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무 시끄러운 고독
보후밀 흐라발 지음, 이창실 옮김 / 문학동네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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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독하자마자 바로 재독 한 책은 처음이다.

130페이지가 안 되는 소설이라 다시 읽기에 부담이 없기도 했다.

첫 일독은 천천히 음미하면서 읽었다.  한번에 다 읽어버리는 게 아까워서 중간중간 다른 책들도 읽었다.

두 번째는 한 호흡에 읽어내렸다.  두 번째 읽으니 첫 번째에 놓쳤던  것들이 잘 보였다.   


세밀하거나 사실적은 묘사가 없어도 압축되고 절제된 고요한 문장만으로도 충분하다.

아니 부드럽고 친절한 만큼 세심하기도 하다.  이런 문장을 익히 본 적이 없다.


"삼십오 년째 나는 폐지 더미 속에서 일하고 있다. 이 일이야말로 나의 온전한 러브 스토리다."


이 소설의 첫 문장이기도 하지만, 이 문장은 조금씩 변형하여 챕터 대부분의 첫머리에서 반복된다.  

운율이 되어 시적으로도 읽힌다.  시적 사색적이기도 하면서 내용면에선 한편의 잔혹한 동화같기도 하다.  소설의 줄거리를 요약하기도 한탸가 어떤 인물이었는지도 글로 표현하기가 여간 힘든 것이 아니다. 

이 소설은 직접 읽어보아야 한다. 서평도 무슨 소용있으랴.  간략하게 감상만으로 끝내야 하는 것은 아닌지. 

  

한타의 드러나는 모습에 대해선 좀 얘기할 수 있겠다.

한탸는 폐지를 압축해 꾸러미를 만드는 일을 35년째 해왔다.  압축할 운명의 폐지에서 찾아낸 책들을 읽다가 "뜻하지 않게" 교양을 쌓는다. 압축 꾸러미마다 서명을 하듯 위에 자신이 읽은 책을 펼쳐 올려 꾸민다. 피로를 덜기 위한 것도 있지만 책을 더 잘 읽기 위해 맥주를 마셔댄다. 폐기되기 아까운 보석 같은 책들은 집으로 가져와 보관한다.  통로와 변기 위와 자는 곳 이외엔 책이 쌓여있다.  책들의 무게에 짓눌려 키까지 구부정해졌다.


"내가 혼자인 건 오로지 생각들로 조밀하게 채워진 고독 속에 살기 위해서다. 어찌 보면 나는 영원과 무한을 추구하는 돈키호테다. 영원과 무한도 나 같은 사람들은 당해낼 재간이 없을 테지."


한탸는 인간의 운명이 압축되어 사라지는 책과 다를 게 없다고 생각했다. 

자신이 책을 폐기하면서 책을 누구보다도 아끼고 사랑한다는 것은 소설의 제목 "너무 시끄러운 고독"만큼이나 역설적이다.


"내가 맥주를 네 단지째 비우고 있을 때 압축기 근처에 우아한 젊은이 하나가 나타났다. 나는 그를 대번에 알아보았다. 예수였다. 연이어 얼굴에 주름이 가득한 노인이 그의 곁으로 와 섰다. 노자가 아니면 누구랴"


책 속의 위인들은 언제라도 튀어나와 함께 사색한다.  고독 속에서 책에 빠져 있던 한탸는 그들의 사고를 통찰하고 그들의 진리에 가닿을 수 있었다.  독서는 하늘도 인간도 인간적이지 않음을 깨닫게 만들었다. 세상은 점점 비인간적이 되고 문명의 편리함을 따르고 있다는 것에 대해 한탸는 생각이 많았다.


햔탸는 책을 통해서 다른 세계로 멀리 떠날 수도 진실을 찾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지만, 책을 한 권도 읽지 않았던 옛 여인 만차를 만났을 때 그녀가 그 누구보다도 멀리까지 갔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자신은 책들을 가까이하기는 했지만 실천이 없는 생각만으로 궁극적인 진리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느낀 것은 아닐까. 

새로운 세상이 와서 어디로 가야 할지 모를 때 책에선 답을 찾을 수 없었다. 그래서 한탸가 완전히 미지의 세계로 진입하는 마지막 선택은 의미가 깊다. 너무나 실존적이라서 한탸의 명상을 따라가기는 힘들었다. 


폐지 속에서 책이라는 정신의 숭고함을 건져내고, 그 책을 필요로 하는 이에게 선사하고, 책에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독서로 교양을 쌓아 철학적 명상가가 된  한탸..  책을 좋아하는 독자에겐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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