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난의 문법 - 2020 우수출판콘텐츠 선정작
소준철 지음 / 푸른숲 / 2020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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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 대해 리뷰를 쓰려고 하니 머릿속이 복잡해진다. 책 제목처럼 가난에 어떤 공식이 있는 것이라면 과연 나는 이 거대한 문법을 피해갈 수 있을까. 어쩌면 이미 그 공식에서 하나의 항을 이루고 있는 것이 내 삶이 아닐까 하는 두려움이 일었기 때문이다. 비록 지금 가난하지 않더라도, 단지 미래에 높은 확률로 가난해질 가능성이 있다는 상상만으로 절망과 외로움이 사무치게 하는 무서운 공식이다. 가난이 인간의 삶을 이토록 고통스럽게 만든다면 바로 그 이유 때문에라도 가난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소준철 작가의 <가난의 문법>은 재활용품 수집 여성노인의 생애를 따라가며 가난이 완성되는 문법을 보여준다. 독자가 이해하기 쉽게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의 생애를 통계로 분석한 후 가상의 인물 윤영자를 내세워 이야기를 이끌어 나간다. 딱딱하게 느껴질 수 있는 사회과학 연구서가 우리의 감정 속으로 들어올 수 있게 변모시킨 것이다. 이런 서사적 형식은 독자들이 노인의 가난을 단순히 사회학 연구 주제로만 보거나 우리의 삶과 동떨어진 현실이 아니게끔 만드는 일종의 똑똑한 장치다. 이로 인해 누구나 이 책을 사회학 저서가 아닌 한 인간의 이야기로 읽을 수 있다. 


저자는 독자에게 명확히 주지시킨다. 가난은 단순히 개인적 선택으로만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저자가 말하는 가난의 문법이란 시대적인 거대한 항 속에서 개인적인 결정들이 섞여들어 완성되는 공식이다. 그러나 이 개인의 선택도 결국 사회적인 요소들이 개인에게 마이너스 항을 어쩔 수 없이 강요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각기 다른 개인들이 엇비슷한 상황과 시대와 조우하여 가난이라는 종착지에 도달한다. 이 책의 윤영자씨는 여성이라는 젠더, 그로 인한 짧은 경력과 결혼 육아, IMF 경제위기와 자녀들의 결혼, 가족들의 빚과 결혼 자금, 2000년대 직후 지금까지 동네의 변화와 재개발 같은 여러 사회구조적인 영향들을 받았다. 책의 말마따나 그녀의 가난은 이 변화 속에서 그녀가 선택한 결과이기도 하지만, 국가로부터 보호받지 못했던 결과이기도 하다. 


저자는 도시사회학 연구자답게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여성노인들의 노동을 가난이라는 렌즈를 넘어 도시계획과 재활용 산업의 측면에서도 바라본다. 이 부분은 내가 전혀 생각지 못했던 관점이라 꽤나 흥미로웠다. 우리는 재활용품 수집 여성 노인들이 마치 버려진 폐지로부터 돈을 얻고 있다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 착취를 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원래 재활용품 수집은 최초로 상품을 생산한 제조업자에게 처리해야 할 책임이 있다. 생산자가 생산품의 처리에 대한 의무를 다하지 않는 상황이 이 노인들을 존재하게 한다. 또한 종이상자의 생산량, 배출량이 늘어나는 현상또한 이 착취에 가담한다. "기술적 진보와 기업조직의 변화, 소비자의 한 번 쓰고 버리는 물건을 사용하는 습관, 도시 당국의 쓰레기 수거 시스템" 이 모든 것이 재활용품 수집이라는 생태계를 조성하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제 노인의 노동 그 자체에 대해 질문을 던져야 한다. 산업과 고용의 측면에서 정부는 65세라는 은퇴연령을 정해 노인들이 더 이상 노동하지 않게끔 계획했지만, 사회복지 측면에서는 노인일자리를 내놓는 상호 모순적인 정책들을 한꺼번에 운영하고 있다. 그 일자리들도 낮은 보수의 일용직 채용시장에서 공급되고 있으며 은퇴 후 더 낮은 질의 노동을 요구한다. 저자는 노인의 고용을 늘릴 게 아니라 줄이면서 보호하는 방법을 찾는 데 있다고 한다. 저자는 래디컬하게 은퇴연령 폐지를 주장한다. 그러나 무작정 폐지하자는 것은 아니며, 이 시점에서 논의를 보편적 복지로 이끈다. 


작년 코로나로 인해 정부지원금을 지급하면서 복지에 보수적인 대한민국에서도 기본소득 논의가 일었다. 꽤나 고무적인 현상이라고 생각했고, 기본소득에 대한 책을 읽으며 개인적으로 찬성하게 되었다. 이 리뷰에서 모두 설명할 순 없지만 선택적 복지에는 여러 한계와 단점들이 있다. 우리 사회에는 재분배가 아니라 사전분배가 더욱 필요하다. 재원 문제가 있지만 최근 토마 피케티의 <자본과 이데올로기>를 읽으며 강력한 누진세와 이런 정책들을 성취하기 위해 이데올로기적 인식의 변화, 그리고 행위의 필요성에 대해 절감하게 되었다. 기본소득은 마치 꿈같이 느껴지고, 정치적으로 도달하기 어려운 정책처럼 느껴진다. 이런 생각이 들 때마다 나는 늘 WTO의 룰들을 떠올린다. 그 복잡한 룰도 모두 만들어내었다. 기본소득도 가능하다. 


 "국민연금관리공단의 광모공모전에서 최우수 수상작을 받은 한 포스터는 더 노골적이다. '65세 때, 어느 손잡이를 잡으시렵니까?'라는 문구가 적혀 있고, 아래에는 여행용 캐리어가, 위에는 신문이 쌓인 카트가 그려져 있다. 국민연금에 가입하면 노년에 폐지를 팔아 생계를 잇지 않고 품위 있게 여행을 다닐 수 있다는 의미가 담긴 셈이다.(p.125)" 이 포스터를 보고 정말 천박하다고 느꼈다. 가난한 노인은 반면교사가 아니다. 순수한 마음으로 가난의 대상에게 연민과 동정을 느낄 순 있지만, 그것이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다. 행동과 실천없는 연민은 이기적인 자기위로일 뿐이다. "지금의 도시는 과연 노인들의 몸과 마음에 맞을까?"(p.265) 이 마지막 문장이 아주 아름답게 느껴졌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믿는 전제 자체를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는 의미가 아닐까. 


엄청난 논의가 담긴 책을 단순히 몇 단락의 리뷰로 적는다는 것이 말도 안되는 일이지만, 그럼에도 많은 이들이 이 책을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쉽게 읽히지만 묵직하고, 작은 인물로 시작하지만 큰 문제와 맞닿아 있다. 그리고 그 문제는 우리 모두의 문제가 되었으면 한다. 


@prunsoop 출판사에서 제공받은 책에 대한 리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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