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 - 우리어린이 자연그림책, 도시 속 생명 이야기 2
이태수 지음 / 우리교육 / 2005년 9월
평점 :
구판절판


 

아, 놓치고 싶지 않은 그림책 한권을 만났구나’ 그런 생각을 하며 이 책을 읽고 서평을 쓰고 싶었다. 그런데 막상 책상에 앉으니 요즘의 내가 이 그림책에 대해 말할 자격이 있나 하는 생각이 든다. 이 책에 반한 건 야생에서 사는 새, 황조롱이가 아파트 화분 받침대 둥지를 틀었다는 놀라움과 보리 세밀화 시리즈와 사계절 그림책, 개구리는 알을 낳았어를 통해 익숙한 이태수님이 그린 따뜻하고 정성어린 세밀화, 그리고 늦게 알을 까고, 늘 늦어서 뒤쳐지는 듯한 막내를 다그치거나 내치지 않고, 따뜻한 눈길로 지켜보고 기다려주는 엄마, 아빠새의 사랑에 감동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요즘 나는 큰 아이가 학교입학을 앞두고 있다는 구실아래 ‘빨리 빨리 하기를’ 강조하고 있다. 느린 아이를 학교에서는 기다려 주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미리 준비하지 않으면 안된다는 강박관념 때문이겠지.

만약 황조롱이 어미새와 아빠새가 그런 나를 본다면 참 어리석다고 말할 것만 같다.


책을 다 읽고 난 뒤. ‘이 책이 세밀화로 그려지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생각해보았다. 그랬다면 아마 지금 이 그림책에서 얻은 그런 감동은 느낄 수 없을 것 같다. 그림에 대해서 아는 바는 없지만 세밀화로 그렸기 때문에 황조롱이가 화분 받침대에 둥지를 틀고, 알을 낳고, 거기에서 새끼들이 태어나는 이야기가 더 살아있게 와 닿을 수 있었다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 생생함 때문에 막내 아기새가 하늘을 날아 오르는 마지막 장면까지 ‘어찌 될까?’ 하는 맘으로 숨죽이며 책을 읽었다. 황조롱이 깃털을 제대로 그리고 싶어 무뎌진 펜촉을 서른 번 가까이 갈아 끼우며 작업했다는 작가의 정성이 그대로 느껴져 한 장 한 장, 느리게 책장을 넘기며 읽었다.


이태수님은 2001년 봄, 도시 아파트 화분 받침대에 황조롱이가 지은 둥지를 직접 찾아가서 보는 것만으로도 가슴 뭉클했다고 한다. 황조롱이가 어찌 사람들 틈으로 날아와 둥지를 틀었을까? 신기하고 고맙다.

나뭇가지로 화분 받침대를 빼곡히 메우고, 알을 품고 있는 어미 황조롱이의 눈이 빛나고 있어, 새 생명을 품고 있는 어미새의 비장한 각오가 느껴진다. 

어미새의 따뜻한 품안에서 아기 새들이 하나씩 하나씩 알을 깨고 나오고, 드디어 마지막 알 하나가 남았다. ‘엄마가 가슴으로 비비고 부리로 굴려주자 엄마 가슴 뛰는 소리가 전해지고, 드디어 ‘톡톡 톡톡’ 막내 아기새가 부리로 껍데기를 두드린다.‘는 이 장면은 글은 몇 줄 되지 않지만 다음장으로 넘어가기가 쉽지 않았다. 깃털 하나하나를 세밀하게 그린 작가의 정성만큼이나 큰 어미새의 기다림과 사랑이 느껴져 조금이라도 숨죽여 기다려야만 아기새가 태어나는 장면을 볼 수 있을 것 만 같았다.


어른인 나는 마지막 남은 알에서 톡톡 금이 가는 장면을 숨죽여 지켜 봤는데 우리집 아이들은 막내 아기새가 태어나, 엄마 가슴 뛰는 소리를 듣고 잠이 드는 다음 장을 더 좋아라 했다. 아기새가 무사히 태어나서 다행이라는 표정을 지으며, 축축한 깃털이 그대로 느껴지는  아기새를 손으로 만져보고 싶어했으니 생생한 그림을 아이들도 느끼고 있는 듯 했다.


그런데 맨마지막으로 태어나고, 맨마지막으로 알에서 깨어난 탓일까? 막내로 태어난 황조롱이는 언제나 모든 일에 조금 늦다. 먹이를 먹을 때도 언니들에게 밀려, 언니들이 먹고 잠들고 나면 그제야 엄마가 잘게잘게 잘라주는 먹이를 받아 먹었다.

그런 막내 황조롱이였기에 솜털이 빠지고 얼룩무늬 깃털이 나면서 언니들이 모두 비좁은 둥지를 떠나 날아갈 때도 혼자 남아 있어야만 했다.


‘나도 날고 싶은데...... 날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안절부절못하고 있는 막내 황조롱이를 지켜보며 엄마 아빠가 말한다

“너도 언니들처럼 날 수 있어. 조금 늦어도 괜찮아.” 

“늦지 않았어. 너도 날거야.”


그래 조금 늦어도 괜찮은데...... 다른 아이들보다 한박자 느린 아이를 보면서 저러다 학교가서 적응이 느리면 어쩌나 미리 걱정하고 조바심을 냈는지 모르겠다. 그보다 중요한 건 아이를 믿고 지켜봐주며, 따뜻한 사랑으로 끝까지 기다려주고 용기를 주는 일인데......

막내 황조롱이를 위하는 황조롱이 부부의 기다림과 사랑이 놀라울 따름이다. 황조롱이 부부는 날지 못하는 새끼에게 먹이를 물어다주고, 날아보라고 애절하게 울어대고, 어미 날개로 새끼를 쓸어안고 가기도 하면서 그렇게 기다려 주었다고 한다. 세상은 빠르게 변하고 우리 아이들도 거기에 발맞추어 빠르게 적응하기를 바라지만, 행여 조금 늦어지거나 뒤쳐진다 해도 내 아이를 믿고 기다리는 일은 다른 누가 아니라 부모만이 할 수 있는 위대한 사랑임을 다시 한번 생각해본다.


우리 어린이 자연 그림책 ‘도시속 생명 이야기’라는 부제가 붙은 ‘늦어도 괜찮아 막내 황조롱이야’는 인간과 동물의 세계에서 가장 소중하고 위대한 ‘생명의 탄생’을 그리고 있지만 그걸 그냥 사진이나 그림으로 담아 놓은 다른 자연관찰 책하고는 그 느낌이 많이 다르다. 실제 일어난 이야기를 바탕으로 해서일까? 정성어린 세밀화가 주는 힘일까? 아기새가 태어나서 날아가는 과정을 지켜보고 마음에 담은 작가의 애틋함 때문일까?

이 모든 것이 합쳐져 지식이 아니라,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살아있는 생명의 이야기를 담은 감동어린 책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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