 않는 인간을 닮았다. 욕조에 물을 받아 목욕을 즐기기고 하고 리본을 달아 나머지 쥐들과 자신들을 구분하기도 한다. 나아가 갑을 관계를 드러내는 직업들도 보인다. 그들은 최종적으로 돈을 쫒는다. 기득권을 가진 쥐들의 명령에 굴복한 나머지 쥐들은 우리들의 보금자리를 사수해야 한다는 명목으로 고개를 쳐들어 파란 하늘을 한 번 올려다 볼 여유도 없이 매일 땅에 코를 박고 끙끙거리며 혹시나 길거리에 떨어져 있을 동전 모으기에만 혈안이 되어있다.

 

하지만 구분 아닌 구분으로 양분된 쥐들의 사회를 위기에서 구하는 건 무시당하고 차별받던 앞발 사용자쥐들이다. 돈에 눈이 먼 쥐들에겐 아무짝에도 쓸모없던 조개껍데기가 호기로운 무니 삼촌과 영악한 장사꾼 쥐에 의해 하루아침에 예술 작품을 알아본 미술관장에 의해 어마어마한 돈으로 환산된다.

 

쥐들 사회에서 영웅이 된 몬태규의 휑가레는 바로 무니 삼촌의 희생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몬태규는 삼촌의 죽음을 경험한 후, 한동안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앓게 된다. 그 시간을 거쳐내고서야 몬태규는 한 단계 성장한다. 또한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눈 뜨게 한 이자벨, 그녀와의 사랑도 얻게 된다.

 

더위가 한풀 꺽이고 파란 하늘 위로 가을햇살이 내리쬐는 어느 날 아침, 쥐 한 마리를 본 것은 사실이다. 예전 같으면 자동반사적으로 비명이 새어져 나오고 그 자리를 빨리 피하고만 싶었을 테지만, 인간의 모순을 뒤집어 쓴 쥐들의 이야기를 읽고 난 이후로 당분간 내 눈에 띈 쥐들은 몬태규와 이자벨, 무니, , 엘리자베스로 보일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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