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수 밀란 쿤데라 전집 10
밀란 쿤데라 지음, 박성창 옮김 / 민음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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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체코슬로바키아가 소련의 침공으로 공산화되고,  

비밀경찰의 압박을 못 이기고 유럽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두 사람..  

공산주의가 무너진 1989년, 두 사람은 20년 만에 고국에 들른다.

최초의 서사시 <오디세이아>에서 오디세우스가 20년 만에 그의 고향 이타카로 돌아간 것처럼...


두 사람은 프라하행 비행기 안에서 재회하게 된다.  

 

한 사람은 체코슬로바키아서 남편의 결정에 따라 프랑스로 망명했던 이레나이다.

이레나는 프랑스에서 남편이 병사하고 다시 재혼했다.  

프랑스어가 자유로운 프랑스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지만, 

남편을 포함하여 지인들이 오히려 고국에 가봐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녀가 이방인임을 상기시켰다.

남편이 프라하에 지사를 내면서 남편과 함께 찾아온 고국은 낯설기만 하고,

친구들과 혈육들은 그녀의 지나간 20년간의 삶에 대해서는 철저하게 무관심하기만 하다.  

20년이란 세월은 잘리고 과거와 현재가 이어붙여진 느낌이 되었다.


또 한 사람은 비밀경찰의 눈을 피해 스스로 덴마크로 망명했던 조제프이다.

조제프는 고국에서의 삶이 소중하지 않았기에 아무런 후회도 없이 국경을 넘었고 고국에서의 기억도 빨리 사라졌다.

형과 형수를 20년 만에 만나게 되지만, 

형이 내민 자신의 일기장을 보고 유년 시절의 나와의 괴리감과, 

암울한 나라에 남아 겪어야 했던 형과는 세월의 간극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조제프는 향수병은 전혀 느낄 수도 없고 덴마크의 죽은 아내와의 추억을 위해서라도 하루빨리 덴마크로 돌아가고만 싶다.

 

이레나와 조제프가 비행기 안에서 재회했을 때 서로를 바라보는 방식은 고국을 대하는 태도와 비슷했다.
이레나가 먼저 조제프를 알아보고 만나자고 제안했다.   고국이 자신을 밀어내지 않길 바라듯이.
조제프는 그녀와의 기억이 전혀 없지만 약속을 받아들였다.   고국을 잊지 않고 한번 들러본 것처럼.    

이레나는 자신과 함께 하룻밤을 보낸 후에야 조제프가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하지 못한 것을 알게 된다.   예전에 자주 만났고, 같은 경험, 같은 추억으로 맺어졌다고 생각한 그조차도 자신을 기억하지 못하다니 황당하기만 하다.

 

기억은 혼자만의 것이 아니라 가족 친인척, 친구들과의 대화로 공유되면서 이어지는 것 아닐까.   혼자만의 기억은 오해를 불러일으켰고 20년간의 부재는 추억도 기억도 소진되기에 충분한 시간이 되었다.   향수는 기억의 활동이 아니라 자신만의 감정일 뿐이기에, 추억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는 없었다. 

고국의 지인들도 마찬가지.  떠난 자는 금세 잊혔다.  망명자들이 돌아왔을 때 잠깐 동안의 우정을 보일 뿐 자신의 삶과는 아무런 관련이 없기에 관심은 오래가지 않는다.  


고국은 그렇게 망명자들에게 호의적이지 않았다.   그렇다고 망명지에서도 편한 것만은 아니었다.  망명자라는 꼬리표는 항상 따라다녔고,  망명자의 생활 방식과 불행의 환상을 지울 수는 없었다.  이방인은 그렇게 모국에서도 망명지에서도 이방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일까.    전쟁이나 이데올로기의 대립으로 망명할 수밖에 없었던 수많은 지식인과 예술가들의 삶이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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