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 우리어린이 자연그림책, 도시 속 생명 이야기 2
이태수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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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림책 한권을 만났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으니 요즘의 내가 이 그림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반한 건 야생에서 사는 새, 황조롱이가 아파트 화분 받침대 둥지를 틀었다는 놀라움과 보리 세밀화 시리즈와 사계절 그림책, 개구리는 알을 낳았어를 통해 익숙한 이태수님이 그린 따뜻하고 정성어린 세밀화, 그리고 늦게 알을 까고, 늘 늦어서 뒤쳐지는 듯한 막내를 다그치거나 내치지 않고,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엄마, 아빠새의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큰 아이가 학교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구실아래 ‘빨리 빨리 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느린 아이를 학교에서는 기다려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겠지.

만약 황조롱이 어미새와 아빠새가 그런 나를 본다면 참 어리석다고 말할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책이 세밀화로 그려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 이 그림책에서 얻은 그런 감동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세밀화로 그렸기 때문에 황조롱이가 화분 받침대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거기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는 이야기가 더 살아있게 와 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생함 때문에 막내 아기새가 하늘을 날아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어찌 될까?’ 하는 맘으로 숨죽이며 책을 읽었다. 황조롱이 깃털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 무뎌진 펜촉을 서른 번 가까이 갈아 끼우며 작업했다는 작가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져 한 장 한 장,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이태수님은 2001년 봄, 도시 아파트 화분 받침대에 황조롱이가 지은 둥지를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했다고 한다. 황조롱이가 어찌 사람들 틈으로 날아와 둥지를 틀었을까? 신기하고 고맙다.

나뭇가지로 화분 받침대를 빼곡히 메우고, 알을 품고 있는 어미 황조롱이의 눈이 빛나고 있어,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어미새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어미새의 따뜻한 품안에서 아기 새들이 하나씩 하나씩 알을 깨고 나오고, 드디어 마지막 알 하나가 남았다. ‘엄마가 가슴으로 비비고 부리로 굴려주자 엄마 가슴 뛰는 소리가 전해지고, 드디어 ‘톡톡 톡톡’ 막내 아기새가 부리로 껍데기를 두드린다.‘는 이 장면은 글은 몇 줄 되지 않지만 다음장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깃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린 작가의 정성만큼이나 큰 어미새의 기다림과 사랑이 느껴져 조금이라도 숨죽여 기다려야만 아기새가 태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어른인 나는 마지막 남은 알에서 톡톡 금이 가는 장면을 숨죽여 지켜 봤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막내 아기새가 태어나, 엄마 가슴 뛰는 소리를 듣고 잠이 드는 다음 장을 더 좋아라 했다. 아기새가 무사히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축축한 깃털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기새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했으니 생생한 그림을 아이들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맨마지막으로 태어나고, 맨마지막으로 알에서 깨어난 탓일까? 막내로 태어난 황조롱이는 언제나 모든 일에 조금 늦다. 먹이를 먹을 때도 언니들에게 밀려, 언니들이 먹고 잠들고 나면 그제야 엄마가 잘게잘게 잘라주는 먹이를 받아 먹었다.

그런 막내 황조롱이였기에 솜털이 빠지고 얼룩무늬 깃털이 나면서 언니들이 모두 비좁은 둥지를 떠나 날아갈 때도 혼자 남아 있어야만 했다.


‘나도 날고 싶은데...... 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막내 황조롱이를 지켜보며 엄마 아빠가 말한다

“너도 언니들처럼 날 수 있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늦지 않았어. 너도 날거야.”


그래 조금 늦어도 괜찮은데...... 다른 아이들보다 한박자 느린 아이를 보면서 저러다 학교가서 적응이 느리면 어쩌나 미리 걱정하고 조바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며, 따뜻한 사랑으로 끝까지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일인데......

막내 황조롱이를 위하는 황조롱이 부부의 기다림과 사랑이 놀라울 따름이다. 황조롱이 부부는 날지 못하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날아보라고 애절하게 울어대고, 어미 날개로 새끼를 쓸어안고 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 아이들도 거기에 발맞추어 빠르게 적응하기를 바라지만, 행여 조금 늦어지거나 뒤쳐진다 해도 내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일은 다른 누가 아니라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우리 어린이 자연 그림책 ‘도시속 생명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는 인간과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생명의 탄생’을 그리고 있지만 그걸 그냥 사진이나 그림으로 담아 놓은 다른 자연관찰 책하고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일까? 정성어린 세밀화가 주는 힘일까? 아기새가 태어나서 날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마음에 담은 작가의 애틋함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지식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어린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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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를 먹으며 낮은산 어린이 7
이오덕 지음, 신가영 그림 / 낮은산 / 2004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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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오덕 선생님이 쓰신 글, 권정생 선생님이 추천한 책이라 설레이는 마음으로 이책을 읽었다. 얇은 책이지만 한 장, 한 장 그냥 읽고 넘길 수가 없었다. 선생님의 삶이 그대로 묻어나, 그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줄 한줄 천천히 읽었다. 책을 읽는 동안 ‘선생님의 어머니는 말이 아니라 따뜻한 감자로 모든 걸 가르치셨다’ 하는데 나는 우리 아이에게 무엇을 주고 있는가? 하는 생각과 함께 내 어린시절이 같이 떠올랐다.

 

「감자를 먹으며」는 책을 내기 위해서 쓴 글이라기보다는 이웃 할아버지가 아이들을 모아놓고 당신께서 살아온 이야기를 조근조근 들려주는 것처럼 느껴진다.

‘뜨끈뜨끈한 감자를 / 젓가락 끝에 꿰어/ 후우 후우 불며 먹으면/ 그 어릴 적 생각난다./ 네 살이던가 다섯 살이던가/ 그러니까 70년이 지나간/ 그 때도 꼭 이렇게 감자를 먹었지/’ 이렇게 시작해서 ‘나는 지금 할아버지 나이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어린애처럼 후우 후우 감자 먹기를 좋아해서/ 감자 먹는 아이들을 생각하고/감자 먹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모여 있는 마을에 가서/오두막집 지어 사는 꿈을 꾼다./ 내가 죽으면 그 하느님 곁에 가서/ 하느님과 같이 뜨끈뜨끈한/ 감자를 먹을 것이다.’ 이렇게 끝이 나는 감자 이야기이다.

 

오덕 선생님의 글도 참 구수하고 정겹지만 목탄화로 그린 그림이 참 잘 어우러져 선생님의 어린 시절이 저절로 떠오른다. 선생님에게 감자는 그냥 감자가 아니라 온 삶을 이어주는 징검다리와도 같은 것이었나 보다. 맑고 깨끗하고 따스하고 포근하고 부드러운 감자 맛......평생을 그렇게 살고 싶어하셨겠지.

선생님은 ‘뜨거워서 이 손에서 저 손으로 공 받듯이 받다가 /한입 가득 넣으면 입 안에 녹아드는 그 향기 그 맛 / 팍신팍신 달고소한 그 감자 맛/ 그 맛을 어찌 잊을 수 있겠는가’ 하셨는데 사람들은 누구에게나 이렇게 잊을 수 없는 맛에 대한 기억이 있을 것이다. 나이가 들면 들수록 어린시절의 입맛으로 되돌아간다하니 맛은 단지 식욕이 아니라 어린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고향과 같은 것이 아닐까? 그리고 그 맛을 따라 살고 싶어 하는 마음, 그 마음은 책이나 경험에서 얻는 것 못지 않게 삶을 이어가고 지탱해주는 힘이 된다.


나한테 잊을 수 없는 맛은 바로 풋고추이다. 어릴적 방학 때만 되면 할머니집에 가서 일주일이고 이주일이고 있으면서 밭도 메고, 포도며 자두도 따고, 그러면서 밭에 앉아 먹는 점심. 반찬은 김치와 고추, 오이 된장에 찍어먹기가 전부다. 그 가운데서도 고추 맛을 잊을 수가 없다. 끝에 갈수록 매워지는 그 알싸한 맛에 입안이 얼얼하게 되면서도 밥 한 그릇을 고추하고만 다 먹었으니… 그런데 밭에 앉아서 먹는 그 밥이 그렇게 맛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일까 지금도 된장에 고추를 찍어 먹을 때면, 나도 모르게 그 때가 떠오르지만 어린 시절에 느꼈던 그 맛에 비길 수가 없다. 열심히 일한 뒤에 밭에 앉아서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어서 지금도 촌에 가서 사는 삶을 꿈꾸는 건지도 모르겠다.

그밖에도 추운 겨울 날 먹던 갱시기죽, 또 살얼음 가득한 감주 이런 것들은 잊을 수 없는 고향의 맛이 되었다. 


그런데 우리 아이는 커서 어른이 되면 무슨 맛을 기억하게 될까? 어떤 맛이 아이의 삶을 이어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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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야 너구리의 심부름 - 오늘의 동화 선집 1 창비아동문고 200
권정생 외 지음, 원종찬 김경연 엮음 / 창비 / 2002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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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에는 모두 열네편의 이야기가 실려 있는데 그 가운데 권정생선생님이 쓴 동화가 두편이다. 바로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과 밤 다섯 개다. 다른 동화들은 초등 고학년이 읽으면 좋을 듯한 긴 이야기로 되어 있는데 또야 너구리의 심부름과 밤 다섯 개는 여섯 일곱 살이 읽어도 될 법한 아주 짧은 이야기이다. 그런데 나는 이 짧은 이야기 두 편을 읽고는 한참을 멍하니 있었다. 아, 선생님이 이야기하고 싶은 아이들의 참 모습이 바로 이거구나 하는 생각에 머리가 말게졌다. 이토록 깨끗하고 착한 마음을 지닌게 바로 아이들의 참 모습인데 우리는 그걸 잃어 가고 있었구나....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기 너구리 또야 엄마가 또야한테 콩나물을 사오라고 한다. 또야는 엄마가 바쁜 걸 알고는 콩나물을 사러 나가는데 엄마가 또야한테 백원짜리 동전을 하나 주면서 그걸로 뭐든 사먹으라고 한다. 그럼 얼씨구나 하며 좋아할 줄 알았는데 또야는 엄마한테 심부름 하는 값이냐고 묻는다. 또야 엄마의 대답이 뜻밖이다.

“아니 심부름은 그냥 하는 거고 백원은 그냥 주는 거야.”

엄마의 이 말에 또야는 기분이 좋아서 함빡 웃는다. 또야는 그냥 엄마를 도와서 심부름을 하고 싶은 거다. 엄마는 또야의 그 마음이 예뻐서 그냥 돈백원을 주는 거고.

또야는 엄마한테 두 번 세 번 거듭 물어본다.

“엄마, 이 돈 백원 진짜 그냥 주는 거지? 심부름하는 값 아니지?” 하고.

“그럼, 그냥 주는 거야.” 하는 엄마의 말을 듣고 또야는 신이나서 심부름을 간다.

그리고 콩나물파는 할머니한테, 과자가게 아저씨한테 엄마가 심부름하는 값이 아니고 그냥 돈 백원을 줬다고 두 번 세 번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이 이야기를 읽고, 심부름하는 값으로 백원을 준거네 하고 말할지도 모르겠다. 그래 겉으로 드러나는 겉모습만 보면 이거나 저거나 일지 모르겠다. 심부름을 하니까 엄마가 또야한테 그 댓가로 백원을 준거나 별 다를바 없을 수도 있겠다.

그러나 또야 엄마는 심부름 하는 값이 아니라 그냥 돈백원을 준다.

바쁜 엄마를 도와주고 싶은 또야의 깨끗하고 착한 마음을 그냥 그대로 지켜준다. 그리고 싫다는 말 없이 시장바구니를 들고 나가는 또야가 너무 예뻐서 엄마는 그 마음을 돈 백원에 담아준다. 그리고 그 마음을 또야도 알았는지 엄마가 준 백원으로 산 막대사탕을 집에까지 들고 와서는 “엄마, 이 사탕 엄마 먼저 조금 먹어.” 한다. 또야는 그 사탕이 얼마나 먹고 싶었을까? 그런데도 집에까지 들고 와서 엄마를 먼저 먹게 하는 또야가 너무 예쁘다.


직장다니며 혼자서 자취생활을 할 때 쌀이며 과일이며 먹을거를 자꾸 갖다 준 친구가 있었다. 그 친구도 고맙지만 이것저것 챙겨주는 친구엄마가 너무 고마웠다. 얼마 안 있어 친구엄마 생신이라는 걸 알고는 작은 선물을 했다. 부담스러워하지는 않을까 싶기도 하고, 친구는 그냥 혼자 있는 내가 딱해보여 이것저것 챙겨준 건데 선물을 하면 오히려 그 마음을 몰라주는 건 아닐까 싶어 망설이다 선물을 했다. 그런 내마음을 알고는 친구가 이런 이야기를 편지에 썼다. 물건을 주고 받는 게 아니라 마음이 오고 가는 거라 생각한다고, 그말이 참 오랫동안 잊혀지지 않았는데 또야너구리의 심부름을 읽으니 그 때 일이 떠오른다.


밤 다섯 개에도 또야너구리와 엄마가 나오는데 이건 이야기가 아주 짧다. 또야 엄마가 밤다섯개를 주면서 동무들과 나눠 먹으라고 한다. 또야는 동무들에게 밤을 나눠주다 보니 자기게 하나도 없어서 그만 울음을 터뜨리고, 동무들도 또야를 보고는 같이 울어버리고 만다. 엄마가 울음소리를 듣고는 밤 한개를 또야 손에 쥐어줘 함께 삶은 밤을 맛있게 먹는다는  짧은 이야기이다.


자기걸 먼저 하나 챙기고 친구들한테 나눠주거나, 아니면 그보다 더 욕심을 부리는게 우리가 흔히 떠올리는 아이들의 모습인데 또야는 그렇지 않다.

댓가 없이 다른 사람을 도와 줄 수 있고, 내 것을 먼저 챙기지 않고 함께 나눠 먹을 수 있는게 본래 아이들의 참 모습이 아닐까? 그런데 어른들의 잘못됨으로 아이들이 깨끗하고 착한 마음을 잃어가는 것 같아 안타깝다. 또야가 이런 마음을 간직할 수 있는 건 그걸 지켜주는 또야 엄마의 힘이 컸을텐데 나는 어떤 엄마인지 깊은 생각에 잠기게 된다. 마음이 담기지 않은 선물과, 조건, 거래 이런 것들로 얼룩진 어른들의 관계가 아이들의 세계에 까지 영향을 미치고 있는 현실에서 나는 어떤 엄마로 살아가고 있는지 반성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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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자동차가 참 좋아 (양장) 비룡소 아기 그림책 32
마거릿 와이즈 브라운 지음, 최재숙 옮김, 김진화 그림 / 비룡소 / 200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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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들을 위한 맞춤 그림책


이 책을 처음 봤을 때 '세살짜리 우리 아들을 위한 맞춤 그림책'이 아닌가 싶었다.

자동차를 좋아하는 아이라면 누구나 이 책에 빠져 들 것만 같은 그림책.

우리집 아이가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아이가 느끼는 행복감은 정말 만족 그 자체인 것 같았다.

누나가 보는 그림책에서 어느 한구석에라도 차그림이 나오면 '이건 차 책이야' 하고 이름 짓는 아이였으니 이 책을 읽었을 때의 만족감이 어떠했을지는 짐작하고도 남는다.

더구나 차에 이어 기차 배까지 나오니 얼마나 좋았을까?


이런 아이의 마음을 모르지는 않지만,아기때부터 차를 좋아하는 아이한테 될수 있으면 다른 장난감과 차를 직접적으로 다루지 않는 책을 읽어주어, 관심을 다른 곳으로도 넓혀 나갔으면 하는게 엄마의 마음이었다.

그런데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의 글을 옮긴 이 책은 차가 주인공으로 나오는 다른 책과는 느낌이 다르다. 마가렛 와이즈 브라운이 쓴 다른 책들이 그런 것처럼 이 책도 차와 기차 배를 이야기하는 여러편의 시를 읽는 느낌이다. 그래서 차만 좋아하는 무뚝무뚝한 남자 아이라 할지라도 소리내어 책을 따라 읽다보면 그동안은 저절로 말투가 상냥해질 것 만 같다.

우리집 아이는 둘째다 보니 남자 아이라 할지라도 본래 애교가 많지만 이 책을 읽고는 '난 자동차가 참 좋아' 하면서 말하는 그 모습이 참 예쁘다.


'난 자동차가 참 좋아' 로 시작하는 이 책에는 그림을 보면서 글에 나오는 차를 하나 하나 찾아가는 재미가 솔솔하니 좋다. "난 이런 차가 좋아. 엄마는?" "엄마는 이런 차가 좋지."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갖가지 차와 기차, 배를 찾아본다. 꾸미는 말로 이루어진 여러가지 차와 기차 배 이야기를 읽다보면 평화로운 느낌이 든다.

엄마인 내가 제일 좋아하는 대목은 '기차역에서 기다리는 기차, 넒은 들판 가로지르는 기차, 눈보라 속에서 소리치는 기차, 빗속에서 속삭이는 기차'인데 이 장면을 보면 왠지 애틋한 마음이 느껴진다.


물론 아이는 기다란 리무진과 돌고래처럼 생긴 기차, 통통 거리는 통통배와 같이 뭔가 색다르고, 재미있는 모양을 띤 것을 좋아한다.

차를 좋아하는 아들과 함께 이 책을 보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으니 그림책이 우리한테 준 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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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야, 고릴라 아이세움 지식그림책 13
조은수 글 그림 / 미래엔아이세움 / 200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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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야 고릴라’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하마는 엉뚱해’와 같은 밝고 유쾌한 그림책인 줄 알았다. 고릴라는 우리집 아이들이 관심 있어 하고, 신기하게 여기는 동물이라 몰랐던 사실도 새로 알게 되면서 즐겁고 가볍게 읽겠구나 하는 마음으로 펼쳐 들었는데 마지막 책장을 덮고 난 기분이 즐거울 수가 없다. 이런 내 마음과 달리 일곱 살인 큰 아이와 그 옆에서 듣고 있던 세살 둘째 아이는 고릴라가 노래를 부르고 나뭇잎으로 침대를 만들고 그걸 또 아침밥으로 먹는 다는 게 신기한가 보다. “우당탕탕 우당탕탕” 하면서 고릴라가 노래 부르는 걸 흉내내며 방안을 돌아다닌다.

물론 큰 아이는 고릴라가 엄마, 아빠와 헤어져 밀렵꾼에게 끌려가는 장면을 보고 왜 그런지 묻기도 하고, 배안이나 동물원에서 시름시름 앓다가 죽는다는 이야기에서는 나처럼 표정이 굳어지기도 했지만 그래도 이 책이 너무 재미있다고 한다. 그래 아직은 그럴 때이구나.


‘아이세움 지식 그림책’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 ‘나야 고릴라’는 사람의 눈으로 동물을 바라보는 게 아니라 고릴라의 처지가 되어 고릴라가 이야기를 하는 방식으로 쓰여 있다. 그리고 옆 쪽에는 아기 고릴라가 들려주는 이야기에 덧붙여 좀 더 자세한 설명이 있어서 고릴라에 대한 이해를 돕고 있다. 

그런데 고릴라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그들이 살아가는 모습이 어쩌면 이렇게 평화로울까 싶다. 태어나자마자 엄마 배위에 엎드려 심장 뛰는 소리를 듣고, 하루종일 누워서 뒹굴며 엉겨 붙어 놀거나 풀과 과일을 우적우적 먹는 모습은 고릴라의 느긋함과 여유로움을 느끼게 한다. 누굴 잡아 먹지도 않고, 괴롭히는 일도 없이, 햇살이 따스한 날, 맛난 음식을 배불리 먹으며 행복을 느끼는 날은 노래를 부르며 서로 껴안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읽으면 고릴라야말로 천상 낙원에서 사는 것 아닐까 이런 생각까지 든다.

더구나 고릴라 부부의 새끼 사랑방식은 너무나 부드럽고 자상하다. 은빛등을 지닌 아빠 고릴라는 힘이 세서 가족을 지켜주지만, 이동할 때는 무리 가운데서 가장 느리고 허약한 가족의 발걸음에 맞춰 주고, 어린것들의 장난도 참을 성 있게 받아준다니 부모로서 우리 사람들은 어떠한가 반성이 된다.


고릴라는 좀처럼 화를 내지도 않지만, 화가 나면 쿵쾅쿵쾅 가슴을 치고, 누가 귀찮게 굴면 싸우는 대신, 벌떡 일어서서 가슴을 치거나 풀을 잡아 뽑거나 ,나뭇잎들을 휙휙 내뿌린다니 이것도 놀라운 사실이다. 성가시게 굴지만 않으면 절대로 먼저 남을 공격하지는 않는다는데 이런 고릴라를 가장 속상하고 화나게 하는 것은 무엇일까?

부끄럽게도 그건 사람들이었다.

고릴라는 신경이 예민해지면 묽은 똥을 싼다고 하는데 밀렵꾼에게 쫓기거나 가족이 살해당하면 이런 똥을 싼다. 고릴라는 한 가족이 위협을 받으면 그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모두들 목숨을 내놓고 싸우기 때문에 밀렵꾼이 동물원에 보낼 새끼 고릴라 한 마리를 얻으려면 고릴라 가족 모두를 몰살해야만 한다고 하니 이보다 끔찍한 비극이 어디 있을까?

하지만 고아가 된 아기 고릴라는 미국이나 유럽의 동물원에 팔려가기까지 긴 여행을 하는 도중, 배안에서 죽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잡힐 때 겪었던 충격과 한꺼번에 가족을 잃은 슬픔이 너무 커서 먹지도 않고 시름시름 앓기 때문이다. 동물원에 도착한 고릴라라 할지라도 그 사정은 다를 바 없다 하니 고릴라의 가족사랑은 너무나 끈끈하고 애틋했다.


아는 만큼 보인다고 했던가?

이 책 한권을 통해 고릴라에 대한 생각이 완전히 바뀌었다.

생김새는 우스꽝스럽고, 덩치는 커서 둔하고 과격할 거라고 생각해온 고릴라가 연한 연두부처럼 부드럽고 여린 감정을 지닌 동물이라니…….놀라웠다.

동물원에서 본 고릴라는 멍해 보이기도 하고 사람들이 먹는 거 던져 주면 그거 받아먹는 거나 좋아한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언제부터였을까? 내가 살고 있는 도시, 동물원에 있는 고릴라가 사람들에게 침을 뱉기 시작했다. 고릴라한테 먹을 거라도 던져 줄 요량으로 우리 가까이에 붙어 있다가는 언제 침 세례를 받을지 몰랐다. 고릴라가 있는 우리를 지날 때는 그래서 조심해야 했고, 가까이 가서 볼 때도 고릴라의 기분을 살펴야 한다고 말들 했다. 기분이 안 좋은 날은 침을 더 많이 뱉는다고…….

이 책을 읽고 나니 고릴라의 그런 행동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고릴라는 사람들에게 침을 뱉으면서 사람들을 비웃고 있었나 보다. 사람과 너무나 닮은 점이 많은 동물이라서 가족간의 접촉을 통해, 장난과 놀이를 통해서만 자기가 할 일을 배운다는데 그 모든 것을 잃어버린 고릴라가 사람들에게 그렇게라도 저항하고 싶었던 것 같다. 


책의 마지막장에는 아프리카 산속의 오두막에서 19년 동안 혼자 살면서 고릴라를 연구한 다이안 포시의 이야기가 실려 있다. 어려서 부모가 이혼해 외롭고 쓸쓸하게 어린시절을 보낸 그이는 열아홉살 때 고릴라 연구를 위해 르완다에 들어가 고릴라와 친구가 되었다고 한다. 고릴라의 두터운 가족사랑을 보면서 고릴라에 빠져들었다는 그는 밀렵꾼에게 죽어간 고릴라를 가족처럼 생각하며 고릴라 무덤을 만들었고, 밀렵꾼들부터 고릴라를 지키다가 두개골이 갈라지는 아픔을 겪으면서 죽임을 당해 그곳에 묻혀 있다고 한다. 다이안 포시와 같은 사람이 있으니 어쩌면 인간이 동물에게 용서받을 수 있지 않을까 부끄럽지만, 한가닥 희망을 가져본다. 


봄이 되어 다시 아이들과 함께 동물원을 찾게 되면 이 책 ‘나야 고릴라’를 다시 한 번 읽어 봐야 겠다. 큰 아이는 고릴라가 엄마, 아빠를 모두 잃고 동물원으로 오게 된다는 사실에 놀라워했지만 차마 거기에 덧붙여 뭐라고 말을 해주지는 못했다. 고릴라뿐만 아니라 동물원에 있는 모든 동물들의 처지가 다 비슷비슷할 텐데 그 모든 걸 아이한테 말해주기가 쉽지 않았다. 그러나 봄이 되어 동물원을 찾게 되면 가족을 모두 잃고 동물원으로 내몰리게 된 고릴라이든, 아님 억지스러운 짝짓기를 통해 동물원 인큐베이터에서 주사와 약으로 길러진 고릴라이든 다시 만나게 되면 마음으로나마 진심으로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다. 


'나야 고릴라' 이 책은 오랫동안 잊지 못하고, 가슴에 새길 책이 될 것 같다.
평소 동물을 좋아하는 남편한테 이 책을 보여주니 '이걸 모르고 있었나' 하는 반응을 보였다. 고릴라가 원래 부드럽고 착한 동물이라는 것, 동물원의 비극 이 모든 걸 모르고 있었나?

그래 모르고 있었지. 나는 몰랐다.
고릴라가 그렇게 부드럽고 여린 동물이라는 걸, 엄청난 비극을 안고 동물원에까지 잡혀 온다는 걸 생각 못했다. 그리고 가족과 헤어진 슬픔을 못이겨 시름시름 앓는다는 걸 생각지도 못했다.
조은수라는 작가에 대해서도, 다이안 포시라는 여성에 대해서도 많은 생각을 해본다.
부모의 이혼으로 외롭고 쓸쓸한 유년시절을 보낸 다이안 포시는 고릴라들의 두터운 가족애를 보면서 인간보다 오히려 낫다고 느끼지 않았을까?
작가 조은수는 이 책을 쓰기 위해 고릴라 이야기를 몇년동안 마음에 품고, 또 이 책을 쓰고 난 뒤 한 동안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다는 걸 출판사 소개글에서 봤다.
책 한권으로 얻은 느낌만으로 한동안 생각에 잠길 것 같은데 이 책을 쓰는 동안 작가는 어땠을까?

그러나 무거운 주제와 달리 이 책의 그림은 아주 투박하면서도 정감이 넘쳐난다.
글은 하나도 어렵지 않고 너무나 쉽게 읽힌다.
마음이 무거워 지는 책 한권을 만나, 고릴라에 대한 내 생각이 바꼈다.
자연이라는 큰 질서 안에서 같이 살아가는 동물과 사람.
그안에서 누가 위에 있고 아래에 있다고 말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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