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서협찬

작가는 자신의 이야기를 어느정도까지 자신의 작품에 반영하는걸까. 작가가 쓴 소설이 그 자신의 이야기인지 아닌지 독자들은 늘 궁금해한다. 혹은 전혀 그렇지 않더라도 어느 정도는 작가의 경험과 생각이 반영된 것이 아닐까 의구심을 가진다. 이렇듯 문학은 리얼리티와 픽션의 경계를 넘나들고 가로지르며 독자들을 혼란스럽게 만들때가 많다. 그러나 여기 온전히 작가의 경험과 인생을 솔직하게 담아낸 소설이 있다. 인물들이 서로에게 품는 생각들이 너무나 선명하게 묘사되어 인간에 대한 약한 혐오감을 끊임없이 느끼게 한다. 이 혐오감은 소위 말하는 인류애가 망가질 정도는 아니지만 너무나 사소해서 신경을 계속 긁는 혐오감이다. 서로에게 솔직하고 싶지만 보이지 않는 벽으로 막혀있는, 예의바름으로 포장되어 있지만 본질은 경박한, 인간 사이의 관계 생성이 물질적으로 환원되기 시작한 어느 시대에 인연을 끊는 일조차 돈으로 완성되는 일을 겪은 나쓰메 소세키 자신의 이야기이다.

나쓰메 소세키는 내가 언제나 가장 좋아했던 일본 작가였다. 어느정도 전작주의 경향을 지닌 내게 <한눈팔기>는 5번째 정도 되는 나쓰메의 소설일것이다. 많은 독자들이 일본의 대작가라 하면 자주 노벨 문학상의 후보로 거론되는 세련되고 현대적인 무라카미 하루키를 떠올리겠지만 내겐 늘 일본 대작가는 나쓰메였다. 두 작가의 스타일이 달라 비교불가능한 범주겠지만 무너져가는 현대인의 쌀쌀한 마음풍경과 무너져내리는 세계의 변화를 주제로 삼았던 점에서 공통점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아버지라는 존재, 바로 그 대타자의 몰락이 주체의 중심을 잃고 허무에 빠진 이들을 염세적으로 그렸던 하루키의 <노르웨이의 숲>과 나쓰메의 여러 작품들은 어떤 의미에선 서로 닮아있다.

특히 <한눈팔기>는 어느 부부의 양자로 입양되었다가 일순간 파양되어 본가로 돌아와 예쁨받지 못하고 자란 작가의 어린 시절 경험을 반영한 작품이다. 이 입양은 호의나 애정이 아니라 그 부부의 노후대비 차원에서 이루어졌다. 어리지만 눈치가 빠르고 영특했던 나쓰메는 자신에 대한 부부의 집요한 질문에서 경제적으로 계산된 심리를 잡아챈다. 가령 소설 속에서 어린 겐조에게 양부모는 “너의 엄마 아빠는 누구지?”라고 묻는다. 겐조는 손가락으로 그들을 가르킨다. 다음 질문이 그를 시험이라도 하듯 던져진다. “그럼 너의 ‘진짜’ 엄마 아빠는 누구지?”. 아이에게 충분히 폭력적인 질문이다. 아이러니는 그들의 이런 언행에는 일종의 애정도 함께 곁들여 있었다는 점이다. 분노나 슬픔과 같은 감정적 상처가 사랑과 애정의 정서와 결합할 때 이것은 세상 그 어떤 폭력보다 마음을 에이는 트라우마로 변할 수 있다.

애초에 연이 끊긴 양부모가 영국유학을 끝내고 대학 교수로 소소한 돈을 벌며 지내는 겐조를 찾아온다. 경제적 사정이 어려우니 부양을 위해 돈을 요구하는 그들은 자신들의 사정을 대놓고 말할정도로 뻔뻔하진 않지만, 바로 이 때문에 오히려 겐조는 이들을 더 뻔뻔하다 여긴다. 사실 겐조는 자신의 가족들도 경제적으로 힘들며 아내의 친정또한 기울어지기 시작한터라 스스로도 충분히 여유있게 생활하기는 커녕 자신도 쪼들리며 사는 신세다. 그러나 앞으로의 돈에 대한 요구와 양부모와의 인연을 확실히 끊고 싶어 그들에게 돈을 내놓고 다시는 연락하지 않는다는 서약서를 받는다. 서로에게 짐지웠던 마음을 돈으로 연결했다가 어느새 끊어내는 이 아이러니는 너무나 쓸쓸하다.

나쓰메는 이렇게 물질화되고 있는 일본 근대화의 풍경을 비판한다. 그리고 그 시대의 가닥가닥인 인물들의 마음 풍경을 진솔하게 드러내어 비판한다. 여기에서 자신도 예외일 수 없다. 사이가 좋지 않은 겐조와 그의 아내는 서로가 서로에게 원하는 바를 전혀 드러내지도 맞추려고 노력하지도 않는다. 불행한 부부관계의 영원회귀를 서로가 원을 돌고 도는 모습으로 묘사하는 나쓰메는 영국 유학까지 다녀오고 신문물을 흠뻑 받아들인 지식인인 자신을 가부장적 인물로 묘사하는 역설을 보여준다. 교육으로도 어쩌지 못하는 자신의 한계를 냉소하듯 비판한다. 소설 속 겐조의 아내는 그를 현실이 아니라 텅텅 빈 이론만 추구하는 이라 욕하기도 하는데, 아마 이는 나쓰메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조롱일 것이다.

서구에서는 신이 죽었다. 아시아의 일본뿐 아니라 한국에서도 굳건했던 시스템들이 무너졌다. 대타자의 몰락은 현대인들의 삶에 준거점들을 삭제했다. 모두가 중심없이 흔들거리며 사는 시대다. 나쓰메의 문학세계는 이런 시대 속에 살아가는 개인과 시대를 함께 꿰어낸다. 자신이 진리라 믿고 체화했던 모든 것들이 흔들리는 내면의 심리를 투명하게 묘사하는 나쓰메의 필체는 내겐 너무나 섬세하게 느껴져서 그의 글을 읽는 와중 주인공들이 가진 죄책감까지 전달될 정도다. 이상할 정도로 균형을 잃어 잘못 나아가고 있다는 그 감각이 나쓰메의 소설에는 분명히 드러난다. 그러나 참으로 신기한 아이러니는 나는 왜 나쓰메 소설이 가진 원죄의 감각이 내겐 소설을 읽을 때 느낄 수 있는 좋은 감각의 한 부분처럼 느껴지는 것일까. 모르겠다. 어쩌면 사는 것 자체가 그런 것일수도. 우리는 모두에게 죄를 지으며 방향없이 떠돌고 있으니 말이다.

출판사 @eulyoo 로부터 제공받은 책의 리뷰입니다.

#한눈팔기 #나쓰메소세키 #을유세계문학전집 #일본문학 #문학 #현대문학 #책 #책리뷰 #책서평 #책후기 #서평 #독서 #책스타그램 #북스타그램 #독서스타그램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