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으로부터의 사색 - 신영복 옥중서간
신영복 지음 / 돌베개 / 1998년 8월
평점 :
구판절판


 

스무살 때, 대학을 갓 입학한 그 때는 모든 것이 새로웠다. 내가 알고 있던 세상과 다른 현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그동안 옳다고 믿었던 것들에 대한 흔들림이 일기 시작했다. 그리고 역사를 공부하고 철학을 공부하면서 참된 삶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나름대로의 원칙을 세워나가기 시작했다. 그러다 졸업을 앞두고는 모든 것이 다시 혼란스러워졌다. 머리로 아는 것과 실제로 살아가는 것은 다르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참된 삶을 이야기하기는 쉽지만 참되게 살기는 쉽지 않다는 것, 내가 추구하던 것은 무엇이었나? 뭐 이런 회의가 들기 시작했을 무렵 한 선배로부터 이 책을 권유받았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그리고 어느 잡지에서  이 책을 추천하는 글을 읽었다. 그 안에 모든 철학이 다 들어있다는 말에 궁금증이 일었다. 그때만 해도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 그렇게 큰 울림으로 와 닿을지 몰랐다.


대학 졸업반을 앞두고 있던 그때, 삶의 현장으로 나아가는 준비를 해야 하는 그때, 나는 이 책을 읽고 또 읽었다. 한 장 한 장, 어느 구절도 그냥 지나칠 수가 없어 밑줄을 그어가며, 생각을 되새기며 그렇게 아껴 아껴 읽었다. 덕분에 졸업 뒤의 삶이 두렵지 않았고, 어디에서든 삶의 현장에서 우직하게 살면 되겠구나 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덕분에 마음이 풍요로운 가을을 보냈던 그 기억이 지금도 생생하다. 그리고 둘레 사람들에게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을 참 많이도 선물했다. 이 책의 전도사가 되다시피 했다. 처음 나한테 책을 권해준 선배와 만나 이야기를 하다보면 책에 나오는 구절을 다 외우다 시피해서 나같은 사람이 또 있구나 싶었다.

그리고 10년이 훨씬 지난 지금 이 책은 내가 아끼는 책 1호가 되었다. 그렇게 신영복선생님을 알게 되고 그 뒤로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신영복 함께 읽기를 읽으면서 선생님은 내마음의 스승이 되었다.

신영복선생님을 만나게 해준 책이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이니 그 뒤 다른 어떤 책보다 이 책이 나한테는 소중하다. 딱 한번 선생님의 강연회에 간 적이 있었는데 10년전 이었으니 그때만 해도 선생님의 책이 지금만큼 많이 알려지지 않았고 또 지방이었으니 아주 작은 공간에서 열렸는데 강연이라기 보다는 그냥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누는 느낌 같았다.

의자가 부족한 작은 강당에서 엉덩이를 바닥에 붙이고 앉아서 들었으니 그 느낌이 더 따뜻했는지도 모르겠다. 그 뒤 대학 강당에서 두 세 번 강연회가 있었는데 그때 마다 다른 일과 겹쳐서 가보질 못해 아쉽긴 했지만 아마 처음 그 느낌만큼 감동을 받지는 못했을 것 같다.


햇빛 출판사에서 펴낸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는 ‘청구회의 추억’이 빠져 있었다. 그런데 나중에 사계절에서 펴낸 ‘사람 사이에 삶의 길은 있고’ 이라는 책에서 청구회의 추억을 읽고는 그 감동이 잊혀지지 않아 복사를 해서 사람들과 나누어 읽기도 했다. 그런데 돌베게에서 새로 펴낸 증보판에는 ‘청구회의 추억’이 함께 실려 있었으니 얼마나 반가웠는지 모른다.


혹시 이 책이 감옥에서 쓴 책이라 어렵고 딱딱한 이야기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들에게는 먼저 ‘청구회의 추억’을 한번 읽어 보길 권한다.

그러면 신영복 선생님이 어떤 사람인지 제대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청구회의 추억’에는

선생님이 육군사관학교에 강사로 있을 때 등산길에서 만난 꼬맹이 여섯명과의 사귐이 담겨 있다. 한번의 만남을 그냥 사진 한 장의 추억으로 간직하지 않고 2년동안 주말마다 만나면서 그 사귐을 더해 간 따뜻한 이야기이다.

선생님은 무턱대고 말을 걸거나 친한 척 하는 어른들에게 가지기 쉬운 거부감을 잘 알고 있는 듯 했다. 어린이들의 세계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첫대화를 무사히 마쳐야 한다는 선생님의 이야기가 생각나 나도 처음 만나는 아이들에게는 무슨 말로 첫대화를 시작할까 마음속으로 궁리를 하게 된다.

열 서너살 먹은 그 아이들한테 선생님과 만나는 시간은 얼마나 값지고 소중했을까? 작은 인연 하나에도 정성을 다하는 선생님의 태도가 놀라울 뿐이다. 일회용으로 그쳐버리는 만남이 숱한 요즘 세상에서 ‘어떻게 사람을 만날 것인가?’를 일깨워 준다.

학습지 선생님 노릇을 하고 있던 그 때, 청구회의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아이들을 어떻게 만나 왔나’ 반성이 되었다. 그냥 스쳐가는 많은 선생님 가운데 한 사람이겠지만 그 아이들을 어떤 마음가짐으로 만날 것인가는 만남의 질을 결정하는 중요한 열쇠가 된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선생님이 말하는 이야기의 가장 근본은 ‘사람’이다.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얻은 사람과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서 거창하지도 않고 요란스럽지 않다. 투박하고 거칠기도 하지만 그 안에는 따뜻한 온기가 느껴져 누구라도 쉽게 읽을 수 있고, 감옥이라는 닫힌 공간에서 얻은 생각이지만 철저하게 삶의 현장에 뿌리박고 있어서 허공에 붕 뜬 그런 공허함이 없다. 그래서 어느 한구절도 그냥 쉽게 지나칠 수 없고, 책을 읽다보면 누구라도 자기 삶의 자리를 돌아보게 하는 가르침을 준다.


사랑은 생활의 결과로서 경작되는 것이지 결코 갑자기 획득되는 것이 아니라는 글은 인생의 배우자를 선택하고 결혼생활을 해나는 동안에도 문득문득 생각나는 구절이 되었고, ‘돕는 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라는 구절은 ‘저 혼자만 쓰고 있는 우산’은 없는지를 생각하며 ‘함께 맞는 비’라는 말로 간출여져서 언제나 마음 속에 새기는 글이 되었다.

관찰보다는 애정이, 애정보다는 실천적 연대가, 실천적 연대보다는 입장의 동일함이 중요하고, 입장의 동일함은 관계의 최고 형태라는 말은 ‘함께 맞는 비’의 또 다른 표현일 것이다.


그밖에도 겉으로 드러나는 사실을 보는 게 아니라 그 안에 숨겨진 진실을 보라는 구절은 사람과 세상을 이해하는 방식을 우리에게 가르쳐 주고 있다. 일의 명인에 나오는 노인의 이야기와 목수가 집을 그리는 순서에 대한 이야기, 서도와 필재에 대한 이야기 삶의 현장에 뿌리 박으며 우직하게 살아가라고 말해주는 듯하다. 

 

'한 그루의 나무가 되라고 한다면 나는 산봉우리의 낙락 장송보다 수많은 나무들이 합창하는 숲속에 서고 싶습니다. 한 알의 물방울이 되라고 한다면 저는 단연 바다를 선택하고 싶습니다. 그리하여 가장 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나지막한 동네에서 비슷한 말투, 비슷한 욕심, 비슷한 얼굴을 가지고 싶습니다.' 라는 선생님의 말씀처 나도 내가 뿌리 박은 삶의 터전에서 사람들과 함께  바다로 나아가는 열린 마음을 가지고 살아가고 싶다.  

 

 


댓글(1) 먼댓글(0) 좋아요(30)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
 
 
itmedusa 2009-01-02 02:33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Naver Opencast의 "風林火山의 분야별 대표 도서 소개"(http://opencast.naver.com/BK175)라는 캐스트의 캐스터 風林火山이라고 합니다. 이 글을 제 캐스트에 발행했는데, 혹시라도 발행을 원치 않으시면 '캐스터에게 한마디'에 적어주시거나, itmedusa@gmail.com으로 메일 주세요.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