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1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288
어니스트 헤밍웨이 지음, 김욱동 옮김 / 민음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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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를 어디에 두는 거죠? 코를 어디에 둘까 늘 생각했어요."

"자, 머리를 옆으로 돌려 봐." 

유달리 높은 코의 마리아(잉그리드 버그만)와 로버트(게리 쿠퍼)가 서로 키스하는 장면은 

영화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하면 떠오르는 명장면으로 남아 있다.


두 남녀가 사랑을 나눈 후에는  "땅바닥이 움직인다"라고도 말한다.

이는 서양에서 성적 쾌감을 가리키는 문화적 상투어가 되었다고 한다.   두 사람은 "거의 죽어가는 기분"을 느꼈다고도 말한다.   이 정도면 전쟁 소설보다는 연애 소설로 명성이 더 높은 것 아닌가.  


책누에 북클럽에서 스페인 내전에 참전한 후 자신의 경험을 르포 형식의 글로 기고한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를 읽고 난 후,  스페인 내전을 바라보는 다른 작가의 시각이 궁금해서 선택한 소설이 바로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이다.   


스페인 내전은 공화국 정부가 들어선 후 프랑코가 파시스트 반란을 일으켜 발생한 공화국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전쟁이다.  조지 오웰의 <카탈루냐 찬가>에서는 정부군과 반란군의 내전뿐만 아니라, 정부군이 초반 우세한 듯하자 실권을 잡기 위해 벌어졌던 정당 간 내전 속 내전 카탈루냐 시가전에 대해서도 정치적 연대기적으로 기술되고 있다.   특히 여러 나라와 여러 정당들이 얽히고설켜 있는 급변하는 정치적인 상황은 이해하기 힘들었다.  

 

조지 오웰이 몸담았던 통일 노동당은 프랑코와 공모한 트로츠키파로 몰려 폭동을 일으킨 주범으로 몰린다.   통일 노동당 사람은 파시스트 반란군에 대항해 몸 바쳐 싸웠지만 잡혀 들어가고 처형되고, 조지 오웰도 위험했다.  부상을 당해서 후방에서 치료한 후 제대증을 받으러 다시 전장으로 향하는 장면은 긴박했고 동료의 구명을 위해 자신도 통일 노동당임을 밝힐 수밖에 없었던 장면들은 아슬아슬하기만 했다.   <카탈루냐 찬가>의 서평을 올리려고 했으나 이렇게라고 자리를 빌려서 정리해 본다.


헤밍웨이의 전쟁 소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엔 게릴라 부대가 될 수밖에 없었던 민초와 집시들, 그리고 정부군과 반란군 간의 직접적인 전쟁보다는 후방에서 벌어졌던 참혹했던 살상 등이 묘사된다.  특히 카탈루냐 시가전에 대해 언급되어 있나 눈을 크게 뜨고 찾아보았다.  카탈루냐 시가전을 통일 노동당의 폭동으로 얘기하는 장면이 짧게 지나갔다.   언론의 선동에 의해 그렇게 조장되었으니 외부에선 그렇게 볼 수밖에 없었던 걸까.   조지 오웰은 트로츠키파의 억울함으로 인한 분노로 <카탈루냐 찬가>를 썼다고 하니 오해는 풀렸을까..  현재의 역사는 어떻게 기록되고 있는지 궁금하다.


여하튼 이 소설의 배경도 스페인 내전..

로버트는 미국 스페인어 교수로, 스페인에 대해 남다른 애정을 가지고 있다.  공화국이 파시스트에 의해 무너지는 것을 염려하여 참전한다.  로버트는  다리 폭파라는 막중한 임무를 맡고 게릴라 부대를 이끈다.  헤밍웨이도 스페인 내전에도 직접 참여하기도 했다.


전쟁의 한복판에서 만난 로버트와 마리아는 단 4일간의 만남으로 서로에게 다시 태어나는 계기를 마련해주고 내가 당신이 되어 버리는 일체감을 이루어 냈다.  짧은 만남이었지만 그 순간 현재는 그들에게는 긴 인생보다도 더한 인생의 충만감을 제공했다.  누려야 할 모든 것은 짧은 시간 안에 집중시킬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듯..   


로버트에게 주어진 임무, 다리 폭파...   시간이 지날수록 다리를 폭파해야 하는 진짜 이유를 모른다는 회의감만 든다.   무슨 일이 있어도 다리 폭파 임무를 완수해야만 한다는 것을 알뿐..  전쟁은 그 폭주기관차 같은 질주 본능을 멈출 줄 모른다.   예상한 대로 결과는 흘러만 간다. 


"지금 전선에는 그 공격을 취소할 권력을 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이제 와서 갑자기 공격을 중단하기에는 전쟁이라는 기계가 너무 오래전부터 작동하고 있었던 것이다.  어떤 규모이건 군대의 작전이란 모두 엄청난 관성이 따르게 마련이다.  일단 이 관성을 극복하고 작동하기 시작하면 그것을 멈추게 하기란 그것을 시작하는 것만큼이나 어렵다"(2권 317페이지)


노벨상을 받는데 결정적 역할을 했던 헤밍웨이의 작품 <노인과 바다>를 읽고는 인간의 의지, 사투, 생명력, 뭐 그런 것들에 공감적인 공감을 하긴 했다.   <태양은 다시 떠오른다>를 읽고는 뭘 말하고 싶은 건지 나의 공감의 부족을 탓했다.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는 책장은 쉬이 넘어갔으나 진행이 더딘 드라마를 보는 것 같아 읽는 재미와 긴장감은 떨어졌다.   


인물의 복잡다단한 심리를 세밀하게 묘사하는 것도 물론 좋지만, 장황한 언어의 나열보다는 밀도감 있는 서술의 아쉬움이 남을 때가 있었다.   헤밍웨이의 글은 어휘력이 평이하다는 어느 작가의 평을 읽은 적이 있는데 그 글을 다시 찾아보려니 못 찾겠다.  이 소설을 읽으며 좀 공감했달까.   그동안 읽었던 노벨상 수상 작가들 작품에는 미치지 못하다는 야박한 평을 내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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