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협찬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정도까지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걸까. 작가가 쓴 소설이 그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닌지 독자들은 늘 궁금해한다. 혹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진다. 이렇듯 문학은 리얼리티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때가 많다. 그러나 여기 온전히 작가의 경험과 인생을 솔직하게 담아낸 소설이 있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품는 생각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되어 인간에 대한 약한 혐오감을 끊임없이 느끼게 한다. 이 혐오감은 소위 말하는 인류애가 망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나 사소해서 신경을 계속 긁는 혐오감이다. 서로에게 솔직하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혀있는, 예의바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본질은 경박한, 인간 사이의 관계 생성이 물질적으로 환원되기 시작한 어느 시대에 인연을 끊는 일조차 돈으로 완성되는 일을 겪은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가 언제나 가장 좋아했던 일본 작가였다. 어느정도 전작주의 경향을 지닌 내게 <한눈팔기>는 5번째 정도 되는 나쓰메의 소설일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일본의 대작가라 하면 자주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겠지만 내겐 늘 일본 대작가는 나쓰메였다. 두 작가의 스타일이 달라 비교불가능한 범주겠지만 무너져가는 현대인의 쌀쌀한 마음풍경과 무너져내리는 세계의 변화를 주제로 삼았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존재, 바로 그 대타자의 몰락이 주체의 중심을 잃고 허무에 빠진 이들을 염세적으로 그렸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나쓰메의 여러 작품들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닮아있다.

특히 <한눈팔기>는 어느 부부의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일순간 파양되어 본가로 돌아와 예쁨받지 못하고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입양은 호의나 애정이 아니라 그 부부의 노후대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어리지만 눈치가 빠르고 영특했던 나쓰메는 자신에 대한 부부의 집요한 질문에서 경제적으로 계산된 심리를 잡아챈다. 가령 소설 속에서 어린 겐조에게 양부모는 “너의 엄마 아빠는 누구지?”라고 묻는다. 겐조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르킨다. 다음 질문이 그를 시험이라도 하듯 던져진다. “그럼 너의 ‘진짜’ 엄마 아빠는 누구지?”. 아이에게 충분히 폭력적인 질문이다. 아이러니는 그들의 이런 언행에는 일종의 애정도 함께 곁들여 있었다는 점이다. 분노나 슬픔과 같은 감정적 상처가 사랑과 애정의 정서와 결합할 때 이것은 세상 그 어떤 폭력보다 마음을 에이는 트라우마로 변할 수 있다.

애초에 연이 끊긴 양부모가 영국유학을 끝내고 대학 교수로 소소한 돈을 벌며 지내는 겐조를 찾아온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니 부양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대놓고 말할정도로 뻔뻔하진 않지만, 바로 이 때문에 오히려 겐조는 이들을 더 뻔뻔하다 여긴다. 사실 겐조는 자신의 가족들도 경제적으로 힘들며 아내의 친정또한 기울어지기 시작한터라 스스로도 충분히 여유있게 생활하기는 커녕 자신도 쪼들리며 사는 신세다. 그러나 앞으로의 돈에 대한 요구와 양부모와의 인연을 확실히 끊고 싶어 그들에게 돈을 내놓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서로에게 짐지웠던 마음을 돈으로 연결했다가 어느새 끊어내는 이 아이러니는 너무나 쓸쓸하다.

나쓰메는 이렇게 물질화되고 있는 일본 근대화의 풍경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가닥가닥인 인물들의 마음 풍경을 진솔하게 드러내어 비판한다. 여기에서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겐조와 그의 아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전혀 드러내지도 맞추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불행한 부부관계의 영원회귀를 서로가 원을 돌고 도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나쓰메는 영국 유학까지 다녀오고 신문물을 흠뻑 받아들인 지식인인 자신을 가부장적 인물로 묘사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교육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냉소하듯 비판한다. 소설 속 겐조의 아내는 그를 현실이 아니라 텅텅 빈 이론만 추구하는 이라 욕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는 나쓰메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롱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신이 죽었다. 아시아의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굳건했던 시스템들이 무너졌다. 대타자의 몰락은 현대인들의 삶에 준거점들을 삭제했다. 모두가 중심없이 흔들거리며 사는 시대다. 나쓰메의 문학세계는 이런 시대 속에 살아가는 개인과 시대를 함께 꿰어낸다. 자신이 진리라 믿고 체화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내면의 심리를 투명하게 묘사하는 나쓰메의 필체는 내겐 너무나 섬세하게 느껴져서 그의 글을 읽는 와중 주인공들이 가진 죄책감까지 전달될 정도다. 이상할 정도로 균형을 잃어 잘못 나아가고 있다는 그 감각이 나쓰메의 소설에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아이러니는 나는 왜 나쓰메 소설이 가진 원죄의 감각이 내겐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일수도. 우리는 모두에게 죄를 지으며 방향없이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 @eulyoo 로부터 제공받은 책의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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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 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윤석남 그림, 김이경 글 / 한겨레출판 / 2021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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싸우는 여자들, 역사가 되다. 

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

윤석남 그림, 김이경 / 한겨례 출판 



3.1절이었던 3 1일과 세계여성의 날인 3 8 사이에 읽은 책이다. 의미가 다소 다른 날은 책을 읽기 전까지 내겐 희미했던 약한 고리였다. 하지만세상을 뒤흔든 여성독립운동가 14인의 초상이라는 부제를 지닌 책을 꼭지씩 읽어가자 처음엔 존재하지 않았던 고리가 얕은 그림자를 드러내더니 이내 선명해졌다. 사실 그것은 바로 자리에 존재하던 고리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자신에게뿐 아니라 우리의 모든 역사에서 잊혀졌던 사실이었다. 


역사에서 지워진 위대한 여성들을 발견하는 많은 작업들이 논픽션과 픽션을 불문하고 다양한 영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미국의 미술사가 린다 노클랜은 < 위대한 여성 미술가는 없는가>라는 글에서 위대함또한 젠더화되어 있으며 이제 많은 여성들을 발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얼마전 읽었던 소설 <잃어버린 단어들의 사전> 옥스퍼드 사전 편찬에 참여했지만 결코 공식적으로 인정받지 못했던 가상의 여성을 주인공으로 내세운다. 그리고 동류의 작업을 한국의 윤석남 화가와 김이경 작가가 협업하여 위대한 여성독립운동가들을 세상에 드러낸다. 


그러나 독립운동에서 여성들에 대한 자료는 충분하지 않다. 김이경 작가는 최대한 많은 자료를 참조하여 14인의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다양한 방식으로 재현한다. 탄탄한 연구를 통해 여성독립운동가의 삶을 독백, 일기, 운동가의 인터뷰, 혹은 운동가를 둘러싼 주변 인물들의 인터뷰, 혹은 픽션이라는 다양한 형식으로 재구성해 현실감을 더한다. 현대의 언어로 다시 쓰여진 독립운동가의 삶은 윤석남 화가의 터치로 눈빛을 얻는다. 초상화를 많이 감상해본적이 없는 나지만 이들의 얼굴을 보며 감탄한다. 바로 싸우는 여성들의 투박하면서도 맑고 이글거리는 강인한 얼굴이다. 


여성들은 조국을 탄압하는 일제와 싸웠고 프롤레타리아를 억압하는 봉건제와 싸웠다. 그리고 동시에 남성독립운동가들이 지지 않았던 꺼풀의 짐을 짊어진다. 바로 가부장제다. 여자는 독립운동을 없다거나 독립운동을 하는 여성들은 너무 억세서 여자다운 매력이 없다는 남성들의 말은 모든 이를 위한 대의조차 남성들의 전유물이 되는 상황을 여과없이 보여준다. 그럼에도 남성들의 회유가 아니라 자신의 힘과 운명을 믿었던 여성운동가들의 삶은 현대의 우리에게도 무언의 메세지를 전한다. 


페미니즘 운동의 흐름이 다양하게 분화되고 양상이 격화되고 있는 지금 여성독립운동가들의 투쟁과 연대는 우리 세대가 갈등과 균열에 빠질때마다 다시 돌아볼 있는 선례다. 그들은 각자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방식대로, 자기 삶의 굴곡이 이끈대로 싸운다. 누군가는 펜으로, 다른 누군가는 칼과 폭탄으로, 다른 누군가는 지붕위에서 연설과 시위를 하며, 혹은 누군가는 아무도 하지 않는 일을 자신이 도맡아 하는 방식으로 독립운동가들을 보이지 않는 곳에서 지지하고 돌본다. 실은 우리 모두가 함께 같은 목표를 향해 가고 있다는 사실을 잊지말자는 그들의 실천을 기억해야 하지 않을까. 


만세운동이 일어난 독립운동 3 1일과 세계여성의 날인 3 8일의 간극은 윤석남 화가와 김이경 작가의 노고로 좁혀진다. 역사라는 현실에 바탕을 논픽션은 우리의 역사에 선택적인 집단 기억상실이 있다는 사실을 조명하고, 의도적인 생략과 무의미로 점철된 구멍을 페미니즘이라는 인식론을 통해 여성인물들의 삶으로 차곡차곡 채운다. 이런 작업이 의미있는 이유는 세상의 아름다움은 사람 사람의 다름으로 구축되기 때문이다. 여성을 내세운다고 남성이 지워져서는 안되지만, 반대의 역사는 그래왔다. 남성을 돋보이게 만들기 위해 여성을 지우는 일들이 흔했던 만큼 이젠 여성들을 발굴하고 알려야 하지 않을까. 


39 강주룡 /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투사가 되었느냐 물었지요. 나는 오히려 되묻고 싶습니다. 조선에서 어떻게 하면 투사가 안되고 있습니까?

54 정정화 / 싸웠노라고, 조국을 위해 싸웠노라고. 나는 아들의 손을 움켜쥐었다. 그리고 손끝으로 말해주었다. 조국이 무엇인지 모를 때에는 그것을 위해 죽은 사람들을 생각해보라고. 그러면 조국이 무엇인지 알게 된다고. 

134 정칠성 / 내가 오늘날까지 걸어온 길이란 오로지 조선 여성을 위해서이지만 글로써 발표한 것이나 말로써 부르짖은 것이나 모두 조선의 여성에게 각성하라는, 현실을 파악하는 여성이 되라는 것뿐이었지요. 다시 말하면 가장 현실을 알고 현실을 똑바로 보는 사람이 되라는 것뿐이었지요.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싸우는여자들역사가되다 #윤석남 #김이경 #한겨레출판 #페미니즘 #여성독립운동가 #페미니즘책 # #책추천 #책후기 #책서평 #책리뷰 #독서 #서평 #리뷰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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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 사회정의와 공정함의 실천에 관한 한 검사의 고뇌
프릿 바라라 지음, 김선영 옮김 / 흐름출판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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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

수많은 글을 읽어왔다. 그 글들을 읽으면서 글쓴이에 대해 궁금한 적이 한 두번이 아니었다. 바다같은 언어 속에서 이토록 수려한 단어를 건저올리는 이들, 누구도 관심 갖지 않던 어휘들에서 남모를 아름다움을 발견해 가지런히 배열하는, 이 사람은 어떤 사람일까. 날카로운 비판과 원대한 정의감이 펄펄 들끓는 글을 쓰는 이들은 얼마나 멋질까. 한 때 며칠밤을 애달프게 했던 소설을 쓴 이들은 어떨까. 나는 이런 식으로 글과 글쓴이와 동일시하고 있었다. 글이 아름다움이 인간의 아름다움을 보장한다고 믿는 어리석은 실수를 저지르고 있었다.

글은 글쓴이와 같지 않다. 언어가 늘 인간이라는 추한 존재보다 더 커서 그 인간을 가려주는 역할을 한다. 작가, 지식인, 엘리트들이라 불리는 이들이 사회적 정의를 담은 책을 쓰곤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는 소수자들에게 온갖 범죄를 저지르기도 했다. 작가들까지 가지 않아도 된다. 주변만 보아도 아름다운 언어로 자신을 칭칭 감은채, 그 언어의 커튼 뒤에서는 범죄까지는 아니지만 도저히 이해 되지 않는 비상식을 타인에게 보여준다. 그들은 마치 언어를 고급진 명품 브랜드마냥 걸친채로 세상의 눈을 속인다. 글과 글쓴이 사이에 윤리적이고 도덕적인 간극이 존재한다는 것을, 나는 이제야 안다. 글은 글쓴이가 아니다. 오히려 인간은 자신의 글 보다 초라할 뿐이다.

어디서 읽었는지 모르겠지만, 누군가가 이렇게 말했다. 글은 자신의 지금의 모습이 아니라, 자신이 되고 싶은 모습이라고. 그렇기에 아름답고 위대하기 그지없는 글과, 그 글을 쓴 초라하고 수척한 인간의 안타까운 콘트라스트가 존재한다고. 이 깊은 차이의 심연을 채우는 것은 일종의 인간적인 노력일 것이다. 다만 그 과정에서 방향과 목표를 잃고 부유하다 타인을 해치는 이들이 생기기도 한다. 나는 그들을 혐오에 가까운 감정으로 외면하면서도, 나 또한 내 글과 내 삶이 일치하지 않는지를 살피게 된다.

서론이 길었다. 이제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라는 책에 대해 이야기 해보자. 제목에 "정의"라는 단어가 첫 번째로 등장한다. 위대한 단어, 과연 누가 이 단어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까. 세상에는 정의를 외쳐서는 안될 자들이 함부로 정의로 외치고 있고, 단지 자기 편이 아니라는 이유만으로 우리와 그들을 갈라, 그들에게 "부정의"라는 딱지를 붙인다. 그들은 정의의 언어를 남용하고 오용한다. <정의는 어떻게 실현되는가>는 과연 어떤 책일까. 프릿 바발, 정의가 범람하는 시대에 정의를 외치는 그는 과연 누구인가. 과연 그는 정의를 입에 올릴 자격이 있는 것일까.

이 책은 미국의 검사인 프릿 바바라가 쓴 책이다. 작가에 대해 꼭 알 필요가 있다. 책 날개를 인용하자면 "그는 200명이 넘는 연방검사들을 지휘하면서 테러, 마약 및 무기 밀매, 금융 및 의료보험 사기, 사이버범죄, 공직자부패, 조직폭력, 조직범죄, 시민권침해 사건 등 상당수의 사건들을 해결하며 미국인이 가장 존경하는 검사가 되었다." 검사라는 그의 경력 중 내가 더 흥미로웠던 지점은 "트럼프 대통령이 '오바마의 검사들은 모두 짐을 싸라'며 사직 압박을 할 때 바바라가 맞서다 해고"되었다는 점이다.

이 책은 정의라는 도덕적 주제와 범죄드라마, 그리고 자기계발서의 언어를 제대로 혼종한 느낌이었다. 자기계발의 분위기의 책을 전혀 좋아하지 않는 편인데 바바라 검사가 펼쳐놓은 여러 범죄 이야기들에 제대로 끌려간다는 느낌이 들었다. 이에 더해 사법체계에 대한 그의 정의로운 태도에 대해 조금씩 알게 된다. 뿐만 아니라 법은 "정의로움"만 지녀서는 안되며 그 목적과 수단에 대해서도 숙고해야 한다. 평등을 고려하되, 그 안에서 실직적 평등인지 형식적 평등인지 결정해야 하며, 평등을 넘어 형평성과 국민의 법감정 또한 판단의 기준이 될 수 있다. 피해자를 보호하고 가해자에게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 판사도 검사도 인간이기에 가질 수 밖에 없는 편견을 인지하고 멀리하도록 애써야 한다.

다시 글과 글쓴이로 돌아오자. 이 책이 어떤 면에서는 내 취향에 맞지 않았지만, 읽을 가치가 있는 이유는 명확하다. 정의를 위해 실제로 싸웠으며 싸우고 있는 사람이 쓴 글이기 때문이다. 글과 인간이 윤리적이고 도덕적으로 일치하기 때문이다. 여기서의 정의는 단순히 트로피와 같은 전리품같은 것이 아니다. 정의를 추구했던 경험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라는 인간이 정의롭기를 멈춘다면 아마 이 책도 빛을 잃을 것이다. 프릿 바바라는 현재 공익을 대변하고 부패를 비판하는 칼럼니스트로 활동하고 있다. 이 책이 계속 살아있는 언어가 되기 위해, 그가 앞으로도 좋은 활동을 해 나가길 바란다. 자신의 글을 배반하는 이들은 이미 차고 넘쳤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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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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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책 제목처럼 가난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거대한 문법을 피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그 공식에서 하나의 항을 이루고 있는 것이 내 삶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가난하지 않더라도, 단지 미래에 높은 확률로 가난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절망과 외로움이 사무치게 하는 무서운 공식이다. 가난이 인간의 삶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가난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소준철 작가의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여성노인의 생애를 따라가며 가난이 완성되는 문법을 보여준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의 생애를 통계로 분석한 후 가상의 인물 윤영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회과학 연구서가 우리의 감정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변모시킨 것이다. 이런 서사적 형식은 독자들이 노인의 가난을 단순히 사회학 연구 주제로만 보거나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현실이 아니게끔 만드는 일종의 똑똑한 장치다. 이로 인해 누구나 이 책을 사회학 저서가 아닌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명확히 주지시킨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가난의 문법이란 시대적인 거대한 항 속에서 개인적인 결정들이 섞여들어 완성되는 공식이다. 그러나 이 개인의 선택도 결국 사회적인 요소들이 개인에게 마이너스 항을 어쩔 수 없이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엇비슷한 상황과 시대와 조우하여 가난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이 책의 윤영자씨는 여성이라는 젠더, 그로 인한 짧은 경력과 결혼 육아, IMF 경제위기와 자녀들의 결혼, 가족들의 빚과 결혼 자금, 2000년대 직후 지금까지 동네의 변화와 재개발 같은 여러 사회구조적인 영향들을 받았다. 책의 말마따나 그녀의 가난은 이 변화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시사회학 연구자답게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여성노인들의 노동을 가난이라는 렌즈를 넘어 도시계획과 재활용 산업의 측면에서도 바라본다. 이 부분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관점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우리는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이 마치 버려진 폐지로부터 돈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재활용품 수집은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이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또한 종이상자의 생산량, 배출량이 늘어나는 현상또한 이 착취에 가담한다.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노인의 노동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 정부는 65세라는 은퇴연령을 정해 노인들이 더 이상 노동하지 않게끔 계획했지만,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노인일자리를 내놓는 상호 모순적인 정책들을 한꺼번에 운영하고 있다. 그 일자리들도 낮은 보수의 일용직 채용시장에서 공급되고 있으며 은퇴 후 더 낮은 질의 노동을 요구한다. 저자는 노인의 고용을 늘릴 게 아니라 줄이면서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고 한다. 저자는 래디컬하게 은퇴연령 폐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무작정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며, 이 시점에서 논의를 보편적 복지로 이끈다. 


작년 코로나로 인해 정부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복지에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일었다. 꽤나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기본소득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찬성하게 되었다. 이 리뷰에서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선택적 복지에는 여러 한계와 단점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재분배가 아니라 사전분배가 더욱 필요하다. 재원 문제가 있지만 최근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읽으며 강력한 누진세와 이런 정책들을 성취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기본소득은 마치 꿈같이 느껴지고, 정치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정책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늘 WTO의 룰들을 떠올린다. 그 복잡한 룰도 모두 만들어내었다. 기본소득도 가능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광모공모전에서 최우수 수상작을 받은 한 포스터는 더 노골적이다. '65세 때, 어느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아래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위에는 신문이 쌓인 카트가 그려져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년에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지 않고 품위 있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p.125)" 이 포스터를 보고 정말 천박하다고 느꼈다. 가난한 노인은 반면교사가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의 대상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순 있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행동과 실천없는 연민은 이기적인 자기위로일 뿐이다. "지금의 도시는 과연 노인들의 몸과 마음에 맞을까?"(p.265) 이 마지막 문장이 아주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전제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엄청난 논의가 담긴 책을 단순히 몇 단락의 리뷰로 적는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쉽게 읽히지만 묵직하고, 작은 인물로 시작하지만 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으면 한다. 


@prunsoop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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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서 네덜란드로 갔어 - 한국을 떠나려 하는 이에게
죠디 리 지음 / 하모니북 / 201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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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 시대에 이제는 한국 바깥을 바라볼 수 있을까 걱정되지만, 그럼에도 다른 세상을 꿈꾸는 친구들은 기대에 대한 환희를 함께 나눌 수 있을것 같은 책이다.이 책이 타겟으로 하는 독자는 분명한데,유학을 준비하고 있는 이들, 혹은 어떤 이유로든 더 넓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고자 하는 이들이다. 사실 그 이외의 독자들에게는 크게 매력적이진 않을 것 같다. 


요즘에는 이렇게 일기를 출판하는 것이 유행인가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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